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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68화 (668/818)

668화. 대폭풍

“내 팔을 자르기는커녕 하나 남은 팔이나 잃지 않으면 다행이겠는데?”

폭죽처럼 터지는 형형색색의 불꽃을 바라보던 이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혼려는 이준의 도발에 말려들지 않고 빠르게 기이한 인결을 맺었고, 인이 완성되는 것과 동시에 그의 미간에 기이한 검은 문양이 떠올랐다.

“혼족의 족문을 보고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말을 마치기 무섭게 혼려의 기운이 폭등하며 검은 안개가 그를 휘감았다.

곧이어 문양에서 시커먼 액체 같은 것이 흘러나와 혼려의 팔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 검은 팔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고통에 몸부림치는 영혼들의 얼굴이 섬뜩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큭큭, 어떠냐, 몰락한 이족 따위에게는 없는 힘이지!”

이준의 굳은 표정을 본 혼려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8대 세력의 투사들은 천계의 불꽃과 같은 비술을 사용하지 않았다. 세상의 그 어떤 비술도 그들이 가진 족문의 힘을 능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족문의 힘을 사용하는 데는 적지 않은 염력이 필요했지만, 비술과 달리 부작용이 없으면서도 실력을 높이는 효과는 더욱 뛰어났으니 굳이 비술 따위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족문의 힘을 개방한 혼려의 모습에 이준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고요한이 결투에서 족문을 사용했다면 승패가 뒤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이준,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만들어주마.”

검은 안개가 혼려를 감싸자, 흉터로 가득한 그의 얼굴에서 더욱 흉흉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지금 그의 기운은 이미 이준의 힘을 훨씬 넘어선 9성 투존에 육박해 있었다.

기운이 정점에 이른 순간, 검은 안개가 폭발하며 혼려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쾅!

이준은 혼려의 몸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몸을 돌려 자갈색 화염에 휩싸인 주먹을 뻗었다. 하지만 주먹이 완전히 내질러지기도 전에 검은 안개가 퍼져 나와 그의 주먹을 가로막았다.

“나약하구나!”

곧이어 검은 안개가 솟아나더니 혼려의 모습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천계현의 불꽃, 제1장! 제2장! 제3장!”

이대로는 혼려를 상대할 수 없음을 직감한 이준은 망설임 없이 천계의 불꽃을 시전했다.

천계의 불꽃을 시전하는 순간, 평소와는 달리 미간에서 무언가 간지러운 기운이 느껴졌다.

펑!

이준이 손을 비틀자, 염력이 폭발하며 혼려의 몸을 저만치 뒤로 튕겨냈다.

“이건…….”

혼려는 놀란 눈으로 이준의 미간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천계현의 불꽃을 사용할 때, 이준의 미간에서 기이한 문양이 떠오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방금 그건 이족의 족문인가? 말도 안 돼. 이족의 혈통은 이미 완전히 사라졌는데 어떻게 족문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거야? 분명 내가 잘못 본 거야!’

혼려의 눈빛이 차갑게 반짝이더니 또다시 해일과도 같은 염력이 폭발하며 백 미터 안에 있는 안개가 모조리 사라졌다.

“이준. 목숨을 내놔라!”

염력을 폭발시킨 혼려가 마신(魔神)처럼 새까만 먹구름을 몰고 미친 듯이 이준을 향해 달려들며 외쳤다.

그 순간, 이준의 저장 반지가 반짝 빛나더니 돌연 휘황찬란한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눈부신 빛이 조금 잦아들자, 그 안에서 신비한 빛에 둘러싸인 요괴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준의 저장반지에서 나온 것은 다름 아닌 번개의 못에서 완벽히 진화한 하늘 요괴 군단이었다. 간만에 주인의 부름을 받은 하늘 요괴들은 자신의 힘을 자랑하듯 계속해서 눈부신 황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준이 가볍게 인을 맺자, 열 줄기의 황금색 섬광이 가장 앞에 서있는 요괴 한 마리에게로 모조리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폭발하듯 용솟음치던 황금빛이 잦아들며 선두에 서있던 요괴의 몸이 기이한 보라색으로 뒤덮였다.

짙은 자주색으로 변한 천지요괴가 이준의 앞에 우뚝 섰다.

번개의 못을 빠져나올 때 이미 6성 투존과 맞먹는 실력을 가지게 된 하늘 요괴는 투존 수준의 요괴 열 마리의 힘을 흡수하면서 이준의 실력을 훨씬 뛰어넘게 되었다.

“파멸의 주먹!”

멀지 않은 곳에서 짙은 먹구름이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작은 산봉우리만한 주먹이 먹구름 안에서 튀어나왔다. 검은 주먹이 지나는 곳마다 공간이 붕괴되며 허공 위에 새카만 균열이 생겨났다.

산을 무너뜨릴 것 같은 기세로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주먹의 모습에 이준의 이마에서 한줄기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족문을 해방한 혼려의 실력은 대략 9성 투존 정도로, 지금 이준의 실력으로는 천계의 불꽃을 사용한 상태로 1격 무투기를 사용한다 해도 그의 공격을 막아내기 버거웠다.

‘잘 됐어. 이 녀석을 상대로 하늘 요괴의 힘을 시험해 봐야지.’

주먹이 가까워지자 이준은 차분히 숨을 내뱉으며 자주색으로 변한 자신의 하늘 요괴에게 마음속으로 명령을 내렸다.

주인의 명을 받은 하늘 요괴가 천천히 발을 내딛자, 텅 비어있던 그의 두 눈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쾅!

혼려의 검은 주먹과 이준의 하늘 요괴가 맞부딪히며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폭음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곧이어 거대한 검은 주먹에 미세한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주먹이 폭발하자, 하늘 요괴가 뒤로 밀려나며 허공에 새카만 흔적을 남겼다.

그렇게 수십 미터 정도 뒤로 밀려나던 하늘 요괴는 주먹을 움켜쥔 채 힘차게 발을 내디디며 화살처럼 앞으로 몸을 날렸다.

“이럴 수가!”

그 순간, 혼려의 입에서 경악에 찬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의 목소리가 모두 사라지기도 전에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자주색 요괴가 새카만 안개 속으로 뛰어들었다.

쿵쿵!

하늘 요괴가 안개 속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묵직한 주먹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며 영혼들이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구름이 서서히 옅어지며 그 안에서 금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먹구름 안에서 격렬한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 사이, 이준은 고개를 돌려 이은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이은의 몸에서 금빛 화염이 폭발할 때마다 검은 안개가 흩어지며 혼야의 몸이 저만치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이은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혼야를 죽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잘하면 이번 기회에 저 두 놈을 모두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이준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내려앉았다.

이준과 이은이 그들을 쫓아온지도 어언 한 달이 지났지만, 이렇게 정면으로 맞부딪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또다시 놈들을 놓친다면 언제 다시 붙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놈들을 제거해야 했다.

쾅!

이준이 혼족의 두 강자를 완전히 없애버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폭풍이 몰아치며 혼려의 먹구름이 산산이 흩어졌다.

먹구름이 터지는 순간, 두 개의 그림자가 구름 밖으로 튀어나와 비틀거리며 백 미터 이상 뒤로 밀려났다.

이준은 두 형체가 모습을 드러내자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요괴의 몸에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또렷한 주먹 자국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혼려의 상태는 자주색 요괴보다 훨씬 더 엉망이었다. 그의 머리는 완전히 산발이 되어 있었고, 옷은 너덜너덜하게 찢겨 있었으며, 입에서는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너 따위가 어떻게 이런 강한 요괴를 가지고 있는 것이냐!”

혼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족문을 해방했음에도 요괴를 꺾기는커녕 부상을 입고 밀려났다는 사실에 못내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가라…….”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혼려를 바라보던 이준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하늘 요괴가 또다시 주먹을 움켜쥐고 포탄처럼 몸을 날렸다.

하지만 이준과 이은이 거의 승기를 잡았을 때, 저 멀리서 거대한 회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젠장, 오자마자 천상 무덤의 에너지 폭풍을 만나다니!”

“어서 도망가자. 폭풍에 말려들면 투존 최고급 강자라도 살아남기 어려워!”

천지를 집어삼킬 기세로 휘몰아치는 거대한 회오리 앞에는 몇 개의 그림자가 호랑이에게 쫓기는 토끼마냥 허겁지겁 달아나고 있었다.

마침내 이은의 주먹이 혼야에게 적중하고 그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오는 순간, 거대한 회오리가 빠른 속도로 네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저건 에너지 폭풍이잖아…….”

하늘과 땅 사이를 뒤덮고 있는 에너지 폭풍을 발견한 이은의 눈동자가 빠르게 수축했다. 그녀는 피를 토하고 있는 혼야를 공격하려던 것을 멈추고 재빨리 고개를 돌려 이준을 향해 소리쳤다.

“오라버니, 빨리 가요!”

이은의 외침에 이준 역시 무언가 느끼고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회오리를 발견한 이준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하늘 요괴를 회수해 이은의 손목을 낚아챈 뒤 빠른 속도로 3층 입구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저건……에너지폭풍?”

입가에 묻은 혈흔을 닦던 혼야 역시 에너지 폭풍을 발견하고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혼려와 함께 허겁지겁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준, 이은과의 싸움에서는 살아남을 길이 있지만, 저 폭풍에 휩싸이게 된다면 도저히 살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천지를 아우르는 에너지 폭풍이 닿는 곳마다 공간이 무너지며 무시무시한 굉음을 자아냈다.

“저건 뭐야?”

이은의 뒤를 바짝 따르던 이준은 뒤에서 전해지는 압력을 느끼고는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천상무덤의 에너지 폭풍은 이곳의 자연재해예요. 투존 최고급 강자도 저 안에 빨려 들어가는 순간 절대로 살아나올 수 없어요. 지금까지 저 안에 빨려 들어간 사람들 중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죠.”

이은이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우선 도망쳐요. 저 에너지 폭풍은 이 2층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파급 범위가 넓어서 3층으로 올라가야 에너지 폭풍을 피할 수 있어요.”

“응.”

이은의 설명을 들은 이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뒤에는 혼야와 혼려가 에너지 폭풍을 피해 정신없이 달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응?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그 뒤를 훑어보던 이준은 번개처럼 날아오는 검은 그림자들을 발견하고는 놀란 듯 두 눈을 치켜떴다.

“허허, 이준씨. 이렇게 빠를 줄이야! 벌써 여기까지 와있었군요.”

그들은 바로 염족의 화현과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자였다. 화현은 앞서가고 있는 이준을 발견하곤 반갑다는 듯 웃으며 속도를 높여 다가왔다.

이준은 미소를 지으며 먼 곳에서 날아오는 두 사람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화현씨도 만만치 않은걸요.”

이준을 따라오던 화현은 상대의 몸에서 새어 나오는 기운이 더욱 강해진 것을 느끼고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질문을 던졌다.

“승급하셨습니까?”

“하하, 운이 좋았습니다.”

이준이 부인하지 않자 화현과 그 여자는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천상무덤에 들어온 지 이제 반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진급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혼족의 두 녀석도 저 뒤에 있는 것 같던데…….”

화현이 힐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한 달 동안 저들을 쫓았는데, 저 에너지 폭풍 때문에 절호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어지는 이준의 말에 화현은 더욱 놀란 듯 말을 잇지 못했다. 8성 투존 강자인 혼야와 혼려가 두 사람의 손에 당했다는 것은 이준과 이은의 실력이 그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 에너지 폭풍을 피하려면 3층으로 가야 합니다. 3층 입구까지는 멀지 않으니 조금만 더 속도를 내면 폭풍이 따라잡기 전에 3층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화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동안 서로 손을 잡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좋지요.”

이준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현의 호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는 동료는 많을수록 좋고, 적은 적을수록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저놈이 염족 녀석들과 함께 가다니…….”

이준과 염족의 강자들이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며 나란히 날아가는 모습에 혼야의 표정이 더욱 어둡게 내려앉았다.

“흥, 그것도 잠깐이다. 3층에 도착하면 한 사람도 도망갈 수 없을 거야!”

흉악한 눈빛으로 앞을 노려보던 혼야는 속도를 올려 혼려와 함께 3층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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