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665화 (665/818)

665화. 혼야와 혼려

열 개의 에너지체가 모두 사라지자, 두 개의 그림자가 서로를 향해 날아갔다.

“다섯 개!”

이준이 주먹을 펴며 말했다. 그의 손에는 영롱한 빛을 내뿜는 다섯 개의 수정체가 쥐어져 있었다.

“여섯 개.”

하지만 이은의 손에는 그보다 하나가 더 많은 여섯 개의 수정체가 들려 있었다.

“이번에도 제가 이겼네요.”

이은이 입을 가리며 장난스레 웃음을 터뜨리자, 이준은 풀이 죽은 듯 한숨을 고개를 저었다.

이 에너지체의 실력은 2성 투존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지금 이준의 실력으로는 한 번에 다섯 명을 상대하는 것이 한계였다.

물론 강력한 무투기를 사용한다면 그보다 더욱 많은 숫자를 상대할 수 있었지만, 화련이나 죽음의 광단 같은 것을 사용한다면 너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되려 위험에 빠질지도 몰랐다.

“먼저 에너지 핵을 흡수해요. 제가 보호해 줄게요.”

이은이 자신이 모은 에너지 핵을 모두 이준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이준 역시 손에 들린 에너지 핵을 꼭 쥐며 거절하지 않았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실력을 높여야 했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자, 에너지 핵 속에 담긴 짙은 에너지가 흘러나와 안개처럼 이준의 몸을 뒤덮었다.

두 사람이 천상무덤에 들어온 지도 벌써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그 동안 두 사람은 끝도 없이 펼쳐진 광활한 대지 위를 누비며 마주치는 에너지체를 모조리 에너지 핵으로 만들어 흡수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 만난 에너지체들의 실력은 1성에서 2성 투존 정도에 불과해 생각만큼 빠른 속도로 수련이 진행되고 있지는 못했다.

“휴…….”

에너지 핵을 흡수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준이 몸을 일으키며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러자 안개처럼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그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때요?”

이준이 에너지를 모두 흡수하고 나자 이은이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물었다.

“열심히 해봤지만 6성이 되기에는 아직 좀 모자라. 더 높은 등급을 가진 에너지 핵을 찾는 게 좋을 것 같아.”

“걱정하지 말아요. 이제 천상무덤 1층 중심부에 가까워지고 있으니까 점점 더 강한 에너지체들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운이 좋으면 6성 투존 이상의 에너지 체를 만날지도 모르고요.”

“2층까지는 얼마나 더 가야 해?”

“한 달 정도는 더 가야 할 거예요. 1층이 가장 넓고 2층, 3층은 1층보다는 훨씬 좁아요. 하지만 위험하기로 따지자면 1층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죠.”

“한 달이나 남았단 말이지…….”

이은과 대화하던 이준은 곰곰이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럼 계속 움직이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으려나?”

“각 세력을 대표해 천상무덤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출충한 인재들이에요. 게다가 그 사람들은 천상무덤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강한 존재를 만나도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가자.”

이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큰 보폭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힘차게 걸음을 옮기는 이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은은 말없이 빙긋 웃으며 그의 뒤를 따라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 * *

일 년 내내 짙은 에너지 안개로 뒤덮인 천상무덤에서는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에너지 때문에 조금만 날아가도 피로를 느끼게 되어 있었다.

때문에 지금 이준의 실력으로는 바깥이라면 하루만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며칠이나 되는 시간을 들여야 했다.

그렇게 황량하고 적막한 이공간 안을 헤매기를 넉 달, 마침내 거대한 에너지 벽이 이준의 눈앞에 펼쳐졌다.

“저게 바로 2층으로 가는 입구인가?”

하늘 끝에서 대지까지 어이진 거대한 빛기둥을 발견한 이준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1층의 깊은 곳으로 들어온 이후, 두 사람은 매일 같이 강한 실력을 가진 에너지체들의 공격을 받아내야만 했다. 6성 투존 급의 에너지체도 이은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지만, 이준은 이은에게 맡기지 않고 넉 달 내내 직접 에너지체를 상대했다. 자신보다 강한 에너지체를 상대로 전투를 치르는 것 자체가 훌륭한 실전 경험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6성 투존급 에너지체도 전혀 어렵지 않은 상대로 느껴지고 있었다. 6성 투존급 에너지체의 핵에 담긴 에너지는 2성 투존급의 에너지 핵에 담긴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고, 그 에너지 핵들을 끊임없이 흡수한 덕분에 이준의 실력은 이미 5성 최고급 수준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준 오라버니. 오라버니도 이제 5성 최고급이 되었어요. 지금은 몸속에 염력이 꽉 찬 상태라 기운이 불안정하니까 우선 이곳에서 6성으로 진급하고 2층으로 올라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게다가 2층은 1층보다 훨씬 위험하니 그곳에서 진급을 하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이은이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빛기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준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천상무덤에 들어온 4개월 동안 이미 수백 개의 에너지 핵을 흡수한 덕에 그는 이미 6성 투존이 되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외부 세계에서는 이곳에서 4개월 동안 흡수한 량의 에너지를 모으려면 1년 내내 수련을 해도 모자랄 텐데 정말 대단한걸.’

놀라운 수련 속도에 저도 모르게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던 이준이 이은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승급이 진행될 동안 잘 부탁할게.”

이은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준은 곧바로 거대한 바위 위로 올라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가 수련 상태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방대한 양의 에너지가 주위를 뒤덮었다.

이준의 승급이 시작되기 무섭게 이은은 주위에 있는 거대한 바위 위로 올라가 팔짱을 낀 채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잠시 후, 다시 숨 막히는 적막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준이 승급 의식에 들어간 지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북쪽 하늘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기척을 숨기는 게 서투르군.”

이은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하늘 위에 거대한 파장이 일며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대단한데, 과연 고족의 신급 혈통다운 탐지 능력이군.”

온몸을 검은색 의복으로 감싼 두 사람이 천천히 허공을 딛고 걸음을 옮겨 이은에게 다가왔다.

“혼야.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이은이 혼야를 노려보며 말했다.

“하하. 입이 험하시군요. 하지만 상황을 봐가며 말하는 법을 배우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재미있군. 그건 네가 나보다 강하다는 소리인가?”

그 순간, 이은의 눈에서 날카로운 금색 화염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하, 아가씨를 처리하는 것은 아무리 저라도 그리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 녀석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요.”

혼야가 눈을 감고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는 이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말에 이은의 눈동자에 곧바로 서늘한 살기가 어렸다.

“오라버니에게 손을 댄다면 죽여 버리겠어.”

“그렇게 말씀한다고 곱게 물러날 거라면 이 자리에 나타나지도 않았겠지요.”

혼야의 핏기없는 얼굴에 차디찬 웃음이 걸렸다.

“혼려. 같이 움직인다. 죽여!”

“응.”

혼야의 말이 떨어지자, 그의 곁에 있던 사내가 천천히 머리에 쓴 망토를 걷어냈다. 혼야와 마찬가지로 시체처럼 핏기 하나 없는 그의 얼굴에는 수십 개의 흉터가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은 아가씨도 분명 혼려라는 이름은 들어봤을 겁니다. 하하! 몇 년 동안 고족과 혼족의 싸움 속에서 이 녀석에게 죽은 고족 강자가 한둘이 아니지요.”

혼야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가씨 실력이 강한 것은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만, 과연 8성 투존 두 명을 상대로 저 녀석을 지키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그러나 이은은 혼야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고 온몸에서 금색 화염을 뿜어낼 뿐이었다.

쿵!

이은의 몸에서 눈부신 화염이 솟아나오는 순간, 혼려가 허공을 딛고 번개처럼 날아가 이은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혼려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이은 역시 빠르게 손을 뻗어 그의 주먹을 막았다.

펑!

두 사람의 주먹이 맞부딪히자, 발밑에 있던 거대한 바위가 굉음을 내며 산산조각 나더니 혼려의 몸이 저만치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평온했다. 표정만 보아서는 그가 아니라 이은이 밀려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자리에 멈춰선 혼려는 다시 한 번 이은을 향해 몸을 날리며 미친 듯이 염력을 쏘아댔다.

그러나 이은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가볍게 발을 놀려 그의 공격을 모두 피해냈다.

이은이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매서운 강풍이 혼려의 몸을 후려치며 그의 몸이 또다시 저만치 멀리 밀려났다.

또 한 차례 혼려를 밀어낸 이은은 곧바로 금색 화염으로 만들어진 채찍을 휘두르며 그를 압박했다.

그 순간, 혼려의 손에서도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새까만 쇠사슬이 튀어나와 이은의 금색 채찍에 맞섰다.

“과연 신급 혈통다운 실력이군.”

둘의 대결을 지켜보던 혼야가 인을 맺자, 수백 개의 검은 쇠사슬이 하나로 뭉쳐 거대한 용의 형상으로 변화하더니 섬뜩한 소리를 내뿜으며 이은을 향해 달려들었다.

8성 투존 두 명이 한 번에 공격해오자 이은은 빠르게 허공으로 몸을 날리며 인결을 바꿨다. 그러자 짙은 금색 화염이 그녀의 몸에서 터져 나와 거대한 손으로 변하더니 검은색 용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쾅!

거대한 황금색 손에 붙잡힌 검은 색 용은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그대로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쉭!

영혼으로 만들어진 검은 용이 사라지기 무섭게 또다시 등 뒤에서 검은 안개가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혼려의 공격이었다.

하지만 두 강자의 숨 쉴 틈 없는 공세에도 불구하고 이은의 표정은 여전히 차분하기 짝이 없었다.

쾅!

이은이 가볍게 몸을 돌려 다시 한 번 손을 휘두르자, 텅 빈 허공에서 갑자기 금색 화염이 솟아나 혼려의 몸을 강타했다.

“윽……!”

이은의 불꽃에 얻어맞은 혼려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비틀거렸다.

“혼야, 혼려! 네 놈들이 정말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하얀 손을 꽉 쥔 이은이 차가운 눈빛으로 혼야에게 시선을 돌리며 소리쳤다.

“하하. 고족의 신급 혈통다운 실력이군요.”

이은의 살기 어린 외침에 혼야는 피식 웃으며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서는 이준이 눈을 감은 채 천지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었다.

몇 번의 접전 끝에 혼야는 이은의 실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혼려와 힘을 합친다면 이은을 상대할 수는 있겠지만, 죽이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승급 중인 이준을 공격해 그를 죽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혼려. 내가 이 여자를 막을 테니 넌 이준을 죽여!”

혼야의 외침에 이은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하면서 재빠르게 이준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그녀가 몸을 날리기 무섭게 하늘에서 검은 쇠사슬이 폭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혼야! 오라버니를 건드리는 순간 이 천상무덤이 네 무덤이 될 거야!”

맹렬하게 자신을 공격하는 혼야를 본 이은은 몸을 돌려 금색 화염을 터뜨려 비처럼 쏟아지는 검은 사슬을 모조리 막아냈다.

하지만 자신의 공격이 막혔음에도 불구하고 혼야의 얼굴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혼려가 이미 이준이 수련하고 있는 거대한 바위로 쏜살같이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준을 향해 맹수처럼 달려들고 있는 혼려를 발견한 순간, 이은의 눈에서 섬뜩한 빛이 터져 나왔다.

곧이어 그녀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금색 화염이 빠른 속도로 응집되더니, 태양 같은 빛을 내뿜는 황금색 창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그녀가 장창을 집어 던지려는 순간, 검은색 염력으로 뒤덮인 혼려의 손바닥이 이준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안 돼!”

바로 그때, 거대한 바위 위에 앉아있던 이준의 오른손에서 칠흑 같은 광단이 생겨났다.

“죽음의 광단!”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