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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94화 (694/818)

694화. 고대지도의 수수께끼

간신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두 노인은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두 방향으로 나뉘어 온 힘을 다해 달아났다.

두 사람이 흩어지는 순간, 약로의 몸이 허공에서 사라졌다가 지 전갈의 앞에 나타나 공간을 봉쇄했다.

“이, 이, 약선!”

지 전갈이 붉게 물든 눈으로 약로를 바라보며 인을 맺었다.

인이 완성되기도 전에 그의 몸 속 염력이 미친 듯이 뒤섞이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자폭을 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약로의 주먹이 지 전갈의 가슴을 강타하는 순간, 미친 듯이 폭등하던 그의 염력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며 그의 눈이 순식간에 생기를 잃었다.

약로는 지 전갈의 시신을 저장반지 안에 넣어 이준을 향해 던진 뒤 천 전갈이 도망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도가 있는지 확인해 보거라. 난 저 녀석을 쫓아가겠다.”

말을 마친 약로는 곧바로 공간을 가르고 천 전갈이 달아난 방향으로 사라졌다.

이준은 한 손으로 저장반지를 받은 뒤 반대쪽 손을 폈다. 반대쪽 손에는 인 전갈의 저장 반지가 들려 있었다.

두 노인이 목숨을 잃으며 저장 반지에 새겨져 있던 영혼 인결 역시 희미하게 변해 있었다. 이준은 가볍게 인결을 지워버리고 빠르게 자신의 영혼의 힘으로 저장반지를 훑었다.

“젠장! 없어!”

“천 전갈의 몸에 있는 것 같아. 그 영감이 대장이니까.”

채린이 말했다.

바로 그때, 이준의 손 위에 금빛 두루마리 하나가 나타났다.

“이건……?”

눈에 익은 두루마리가 이준의 손에 나타나자 채린과 아라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까 경매장에서 팔던 금강유리체야. 이게 지 전갈의 손에 있을 줄이야…….”

‘금강유리체’는 1격 하급 무투기로, 이준 역시 그 무투기를 탐냈었다. 하지만 지도 조각을 얻기 위해 경매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설마 세 노인의 손에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었다.

“한 푼도 안 쓰고 좋은 거 건졌네.”

아라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은 어떻게 됐으려나…….”

이준은 고개를 들어 약로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걱정 마. 선생님의 실력이라면 천 전갈은 절대로 달아날 수 없을 테니까.”

채린의 말에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멀리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며 익숙한 형상 하나가 세 사람의 앞에 나타났다.

“하하. 이번엔 정말 통쾌하구나.”

약로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잠시 후, 그가 낡은 지도 조각을 꺼내 이준에게 내밀었다.

이준은 떨리는 손으로 낡은 지도조각을 받았다. 고대지도를 모두 수집하기 위해 십 년 이상을 뛰어다닌 끝에 드디어 모든 조각을 손에 넣은 것이다.

‘정화의 불꽃…….’

손에 든 지도조각을 바라보는 이준의 눈에서 뜨거운 화염이 치솟았다.

이준이 좋아하는 모습에 약로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이준이 이 지도조각을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바로 그였다.

“우선 가자꾸나. 곧 있으면 일부 강자들이 알아차리고 찾아올 것이다. 완전한 고대 지도가 우리 손에 있다는 걸 안다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게야.”

“예.”

이준이 조급해진 마음을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화의 불꽃의 행방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면 곧바로 수십, 아니 수백 명의 강자들이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달려들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가자.”

약로가 공간을 가르고 사라지자, 이준과 채린, 아라 역시 빠르게 그 뒤를 따라 거대한 공간 균열 안에 발을 들였다.

이준 일행이 모두 사라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십 여 개의 그림자가 번개처럼 날아와 화련에 의해 허허벌판이 된 평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가 이런 엄청난 짓을…….”

그때, 한 사람의 눈에 시체 한 구가 들어왔다.

“전갈마괴의 지 전갈?! 누가 이 자를 죽인 거야?”

“그 세 노인은 늘 붙어 다니는데, 지 전갈이 여기에서 죽었다면 남은 두 사람도 무사하진 못 할 거야.”

“흥, 이런 악당들은 죽어도 싸지. 누군지는 몰라도 아주 좋은 일을 했군.”

그렇게 십 여 명의 강자들이 지 전갈의 시체를 발견하고 놀라있는 사이, 이준 일행은 아주 멀리 사라져 버렸다.

* * *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산봉우리 위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불어 닥치며 이준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면서 우리의 모든 흔적을 없애버렸으니 설령 투성 강자라 해도 이곳까진 쫓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약로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한 번 지도조각을 맞춰보자. 나도 어떻게 될지 궁금하구나.”

약로는 곧바로 손을 휘둘러 어떤 변고가 일어나도 해결할 수 있도록 공간을 봉쇄했다.

찢겨진 지도 조각 네 개를 모두 꺼내는 순간, 이준의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찢어진 지도조각을 무늬의 흔적에 따라 하나씩 맞춰갔다.

마침내 마지막 지도조각이 맞춰지자, 이준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완성된 지도가 가리키는 것은 특정한 지형이나 그 곳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 한 폭의 산수화였다.

“이게…….”

이준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비비며 말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찾아다닌 고대 지도에 아무 정보도 없다고?

“조급해 말거라. 이 지도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것이니 누가 고의로 장난을 쳤을 리는 없다. 분명 여기에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게다.”

약로가 침착한 표정으로 이준을 달래듯이 말했다.

“후…….”

이준은 긴 숨을 내쉬며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고대 지도를 훑어보았다.

무언가 특별한 부분을 찾으려 눈이 빠져라 들여다보았지만, 기이한 불연꽃을 제외하고는 그 어떠한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피를 떨어뜨려 보거라.”

약로의 말에 이준은 머뭇거리다 중지를 베었다.

검붉은 피가 이준의 손가락을 타고 고대지도 한 구석에 떨어져 서서히 스며들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약로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준은 꽤나 실망한 듯 멍하니 고대지도를 바라보았다. 옆에 있던 채린 역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준이 정화의 불꽃을 찾기 위해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정적이 깔리고, 주변의 공기마저 무겁게 내려앉았다.

조금 전 까지 느꼈던 기쁨도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이준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쓸모없는 거, 가지고 있어봤자 뭐 해?”

그 순간, 이준의 손에서 이화가 솟아나 낡아빠진 지도 조각을 감쌌다.

그와 동시에 약로의 눈동자가 빠르게 수축했다.

“왜 안타는 거지?”

약로의 말에 세 사람의 시선이 화염으로 향했다. 믿을 수 없었지만, 천지의 불꽃에 휩싸였음에도 지도는 털끝만큼도 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화력을 높여봐라!”

약로가 고대지도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이준의 화염으로도 불타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지도에 무언가 특별한 장치가 되어있다는 의미였다.

화악-.

이준이 황급히 화력을 높이자, 뜨거운 열기에 공간마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지도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고대 지도 위에 그려진 산수화가 점점 더 밝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화염의 열기가 강해질수록 고대지도 위에 나타난 무늬 역시 점점 더 밝아지더니, 돌연 고대 지도에서 기이한 문자들이 떠올랐다.

두 개의 달이 동시에 떠오르고

아홉 개의 별이 하나가 되어

천지가 움직일 때,

정화의 불이 세상에 나타나리라.

약로는 놀란 눈으로 허공 위에 떠있는 문장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이게 무슨 뜻이죠?”

이준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두 개의 달이 동시에 떠오르고 아홉 개의 별이 하나가 된다는 건 천지경관을 말하는 것이다. 이 경관은 천 년에 한 번만 볼 수 있지. 천지가 움직이는 건 그 천지경관으로 인해 나타나는 이상 현상이고……. 마지막 문장은 너희들도 이해했겠지. 조석 현상이 일어나는 그 날, 정화의 불꽃이 세상에 나타난다는 게다.”

이준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천 년에 한 번만 볼 수 있다고요? 그럼 완전히 기회가 없다는 거잖아요.”

“계산해보면 마지막 조석현상이 일어난 게 997년 전이었다. 그렇다는 건 아직 3년이 남았다는 거겠구나.”

약로는 고개를 저으며 숨을 내쉬었다.

“괜찮다. 정화의 불꽃은 워낙 강해 너도 손에 쥐기 어려울 게다. 3년간 실력을 올려두는 것이 좋겠구나. 3년 안에 반드시 투성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화의 불꽃이 세상에 나와도 보고만 있어야 할 게다.”

“하, 이렇게 오랫동안 찾아다녔는데 알아낸 소식이 이거라니…….”

이준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져 나갔다.

이 말대로라면, 정화의 불꽃이 나타났다는 걸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 텐데, 무엇 때문에 그 고생을 하며 지도 조각을 찾아다녔단 말인가?

“하아…….”

이준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화염 속에서 꼼짝도 않고 있는 고대지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가 막 고대지도를 손에 쥐려는 순간, 기이한 불연꽃 문양이 나타나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이준의 미간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미처 손쓸 새 없이 벌어진 일에 이준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채린과 아라 역시 깜짝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방금 이준의 미간으로 들어간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준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영혼 탐지 능력을 활용해 자신의 미간 속으로 들어간 것의 정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의 미간에서는 주먹만 한 광단이 조용히 떠다니고 있었다.

광단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얌전하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지만 뭔지도 모르는 물건이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갔으니 당혹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했다.

“제길……!”

이준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냉정을 찾으려 노력하며 영혼의 힘을 다시 움직여 광단이 있는 곳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영혼의 힘이 다가가도 광단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준은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영혼의 힘을 조금씩 끌어 모았다.

영혼의 힘으로 그 광단을 감싸는 순간, 갑자기 하얀 빛이 터져 나오더니 이준의 영혼을 향해 번개처럼 돌진했다.

이준은 빠르게 영혼의 힘을 모아 강력한 방어막을 만들었지만 광단은 간단하게 그의 방어막을 뚫고 빠르게 영혼 속으로 스며들었다.

하얀 빛이 영혼 속에 들어가기 무섭게 이준의 온몸이 빳빳하게 굳으면서 고통스러운 표정이 얼굴 전체로 번져나갔다.

이준을 지켜보고 있던 약로는 이준의 표정이 변하자마자 손으로 그의 머리를 붙잡고 자신의 영혼의 힘을 강제로 주입시키려 했다.

“후욱후욱…….”

바로 그때, 이준이 두 눈을 번쩍 뜨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약로가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모르겠어요.”

이준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미간을 가리켰다.

“이 안에 있어요. 어떻게 해도 움직일 생각을 안 해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네가 몇 살이었지?”

이준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약로가 뜬금없는 질문을 내뱉었다.

“네? 15살이죠.”

이준은 왜 그런 것을 묻느냐는 듯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스승을 바라봤다.

약로는 그제야 안심이 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몸을 지배당했을까봐 걱정했다. 고대의 강자들은 때때로 기이한 비술을 사용해 다른 사람의 영혼을 잡아먹고 그 몸을 지배하기도 하니까.”

이어지는 스승의 말에 이준은 고개를 저으며 옅게 미소를 띠었다.

“그건 대체 뭐였을까…….”

약로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 미간에 들어오는 순간, 네 글자가 적힌 정보를 받긴 했어요.”

“뭐라 써 있었느냐?”

“정화성자.”

“정화성자?”

약로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바위 위에 홀로 앉아 깊은 생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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