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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90화 (690/818)

690화. 팔색원석

성운각에 도착한 이후, 이준과 약로 모두 수련에 집중했다.

그 사이 성운각 상공에서는 이따금씩 형형색색의 비뢰와 이상 현상이 나타났으며, 황금색 형체가 소리소문없이 나타나 먹구름 속으로 뛰어 들어가 비뢰를 막아내기도 했다.

이런 이상 현상은 반나절이 지나서야 서서히 줄어들었다.

뒷산에 있는 석탑 밖에서 약로와 이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고, 말할 힘도 없는 듯 각자 조용히 방으로 돌아가 3일 동안 휴식을 취했다.

셋째 날 정오. 이준과 약로는 완전히 회복한 몸으로 다시 만났다.

“움직이자.”

약로가 말했다. 비밀 경매가 곧 시작하니 이제 움직일 때가 됐다.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곁에는 지금 채린과 아라 뿐이었다. 이번에는 약로도 함께 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이곳에 남아 성운각을 지키는 게 더 좋을 것이다.

“성운각 일은 내가 잘 처리해뒀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가 바로 돌아올 것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말을 마친 약로는 곧바로 발로 허공을 구르며 성운계 출구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이준 역시 채린과 아라에게 눈짓을 한 뒤 동시에 그의 뒤를 따라갔다.

비밀 경매는 중주에서도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문 은밀한 거래로, 손에 꼽히는 강자와 세력들만이 참여할 수 있었다.

비밀 경래가 막 시작했을 땐 특정한 주최 측이 없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규칙이 필요한 법이니, 경매가 확장되면서 평소에 명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종파 세 곳이 합세해 질서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비밀 경매의 질서를 유지하는 세 세력은 각각 지행종, 공현문, 그리고 검보산이었다.

그들은 명성으로 따지면 사대각보다도 뒤처지지만, 실력만큼은 불의 협곡이나 현명종도 함부로 그들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세 세력은 여러 강자들이 고심 끝에 고른 주최자였고, 오랜 시간 비밀 경매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조율해 왔었다.

* * *

비밀경매는 중주 동북 지역에 있는 황폐한 사막에서 개최되었다.

모래바람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이곳은 평소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었다.

심지어 마수들조차 발을 들이지 않는 척박한 땅이니, 비밀 경매를 열기에는 최적의 장소라고도 할 수 있었다.

사막 바깥. 청량한 하늘 위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네 개의 그림자가 귀신처럼 사막의 귀퉁이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라고요?”

이준은 아무것도 없는 사막을 바라보며 의아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

약로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쓸모없는 땅처럼 보이겠지만 잘 느껴보면 이 안에서 강한 기운이 느껴질 게다.”

영혼탐지능력을 사용해 주변을 훑어보자, 정말로 셀 수 없이 많은 3성 투존 이상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 중에선 아주 독특한 파동도 느낄 수 있었다. 이 파동은 바로 약로에게서 여러 번 느껴봤던 투성 강자의 기운이었다. 그 파동을 내뿜는 자들은 모두 최소 투존 최고급 강자일 것이 분명했다.

“중주에서 최고로 꼽히는 경매답게 강자들이 엄청나게 많네요.”

이준이 감탄사를 내뱉자, 약로가 껄껄 웃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하, 이건 일부일 뿐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왜 최고로 뽑히는지 곧바로 실감할 수 있을 게다. 저 구역에 들어가면 모두 신중히 행동해야 한다. 이 경매에 참여하는 비밀스러운 세력들은 명성이 없을 뿐 투성 강자를 보유하고 있는 곳도 많으니까.”

이준을 비롯한 세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성운각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해도 대부분 약로에게 의지하고 있는 연금술사들이거나 반투성이기 때문에 절대로 투성을 보유하고 있는 세력들과 마찰을 일으켜서는 안 됐다.

“물론 다른 이들이 시비를 걸어오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가자.”

말을 마친 약로는 손짓을 하며 사막 깊은 곳으로 날아갔고, 이준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그의 뒤를 따라 모래폭풍을 뚫고 빠르게 모습을 감췄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가자, 풀 한포기 자라지 않을 것 같은 황량한 언덕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덕의 중심부에는 족히 백 미터는 되어 보이는 공간 통로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이게 비밀 경매장의 입구인가…….”

이준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약로가 웃으며 세 사람에게 손짓했다.

“들어가자.”

약로의 지시에 따라 공간 통로 안에 발을 들이자, 누군가가 영혼의 힘을 이용해 몸을 훑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도 비밀 경매의 관리자라는 세 세력의 강자들의 기운인 것 같았다.

잠시 후, 밝은 빛과 함께 소란스러운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면서 작은 마을 같은 곳이 눈앞에 펼쳐졌다. 회색빛이 칙칙하게 깔려있는 하늘에서는 공간의 힘이 끊임없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비밀 경매가 개최되는 마을이다. 고계처럼 아주 넓진 않지만 교역 지점답게 있을 것은 다 있지.”

약로가 사람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는 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선 마음 편히 둘러보거라. 이곳에 있는 것은 하나 같이 밖에서는 보기 어려운 물건들이니.”

약로가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이준을 비롯한 세 사람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약로의 뒤를 따라갔다.

“지옥마수의 다리, 2격 고급 무투기…….”

“태현의 인결, 2격 고급 공법…….”

“마수의 구슬, 7레벨 고급 연금비약…….”

“만년혼령삼까지.”

“지하의 심장도 있어. 이걸로 연금비약을 제련하면 최소한 육색 비뢰가 나타날텐데……”

이준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눈이 돌아갈 만한 보물들을 구경하며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거리가 끝나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오는 길에 본 물건들을 모두 사들이고 싶었지만, 지금은 정화의 불꽃의 위치가 담긴 마지막 지도 조각을 구하기 위해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다.

이에 이준은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며 애써 발걸음을 돌렸다.

바로 그때, 채린이 갑자기 자리에 멈춰서더니 화려한 색깔의 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주먹보다 작은 크기인 그 돌 위에는 일곱 개의 무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칠색원석?”

채린의 시선을 따라 돌을 발견한 이준은 저도 모르게 눈썹을 들썩였다.

칠색원석은 변이된 특수한 영혼석으로 칠색 이무기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칠색 이무기가 죽은 곳에서만 매우 낮은 확률로 만들어진다고 알려진 이 원석은 칠색 이무기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영양제라고 할 수 있었다.

이준은 석대로 걸어가면서 뒤에 서있는 사람을 힐끔 쳐다봤다. 물건을 올려놓은 사람은 무기력한 표정의 빼빼 마른 노인이었다.

“선생님. 이건 어떻게 거래하십니까?”

이준이 웃으며 묻자 그 노인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거래 조건을 밝혔다.

“삼색비뢰 이상의 8레벨 연금비약 두 개와 바꿀 것이오.”

“좀 비싼 것 같은데요?”

이준이 칠색원석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것이 귀한 물건은 맞지만 그 정도 가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약로는 팔짱을 낀 채 아무 말 없이 씨익 웃으며 두 사람의 거래를 지켜봤다.

“그럼 안 바꾸면 되지.”

삐쩍 마른 노인이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이준을 흘겨보며 말했다.

이준이 계속 값을 깎아보려 하자, 채린이 이준의 손을 잡아끌며 손바닥 위에 글자를 적었다.

‘그냥 사!’

채린의 행동에 이준은 잠시 당황한 듯 눈치를 살피다가 노인에게 옥병 하나를 던져주고는 칠색원석을 낚아채듯 들고 자리를 떠났다.

이준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자, 되려 노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설마 내가 잘못 본 건 아니지? 저건 칠색원석이잖아. 저걸 왜……?”

노인은 의심스럽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사이 칠색원석을 손에 넣은 이준은 이미 그의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이 물건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옆에 있던 약로와 아라 역시 의아한 듯 채린을 바라보다 칠색원석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자세히 훑어봐도 별 다른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응.”

채린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보통 칠색 이무기가 죽을 때 칠색원석이 탄생한다고만 알고 있지, 하지만 아주 희박한 확률로 팔색, 심지어 구색원석도 생길 수 있다는 건 모르고 있어.”

“사실 칠색 이무기들 중 가장 강력한 존재는 구색 이무기라고 불리지. 이무기 중에서도 최고의 혈통을 가지고 있는 존재야.”

이준뿐만 아니라 약로조차 이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는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래서 너만 이걸 알아본 거구나. 그럼 이 원석은 팔색이야 구색이야?”

이준의 물음에 채린은 말없이 손톱으로 팔을 긁어 원석 위에 피를 떨구었다.

그러자 빨간 피가 그녀의 손가락을 타고 원석 위에 떨어지며 일곱 색을 가진 돌의 무늬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원석이 몇 색인지 보려면 강력한 힘을 가진 뱀 마수의 피를 사용해야 하지.”

“팔색원석…….”

이준은 조금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구색원석이었다면 정말 큰 수확이었을 텐데 그로서는 다소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팔색이라면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 영감이 안다면 피를 토하겠구나.”

약로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가자. 더 귀한 보물들을 구경시켜주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도 거기에 있단다.”

약로가 가볍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채린은 아쉬운 듯 팔색 원석을 저장반지에 넣으며 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녀는 팔색원석을 저장반지에 넣을 때, 여덟 번째 무늬에서 희미한 무늬가 하나 더 생겨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 * *

비밀 경매를 위해 준비된 마을의 크기는 그다지 넓지 않았지만, 골목마다 투존 강자의 기운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마을의 끝은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빈 공터였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 이곳에는 한 눈에 보기에도 수천 년은 된 것 같은 오래된 건물하나가 우뚝 솟아 있었다.

건물 앞에는 회색 의복을 입은 두 노인이 눈을 빛내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이준은 그들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강력한 염력 파동을 느끼고는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문지기가 6성 투존이라니……. 중주 어디에 가도 볼 수 없을 것 같은 광경이었다.

“이 건물은 삼대 세력의 초대장이 있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초대장을 받는 것도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

약로가 말했다. 비밀 경매를 주최하는 3대종파의 신임을 얻을 만한 강자나 세력이 아니라면 이 초대장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물론 약로는 이곳의 단골이었기 때문에 초대장을 받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말을 마친 약로가 대문 앞으로 다가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빨간 빛이 그의 소맷자락을 타고 두 노인을 향해 날아가 서서히 멈춰 섰다.

“들어가십시오.”

두 노인이 흐리멍덩한 두 눈으로 약로 일행을 한 번 훑은 뒤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곧이어 검은 망토 네 개가 그들의 눈앞으로 날아왔다.

“이곳에 들어가는 자들은 대부분 신분을 숨기고 움직인다. 이것은 주최 측에서 특별 제작한 망토로, 다른 사람이 내 신분을 탐측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지.”

약로가 망토를 몸에 둘러 온몸을 가리며 말했다.

“가자꾸나.”

* * *

건물 안으로 들어온 이준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희미한 빛에 의지하고 있는 건물 안은 다른 곳과 별 다를 바 없이 지극히 평범해보였다.

“모두 이쪽으로 오시지요.”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빠른 보폭으로 다가와 어두컴컴한 건물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이준 일행은 안내인의 뒤를 따라 담담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분 정도를 걸어가니 거대한 청동 대문 하나가 나타났다.

안내를 맡은 노인은 대문 앞에 다다르자 약로를 향해 꾸벅 인사를 올린 뒤 말없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곳이 바로 우리의 목적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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