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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83화 (683/818)

683화. 대전(大戰)의 서막

대전 안은 모두 익숙한 얼굴로 가득 차있었다.

얼음왕 동해, 가한제국의 단왕 고하, 해길 등……. 그들의 얼굴에는 예전보다 주름이 늘어 있었지만, 기운만큼은 이준이 떠날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있었다.

잠시 후, 휠체어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사명종은 우리보다 훨씬 많은 투존 강자를 데리고 있으니 정면 승부를 벌인다면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거야.”

말을 마친 이정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어떠한 계략도 무용지물이었다.

“안 되더라도 목숨을 걸고 싸워야죠.”

그때, 온몸에서 흉악한 기운이 퍼져 나오는 한 남자가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보기만 해도 섬뜩한 느낌을 주는 눈빛을 가진 그 사내는 바로 이준의 둘째 형, 이찬이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이정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라의 말로는 곧 준이가 불의 연맹에 합세한다더군.”

이준이 온다는 말에 대전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이정에게로 향했다.

적막만이 감돌던 대전 안에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하자, 이씨 가문의 두 형제의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끝없이 높푸른 하늘 위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십여 개의 그림자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산봉우리 위에 나타났다.

“소각주님. 앞쪽이 바로 불의 연맹의 세력범위입니다. 이 속도라면 저녁쯤 현황 계곡에 도착하겠군요.”

하얀색 옷을 입은 노인이 주변을 둘러보며 공손히 말했다.

“최근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사명종의 강자들과 협박과 회유로 이곳에 온 혼전 강자들 중 투존만 3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불의 연맹에는 투존 강자가 열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투존이 30명이란 말이지.”

이준은 손깍지를 낀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서북 대륙 강자들의 실력은 중주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 서른 명중에는 필경 영혼의 궁전의 투존이 있을 테니, 방심했다가는 이준이라 해도 목이 날아갈 판이었다.

현재 불의 연맹의 최강자는 메두사로, 이준이 떠날 때만 해도 4,5 성 투종에 불과했지만 이미 투존의 경지에 오른 지 오랜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휘하에는 이미 열 명이나 되는 투존이 있었다. 이 정도라면 중주에서도 일류 세력에 속할 수 있는 전력이었으니, 이준이 중주에 있는 동안 불의 연맹이 얼마나 비약적으로 발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사명종에 6성 투존 이상 되는 강자들이 몇이나 되죠?”

“여덟입니다. 그리고 그중 네 사람이 8성 투존이지요. 하지만 영혼의 궁전에서 얼마나 더 많은 강자들을 보냈을지 알 수 없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하 장로님.”

“아닙니다.”

“갑시다. 속도를 내 저녁까지는 현황 계곡에 도착하도록 하죠.”

* * *

콰르릉!

새까만 먹구름이 현황 계곡 상공을 가득 덮으며 우렁찬 천둥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잠시 후, 현황 요새 밖에 있던 검은 안개가 뒤로 서서히 걷히며 그 안에 숨어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 미터 높이에 위치한 요새 위에서는 불의 연맹의 투사들이 굳은 얼굴로 초원을 가득 메운 적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의 연맹이 확장하면서 수많은 적들과 싸웠지만, 이 정도로 어려운 상대를 만나본 것은 처음이었다.

모든 투사들은 마음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며 성벽 중앙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피처럼 붉은 갑옷을 입은 채린이 위풍당당하게 서있었다.

“드디어 시작인가.”

채린이 허리춤에 있는 장검을 움켜쥐며 중얼거렸다.

“채린아. 저들을 막을 수 없게 된다면 솔이를 데리고 떠나거라.”

휠체어를 탄 이정이 멀리 보이는 검은 색 안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셋째의 아이인데 무슨 일이 일어나선 절대 안 되지!”

이찬이 굳은 표정으로 이정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채린은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곁에 있는 여자아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4,5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의 미간에는 신비한 칠색의 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채린은 무릎을 꿇어 그 작은 아이를 품속에 안았다. 아이 역시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챘는지 작은 손으로 채린의 얼굴을 매만져 주었다.

“엄마, 무서워하지 마요. 큰아빠가 그랬어요. 아빠가 돌아올 거라고.”

채린은 빙긋 웃으며 아이를 품에 넣은 뒤 고개를 들어 옆에 있던 아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오는 거야?”

“천상무덤에 반년 정도 들어가 있었는데, 아마 지금은 고계를 나왔을 거야. 성운각에 도착했다면 분명 약로님의 말을 듣고 이곳으로 오고 있겠지.”

채린은 말없이 두 눈을 깜빡이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요새가 파괴되면 솔이를 데리고 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아이만큼은 죽게 해서는 안돼.”

이어지는 채린의 말에 아라는 착잡한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휴, 채린아. 몇 년 동안 불의 연맹과 이씨 가문을 위해 이룬 공이 아주 크구나. 이번 일이 순조롭게 끝난다면 반드시 널 이씨 가문으로 들이겠다.”

이 모습을 본 이정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큰 형님 말이 맞소. 이번에 그 녀석이 돌아오면 바로 진행해야지!”

이찬 역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이정은 한때 이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이번엔 어떤 일이 있어도 채린의 편에 설 생각이었다.

“그런 문제는 나중에 얘기하죠. 지금은 저놈들을 눈앞에서 치우는 게 무엇보다 우선이니까요.”

채린이 이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궁궁궁!

그때, 멀리 보이는 검은 안개에서 귀청이 찢어질 듯한 북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하늘 위에 금색의 대도(大刀)를 든 건장한 중년의 사내 하나가 나타났다.

“하하하! 이제 결정을 했느냐! 우리 사명종에 승복할테냐! 아니면 불의 연맹과 함께 재가 되어 사라질 테냐!”

하늘 전체에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에 채린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잠시 후, 그녀가 앞으로 걸어 나와 싸늘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불의 연맹에 전장에서 죽는 전사는 있어도 항복해서 살아남으려는 비겁자는 없다.”

채린의 담담한 한마디에 대도를 든 금발의 중년 사내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채린. 불의 연맹의 실력은 우리와 비교도 안 된다는 걸 똑똑히 알아 두거라. 너희 불의 연맹이 순순히 항복하고 이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을 넘긴다면 사명종 종주의 이름을 걸고 해치지 않겠다 약조하지!”

“전투 준비!”

하지만 채린은 그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예!”

그녀의 목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우렁찬 대답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요새 근처 하늘에 거대한 에너지막이 우뚝 솟아났다.

“궁수 준비!”

곧이어 불의 연맹의 투사들이 빠르게 석궁차를 밀고 와 2미터 가까이 되는 활을 장착했다. 이 활은 불의 연맹에서 특수 재료를 사용해 만들어진 활로, 투황 강자의 몸도 그대로 관통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항복은커녕 대화조차 거부하는 채린의 태도에 금발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사천, 쓸데없는 소리말게. 저 여자가 좋으면 요새를 부수고 데려가면 되지 않나. 자네 때문에 이씨 가문이 도망가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은 모두 자네가 짊어져야 할걸세.”

흑색 옷을 입은 노인 하나가 중년의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노인의 몸주위에는 영혼체들이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내며 맴돌고 있었다.

노인의 정체는 바로 혼전 강자들을 데리고 성운각을 기습했던 구 천존이었다.

“마음 놓으십시오. 불의 연맹은 이미 독안에 든 쥐입니다. 저들의 실력으로는 도망조차 칠 수 없을 것입니다.”

“실수하면 어떻게 될지 잘 알겠지.”

구 천존의 섬뜩한 표정에 공포를 느낀 중년 사내 사천은 곧장 고개를 돌려 자신의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채린, 넌 마지막 기회를 포기한 것이다. 전군, 공격!”

“죽여라!”

요새 밖을 가득 메운 대군이 사천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터운 에너지막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대군이 지축을 뒤흔들며 달려오자, 요새 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쉭쉭쉭!

적들이 진군을 시작하는 순간, 황현 요새의 성벽 위에 놓여있던 거대한 화살들이 일제히 발사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화살이 사명종 대군들의 몸에 박히며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늘 위에는 백여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우뚝 서있었고, 그 뒤에는 형형색색의 날개를 펄럭이는 투왕, 투황 강자들이 빈틈없이 빼곡하게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에너지 막을 파괴하라!”

순식간에 수 백에 달하는 투사들이 죽어나갔지만 사천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지상에서 돌격을 하는 것은 투황조차 되지 못한 하찮은 존재들이었으니, 그들이 얼마나 죽어나가든 전쟁의 승패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쾅쾅쾅!

곧이어 오색찬란한 염력이 에너지 장막에 부딪히며 폭발을 일으켰다.

“궁수들은 목표물을 변경한다. 투왕 이상 강자들은 반격을 개시해 에너지 장막을 보호한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사명종의 공격에도 채린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침착하게 대응해 나갔다.

휙휙!

채린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거대한 화살이 하늘 가득 퍼지면서 하늘 위에 있는 강자들에게 달려들었다.

“으악!”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에 맞은 사명종 강자들이 끊어진 연처럼 힘없이 바닥에 쳐박혔다.

쾅쾅!

그러나 숨 쉴 틈 없이 쏟아지는 공격에 에너지 장막에 일던 물결이 점점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거의 다 됐어…….”

끊임없이 파동이 일어나는 에너지 장막을 바라보던 사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마침내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사천이 가볍게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내자, 검은 안개가 갈라지며 백 명에 가까운 강자들이 그 안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시종일관 냉담하던 채린의 표정에도 마침내 변화가 생겼다.

쾅!

수많은 투황 강자의 숨통을 끊어놓은 거대한 화살은 그들에게 닿지도 못하고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허!”

요새와 백 미터 정도 가까워지자, 백여 명의 강자들이 일제히 인을 맺기 시작했다.

곧이어 홍수와도 같은 염력이 그들의 몸에서 터져 나와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마수로 변화했다.

거대한 마수는 새하얀 콧김을 뿜어내며 에너지 장막을 향해 매섭게 달려들었다.

쾅!

하늘 높이 뛰어오른 거대한 마수의 몸이 에너지 장막에 부딪히자, 강철처럼 단단했던 에너지 장막도 얼마 가지 못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에너지 장막이 무너지는 순간, 채린의 차가운 목소리가 성벽 위에 있던 모든 사람의 귀에 박혔다.

“이 뒤는 모두 우리의 제국이자 영토이다. 이곳에서 물러선다면 적들은 우리의 땅으로 진격해 모든 것을 재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결코 물러서지 마라! 이곳이 우리의 마지막 전장이자, 무덤이다!”

“으아아!”

“끝까지 싸워라!”

에너지 장막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동시에 사명종의 강자들이 굶주린 야수떼처럼 성벽 안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죽어라!”

파도처럼 밀려드는 적들의 모습에 채린 역시 마침내 칼을 빼들었다.

그녀가 장검을 휘두르자, 무지개 빛 검광이 하늘을 수놓으며 삽시간에 열명이나 되는 투황 강자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쾅!

“아라, 이솔을 잘 지켜줘!”

검을 빼든 채린이 곁에 있던 아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듯한 채린의 모습에 아라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아이는 다급하게 채린의 다리를 껴안으며 닭똥 같은 눈물을 떨궜다.

“괜찮아. 착하지. 엄마가 찾으러 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채린은 애써 평온한 표정으로 이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환하게 웃어 보인 뒤 이를 꽉 깨물며 허공 위로 날아올라 사명종의 투왕 강자들을 단번에 핏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사천, 한 번 나와 보시지!”

허공에 우뚝 선 채린이 차가운 표정으로 멀리 있는 사천을 노려보며 외쳤다.

“하하, 이런 미인이 제안하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을까?”

채린의 말에 사천은 크게 웃음을 터뜨린 뒤 금색 대도를 휘두르며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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