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3화. 혼족 에너지체
일제히 쏟아지는 공격에 혈도성자도 살짝 당황한 듯 멈칫했지만, 빠르게 정신을 부여잡고 거대한 칼을 미친 듯이 휘둘러 그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혈도의 피바다!”
가볍게 고족 강자들의 협공을 막아낸 그는 번개처럼 하늘 높이 뛰어오르며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콰광!
매서운 힘이 회오리 속에서 화살처럼 튀어 나와 고청양 등 사람들을 멀리 날려버렸다. 그들이 거대한 바위 위로 날아가 떨어지면서 커다란 바위가 순식간에 가루로 변해버렸다.
“네 차례다.”
혈도성자는 곁에서 줄곧 자신을 죽일 기회를 찾고 있던 이준에게 시선을 돌리며 다시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천현의 불꽃, 제 1장! 제 2장! 제 3장!!’
일 대 일로 투성 강자와 맞서게 된 이준의 몸속에서 염력이 미친 듯이 폭발하기 시작하더니 미간에서 다시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쉭!
그 순간, 흉흉한 빛을 내뿜던 붉은 칼날이 이준의 머리 위에 멈춰 섰다. 혈도성자의 시선은 이준의 미간에 고정되었다.
“이족의 족문?”
혈도성자의 눈에 공포가 가득해졌다.
“이족의 사람이라니…….”
혈도성자는 겁먹은 표정으로 이준의 정수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틈을 보이자 이준은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혈도성자는 이준을 쫓아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가만히 그의 미간 사이에서 빛나던 족문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족 놈들은 모두 죽은 것이 아니었나…….”
혈도성자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조용히 중얼거리며 저도 모르게 천상무덤 깊은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고청양과 이은 등이 이준의 곁으로 다가와 갑자기 공격을 멈춘 혈도성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이준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혈도성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대답에 고족의 강자들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혈도성자를 바라봤다.
‘이족의 후예라니……. 그 분의 능력이라면 저 녀석이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알아차렸을 거야. 여기서 내가 저 녀석을 죽인다면 오늘 난 그분의 손에 죽고 말겠지.’
혈도성자의 눈이 반짝거리더니 온몸에서 퍼져 나오던 섬뜩한 기운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혈도 성자가 손에 들고 있던 거대한 칼을 집어넣으며 달갑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거라. 운 좋은 줄 알거라!”
이준 일행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 에너지체가 왜 갑자기 생각을 바꿨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서 서쪽으로 가라. 그쪽으로 가면 다른 이들의 방해 없이 너희들이 가고자 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을 게다.”
혈도성자가 넋을 놓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이준일행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준 일행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혈도성자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서서히 물러났다.
혈도성자는 빠르게 몸을 돌려 달아나는 이준 일행을 바라보다 입술을 삐죽이며 혼잣말을 중얼 거렸다.
“흥! 이번에는 나에게 신세를 진거요.”
* * *
“정말 이유를 모르겠네. 방금 전까지 죽일 듯이 달려들다가 갑자기 호의적으로 나오다니…….”
안개가 자욱한 대지 위를 빠르게 날아가던 고화가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이족 사람이라는 걸 알아본 것 같습니다.”
이준은 의혹이 가득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네 기운이 폭등할 때마다 이마에 이족의 족문이 나타나는데, 어떻게 못 알아보겠는가.”
고청양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조금 전 그 혈도성자가 두려워 한 것은 이족의 족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족문에는 아무런 힘도 있지 않으니까요.”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이준이 여전히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그가 우리를 놔준 건 이족과 관련된 무언가를 두려워해서겠죠.”
하지만 이 천상무덤에서 이족의 족문과 관련되어 있으면서 혈도성자와 같은 강자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 것이 뭐가 있을까?
“이현이에요!”
옆에 있던 이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말에 이준뿐만 아니라 고족의 다른 강자들도 저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현이 죽은지 얼마나 오래됐는데, 혈도성자 같은 강자가 여전히 공포에 떨고 있단 말인가?
“천상무덤에 있는 에너지체들은 혈도성자와 같은 1성 투성일지라도 기억과 지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투성 최고급 수준이었던 이현 선배 역시 이곳에 남아있다는 의미 아닐까요?”
그녀의 말에 고청양을 비롯한 고족 강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준을 향했다.
“갑시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이 수수께끼가 풀리겠죠.”
이준은 그 말만을 남기고 속력을 높여 재빠르게 옅은 안개 속을 빠져나갔고, 이은을 비롯한 고족의 강자들 역시 말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 * *
이준 일행은 숨조차 돌리지 않고 혈도성자가 말했던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들은 에너지체의 실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심지어 혈도성자보다 강한 에너지체도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그들 중 누구 하나 이준 일행을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 그래도 괜히 그들을 자극해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이준 일행은 에너지체들과 가급적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하며 계속해서 앞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우린 이미 천상무덤에서 가장 깊고 위험한 지역에 들어왔을 거예요.”
나무가 우뚝 서있고 돌이 가득한 지대에 들어선 이준 일행은 경사진 땅에 몸을 숨긴 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잠시 후, 고청양이 어둑어둑한 곳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역시 천상무덤에서 가장 위험한 곳답게 에너지체들의 실력도 장난이 아니군. 9성 투존급 에너지체마저 여기선 호위병 신세라니…….”
고화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신 역시 중주 최고의 세력이라는 고족에서도 손에 꼽는 젊은 강자였지만, 이곳에서는 마치 개미가 된 것처럼 더욱 강한 자들에게 짓밟혀 죽지 않도록 눈치를 살피는 신세였다.
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 역시 동감한다는 듯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속도라면 머지않아 고적에 기록된 이현 선배님의 무덤에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이은이 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곳은 너무 위험하니 어서 움직이는 게 좋겠어.”
이준이 긴장한 표정으로 마른 침을 삼키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그의 말에 동의하는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이현의 무덤으로 향하려던 그 때, 갑자기 앞에서 미세한 바람소리가 들려오더니 검은 그림자 두 개가 거대한 바위 위에 서서히 내려와 이준 일행을 조롱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준, 너무 느린 거 아닌가?”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준 일행의 표정이 약속이나 한 듯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혼야, 혼려!”
“큭, 누군가 했더니, 부리나케 도망 가버린 녀석들 아니야? 왜? 이제 겁이 없어졌나봐?”
고화는 그들을 보자마자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준과 이은의 고화와 달리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내려 앉아 있었다.
그간 줄곧 자신들을 피해다니던 두 사람이 이렇게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분명히 무언가 믿을만한 구석이 있다는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걱정 마, 이번에 도망 가버릴 녀석들은 너희들이 될 테니까.”
혼야가 피식 웃으며 혼려와 함께 천천히 뒤로 물러나자, 회색 옷을 입은 두 노인이 귀신처럼 앞으로 걸어 나왔다.
“투성?”
그들이 나타나는 순간, 이준 일행의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이준 일행의 표정이 굳어지자, 혼야의 입가에 음험한 미소가 번졌다.
“왜? 또 입을 놀려보시지?”
“젠장, 저 망할 놈들은 어디서 투성 에너지체를 찾아온 거야? 저런 강자들이 왜 저 녀석을 돕고 있는 거지?”
고화가 눈썹을 찌푸리며 욕을 읊조렸다.
잠시 후, 두 노인을 바라보던 고진이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 두 사람도 혼족의 강자였던 것 같아.”
“흩어져서 도망가자. 투성 두 명이면 에너지체라도 절대 그들의 상대가 될 수 없어.”
이어지는 고진의 말에 9성 투존인 고청양마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족이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었나…….”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냉담한 눈빛으로 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혼조 선배님, 이족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자신의 힘으로 이미 투존이 되었습니다. 지금 저 녀석을 없애버리지 않는다면 이족이 다시 되살아날 지도 모릅니다.”
혼야가 공손히 말했다.
“피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는 말이냐.”
혼조라는 노인이 놀란 눈으로 이준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반드시 이 자리에서 목숨을 끊어놔야겠군.”
“됐소. 어서 죽이고 이곳을 뜹시다. 여긴 그 곳과 너무 가까워서 오래 끌다가는 변수가 일어날 수 있소.”
또 다른 노인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노인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혼조의 발밑에 거대한 파문이 일더니 거대한 에너지가 파도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도망쳐!”
고청양이 큰소리로 외치며 먼저 왼쪽을 향해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이준을 비롯한 사람들도 각자 다른 방향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공간 봉쇄!”
그러나 가만히 서있던 회색 옷의 노인이 피식 웃으며 주먹을 움켜쥐자, 백 미터 이내의 모든 소리와 시간이 멈춰버렸다.
빠르게 도망치던 이준 일행도 조각상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에 혼야는 참지 못하고 광소를 터뜨렸다.
이준도 이준이지만 이 자리에서 고족의 기대주들을 모두 죽여 버린다면 혼족이 8대 세력 중 우두머리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일 것 같았다.
쾅!
혼야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이준 일행을 바라보고 있을 때,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는 금색 화염이 부활한 봉황처럼 폭발을 일으키며 굳어졌던 공간이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쿵!
금색 화염이 폭발하면서 생긴 틈을 타 이준의 몸에서도 자갈색의 화염이 터져 나왔다.
두 불꽃이 굳어버린 공간에 균열을 만들어내자 고청양을 비롯한 고족의 네 강자들도 속박에서 벗어나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조금 전 상황으로 보아 흩어져 도망가는 것이 더 위험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호오. 과연 고족과 이족의 어린 것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
이준 일행이 자신들의 공간 봉쇄를 무력화 시키는 광경에 두 노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확실히 꽤 대단하군.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혼조가 피식 웃으며 입을 벌리자, 새까만 검은 구름이 입에서 터져 나와 천 미터가 넘는 거대한 구렁이가 되어 꼬리를 휘둘렀다.
곧이어 이준 일행의 귀에 후욱, 하는 소리가 들여오더니 구렁이의 꼬리가 닿은 곳 주위의 공간이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눈앞에서 투성의 힘을 확인한 이준 일행의 두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고작 에너지체에 불과한 투성이 이 정도 힘을 가지고 있다니, 상대가 진정한 투성이었다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모두 목숨을 잃었을 것이 분명했다.
“함께 움직여!”
흑구렁이가 공간을 무너뜨리며 돌진하는 순간, 위험을 감지한 고청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후…….”
이준은 긴 숨을 내뱉으며 곧바로 천계의 불꽃을 시전했고, 그와 동시에 고족의 다섯 강자들도 체내의 염력을 아낌없이 폭발시켰다.
“죽음의 광단!”
새까만 점이 손바닥에 생겨나는 순간, 이준은 있는 힘껏 앞으로 손을 뻗었다.
쉭!
그의 주먹이 허공을 내리치자, 검은색 광단이 급속도로 빠르게 커지기 시작했다.
“대파멸의 힘!”
한편, 고청양과 고진 등도 고요한이 이준과의 대결에서 사용했던 고족의 1격 무투기를 시전했다.
쾅!!
검은 색 실선과 이준의 광단이 구렁이와 맞부딪히는 순간, 무시무시한 굉음이 천지를 뒤흔들더니 이내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며 거대한 에너지 폭풍이 사방을 휩쓸었다.
곧이어 하늘을 뒤덮은 에너지 폭풍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튀어나와 이준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매서운 에너지 폭풍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다름 아닌 흑구렁이의 꼬리였다. 뱀의 꼬리에는 상처가 가득했지만, 여전히 섬뜩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