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2화. 투성 에너지체
“안쪽으로 들어가면 더욱 강한 에너지체들이 가득할 테니 마음 단단히 먹어.”
고진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면 앞으로는 저 혼자 들어가겠습니다.”
이준이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만 해도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게다가 이현의 무덤까지 가려면 얼마나 더 많은 에너지체를 상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지난 석달간 생사고락을 함께 해오며 이준의 마음속에는 고청양 일행에 대한 호감이 생겨났고, 때문에 자신의 일로 그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 말은 이은에게 해야지.”
고청양이 웃으며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그런 말 하지 마요. 조심하면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이은이 부드러운 눈으로 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조심해야지.”
이준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저 멀리 앞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조금만 더 가면 이씨 가문의 선조라는 이현의 무덤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대는 것이 느껴졌다.
* * *
“서북부 방향에서 8성 투존급 에너지체 셋, 9성 투존급 에너지체 하나의 기운이 느껴져요.”
거대한 바위 뒤에서 이준이 감고 있던 두 눈을 뜨며 말했다.
그들은 이미 천상무덤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있었고, 이제는 여섯 명이 힘을 합쳐도 목숨이 위험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고화와 고진도 주위를 탐색하러 갔으니 금방 돌아올 거야.”
고청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쉭!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두 개의 검은 형체가 바닥으로 내려와 거대한 벽과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두 사람의 정체는 바로 정탐을 나갔던 고화와 고진이었다.
“남쪽과 서쪽에는 에너지체의 흔적이 너무 많아. 그쪽으론 절대 못 가.”
고진과 고화가 천천히 숨을 고르며 말했다.
“그럼 서북방향으로 가는 수밖에 없겠군요.”
“서북 방향도 마찬가지로 9성 투존 실력을 뛰어넘는 아주 강한 압력이 느껴지고 있어요. 하지만 투성보다는 실력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요.”
이은의 말에 순간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9성 투존 이상에 투성 이하라면 상대가 반투성이라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투성급 에너지체라면 그 주위에 얼마나 되는 투존급 에너지체들이 지키고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나마 서북쪽이 가장 나을 거야. 이쪽이 에너지체가 제일 적으니 싸워도 다른 에너지체들이 몰려들 확률은 낮겠지. 하지만 나머지 두 방향은 전투가 일어나는 순간 바로 포위되고 말 거야.”
이준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청양과 눈을 한 번 마주친 뒤 서북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움직이지. 최대한 반투성 에너지체를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반투성 에너지체의 핵은 확실히 탐나지만,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
고청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예,”
이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조심스럽게 천상무덤 깊은 곳으로 날아갔고, 이은과 고청양 일행이 그 뒤를 따랐다.
여섯 개의 그림자는 에너지 안개를 뚫고 백 미터 정도를 나아간 뒤에 천천히 멈춰 섰다. 그들과 멀지 않은 곳에는 네 개의 에너지체가 서있었다.
바위 위에 우뚝 서있던 에너지체를 유심히 바라보던 이준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고청양 일행을 향해 손짓을 해보였다.
삼 개월 간 수백 번의 전투를 치른 터라 그들의 호흡은 이루 말할 데 없이 완벽했다.
이준의 손짓에 다섯 개의 그림자가 빠르게 방향을 나누어 흩어졌다.
‘지금이에요!’
모든 사람들이 지시에 따라 자리를 잡자, 이준은 가볍게 주먹을 쥐어 다시 신호를 보낸 뒤 번개처럼 앞으로 몸을 날려 네 개의 에너지 체 중 하나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쾅!
이준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8성급 에너지체 하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연달아 두 개의 에너지체가 다시 폭발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세 부하를 잃은 9성급 에너지체는 눈을 부릅뜨며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사방으로 뿜어냈다.
그러나 그가 전투태세를 갖추었을 때는 이미 고청양을 비롯한 네 명의 강자가 사방에서 그를 포위한 상태였다.
쉭!
사방에서 덮쳐오는 무시무시한 염력 폭풍에 9성 투존급 에너지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반짝이는 에너지 핵 하나만을 남긴채 사라졌다.
순식간에 네 개의 에너지체를 처리한 여섯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씨익 웃음을 지은 뒤 지체없이 앞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선두에 선 이준의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들의 앞에서 엄청난 위압감이 퍼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투성…….”
이준은 황급히 거대한 바위 뒤로 몸을 숨기며 손짓으로 멀지 않은 곳에 위험한 존재가 있음을 알렸다.
고족을 대표하는 강자들답게 이준이 신호를 보내는 것과 거의 동시에 다섯 명의 강자들도 순식간에 기척을 감추고 몸을 숨겼다.
“모두 조심하세요.”
이준은 모두에게 주의를 준 후 조심스럽게 앞으로 기어가 에너지가 흘러 나오는 방향을 바라봤다.
바로 그때, 돌연 광풍이 불며 시야를 가리고 있던 짙은 안개가 걷히더니 백 미터도 넘는 거대한 절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위에는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에너지체 하나가 팔짱을 낀 채 우뚝 서있었다.
잠시 후, 바닥에 납작 엎드려있던 이준이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들켰어요. 다들 조심하세요.”
거대한 절벽 위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그림자를 바라보던 고청양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이번엔 치열한 싸움이 될 것 같군.”
고화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투성 강자와의 전투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미친 짓이었다. 비록 투성 에너지체는 하나뿐이지만, 살아 있을 때의 전투 방식과 무투기가 모두 남아있기 때문에 모두 함께 달려들어도 승산이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까득-.
고형의 커다란 주먹에서 까득,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무거운 기운이 몸속에서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 조심하자고. 이번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까.”
고청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침입자는 이곳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결과가 어떨지는 잘 알고 있겠지.”
절벽 위에 있던 그림자가 이준 일행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가 말을 내뱉을 때마다 마치 천둥이 내리치는 듯 사방으로 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준 일행은 눈썹을 찌푸리며 손에 거대한 칼을 든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암홍빛 의복을 입은 채 냉담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그 에너지체의 얼굴에는 기다란 칼자국이 깊게 새겨져 있어 흉흉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이준 일행은 마치 피를 가득 뒤집어 쓴 채 포효하는 사자를 발견한 것처럼 등골이 서늘해졌다.
게다가 이 에너지체의 눈동자는 다른 에너지체들처럼 텅 비지 않은 것으로 보아 상당한 지성을 갖추고 있는 것 같았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 투성이라면 지금 모인 사람만으로 어떻게든 해볼 수 있겠지만, 지성을 갖추고 있는 에너지체라면 완전히 이야기가 달랐다.
쾅!
그림자가 바위 절벽 위에서 발을 구르자, 무시무시한 힘이 솟구치며 거대한 균열이 독사처럼 꼭대기에서 퍼져 내려가 순식간에 바위산 전체를 무너뜨렸다.
거대한 돌이 바위산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투성 에너지체가 귀신처럼 이준 일행과 가까운 허공 위에 나타났다. 그의 오른 손에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거대한 칼이 들려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사람의 피를 맛보지 못해 무슨 맛이었는지 잊었구나.”
그 그림자는 고개를 좌우로 돌린 뒤 계속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시작하기 전에 내 소개부터 해야겠지? 내 이름은 아주 오랫동안 언급된 적이 없을 게다. 예전에 이곳에 들어왔던 인간들의 기운을 느낀 적이 있었지만, 날 보자마자 달아났었지. 그래서 이 신선한 피가 흐르는 인간은 처음 보는 구나. 내 이름은 혈도성자였던 것 같은데……. 들어보았는가?”
고개를 들고 날카로운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에너지체의 모습에 이준 일행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죽은 지 수백 년이 되었을지, 수천 년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누군지 어떻게 알겠는가…….
“역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군.”
자신을 혈도성자라 부른 에너지체는 약간 실망한 듯 고개를 젓더니 가볍게 발을 굴렀다.
“조심해!”
혈도성자의 발이 움직임과 동시에 이준이 굳은 표정으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강풍이 손에서 터져 나와 고진을 강하게 밀어냈다.
쉭-
고진이 멀리 날아가기 무섭게 그가 서있던 곳에서 피로 물든 빛이 튀어나와 바닥을 완전히 박살내버렸다.
“응?”
‘속도가 너무 빨라. 이제 투성과 투존의 차이인가…….’
이준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 땀을 닦으며 빠르게 이은, 고청양 등의 곁으로 날아갔다. 천상무덤에 들어온후 일 년 동안 영혼의 힘이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면 혈도성자의 공격을 알아차리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 같았다.
“이 녀석, 역시 어려운 상대야.”
고진 역시 재빨리 바닥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낸 뒤 다른 사람들 곁으로 날아왔다.
“다음번에는 좀 살살 하지?”
“그럼 저 녀석의 손에 두 쪽이 났을 거예요.”
이준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한 뒤 긴장한 눈빛으로 고청양과 이은을 바라보았다. 등급으로만 봤을 때는 이 두 사람이 여섯 중 가장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움직이죠.”
그의 말에 고청양과 이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의 눈을 바라본 뒤 동시에 앞으로 돌진하며 빠르게 인결을 바꿨다.
“대지의 힘!”
그 순간, 태양처럼 눈부신 인결이 생겨나더니 혈도성자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보잘 것 없는 놈들이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에너지 장막을 본 혈도성자는 여유롭게 피식 웃음을 지었다. 곧이어 그의 손에 있던 거대한 칼이 두 개로 나뉘면서 두 개의 거대한 빛이 공간을 반으로 갈랐다. 그리고 칼 하나가 에너지 인결을 반으로 쪼개버렸고, 남은 힘은 그대로 이은과 고청양을 향해 날아갔다.
붉은 칼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에너지에 두 사람은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쾅!
이은과 고청양이 서있던 자리가 갑자기 움푹 파이더니 거대한 용암 기둥이 무서운 힘과 함께 하늘 위로 솟구쳤다.
“하!”
거대한 용암기둥을 보고 혈도성자는 허, 하는 소리와 함께 강하게 발을 굴렀다. 그러자 거대한 용암기둥이 그대로 으깨지듯 붕괴되며 사방으로 튀어 근처에 있던 바위들을 모두 녹여버렸다.
“태양검!”
혈도성자 뒤에서 이준이 번개처럼 나타나 있는 힘껏 검은 송곳을 휘둘렀다.
챙!
하지만 혈도성자가 거대한 칼을 빠르게 휘두르자 허공에 남은 칼자국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이준의 공격을 막아내고 남은 힘으로 그를 공격했다.
핏빛 칼자국이 검은 송곳을 강하게 누르면서 그 안에 남아있던 힘으로 인해 이준의 몸은 열 발자국 이상 밀려나고 말았다.
그러나 혈도성자가 이준을 쫓아가기도 전에 고화, 고형, 고진 세 사람이 빠르게 따라 붙어 그를 향해 무투기를 쏘아댔다.
“하찮은 것들이 감히 나를 도발하다니!”
세 사람에게 포위된 혈도성자는 차갑게 웃으며 왼손을 꽉 쥐었다.
그가 힘차게 팔을 앞으로 뻗자, 핏빛 호랑이 세 마리가 나타나 포효하며 그들을 덮쳤다.
“푸흡!”
투성 강자의 공격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세 사람은 새빨간 피를 쏟아내며 그대로 뒤로 밀려났다.
“함께 움직여!”
고청양이 크게 외치면서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와 동시에 투성 에너지체에게 공격을 당한 세 사람이 에너지 핵을 꺼내 그것을 흡수한 뒤 이은과 함께 고청양의 뒤를 바짝 쫓아가며 염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