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2화. 보리 나무의 땅
“여덟 개.”
약로가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경매가가 이미 그의 예상을 크게 벗어났기 때문이다.
“허허, 팔색 연금비약 여덟 개까지 나왔습니다. 또 제시할 사람 있습니까?”
보산 노인의 말에 대전 안은 빠르게 조용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약로와 경쟁하던 빼빼 마른 사람을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구색 연금비약 하나. 만일 이것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다면 이 지도조각을 당신에게 넘기겠소!”
‘이 영감 정말 미쳤군.’
사내가 구색 연금비약까지 내놓자 모든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치켜떴다.
구색 연금비약이라는 말에 이준 역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그 역시 8레벨 구색 연금비약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투성의 고적에서 가지고 나온 흰색 마수가 바로 구색 연금비약이었다. 하지만 잘만 키우면 9레벨 연금비약이 될지도 모르니 그것을 넘기고 지도조각을 받기에는 손실이 너무 컸다.
연금마수와 지도 조각을 교환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약로가 이준의 손목을 덥썩 붙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성급히 굴지 말거라. 저 영감이 누군지 난 이미 알고 있다. 마침 빚진 것도 있고 하니 이번 기회에 갚아주어야겠구나.”
약로의 낮은 목소리가 이준의 귀에 울려 퍼졌다. 약로의 성격에 눈뜨고 마지막 지도조각을 놓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연금비약을 내놓지도 않고 있으니, 경매가 끝나고 노인을 습격해 지도조각을 힘으로 빼앗으려는 것이 분명했다.
“크크크.”
빼빼 마른 남자는 기괴하게 웃으며 대전 중심에 있는 보산 노인에게 고개를 돌리더니 저장 반지에서 새하얀 토끼 같은 것을 꺼내 들었다. 토끼가 등장하는 순간, 짙은 약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손에 들린 작은 토끼를 쓰다듬던 남자는 이를 악물고 토끼를 보산 노인에게 던졌다.
구색 8레벨 연금비약이 대전 안을 가르며 날아가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낚아채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새하얀 토끼를 받아 든 보산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말없이 토끼의 몸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설마하니 정말로 구색 8레벨 연금비약을 내놓으면서까지 이 지도를 손에 넣으려 하는 자가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듯한 반응이었다.
“낙찰되었습니다. 이 지도조각은 당신 겁니다.”
토끼를 조심스레 거둔 보산 노인은 찢어진 지도조각을 빼빼 마른 노인에게 날렸다.
고대 지도조각이 노인의 손에 들어가자, 이준의 주먹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허허. 이번 비밀 경매의 마지막 경매품은 물품이 아닌 정보입니다. 이 정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중주 전체에 널리 퍼지겠지만, 이곳에서 처음으로 소식을 들을 기회가 주어집니다.”
보산 노인은 씩 웃으며 대전 전체를 둘러보았다.
“이 정보는 어떠한 보상도 받을 수 없지만, 큰 소동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마지막 경매품으로 내놓게 되었습니다.”
장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눈썹을 찌푸리며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보산 노인을 바라보았다. 무슨 정보기에 이렇게까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까?
보산 노인은 가볍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전설의 고대 보리 나무가 만 년 만에 출현했습니다.”
“고대 보리나무?”
대전 안에 순간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소란이 일었다. 이는 투존은 물론이고 반투성 강자들마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의 정보였다.
고대 보리나무는 고적에서 ‘지혜를 윤회시키는 나무’로 일컬어지는 신비한 존재로, 천 년에 한 번씩 자라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그렇게 백 번을 자라나야 완전한 보리나무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보리나무가 출현할 때마다 대륙 전체에 엄청난 파동이 일었으며, 투성 강자들마저 보리나무를 얻으려다 목숨을 잃곤 했다.
고적에 의하면 고대 보리나무는 이 세상에 단 한 그루뿐이고, 지혜를 가지고 있어 나타날 때마다 어느 누구도 찾지 못하도록 땅 속 깊은 곳에 숨는다고 했다.
보리나무 안에는 보리심이 들어 있었는데, 이것만 얻는다면 투성이 되는 일은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아주 오래 전 운이 좋은 한 강자가 보리심을 먹고 2성 투존에서 5년 만에 투성 강자가 되어 대륙을 뒤집었던 적도 있었다.
즉, 보리 나무의 출현은 투기 대륙 전체를 뒤집어 놓기에 충분하고 남을만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후…….”
보리 나무의 이름이 나오자, 이준은 물론이고 약로의 입에서도 한숨이 새어나왔다.
“보리 나무라니…….”
약로가 중얼거렸다. 이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장반지를 문질렀다. 이준에게도 보리 구슬이 하나 있었다. 헌데 어째서 보리 나무의 출현을 느끼지 못 했을까?
“보산 노인, 보리나무가 출현한 지점이 어디입니까?”
이준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보산 노인을 바라봤다. 말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힘으로라도 답을 들을 듯한 기세였다.
“허허. 숨기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보산이 사람들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웃으며 말했다.
“보리나무가 출현한 곳은 모두 익숙한 곳일 겁니다. 바로 중주 동북 변방지역에 위치한 보리나무의 땅 입니다.”
“보리나무의 땅?”
보산의 답변에 질문을 던졌던 강자의 얼굴이 대번에 어둡게 내려앉았다.
“그런 위험한 지역에 나타나다니…….”
이준 역시 눈썹을 찌푸렸다. 그 역시 ‘보리나무의 땅’ 이라는 곳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곳은 투기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임과 동시에 모든 인간들의 발길이 금지된 곳 이었다.
보리나무의 땅은 독기체가 만연하고 상고 시대의 흉악한 마수들이 가득해 전설의 용을 제외한 그 어떤 마수들도 감히 가까이 가지 못 하는 곳 이었다. 심지어 하늘 봉황들마저 감히 그곳에 들어가지 못 할 정도이니, 투존 강자라 해도 목숨이 열 개쯤 되지 않는 이상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 했다.
피에 굶주려 미쳐 날뛰는 보리나무 땅의 마수들은 지능은 떨어지지만, 투존 최고급 강자도 살아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오랜 세월 그 곳으로 들어간 수많은 강자들이 돌아오지 못하면서 보리나무의 땅은 차츰 누구도 발을 들이지 않는 금단의 영역이 되어갔다.
하지만 보리 나무의 출현 지역이 그곳이라면, 목숨을 걸고 그 안에 들어가겠다는 강자들이 줄을 설 것이 분명했다.
“흥! 이 귀한 정보를 왜 공개하나 했더니 최대한 많은 강자들을 불러 모아놓고 그 틈을 타서 이득을 취할 생각이군.”
약로가 말했다.
“허허, 보리나무가 나타날 때마다 천지에 이상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한 달 안에 여러분도 제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보산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정보도 모두 드렸으니 이번 비밀 경매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모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전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우리도 가자. 보리나무는 기회가 있다면 찾으러 가보자꾸나.”
약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하지만 그 전에 지도조각부터 찾아야겠구나.”
약로가 고개를 돌려 조금 전 지도조각을 낙찰 받은 노인의 등을 바라보며 섬뜩한 표정으로 말했다.
* * *
비밀 경매가 끝나자, 약로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돌아와 곧바로 공간을 가르고 서북 방향으로 날아갔다. 이준 일행 역시 그의 뒤를 따라 사막을 뚫고 이름 모를 산봉우리 위로 향했다.
“이곳은 그들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곳이다.”
약로가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 그 자들이 대체 누구입니까?”
“지도 조각을 낙찰 받은 것은 운우종이라는 곳의 강자들이다. 그들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자 아이들을 납치해 「그릇」으로 만든다. 이후 십 년 동안 온갖 정성을 들여 실력을 키운 뒤 아이들의 몸속에 있는 염력과 생명력을 흡수하지. 그리고 염력과 생명력을 빼앗긴 아이들은 모두 10일 안에 끔찍한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지금까지 놈들이 납치해 그릇으로 삼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그곳에 납치된 어린 아이들은 오로지 운우종의 세 괴물들을 위한 자양분으로 쓰일 뿐이지.”
“정말 뻔뻔한 종파네요.”
채린과 아라가 살기로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렇지. 과거 뜻 있는 강자들이 힘을 합쳐 놈들을 몰아냈었다. 하지만 놈들이 또 다시 비밀경매에 나타날 줄이야…….”
약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당시 그들 중 한 사람에게 중상을 입혔었는데, 남은 두 사람이 그 녀석을 살리면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 이 역겨운 놈들을 다시 만나게 되다니…….”
약로의 표정에는 상대에 대한 적나라한 살기와 적의가 묻어나고 있었다.
“운우종의 세 악마는 혈하천존보다 더 오래전부터 중주에서 악명을 떨쳐왔지. 첫 째인 천(天) 전갈은 9전 투존 전성기이고, 둘째 지(地) 전갈은 9전보다 한 단계 낮은 8전(八轉) 투존 전성기이다. 셋째 인(人) 전갈은 그보다 더 낮은 6전(六轉)으로, 세 사람이 힘을 합치면 투성 강자보다도 더 막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준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정도라면 중주에서도 최고 중의 최고로 꼽힐 만한 수준이었다.
바로 그때, 약로가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더니 먼 곳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왔구나…….”
곧이어 지평선 멀리서 맹렬한 바람소리가 일며 세 개의 그림자가 번개처럼 나타났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이동하던 세 명의 악마는 산봉우리에 들어서기 무섭게 자리에 멈춰서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약선? 누군가 했더니 너구나!”
그들은 약로를 발견하자마자 일그러진 얼굴로 고함을 질렀다.
이준은 그들을 위아래로 훑었다.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의 체형을 보는 순간, 비밀 경매에서 지도 조각을 낙찰 받은 자가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즉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뒤에는 한 노인과 젊어 보이는 남자가 서있었는데, 두 눈을 보니 나이는 두 사람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아주 오랜만이군.”
약로가 뒷짐을 진 채 웃으며 말했다.
“나와 경쟁했던 사람이 네 놈이었느냐?”
빼빼 마른 노인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약선을 노려보며 말했다.
“지도를 내놓아라.”
“끌끌. 한 때 대륙에서 명성을 떨친 약선이 노상강도 짓이나 하고 다니다니, 네 놈도 우리와 똑같은 악당이 되었구나!”
천 전갈이 기괴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방식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네 놈들 같은 악당이라면 세상을 위해서라도 그 지도를 넘겨주지 않는 게 낫겠지.”
“허, 약선. 반투성이 되었다고 너무 기고만장한 것 아니냐?”
지 전갈이 흉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럼 그때의 원한을 갚을 겸 어디 한 번 해 보자고.”
약로가 가볍게 발을 구르자, 그의 몸이 귀신처럼 전갈마괴들 앞에 나타났다.
약로가 염력을 폭발시키는 것과 동시에 구름마저 사라지고 사방에서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섬뜩한 에너지에 세 노인의 낯빛이 곧바로 어둡게 내려앉았다. 세 사람의 실력은 확실히 중주에서도 최상위 층에 속했지만, 이미 반투성이 된 약로를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쿵!
약로가 손을 휘두르자, 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주먹이 그들을 덮쳤다.
“함께 움직여!”
세 노인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내 염력을 한데모아 약로의 주먹을 막아냈다.
쾅!
네 강자의 염력이 뒤엉키는 것과 동시에 강풍이 사방을 휩쓸며 거대한 산 벽이 단박에 무너져 내렸다.
“윽!”
삼 대 일의 대결이었지만, 천 전갈은 첫 번째 격돌만에 자신들이 약로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