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9화. 고대 식인벌레
천상 무덤에서는 조금만 날아도 바깥 세계보다 몇 배나 되는 염력을 소모하게 됐다. 하지만 지난 반년간 수많은 에너지 핵을 흡수한 덕에 이제는 반나절 이상 쉼 없이 날아가도 염력이 고갈될 염려는 없었다.
하나 사신처럼 죽음의 기운을 풍기며 뒤를 바짝 쫓아오는 에너지 폭풍에 의해 이준 일행은 적잖은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이준 오라버니, 3층 입구에 거의 다 왔어요!”
그렇게 죽음의 공포 속에서 한참을 정신없이 날아가던 도중, 이은이 먼 곳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가자. 속도를 높여!”
입구가 눈앞에 보이자 이준은 크게 웃으며 더욱더 속도를 높였다.
지금 그들의 눈앞에는 2층으로 내려올 때 보았던 것과 비슷한 거대한 빛기둥이 하늘과 지면을 이은 채 서있었다.
눈부신 빛을 뿜어내는 빛기둥 앞에는 네 사람이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준 일행이 3층의 입구 가까이 다가오자, 그중 한 사람이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왔군. 에너지 폭풍도 달고 왔구나.”
“역시…….”
그의 말에 은색 의복을 입은 남자와 건장한 남자 모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고진, 자네 너무 태평한 것 아닌가? 저건 에너지폭풍이라고. 저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 이곳에 있는 사람 중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어.”
은색 의복을 입은 남자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하하, 당황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청양 형님이 이곳에 있는데, 나쁜 일이 일어날 리가 없습니다.”
고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녀석…….”
그의 말에 줄곧 눈을 감고 있던 청색 옷의 남자가 픽, 하고 웃으며 눈을 떴다.
“어차피 우리 넷으로는 이 빛기둥을 뚫을 수 없으니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에너지 폭풍을 달고 왔다 해도 할 수 없지.”
“뚫을 수 없는 게 아니라 염력 소모가 너무 커 3층에 들어가기 전에 지쳐버릴까 걱정하는 것 아닙니까?”
고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청색 옷의 남자는 말없이 웃으며 굳이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은과 이준도 도착했군.”
그의 말이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늘에서 네 개의 빛이 반짝이더니 금세 그들이 앉아있는 곳까지 날아왔다.
“고청양? 역시 정말 빠르군.”
화현이 말했다.
“청양 오라버니, 왜 안 들어가고 있어요? 에너지 폭풍이 오고 있어요.”
이은 역시 허공에서 천천히 내려와 말했다.
“빛기둥이 실체화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이 기둥을 박살 내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지.”
웃으며 이준의 몸을 훑던 고청양이 놀란 듯 눈을 치켜뜨며 이은에게 질문을 던졌다.
“괜찮으냐?”
“별일 없었어요. 혼족 두 녀석과 한 달 동안 추격전을 벌였을 뿐이에요.”
이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 녀석들이 감히 너에게 손을 댔단 말이냐?”
청색 옷을 입은 남자가 험악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줄곧 평온한 표정으로 있던 고진 역시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입을 연 것은 고진이 아니라 은색 의복의 남자였다.
“저쪽도 온전한 상태는 아니에요.”
이은이 이제 막 공터에 도착한 혼족의 두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고족의 강자들이 서있는 것을 발견한 혼야와 혼려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이준 일행과 에너지 폭풍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빛기둥을 앞에 두고 십여 명의 강자 사이에 잠시 팽팽한 김장감이 감돌았다.
“지금은 싸울 시간이 없으니 일단 넘어가도록 하지.”
잠시 후, 고청양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3층으로 향하는 에너지 빛기둥을 파괴하지 못하면 우리는 모두 죽은 목숨이야. 살고 싶다면 손을 잡아야 할 것 같은데.”
그의 말에 모두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구도 이런 곳에서 싸움을 벌이다 폭풍에 휘말려 죽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고청양은 미소를 지으며 먼 곳에서 다가오고 있는 에너지 폭풍을 바라보았다.
“그럼 시작합시다. 제가 제안했으니 우리 먼저 시작해서 차례대로 돌아가는 게 좋겠군요.”
말을 마친 고청양은 웃으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러나 혼야와 혼려에게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그의 얼굴에 싸늘한 한기가 돌았다.
“걱정 마십시오. 지금은 모두 한 배를 탄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힘을 합쳐야지요”
이마에 번개 문양이 그려진 뇌족(雷族) 사람이 입을 열었다.
“허허, 고맙습니다.”
고청양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뒤 고진을 비롯한 고족의 세 강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리가 먼저 움직이고 이준, 이은 너희는 맨 마지막 차례다.”
고청양의 제안에는 혼야와 혼려 두 사람을 마지막까지 감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이준 역시 이를 알고 있었기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이제 시작해볼까?”
곧이어 은색 의복을 입은 사내가 웃으며 나머지 세 사람과 함께 빛기둥 앞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네 사람의 주먹이 단단하게 굳어버린 빛기둥을 강타했다.
쾅!
네 사람의 무시무시한 공격에 단단하기 짝이 없던 빛기둥에 미세한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우직, 하는 소리와 함께 3, 4미터 정도 높이의 작은 길이 생겨났다.
쿵쿵쿵!
공격이 효과가 있는 듯하자, 고청양을 비롯한 네 명의 강자들은 염력으로 뒤덮인 손을 거침없이 움직여 계속해서 통로를 만들어나갔다.
“휴…….”
그렇게 십 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내 사람이 자리에 멈춰 뒤를 돌아봤다.
돌처럼 굳어버린 거대한 빛기둥 속에는 이미 10미터 정도 깊이의 통로가 생겨나 있었다.
빛기둥의 두께는 대략 백 미터 정도였으니, 나머지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파내면 한 시간 정도면 3층으로 향하는 통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청양님, 이제 저희가 하겠습니다.”
고청양 등 네 사람이 지친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멈춰 서자, 뇌족(雷族)의 두 남자가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허허, 그럼 부탁드립니다.”
곧이어 고족의 강자들이 물러나고, 뇌족의 두 강자가 손끝에 염력을 집중시켜 다시 통로를 파기 시작했다.
“에너지 폭풍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사람들이 통로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던 그때, 가장 뒤에 있던 이준이 고개를 돌려 통로 입구를 바라보았다.
밖에서 전해지던 압력이 점점 강해지면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쉬지 않고 귓등을 때렸다.
“에너지 폭풍은 못 들어올 거예요…….”
이준의 눈빛을 본 이은이 웃으며 말했다.
“이 빛기둥은 계속 이렇게 실체화되어 있는 거야?”
이준이 마치 동굴의 벽처럼 단단하게 굳어있는 빛기둥을 매만지며 물었다. 에너지가 압축되어 이렇게 단단하게 응고될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강한 힘이 필요한 것인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네. 우리 8대 세력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이랬대요.”
이어지는 이은의 대답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도 통로는 점점 더 깊어졌다. 하지만 뇌족(雷族) 두 사람으로는 고족 네 사람만큼 속도가 나지 않아 5미터 정도를 파고 나니 다른 사람으로 교대를 해야 했다.
쾅!
그렇게 다시 십 분 정도가 지났을 때, 지진이라도 난 것 마냥 바닥이 부르르 떨리며 빛기둥 전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에너지 폭풍이 다가오고 있어…….”
순간 사람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7,8 성 투존이 염력을 집중시켜 파내기도 버거운 단단한 에너지 결정이 이토록 크게 흔들릴 정도라니, 바깥에 있었다면 에너지 폭풍에 닿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속도를 올립시다.”
고청양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고, 통로를 만들고 있던 염족의 두 강자는 더욱 빠른 속도로 통로를 파기 시작했다.
* * *
자리에 모인 십여 명의 투존들은 쉴 새 없이 번갈아 가며 통로를 파냈다. 이준과 이은에게도 벌써 두 번이나 차례가 돌아왔었다. 그래도 이준이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수정층이 매우 단단하긴 했지만 네 가지나 되는 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있는 이준에게는 그리 대단한 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혼야와 혼려 역시 이준과 이은의 감시하에 열심히 작업을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과 말다툼을 벌일 시간조차 아까웠으니 아무리 화가 나도 이곳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준은 혼려와 혼야 외에 약족의 두 투존에게도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고계에 있을 때부터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이 곱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에 천상무덤에 들어온 약족의 강자는 총 두 명이었으며 그중 하나는 기묘한 무늬가 그려진 옷을 입은 남자였고, 나머지 하나는 어깨가 드러난 옷을 입은 여자였다. 두 사람의 실력은 대략 7성 투존 정도로, 혼야나 혼려보다는 조금 못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쉴 새 없이 통로를 파기를 어언 한 시간, 단단한 벽의 한쪽에서 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이 기이한 현상에 이준은 놀란 눈으로 양쪽 수정 벽을 훑어보며 한참동안 제자리에 서있었다.
잠시 후, 이준이 액체가 흐르는 곳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의 기이한 행동에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던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이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준?”
고청양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이준은 한참동안이나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이곳의 수정벽이 합쳐지고 있어요.”
이준의 말에 통로 안에는 순간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망할, 이게 뭐야!”
곧이어 고청양 역시 빛기둥에서 끈적한 액체가 흐르는 것을 발견하고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이준에 이어 고청양까지 얼굴빛이 안 좋아지자, 고진이 황급히 수정벽으로 다가가 액체를 만져보았다.
“수정벽 안에 무언가 있소.”
쾅!
그때, 단단한 수정벽이 뒤흔들리며 미세한 균열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갈라진 틈 안에는 하얀색의 정체모를 무언가가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빛기둥이 흔들릴 때마다 그 하얀색 물질로부터 액체가 흘러나와 응고되면서 빠른 속도로 벽이 두꺼워 지고 있었다.
“이럴 수가……. 정말로 벽이 다시 두꺼워지고 있어.”
그 순간, 이준의 눈에 믿을 수 없는 것이 보였다.
빛기둥 안에 있던 새하얀 물질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정벽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는 기이한 액체는 그 정체불명의 물체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로 그때, 이준의 곁에 서서 그 새하얀 물체를 바라보던 고청양의 입에서 경악에 찬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젠장, 고대 식인벌레잖아……!”
“고대 식인벌레?”
이준의 물음에 이은이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상고시대의 소형 마수예요. 크기는 아주 작지만 셀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마수들이 함께 다녀요. 고대 식인벌레는 뭐든지 다 먹어치울 수 있고, 순수한 에너지를 계속해서 분비하죠. 하지만 오래전에 사라진 고대 식인벌레가 이곳에 있을 줄은…….”
이은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고청양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젠장, 이 단단한 빛기둥이 식인벌레들의 분비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니……. 저놈들이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우리 모두 뼛조각 하나 남기지 못하고 잡아먹히고 말거야.”
“이 빛기둥뿐 아니라 천상무덤 안에 있는 에너지도 모두 저 녀석들이 만든 것일지도 모릅니다.”
고진이 무릎을 꿇어 바닥을 만지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