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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74화 (674/818)

674화. 이현

뱀 꼬리에게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힘에 이준 일행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1격 무투기를 시전했는 데도 구렁이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목숨 걸고 싸워야 해!”

고화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이준의 손에서 형형색색의 불꽃이 피어올라 빠르게 융합되기 시작했다.

쉭!

바로 그 때, 아주 먼 곳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그림자 하나가 나타나 소맷자락을 휘둘렀다. 그러자 부드러운 힘이 이준 일행을 천상무덤 깊은 곳으로 빠르게 날려보냈다.

“혈도성자?”

갑자기 나타난 지원군의 정체에 이준 일행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을 도와준 정체불명의 강자가 바로 혈도성자였기 때문이다.

“망할, 저 놈들은 어디서 온 거야? 이곳에서 저들을 죽이면 그 자가 나타날텐데, 미친 건가!”

혈도성자가 빠르게 날아와 어두운 표정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허, 1성 투성 따위가 감히 우리 일에 훼방을 놓다니,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 순간, 분노한 혼족의 두 투성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다시 이준 일행을 향해 날아왔다.

“공간 봉쇄!”

두 사람이 동시에 주먹을 움켜쥐자, 혈도성자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의 힘으로도 두 명의 투성 강자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던 것이다.

“이런 실력으로 쓸데없이 참견하다니.”

하지만 혼조의 주먹이 막 혈도성자의 몸에 내리꽂히려는 찰나, 돌연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 그의 몸을 멈춰 세웠다.

“어떤 녀석이냐!”

“천상무덤 안에 혼족 녀석들도 있었나 보군.”

곧이어 무덤 깊은 곳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현!?”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두 사람의 얼굴이 곧바로 파랗게 질렸다.

“이현?!”

이준은 몸이 강하게 떨리더니 피 속에서 아주 익숙하면서도 이상한 파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이준 일행의 앞 공간이 빠르게 일그러지며 그 안에서 청색 옷을 입은 사내 하나가 걸어 나왔다.

“혼족의 피 냄새는 언제 맡아도 역겹군.”

이현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아주 뛰어난 외모는 아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특별한 느낌을 주는 얼굴이었다. 어깨까지 내려 온 긴 흑발은 마치 검은 비단처럼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고, 먹물처럼 새카만 두 눈동자에서는 끝을 알 수 없는 강인한 의지와 힘이 느껴졌다.

“이현……!”

이현이 나타나자, 혼족의 두 투성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그들은 마치 뱀 앞에 선 개구리마냥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혼조 선배님…….”

혼야 역시 갑자기 나타난 낯선 사람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섬뜩한 에너지를 느끼고는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이현은 10년에 한 번만 무덤 밖으로 나올 수 있어. 하지만 아직 그 시기가 되지 않았어. 그러니 이렇게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혼조가 온 힘을 다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공포를 억누르며 말했다.

“그럼 저 앞에 있는 이현은 진짜가 아니란 말인가?”

옆에 있던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저 환상일 뿐이겠지…….”

“역시 꽤 예리하군.”

청색 옷을 입은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새까만 눈으로 혼조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나를 면전에 두고 고작 2성 투성 둘이서 그런 말을 지껄이는 것인가?”

말을 마친 청색 옷의 사내는 곧바로 혼조를 향해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파괴하라!”

그 순간, 주위의 공간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보이지 않는 손이 혼조를 강하게 내리찍었다.

쾅!

사내의 가벼운 공격 한 번에 온 대지가 지진이라도 난 것 마냥 격렬하게 뒤흔들리며 거대한 균열이 지평선 끝까지 뻗어나갔다.

이현의 공격에 의해 생겨난 거대한 에너지 파동은 다른 곳에 있던 에너지체들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절대 강자의 기운을 느낀 모든 에너지체들은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저마다 숨을 곳을 찾아 달아났다.

“어떻게 이럴 수가…….”

이현의 환상이 만들어 낸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목도한 두 투성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도망쳐!”

이현이 다시 한 번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리자, 두 사람은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혼야와 혼려를 붙잡은 채 황급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쿵!

하지만 그들의 속도로 이곳을 무사히 벗어나는 건 무리였다.

퍽!

결국 거대한 손이 두 사람의 몸에 닿기도 전에 두 사람의 몸이 파르르 떨리며 참혹한 비명소리와 함께 갈기갈기 찢겨 사라졌다.

혼야와 혼려는 두 명의 투성을 찢어발기고 남은 힘조차 받아내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저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힘에 이준 일행은 입조차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이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콰과광!

곧이어 혼족의 두 사람이 사라진 자리가 거세게 흔들리며 희뿌연 먼지가 온 하늘을 뒤덮었다.

회색빛 먼지가 서서히 사라지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파인 절벽이 이준의 눈 앞에 나타났다.

이준 일행은 저도 모르게 찬숨을 들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혈도성자는 잿가루가 되어버린 투성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마른 침을 집어삼켰다. 역시 이족의 후예를 건드리지 않은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담담한 표정으로 하늘 위에 서 있던 청색 옷의 남자는 몸을 돌려 고청양 등 사람들을 훑어보다 이준에게서 시선을 멈췄다.

청색 옷을 입은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는 순간, 이준은 몸속의 피가 점점 더 빠르게 회전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감격스러운 마음을 꾹 누른 채 고개를 들어 그 남자의 새까만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이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났다. 웃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미소였지만, 이준은 그의 표정에서 왠지 모를 친근감을 느꼈다.

“이족의 후예가 날 찾아오다니. 내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구나.”

말을 마친 청색 옷의 남자는 허공을 밟으며 천천히 이준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목소리에선 안도감과 해방감이 느껴졌다.

“불초자제(不肖子弟), 이준입니다.”

이준은 결국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허공 위에 무릎을 꿇어 이씨 가문에서 가장 위대한 선조에게 큰 절을 올렸다.

이현은 씩 웃으며 이준을 부축한 뒤 그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네가 천상무덤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네 기운을 알아차렸다. 활약이 대단하더구나.”

이준은 머쓱한 듯 고개를 저었다. 단신으로 당당히 혼족에게 맞선 이현의 공적에 비하면 자신이 그간 했던 모든 일이 하찮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고청양이라 합니다.”

옆에 있던 고청양, 이은 등도 이현을 향해 공손히 절을 올렸다.

눈앞에 선 사내는 고족의 가주가 직접 온다 해도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고족의 아이들이구나.”

이현이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 고족은 그때 나와 한 약조를 완전히 지키지 않았지.”

그 말을 듣는 순간 고청양 일행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이현 선배님. 그, 그것은 고족 내부의 일부 불온한 자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가주님은 지금까지 줄곧 약조를 지키고 계십니다.”

이현은 고청양의 말에 답을 하지 않고 쓴 웃음을 지으며 이은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 피는 고원과 비슷하구나.”

“제 아버지이십니다.”

이은은 공손한 태도로 그렇게 답한 뒤 안절부절 못하는 눈빛으로 이현을 바라봤다.

“딸이라……. 어쩐지 신급 혈통을 갖고 있더라니, 정말 그 아비에 그 딸이로군.”

말을 마친 이현은 이준과 이은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거 우리 이족이 정말 큰 선물을 받았군.”

이현의 말속에 담긴 의미를 알아들은 듯 이은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먼저 돌아가거라. 앞으로 계속 천상무덤에 있을 수 있다.”

이현이 혈도성자를 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현 선배님,”

그의 말에 혈도성자는 크게 기뻐하며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천상무덤 안에는 무수히 많은 에너지체가 존재했고, 혈도성자보다 강한 실력을 가진 존재도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이현의 말 한마디면 앞으로 천상무덤에서 당당히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었다.

말을 마친 혈도성자는 재빨리 자리를 피해 멀리 날아갔다.

“먼저 무덤 안으로 가자. 난 무덤을 벗어날 수 없다. 지금 자네들이 보고 있는 모습도 그저 내가 보낸 환영일 뿐이다.”

혈도성자가 떠나자 이현이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이준 일행은 온몸의 털이 거꾸로 서는 것만 같은 공포를 느꼈다.

고작 환영으로 2성 에너지체 두 개를 일격에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니, 본체가 나타난다면 정말로 대지를 가르고 하늘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품고 있는 의혹들이 꽤 많은 것 같은데, 따라오너라. 오늘을 위해 내가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다.”

이현은 이준에게 시선을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에 이준의 마음속에서도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준도 마찬가지로 오직 오늘만을 기다려왔다.

천상 무덤의 내부는 사방이 온통 먹물을 끼얹어 둔 것처럼 어두웠고, 실처럼 가느다란 빛만이 가끔 흘러들어 올 뿐이었다. 이준 일행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들어온 것처럼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곳이 바로 천상무덤의 가장 깊은 곳이다.”

이현이 미소를 지으며 눈 앞에 서 있는 오래된 석비를 가리켰다.

석비는 외지고 깜깜한 곳에 덩그러니 서있었다. 긴 세월 동안 그의 곁을 지킨 것은 고독과 적막뿐인 것 같았다.

“이게 바로 내 무덤이다.”

이준은 이현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수한 세월을 견뎌온 석비에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힘과 위엄이 느껴졌다.

“너희 네 사람은 석비 밖에서 수련을 하고 있거라. 이곳은 천상무덤에서도 가장 에너지가 짙은 곳이나, 다른 에너지체들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

이현이 이준과 이은을 제외한 나머지 강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사람은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날 따라오거라.”

말을 마친 이준은 뒷짐을 쥔 채 석비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잠시 후, 그의 몸이 석비에 닿더니 빠르게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준은 숨을 살짝 들이마시며 이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가자.”

“네,”

이준의 웃는 모습을 보자 긴장이 모두 풀린 이은은 그의 손을 잡고 천천히 석비로 걸어갔다.

“이준, 이은을 잘 돌봐주게!”

석비로 향하는 두 사람을 보며 고청양이 고개를 숙여 정중히 부탁했다.

이준이 이번에 무덤 안으로 들어간다면 단시간 안에 나오지는 않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몸조심 하십시오.”

이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석비 위에 손을 가볍게 올렸다.

그러자 몸 속의 피가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며 밝은 빛이 터져 나와 이준과 이은을 감쌌다. 잠시 후, 서서히 빛이 옅어지며 두 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고청양 일행은 서로를 바라보다 씁쓸하게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이현 선배님이 계시다면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걱정할 것 없겠지. 우린 여기서 조용히 그들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고청양이 석대를 하나 골라 양반다리를 하고 앉으며 말했다.

그의 뒤를 따라 고진을 비롯한 세 사람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찾아 수련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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