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681화 (681/818)

681화. 서북 대륙에서 일어난 일

순식간에 초대 장로들의 뒤를 잡은 이준의 모습에 성운각 제자들 역시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장로들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이준의 입가에 쓴 웃음이 번졌다.

반년동안 돌아오지 않았다고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지다니…….

“소각주님!”

그때, 주봉(主峰) 위로 몇몇 나이든 얼굴들이 나타나더니 이준을 보곤 깜짝 놀라 외쳤다.

‘소각주’라는 외침에 초대 장로들과 제자들은 모두 놀라 믿을 수 없다는 둣한 눈빛으로 이준을 바라보았다. 이준의 명성은 성운각 안에서도 자자했지만, 아직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직접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저 분이 우리 성운각의 그 소각주님이었다니…….”

“소각주님은 투존 강자인데다 연금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다며? 내가 성운각에 들어온 것도 저 분의 소문을 듣고 들어온 거였어. 근데 그 전설 속의 인물을 직접 보게 될 줄이야!”

“…….”

아래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초대 장로 중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황색 의복의 노인이 급히 웃으며 앞으로 나와 이준에게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

그의 나이는 이준의 스승인 약로와 비슷해보였지만, 소각주라는 신분을 가진이준 앞에서는 예를 갖춰야만 했다.

“뭘 이렇게까지…….”

“허허, 드디어 돌아온 것이냐.”

그때, 어디선가 나이든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익숙한 노인 하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약로였다.

“스승님!”

약로를 발견한 순간, 이준의 입가에 곧장 환한 미소가 번져갔다.

“안녕하십니까, 각주님!”

약로가 나타나자, 곁에 있던 장로들 역시 황급히 인사를 올렸다. 약로는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초대 장로들이라 해도 약로를 직접 만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그런데 소각주가 왔다는 소식에 이렇게 직접 발걸음을 하다니, 과연 소문대로 두 사제지간의 관계가 보통 끈끈한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고족에 다녀오더니 품위가 있어졌구나.”

약로는 웃으며 초대 장로들을 향해 손을 저은 뒤 이준의 몸을 천천히 훑어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반년 만에 5성 투존에서 8성 투존이 되어 돌아오다니, 아주 훌륭하구나.”

옆에서 그의 말을 들은 초대 장로들의 눈이 두 배로 커졌다.

“먼저 내려가자꾸나. 네가 오기를 기다렸다.”

“예.”

약로의 말에 이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한 번 훑어보았다.

“스승님, 아라는 돌아오지 않은 건가요?”

“돌아왔었다. 하지만 다시 나갔다.”

“나갔다고요? 어디로요?”

“그게 바로 널 기다리던 이유다. 네가 천상무덤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때, 우린 소식을 받고 아라를 속히 성운각으로 불렀다. 그리고 아라는 다시 가한제국으로 떠났다.”

“가한제국?”

익숙한 이름에 이준은 넋을 놓아버렸다. 하지만 이내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어버렸다.

“불의 연맹에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이준의 표정을 본 약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북 대륙 전체에 일이 생겼다고 해야겠지.”

“무슨 일입니까?”

“1년 전, 사명종이라는 종파가 반년 만에 서북대륙의 절반을 모두 장악해버렸다.”

약로가 산 아래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사명종? 그들이 그렇게 강합니까?”

이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서북 대륙은 중주처럼 뛰어난 강자들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지역이 매우 넓은 만큼 투존 계급의 강자들도 제법 분포되어 있어 한 종파의 힘으로 서북 대륙의 반을 점령한다는 것은 상당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명종은 서북 대륙에서 열 번째 손가락 안에 드는 세력이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들의 실력이 한순간에 폭등했고 베일에 둘러싸인 강자들이 그들을 지원하고 있다.”

“다른 세력이 서북 대륙에 발을 들여놨다는 겁니까?”

이준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중주에 있는 세력과 강자들은 이 세상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 손을 대는 일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이 사람 저 사람 잡다하게 섞인 서북 대륙 같은 곳을 장악하려 했다가는 이득을 보기는커녕 큰 손해를 볼 가능성이 더 높았다.

“설마 영혼의 궁전 놈들입니까?”

“그렇다.”

약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전해오는 정보에 의하면, 사명종에 영혼의 궁전의 강자들이 대거 출현했다더군.”

“그 놈들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서북 대륙까지 가서 전쟁을 일으키는 걸까요?”

“영혼을 수집하려는 게지. 중주는 강력한 세력들이 각자의 구역을 완벽히 다스리고 있어 쉽게 큰 전쟁이 일어나지 않지만, 서북 대륙 같은 곳은 상황이 다르다. 그 곳에는 수많은 종파와 국가가 존재하고 있으니, 전쟁을 벌이기도 그만큼 수월하겠지.”

“왜 이런 방법을 사용해서까지 급히 영혼체를 수집하려는 걸까요? 지금까지는 암암리에 영혼체를 수집하던 놈들이 갑자기…….”

“분명 무언가 큰 음모를 꾸미고 있을 게다. 하지만 그게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구나. 날 잡아갈 때도 그 녀석들이 내 연금술을 탐냈다는 것만 알 수 있었지.”

약로의 한숨 섞인 대답에 이준의 가슴이 더욱 무겁게 내려앉았다.

놈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지 않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기 때문이다.

“사명종은 여전히 세력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복종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완전히 말살시켜 버리며 진격하고 있지. 덕분에 혼전이 영혼체를 수집하는 속도도 더 빨라졌을 게다. 질보단 양으로 승부하는 것이지.”

약로는 이준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불의 연맹은 네가 떠난 후 몇 년 동안 채린 등 여러 사람들이 발전시키면서 서북 대륙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대한 연맹 세력이 되었다. 상식적으로 사명종은 불의 연맹의 상대가 될 수 없지만……. 영혼의 궁전과 손을 잡았으니 불의 연맹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게다.

아라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가한제국으로 향했고, 하늘뱀 족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소식이 들려와 예린이도 함께 갔다.”

이준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또 다시 혼전이라니……. 그들과의 악연은 둘 중 하나가 세상에서 사라질 때까지는 끊어지지 않을 듯 싶었다.

“아라가 떠날 때 성운각 강자들을 함께 보냈다. 하지만 상황을 해결하기엔 어려울 것이다.”

이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제가 직접 가봐야겠군요.”

약로는 이준의 말을 예상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번에 가한제국으로 갈 때 5성 투존 이상의 장로들을 함께 보내겠다. 그들은 계속해서 이 일과 관련된 정보를 다뤄왔으니 서북 대륙의 상황을 미리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게다. 영혼의 궁전 놈들이 이곳에 쳐들어 올지도 모르니 나는 성운각을 지키고 있으마.”

이준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정화의 불꽃에 대한 일은 비밀 경매가 시작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잠시 내려놓도록 하자꾸나. 그 전에 불의 연맹과 관련된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 돌아오거라.”

약로가 씩 웃으며 말했다.

“너무 조급하게 오늘은 움직이지 말거라. 서북 대륙까지는 적어도 2달은 걸릴 것이다. 그러니 우선 공간 통로를 만드는 게 좋겠다.”

이준은 놀란 눈으로 약로를 바라보았다. 공간 통로는 투존이 되면 만들 수 있지만, 제 아무리 투존이라도 중주에서 서북 대륙까지 이어지는 통로를 만드는 것은 어려웠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스승인 약로가 반투성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번에는 임시로 만든 공간 통로로 아라를 보냈지. 이후 곧바로 안정적인 공간 통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만일 성공적으로 완성한다면 앞으로 성운각에서 서북 대륙까지 통하는 직행통로가 되어 불의 연맹에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도우러 갈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스승의 말에 이준은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꼈다. 만일 정말 공간 통로가 만들어진다면 앞으로 엄청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피곤했을 테니 오늘은 우선 푹 쉬거라.”

약로의 따뜻한 말에 이준은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저장반지에서 약성지가 준 비취색 옥조각을 꺼내 약로에게 건넸다.

“이건 약족의 약전 초대장입니다. 그들이 스승님에게 전해드리라 했어요.”

‘약전’이란 말을 듣는 순간, 약로의 손이 순간 부르르 떨렸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이준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약로는 그 비취색 옥조각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긴 숨을 내뱉고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저장 반지 안에 집어 넣었다.

“그래. 이 일은 우선 제쳐두고 공간 통로부터 건설하자.”

“예.”

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로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지만, 눈빛이 흔들리는 것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약성지가 말한 대로 스승님이 거절하지 않네. 대체 약전이 무엇이길래…….’

이준의 두 눈이 반짝이는 걸 본 약로는 그저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이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 우선 돌아가서 푹 쉬거라. 반년 동안 마음이 편지 않았을 테니 한 동안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하는 게 좋겠다.”

하지만 이준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미 분주히 생활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소중한 것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지불할 대가였다.

“공간 통로가 완성되면 바로 서북 대륙으로 떠나라. 허허, 그곳을 떠난 지도 오래 됐으니 한 번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

스승의 말에 문득 가한제국에 두고 온 가족들의 얼굴과 이제는 메두사와 이준, 두 사람의 아이가 되어버린 칠색이무기의 모습이 머리를 스쳤다.

* * *

성운각에 돌아온 후, 이준의 생활은 훨씬 여유로워졌다. 가만히 있자니 좀이 쑤셔 하루 종일 성운계 안에 있으면서 성운각 제자들을 지도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3일이라는 시간이 흐르자, 약로가 만들던 공간 통로도 점점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 * *

“하!”

넓은 수련장에는 매일 성운각 제자들이 모두 모여 반드시 해야 할 수련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수련장 중심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검은 옷을 입은 이준이 미소를 지은 채 제자들에게 무투기를 시전할 때 부족한 점을 지적해주고 있었다.

한편, 수련장 한 쪽에선 소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하하호호 떠들고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소녀들 중 담홍색 옷을 입은 여자 아이 하나는 눈 한번 돌리지 않고 이준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히히, 유정 언니. 반한 거예요?”

한 소녀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라는 거야.”

그녀의 말에 유정이라는 소녀가 얼굴을 붉히며 새침하게 말했다.

“호호, 유정 언니가 우리 기수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이잖아요. 각주님도 놀라실 정도인데,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죠.”

한 소녀가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조용히 해. 소각주님 눈에는 아무 것도 아닐 거야.”

유정은 고개를 저었지만 꽤나 기분이 좋은 듯 입가에는 미소가 내려앉아 있었다.

“아니면 소각주님한테 지도 좀 받아 봐요. 부딪혀봐야 기회도 생기지!”

한 소녀의 말에 유정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좀 아닌 것 같아. 소각주님을 방해하기라도 한다면 어떡해‥.”

“괜찮아요. 언니는 우리 성운각에서 키워주어야 할 인재 중 하나인데, 얼른 가봐요!”

“어어……밀지 마. 아직 결정 안 했단 말이야…….”

* * *

이준은 두 뺨이 불그스레한 소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네가 유정이지? 스승님께 들었다.”

이준이 앞에 있는 소녀를 가볍게 훑어보며 말했다.

듣기로는 아직 17살도 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몸에서 흐르는 기운은 이미 투왕의 문턱을 넘어서 있었다.

‘스승님이 칭찬하신 이유가 있었군. 제자를 더 이상 받지 않기로 결정만 안 하셨어도 유정, 이 아이는 스승님의 제자가 됐겠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