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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88화 (688/818)

688화. 엄벌

말을 마친 이준은 곧바로 석대 위에 앉아 약솥을 꺼내들었다. 손을 비비자 짙은 약향을 풍기는 약재들이 허공에 떠올라 이준을 중심으로 맴돌기 시작했다.

“허허, 제가 좀 늦었습니다. 하마터면 연맹주님의 제련을 못 볼 뻔했군요.”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두 노인이 수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광장 안으로 빠르게 걸어 들어왔다.

선두에 선 회색 옷의 노인은 높은 석대 위에 있는 이준을 향해 인사를 한 후 가볍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준은 그 일행을 가볍게 훑어보고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자리에 앉으십시오.”

담담한 이준의 목소리에 류창호와 오진우는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다.

젊은 나이에 불의 연맹 같은 거대 세력의 수장이 되었다더니, 과연 만만한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서부 대륙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두 사람이 금술 본당에서 사라진다면 불의 연맹과 같은 세력도 아쉬워할 것이 분명하니 기죽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때, 이준은 시선을 거두고 손가락을 튕겨 자갈색 화염을 피워 올렸다.

그가 가볍게 소맷자락을 휘두르자 주변을 맴돌던 수백 종의 약재가 끊임없이 약솥 안으로 들어가 불타오르며 본격적인 8레벨 연금비약의 제련이 시작됐다.

곧이어 방대한 영혼의 힘이 이준에게서 퍼져 나왔다. 상상을 초월하는 영혼의 힘을 느낀 연금술사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류창호와 오진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영혼의 힘이 참으로 대단하군.”

고하가 천천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 순간, 그의 곁에 있던 해길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 * *

뜨거운 열기가 암홍색 약솥에서 솟아오르며 주변이 빠르게 건조해지기 시작했다.

8레벨 연금비약을 제련하기 위해선 수백 종의 약재가 필요했고, 평범한 연금술사에게는 이 약재들을 전부 찾아오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자리에 있던 연금술사들도 들어보지 못한 고급 연금비약 약재들이 끊임없이 약솥 안으로 들어가 화염과 함께 뒤섞였다.

여의단은 5색 비뢰를 불러올 수 있는 연금비약으로, 지금의 이준에게 있어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었다.

별의 불꽃을 얻고 천상무덤에 다녀오며 이준의 영혼의 힘은 연금대회 당시보다 몇 배는 더 강해져 있었으니, 제련이 아무리 복잡해도 청산유수처럼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8레벨 연금비약은 약재를 제련하는 데만 며칠이 걸리는 물건이었으니, 천지의 불꽃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약재 제련 과정에만 반나절 이상이 걸렸다.

광장에 있던 연금술사들은 이준의 엄청난 연금술 실력에 빠져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와 동시에 이준을 바라보는 존경어린 눈빛도 점점 더 강렬해져갔다. 중주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연금술사가 된 이준이니, 서부 대륙의 연금술사들이 보기에 그의 실력은 거의 연금술의 신이나 다름이 없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3일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동안 이준이 연금비약을 제련한다는 소식을 들은 연금술사들이 모여들며 광장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현황 요새를 지키던 연금술사들도 이 소식을 듣고 찾아오면서 연금술 본당 근처는 온통 사람으로 가득해졌고, 나중에는 연금술이 아닌 강자들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사명종을 꺾으면서 수많은 세력의 강자들이 불의 연맹 쪽으로 붙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다시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 * *

쿵!

이준이 제련에 들어간 지 8일째 되는 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위에서 우렁찬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먹구름이 드리우며 은빛 번개가 구름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현황 요새에 있던 강자들은 청명한 하늘을 가려버린 비뢰운에서 현황요새를 날려버릴 정도로 강력한 에너지를 느꼈다.

요새가 떠들썩해지던 그때, 며칠 동안 줄곧 감겨있던 이준의 눈이 서서히 떠졌다.

곧이어 먹구름이 강하게 요동치더니 단 2분 만에 화려한 오색 비뢰운으로 탈바꿈했다.

“이것이 그 전설 속의 오색 비뢰운인가…….”

자리에 있던 모든 연금술사들은 한껏 들뜬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연금술사들은 평생 이런 비뢰운을 구경조차 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역시 오색 비뢰운이군.”

고하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져 나갔다. 자신 역시 요 몇 년 사이 큰 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했건만, 이준에 비하면 거의 제자리걸음을 한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쾅!

그때, 하늘 위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거대한 오색 번개가 이준을 향해 용처럼 달려들었다.

이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황금색의 그림자가 유성처럼 날아가 번개와 맞부딪혔다.

쉭!

비뢰는 그 그림자와 충돌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쿠르릉!

하늘요괴가 첫 번째 번개를 먹어버리자 먹구름은 분노한 듯 더욱 거칠게 번개를 뿜어댔다.

하지만 이번에도 하늘요괴의 방어를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미치광이처럼 쏟아져 내리던 번개 줄기는 10분이 지나서야 서서히 사라졌다.

“8레벨 연금비약의 비뢰는 투존 강자도 견뎌내지 못할 정도의 위력인데…….”

너무나도 간단하게 오색 비뢰를 막아내는 이준의 실력에 자리에 있던 연금술사들은 입조차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연맹주님, 대단하십니다.”

이준이 제련에 성공하자 고막이 터질 듯한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많은 연금술사들은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연신 환호성을 내질렀다.

광장이 떠나갈 듯 함성을 지르는 연금술사들을 보며 이준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류창호와 오진우는 감히 이준과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연금비약 제련은 연금술 본당에 오게 된 이유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준의 목소리에 순간 자리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일부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감한 듯 좌불안석이 되었다.

“연금술 본당은 다른 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의 연맹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오만하고 방자한 일부 사람들이 불의 연맹을 무시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며 불화를 일으켰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벌을 내릴 생각입니다.”

이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모든 사람들의 귀에 박혔다.

“그리고 지금, 내 손에 벌을 받을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이준이 저장 반지 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채린에게 건네며 말했다.

“채린아, 읽어줘.”

이준에게서 죄인의 명단을 건네받은 채린이 서늘한 시선으로 장내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연금술 본당 1부, 호기석. 명령을 어기고 지위를 앞세워 제멋대로 굴다가 연맹 제자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죄!”

“연금술 본당 2부, 가원오. 비밀리에 불의 연맹 약재를 횡령해 고발당했으나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고발자를 해한 죄!”

“연금술 본당 1부…….”

채린의 입에서 이름이 한 글자씩 튀어나오자 연금술 본당에 있던 연금술사들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연금술 본당 장로, 류창호, 오진우. 명령에 불복하고 전투에서 후퇴하였으며, 암암리에 불의 연맹 연금비약을 판매해 이익을 취한 죄!”

채린의 마지막 발표와 함께 광장 안에 순간 소란이 일었다.

이준이 정말 자신들에게 손을 댈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한 류창호와 오진우의 얼굴 역시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여기에 적힌 모든 사람들은 불의 연맹 규칙에 따라 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연맹주!”

류창호와 오진우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7레벨 고급 연금술사인 우리는 연금술 본당이 여기까지 발전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소. 어떻게 이리 배은망덕할 수 있단 말이오?”

“공은 공이고 과는 과입니다. 공이 있다고 연맹의 규칙을 어겨도 된다면 그 누가 연맹의 규칙을 지키겠소?”

“이런 개 같은! 어느 누가 아쉽다고 자네 곁에 붙어있겠소. 난 나가겠소!”

류창호와 오진우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우리와 갈 사람은 따라오시오!”

그의 말에 광장에 있던 연금술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치를 살폈다. 곧이어 명단에 이름이 적혀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앞으로 나와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류창호와 오진우는 득의양양하게 이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연맹주. 이곳에 남지 않아도 갈 곳은 많소. 가겠소!”

차갑게 웃으며 뒤돌아 나가려는 류창호 일행을 바라보던 이준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걸렸다.

“채린. 연맹을배반한 자는 어떤 벌에 처하지?”

그때, 채린의 입꼬리가 서서히 곡선을 타며 위로 올라갔다.

“사형.”

채린의 말에 뒤로 돌았던 류창호 일행의 몸이 빳빳하게 굳어버렸다.

자리에 멈춰선 류창호와 오진우는 고개를 돌려 버럭 고함을 질렀다.

“뭐?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우릴 전부 죽이겠다는 것은 아니겠지?”

이준은 뒷짐을 진 채 냉담한 표정으로 류창호를 바라보았다.

“불의 연맹을 떠나는 것은 좋다. 하지만 핑계를 대며 처벌을 피하려 하는 걸 보니 불의 연맹을 너무 우습게 본 것 같군.”

이어지는 이준의 말에 광장에 있던 연금술사들 역시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이 불의 연맹에서 내려준 특별한 지위를 악용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류창호와 오진우는 주변에서 느껴지는 냉정한 눈빛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연맹주,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오?”

류창호가 이를 악물며 물었다.

“내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죠. 연맹의 법으로 당신들을 다스리겠단 소리입니다.”

류창호와 오진우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가져와!”

“예!”

채린이 명을 내리자, 대기하고 있던 불의 연맹 강자들이 곧바로 류창호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 우리가 무서워할 것 같으냐!”

류창호와 오진우는 당황한 듯 소리치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강자들을 밀어내고 황급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딜 가시려고?”

그러나 이준이 두 사람이 있는 곳을 향해 손을 들어 주먹을 쥐자, 두 사람의 입에서 곧바로 새빨간 핏줄기가 터져 나왔다.

“콜록콜록!”

연맹을 떠나려던 연금술사 중 가장 강한 두 사람이 단박에 피를 토하며 바닥을 나뒹구는 모습에 그들의 뒤를 따르던 연금술사들 역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곧이어 불의 연맹의 강자들이 그들을 모조리 붙잡아 연금술 본당의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비명소리가 사라지자, 광장 안에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고하 대가님…….”

이준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오자 고하는 움찔하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연금술 본당의 당주로서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부터 부당주로 강등되고, 장로였던 해길 대사님이 당주 자리를 맡아 주십시오.”

고하와 해길은 모두 공손히 그의 말을 따랐다. 그들 앞에 선 이준은 이미 예전의 그 어린 천재가 아니었다. 그의 실력은 이미 두 사람을 아득히 앞질러 있었으며, 손짓 한 번으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시체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다.

“그래도 연금술 본당도 확실히 큰 발전을 이룬 건 맞습니다. 이건 영혼을 수련하는 상고 시대의 수련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8레벨 연금술사가 될 수 있는 열쇠이지요. 7레벨 이상의 모든 연금술사들은 연맹을 위해 일정한 공헌을 했다면 이 수련법을 얻을 수 있고, 조금 부족한 사람들은 일부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영혼을 수련하면 연금술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아주 큰 도움이 될 테니 모두 열심히 수련하시길 바랍니다.”

이준이 손가락을 튕겨 두루마리를 해길과 고하에게 넘기며 말했다.

“저, 정말로 영혼의 힘을 수련할 수 있는 수련법이라고?”

“저 정도 물건이라면 평생 불의 연맹에 소속되어 있어도 이상할 게 없겠는걸.”

수많은 연금술사들은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고하와 해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해길과 고하 역시 귀신에 홀린듯한 표정으로 이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역시 영혼은 단련할 수 있는 전설의 수련법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지만, 그 수련법이 설마하니 이준의 손에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이준이 단번에 연금술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바라보던 채린은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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