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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84화 (684/818)

684화. 한 방

사천이 날아오르는 순간 채린의 손에 들린 장검에서 폭풍과도 같은 염력이 뿜어져 나왔다.

채린과 사천의 결투가 시작될 무렵, 요새 근처는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게다가 불의 연맹 강자들 역시 모두 출동하면서 순식간에 전투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아주 잠깐 상대방에게 빈틈을 보여 죽임을 당하는 강자들이 있는가하면, 투종 강자들 중에서도 적들에게 포위당해 중상을 입거나 시체가 되는 자들이 속출했다.

한편, 하늘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구 천존의 얼굴에는 음험한 미소가 가득했다.

“싸워라. 서로 더 많이 죽여라.”

* * *

펑-!

이솔을 안은 아라는 성벽으로 돌진해오는 사명종의 투종 강자들를 향해 연달아 독안개를 날렸고, 그녀의 독안개가 허공을 수놓을 때마다 곳곳에서 검붉은 선혈이 터져 나왔다.

지리적 우세를 점한 덕에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잘 버텨낼 수 있었지만,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불의 연맹의 패배는 자명해 보였다.

“아라 언니, 우선 솔이를 데리고 이곳을 벗어나요. 여긴 얼마 버티지 못할 거예요.”

그때, 아라의 뒤에서 예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린은 이미 자신이 데리고 있는 강자들을 모두 소환한 상태였다.

“하하, 어딜 달아나려고?”

하지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십여 명의 강자들이 귀신처럼 나타나 두 사람을 둘러쌌다.

“투존 강자…….”

순간 아라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드디어 사명종에서도 투존들을 전장에 투입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허, 3성도 못 된 투존 놈들이 감히 누구의 앞을 막겠다는거야!”

열 명에 달하는 투존에게 둘러 싸였음에도 불구하고 예린은 용감하게 앞으로 몸을 날렸다.

“아라, 가라!”

예린이 사명종의 투존들을 막고 있는 사이 천화존자가 황급히 날아와 손을 보탰고, 덕분에 아라는 이솔을 품에 안은 채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끌끌, 저 여자아이, 영혼의 힘이 아주 대단하군. 저 나이에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 건 처음 봤구려.”

하지만 포위망을 벗어난지 채 백 미터도 되지 않아 그녀의 앞에 검은 안개가 피어나더니, 그 안에서 검은 쇠사슬이 튀어나와 아라와 이솔을 향해 날아들었다.

“개자식이……!”

노인이 어린 아이에게 손을 대려하자 분노가 폭발한 아라는 더욱 강렬한 기세로 독안개를 폭발시켜 쇠사슬을 튕겨냈다.

“어딜 가려고?”

그러나 그녀가 다시 몸을 날리려는 찰나, 이번에는 그녀의 등 뒤에서 검은 안개가 솟아났다.

쾅!

“이찬, 받아요!”

6성 투존 두 명이 동시에 자신을 공격하자 아라는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이찬을 향해 아이를 날려 보내며 전력으로 독 염력을 터뜨려 두 사람의 공격을 받아냈다.

이찬은 번개처럼 몸을 날려 아이를 받는데 성공했지만, 아이에게 신경이 쏠린 탓에 그만 적의 공격에 정통으로 가슴팍을 얻어맞고 말았다.

“이 개 같은……!”

기습 공격을 해온 남자가 아이를 빼앗아가려 하자, 이찬의 눈이 순식간에 살기로 물들었다.

“끌끌.”

메마른 노인이 음험하게 웃으며 아이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멀리서 사천과 격렬한 전투를 벌이던 채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채린, 항복하지 않으면 나도 어찌할지 모르네,”

메마른 노인은 이솔의 옷을 붙잡은 뒤 매서운 표정으로 채린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바로 그때, 그의 뼛속에서 강한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어디선가 차가운 손이 귀신처럼 나타나 그의 목을 붙잡고 그대로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러자 우득, 하는 소리와 함께 노인의 목이 그대로 부러져버렸다.

죽기 직전, 흐릿해져가는 노인의 시야에 검은 옷을 입은 청년의 얼굴이 보였다.

갑자기 나타난 청년은 손에 들린 시체를 아무렇게나 던져버린 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 아이를 품안에 넣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좀 늦었네요.”

“이준?”

“셋째?!”

“연맹주님?”

갑자기 나타난 청년을 본 사람들은 모두 잠시 넋을 잃은 듯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환호성을 내뱉었다.

하지만 환호성이 터져 나오기 무섭게 무시무시한 염력이 그의 등을 향해 날아들었다.

“조심해!”

쾅!

낮은 폭발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 최소 투존 계급은 되어 보이는 사명종 강자가 빨간 피를 쏟으며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너무나 간단하게 자신을 습격한 투존을 날려버린 이준은 뒤조차 돌아보지 않고 고개를 들어 성벽 위를 바라보았다.

“움직입시다!”

쿵!

이준이 손을 휘두르자, 하늘에서 엄청난 에너지 파동이 폭발하더니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수십 명의 강자가 유성처럼 나타났다.

“투존?!”

갑자기 수십 명의 투존들이 나타나자, 사명종은 물론이고 불의 연맹의 강자들마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찬숨을 들이마셨다.

“투존 강자들이 몰려오다니.”

이정과 동해를 비롯한 불의 연맹의 강자들은 입조차 다물지 못하고 하늘 위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준이 이끌고 온 투존의 수는 무려 30명에 이르렀다.

“이 녀석, 몇 년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하하, 모두 움직입시다. 서북 대륙의 투존 강자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 봅시다!”

호 장로는 선두에 서서 사명종 강자들을 향해 돌진하며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뒤를 따라 성운각 초대 장로들이 요새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강한 염력을 뿜어내며 달려들었다.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준은 품속에 안겨 커다란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름이 뭐니?”

“이솔…….”

아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준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누군지 아니?”

이솔은 한참 동안 진지한 얼굴로 이준을 바라보다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빠예요?”

‘아빠’라는 한마디에 이준의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그런 것 같구나.”

“이제야 돌아왔구나!”

이준이 이솔을 꽉 껴안던 그때, 한껏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휠체어에 앉은 큰 형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큰 형님, 작은 형님. 잘 지내셨습니까?”

“너 이 자식!”

늘 살기등등한 표정을 하고 있는 이찬 역시 환하게 웃으며 이준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잘 지냈지?”

“예…….”

이정의 물음에 이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사이 모두들 조금씩 변해 있었지만, 형제의 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돌아왔으면 됐지. 아직 늦지 않았다.”

이정은 말을 잇지 못하는 이준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하. 연맹주, 기껏 나타나 놓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아니오?”

곧이어 얼음왕 동해, 해길과 단왕 고하가 웃으며 이준에게 다가왔다.

“솔아…….”

이준이 익숙한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붉은 갑옷을 입은 여인이 다가와 이준 품속에 안겨있는 이솔을 안으며 이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채린아.”

채린은 잠시 멈칫하다 고개를 들어 이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안 돌아오는 줄 알았어.”

채린의 말투는 조금 화난 듯 보였지만, 그보다는 억울함이나 서운함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몇 년 동안 그녀는 혼자서 아이를 데리고 불의 연맹의 연맹주 역할까지 했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짐은 바로 앞에 있는 이 남자, 이준이 넘겨준 것이었다.

“셋째야. 그동안 채린이가 고생이 많았다. 속상하게 만들지 마라. 안 그럼 큰 형님이랑 내가 가만히 안 있을 테니까.”

이찬은 이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맞소. 그동안 채린이 정말 고생이 많았지.”

옆에 있던 얼음왕 동해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메두사’와 마주치기만 해도 늘 공포에 떨던 몇 년 전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확실히 아이를 낳은 이후로 채린의 행동에 상당한 변화가 생긴 모양이었다.

“미안해, 고생했어.”

“이런다고 내가 널 용서할 거라 착각하지 마.”

그러나 이준이 멋쩍은 표정으로 사과의 말을 건네자, 채린은 또다시 예의 그 냉정한 태도로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 나에게 맡겨.”

채린의 태도에 이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아이의 보드라운 뺨을 가볍게 꼬집으며 말했다.

“딸아, 엄마 뒤에 숨어있어.”

“네. 힘내요, 아빠.”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야무지게 대답했다.

“조심해. 저쪽도 투존 강자가 꽤 많아.”

채린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주의를 주자, 이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내려앉았다. 자신이 불의 연맹을 떠나있던 몇 년 사이, 그녀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 실감나는 표정과 말투였다.

이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천천히 성벽으로 걸어가며 채린을 공격하고 있었던 금발의 사내를 노려봤다.

“네가 바로 불의 연맹의 연맹주, 이준이군?”

사천은 이준을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금색 대도를 휘둘렀다.

“조심해. 저 녀석은 6성 투존이야!”

대도에서 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섬광이 터져 나오자, 성벽 위에 있던 채린이 다급한 목소리로 이준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이준은 사천의 공격을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마치 파리라도 쫓는 것 같은 가벼운 동작이었지만, 그 가벼운 손짓 한번에 사천의 검광이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너무나도 간단하게 6성 투존의 공격을 막아내는 이준의 힘에 모든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준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사천의 등 뒤에서 공간의 균열이 생겨나더니 거대한 화염 주먹이 솟아나와 그의 몸을 내리쳤다.

“푸흡!”

화염 주먹에 얻어맞은 사천은 곧바로 피를 토하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쉬이이-.

사명종의 종주인 사천이 이준의 일격에 만신창이가 되어버리자, 사방이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구 천존, 지금 물러나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처참한 몰골로 바닥을 기어 다니는 사천을 바라보던 이준이 고개를 들어 멀리서 퍼져 나오고 있는 검은 안개를 바라보며 외쳤다.

잠시 후, 검은 안개가 서서히 일렁이더니 안개가 확산되면서 파란 옷을 입은 노인이 이준과 백 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다.

“건방진 놈. 여기까지 오다니, 간도 크구나. 이렇게 된 거 이번 기회에 너도 함께 잡아가면 되겠구나.”

구 천존이 서늘한 눈빛으로 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게 그럴 힘이 있을까?”

이준이 상대를 조롱하듯 웃으며 말했다.

천상무덤에 들어가기 전에 구 천존을 만났더라면 지금처럼 자신만만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실력이라면 구 천존을 영원히 잠들게 할 자신이 있었다.

“실력이 좀 늘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구 천존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지만, 곧바로 이준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주먹 한 방에 사천에게 중상을 입히는 것으로 봤을 때, 지금 이준의 실력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쉭!

그때, 검은 안개가 일렁이며 세 사람이 번개처럼 나타나 이준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 녀석이었구나. 우리 영혼의 궁전의 천존들이 네 녀석을 잡는다고 고생을 좀 했다던데.”

“아니면 함께 저 녀석을 잡아가는 건 어떻겠소? 저 녀석만 데려가도 큰 공을 세우는 셈인데.”

이준은 말없이 눈앞에 선 세 노인을 노려보았다. 세 사람의 실력은 모두 8성 투존 정도로, 저들이 바로 이곳에 오면서 들었던 8성 투존 계급 강자들인 듯 보였다.

“허허! 어딜 감히 우리 소각주 님에게 손을 대려 하느냐!”

그 순간, 뒤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세 개의 그림자가 순식간에 이준 옆에 나타났다.

“호씨 삼형제군. 감히 네놈들 따위가 우리 앞을 막으려 드느냐? 너무 오래 살아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나보군.”

“하! 다른 이들은 영혼의 궁전을 두려워해도 우린 아니다.”

구 천존에 협박에 호 장로는 가당치 않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소각주님. 저 영감을 맡으시고 나머지 세 사람은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호 장로의 제안에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씨 삼형제 역시 모두 8성 투존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능히 영혼의 궁전의 세 천존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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