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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01화 (701/818)

701화. 혼옥(魂玉), 마수의 바다

이준의 시선이 닿은 곳엔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가 서있었다.

그는 미소를 지은 채 어느 세력 사람인지 모를 강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사내는 등 뒤를 덮은 흑색 장발에 시원시원해 보이는 인상을 하고 있었지만, 혼족의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도저히 좋게 볼 수가 없었다.

이준이 그 남자를 천천히 훑고 있을 때, 그 역시 이준의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이준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짐짓 호의적인 그의 태도에 이준은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꽤 위험한 녀석 같아.”

이준은 고개를 돌려 이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사람의 이름은 혼옥이에요. 이름은 여자 같지만 남자죠. 저희가 얻은 소식에 따르면 혼족 내에서 아주 치열한 경쟁이 있었다고 해요. 패배한 자는 그 자리에서 처참하게 죽었고요. 저 혼옥이라는 자는 태어날 때부터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고 해요. 저 자 역시 저와 마찬가지로 혼족의 신급 혈통을 가진 자예요.”

이은이 보기 드물게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신급 혈통이라…….”

이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혼옥은 다른 혼족 녀석들과 다르게 입만 열면 네 영혼을 빼앗을 수 있어. 겉으론 착해보여도 뼈 속까지 사악한 녀석이야.”

고청양이 끼어들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상대에 대한 경계심이 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가 된다면 저 녀석을 첫 번째로 죽여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언제 다시 저곳으로 가지?”

이준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광장에는 족히 수천 명은 되는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네. 모두 모이면 다시 들어갈 거예요. 단독으로 저 안에 들어갈만한 세력은 없으니까요?”

이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희도 함께 들어가요. 사람이 많을수록 더 안전 할 거예요.”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광장 위에 울려 퍼졌다. 그 ‘혼옥’이라는 남자였다.

“여러분. 지금 상황에 대해 모두 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우리의 목표는 바로 보리 나무 입니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와는 무관하게 지금은 모두가 힘을 합칠 때입니다.”

석대 위에서 혼옥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함께 힘을 합치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연맹을 구성하여 화살처럼 빠르게 마수 바다를 뚫고 들어간다면 그들의 방어를 뚫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연맹은 신분 고하에 상관 없어 어느 누구도 명령을 내리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모두 안심하십시오. 물론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들은 이곳에 남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모두 빈손으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광장에 순간 적막이 흘렀다. 잠시 후, 사람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혼옥 님의 말이 맞소. 이번엔 우리 하늘 봉황족도 함께 하겠소.”

사람들의 마음이 점차 흔들리기 시작하던 그때, 오색홍채를 가진 남자가 혼옥을 거들고 났었다.

“하하. 고맙습니다, 구봉 님.”

“맞소. 이곳에 남아있어 봤자 얻는 것도 없는데, 한 번 시도해봐야 하지 않겠소?”

오색홍채를 가진 남자의 말에 수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손을 들기 시작했다.

“저 녀석도 보통내기는 아닌 것 같네요.”

이준은 오색홍채의 남자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하하. 저 녀석은 구봉이다. 마수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차기 하늘 봉황족의 우두머리지. 저 두 눈은 수련한 공법들의 결과물이야.”

고청양의 설명에 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 봉황족 내에서 제법 지위가 높아 보인다 싶더라니,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다른 의견이 없다면 바로 움직입시다. 마침 정오라 마수들도 가장 굼뜰 시기입니다.”

혼옥이 씩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움직여요. 모두 조심하세요. 이곳 사람들이 모두 들어간다 해도 10분의 1 밖에 되지 않아요. 혼옥과 구봉도 사실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그냥 이 사람들을 이용해 최대한 깊숙이 들어갈 생각인 거겠죠. 분명 돌파구를 찾아 빠져나가려 할 거예요.”

“이래도 못 뚫는다고?”

이준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투존 강자가 적어도 백 명이 될 법한데, 그래도 마수바다를 뚫을 방법이 없단 말인가? 도대체 그곳이 어떻기에 그런 거야?

이준이 놀라있는 사이, 광장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하늘 전체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가자.”

이준도 지체하지 않고 천천히 하늘 위로 떠올랐다. 남은 사람들도 재빨리 이준의 뒤를 따라붙자 꽤 커다란 진영이 만들어졌다.

이미 하늘 위로 올라와있던 혼옥은 이준 무리를 살짝 곁눈질하곤 다시 광장에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리곤 피식 웃으며 앞장 서 북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이준 일행 역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처음부터 체력 소모를 많이 했다간 더 빨리 죽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새까만 무리들이 먹구름처럼 하늘을 가득 메운 채 백 리의 거리를 번개처럼 날아갔고, 십 분도 채 되지 않아 숲이 무성한 산봉우리를 지나갔다. 그곳을 지나치는 순간,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색 평원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준은 드넓게 펼쳐진 흑색 평원을 보며 저도 모르게 찬 공기를 들이켰다.

검은 구름이 퍼져 있는 이곳 지면에는 거대한 크기의 고대 마수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마치 핏빛 바다처럼 끝도 없이 펼쳐진 마수의 바다에서는 흉악한 포효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이곳이 보리 나무 땅의 마수바다구나. 엄청난걸.”

이준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확실히 이은의 말대로 어떤 세력이라 해도 단독으로 이곳을 돌파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만 지난다면, 드디어 보리심을 손에 넣을 기회가 생긴다.

이준의 시선이 끝도 없이 펼쳐진 마수바다를 지나쳐 아주 멀리서 보이는 검은색 지대로 향했다.

“여러분, 저 곳이 바로 마수의 바다입니다. 지금이 들어가기 가장 좋은 시기지요. 연맹은 제가 제안한 것이니 저희가 가장 위험한 맨 앞줄을 맡겠습니다. 하지만 체력이 떨어지면 다른 분들이 자리를 바꿔주셔야 합니다.”

혼옥의 맑은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그가 자처해 가장 위험한 곳을 맡아준다고 하니 다른 사람들은 한층 더 그에게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뭔 꿍꿍이야?”

하지만 이준은 고개를 저으며 비웃었다. 혼족 놈들이 이렇게 정직하게 일을 처리한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노릇이었다.

“움직입시다!”

혼옥은 곧장 뒤로 돌아 열 명 남짓한 혼족 강자들을 이끌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에는 하늘을 빼곡하게 채운 수많은 강자들이 따라 가며 염력을 퍼뜨리고 있었다.

이준 일행 역시 천천히 허공으로 올라가 너무 가깝지 않은 곳에서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가자!”

검은 의복을 입은 강자들의 최전방에 선 혼옥이 귀를 찌르는 바람소리와 함께 마수의 바다 안으로 빠르게 뛰어들었다. 그러자 그 뒤를 따르던 새까만 무리 역시 화살 형태의 진영을 만들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크르릉!

마수 떼와 천 미터 정도 가까워졌을 때, 인간들의 기운을 느낀 마수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하기 시작했다.

“죽여라!”

눈 깜짝할 사이에 천 미터의 거리를 이동한 혼옥 일행의 몸속에서 염력이 방출되자 백 미터 안에 있던 마수들이 그대로 갈기갈기 찢겨버렸다.

쿠쿵!

마수 떼와의 전쟁이 시작되기 무섭게 곳곳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대열 중간에 위치한 이준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마수들을 처치하면서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있는 마수들은 그리 강하지 않아 손쉽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깊숙이 들어갈수록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워질 것이 분명했다.

쾅!

“벌써 투종급 마수가 보이기 시작하네요. 안으로 더 들어가면 투존급 마수들도 있으니 다들 잡히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이은이 굳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들은 이미 마수의 바다 깊은 곳까지 들어온 상태였다. 전후좌우는 물론이고 하늘까지 마수 떼로 빼곡하게 둘러싸인 이곳에서는 더 이상 후퇴할 방법도 없었다.

이준은 잠시 틈을 타 최전방에 위치한 혼옥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들이 능숙하게 팔을 휘두르자 앞에 있던 마수들이 그대로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혼옥 일행이 자신들을 위해 열심히 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믿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준은 여전히 그들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새빨간 피와 흉악마수의 시체가 가득했다. 사방을 가득 메운 피비린내가 코를 강하게 찔러왔지만 마수들은 겁먹기는커녕 더욱 미친 듯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2킬로미터 정도 더 앞으로 나아갔을 때, 결국 속력이 조금씩 줄기 시작하더니 무수히 많은 마수들이 대열의 앞에 서있는 강자들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수백 마리의 마수가 투존 강자들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았지만, 더욱 많은 숫자의 마수들이 달려들며 상황이 눈에 띄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쿵!

시간이 갈수록 달려드는 마수들을 죽이는 것이 어려워지고, 곧 참혹한 육탄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전방에 있던 혼옥 일행이 마수 무리와 부딪히자, 모든 사람들이 속력을 빠르게 줄이고 자리에 멈춰 섰다. 일단 발을 멈추게 되니 좌, 우, 앞, 뒤 할 것 없이 마수들이 달려들었다.

크르릉!

쾅!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마수들로 인해 주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대부분의 마수들은 투존 강자들의 손에 죽고 말았지만, 몇 몇 투존급 마수들이 대열 속을 뚫고 들어오며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빨리 도망쳐!”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두 겁에 질린 얼굴로 황급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이준의 시선이 다시 앞으로 향했다. 혼옥과 다른 혼족의 강자들은 어느 새 대열의 앞자리에서 사라져 있었다. 때문에 가장 앞에 있던 강자들이 마수들을 모두 상대해야 했다.

하지만 도망칠 구멍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악물고 염력을 내뿜으며 마수들에게 대항했지만, 결국 미친 듯이 달려드는 마수의 커다란 입에 삼켜지고 말았다.

그 사이 최전방에 위치한 사람들은 다시 대열을 뚫고 빠져 나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처참한 죽음을 피해 달려가던 사람들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이준 일행의 표정 역시 어둡게 내려앉아 있었다. 6성, 7성 투존 강자들마저 파도처럼 밀려오는 마수들에게 저항하다가 잠깐이라도 틈을 보이는 순간 순식간에 잡아먹히고 있었다.

“안 돼…….”

이미 10분의 1 가까이 줄어버린 대열을 둘러보던 이준의 눈에 가장 뒤에서 온화하게 웃고 있는 혼옥을 발견했다.

“이준 오라버니, 이러다 진영이 완전히 무너지겠어요. 만약 혼옥이 먼저 움직이면 우린 그 뒤를 따라가요. 우리 스스로 버텨야 해요.”

갑자기 이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이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처참하게 죽어버린 인간과 마수들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쾅!

그때, 최전방에서 온몸이 강철처럼 새까만 마수가 갑자기 나타나 거대한 주먹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고깃덩어리로 만들기 시작했다.

쉭!

사람들이 마수의 주먹에 당하는 틈을 타 혼옥 일행은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따라 가자!”

혼옥이 먼저 빠져나가자 이준 일행 역시 빠르게 그들의 뒤를 쫓아갔다.

그와 동시에 남아있던 몇몇 대열도 재빨리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도 혼옥의 속임수를 진작 알아차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들이 떠나고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사방에서 달려드는 마수에게 파묻혀 고통스러운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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