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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63화 (663/818)

663화. 만남

“이준입니다. 잠시 지나던 길인데 방해가 되었다면 용서해주십시오.”

이준은 그를 향해 두 손 모아 공손히 양해를 구한 뒤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괜찮다. 자네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준이 물러나던 사이,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더니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산꼭대기에 도착해있었다.

안개구름에 휩싸인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졌지만 이준은 등골이 서늘했다.

이게 뭐지?

몇 년 동안 한 번도 이렇게 순간 이동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침을 꿀꺽 삼킨 이준은 앞을 바라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는 조금 전 봤던 그 사람이 뒷짐을 진 채 서있었다. 큰 위협감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분명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 가장 무서운 사람일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마냥 놀라고만 있을 순 없었기에 마음을 빠르게 안정시켰다.

“허허, 투제의 피가 쓸모없어진 후에도 이족에서 이렇게 훌륭한 젊은이가 나오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했구나. 이현이 당시에 그렇게 한 행동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던 것 같군.”

이준은 멈칫했다. 그의 한 마디에 이 신비로운 사람이 자신의 조상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이준의 질문에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40세 정도 되어 보이는 그는 평범한 중년처럼 깔끔한 복장에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준은 자신이 생각한 것과 조금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 중년의 입에서 나온 말 한마디에 온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나는 이은의 아버지다.”

“이은의 아버지……?”

이준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예전에 이은이 자신의 아버지가 고족의 족장이자 이 세상 최고 강자 중 한 명이라고 말해준 적이 있었다.

투기대륙 최고 강자가 지극히 평범한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나다니!

어안이 벙벙해진 이준이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자 그 중년의 남자는 씩 웃으며 말했다.

“놀랐느냐?”

그의 물음에 정신을 차린 이준은 슬며시 중년을 위아래로 훑다 억지웃음을 지었다.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렇게 대단한 인물이 앞에 나타났으니, 무슨 생각을 해도 다 들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허허, ‘고원’이라 한다네. 네가 태어날 때 우린 만난 적이 있지만 아무도 내 신분을 알지 못했지.”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이준은 두 눈이 커졌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 대단한 고족 족장을 만났었다니!

“고원 족장님께서 절 기다리셨다면, 무슨 중요한 일이 있는 겁니까?”

이준은 잠시 머뭇거리다 물었다.

“당연히 너와 이은의 일로 찾아왔지.”

고원은 웃으며 대답했다.

“고원 족장님께서도 저와 이은이 함께하는 걸 원치 않으시는 겁니까?”

“아니다. 이은이 원한다면 아버지로서 말릴 수 없지 않느냐. 게다가 신격 혈통이 된 이은에게는 고족 족장인 나도 강제로 명령을 내릴 수 없다.”

고원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고족 젊은이들보단 조금 부족하지만 너 정도라면 합격이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이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고계에서 이준을 본 대부분의 고족 사람들은 모두 이준을 적대시 여겼는데, 고원은 달랐다.

“감사합니다. 고원 족장님.”

이준은 공손히 포권 자세를 취했다.

“기뻐하긴 이르다. 내가 너희들을 막지 않는다 해도 일부 장로들과 고위급 장로들은 여전히 불만을 품고 있다. 이은은 천 년 만에 처음 나온 신격 혈통을 가진 아이이니 다른 혈통과 섞이길 원하지 않겠지. 그러니 방심해선 안 된다. 나도 족장으로서 우리 사람들이 먼저일 수밖에 없다…….”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족장이라는 신분을 떠나 난 이은의 아버지이니 아이가 좋다면 나도 좋다.”

고원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너에게 큰 불만이 없다. 네 핏줄은 이미 버려졌지만 스스로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오늘의 결과를 예상했다면 이은을 이씨 가문에 보내지 않았을 게다. 휴, 마지막 물건을 구하지도 못했는데 딸까지 내줬구나.”

그의 말에 이준은 차마 말없이 웃기만 했다.

“너희 일엔 관여하지 않을 게다. 하지만 나와 약속을 하나 해줘야겠다.”

“무슨 약속입니까?”

“염려 말거라. 터무니없는 요구는 아니니 걱정 말거라. 앞으로 이은과 함께 하되 투성이 되기 전까지는 완벽한 몸을 유지하길 바랄 뿐이다.”

고원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의 말에 이준의 표정이 순간 부자연스러워졌다. 그가 원하는 요구가 이런 것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허허, 젊을 땐 충동을 피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두 사람이 또 항상 같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크흠.”

고원은 어색한 듯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이은 몸속에 있는 피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넌 고족의 사람도 아니니 자칫 남녀 간의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이은의 피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땐 장로들이 어떻게 할진 자네도 잘 알 것이다.”

이준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큰 사람이 자신을 기다린 이유가 이렇게 황당한 일 때문이었다니!

“그냥 나온 김에 일깨워주는 것일 뿐이다. 이번에 내가 나타난 가장 큰 원인은 네 몸에 있는 태령황제의 옥 때문이다.”

고원은 다시 이준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이준은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이준도 태령황제의 옥이 이씨 가문에게 현재 가장 귀중한 물건으로 혼전이 아버지를 잡아간 이유 역시 이 신비로운 옥 때문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옥이 이준의 몸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태령황제는 투기대륙의 마지막 투제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투제 강자는 그저 전설 속 인물로만 남아있지.”

고원은 이준의 표정을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전설에 의하면 태령황제가 죽을 때 투제 유적지를 남겼는데, 그 안에 투성이 될 수 있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그곳을 찾기 위해 아주 오래 전 8대 종족과 중주의 최강 세력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유적지의 열쇠만 얻었을 뿐 유적지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지금 네 손에 있는 태령황제의 옥은 원래 세 조각이었는데, 참혹한 대전이 끝난 후 여덟 조각으로 갈라지게 되었지. 마침 8대 종족이 한 조각을 얻었는데, 그게 바로 네 손에 있는 그 옥이다.”

이준은 조용히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은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 태령황제의 옥이 총 여덟 조각이라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다.

“혼전이 네 아버지를 붙잡아 간 것도 분명 이족이 가지고 있는 태령황제의 옥 때문일 것이다.”

혼전을 언급하자 고원의 미간이 점점 좁아졌다.

“혼족은 8대 종족 사이에서 가장 베일에 싸인 종족으로 유명한 곳이지. 고족과 이족이 연합했을 때, 그들과 대전을 벌여 피해를 입었지만, 혼족에겐 큰 타격이 되지 않았다. 이후에 이현이 이족의 족장이 되면서 혼족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는데, 혼족에서 선수 쳐 강자들을 말살시키는 바람에 무산이 되었지. 그렇게 이현이 죽으면서, 이족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그 이후로 고족도 단독적으로 혼족을 상대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가다간 양쪽 모두 크게 쇠락하면서 다른 세력들이 치고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었지. 그렇게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혼전의 움직임으로 봤을 때 무언가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황제의 옥도 분명 그들의 표적이 될 것이다. 만일 그들에게 옥을 빼앗긴다면, 혼족은 손쓸 수도 없이 거대해지고 말 것이다.”

고원은 진지한 표정으로 이준을 바라보았다.

“이제 자네도 태령황제의 옥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였느냐?”

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때, 머릿속에 지하 속 용암이 가득한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그곳은 바로 가한 아카데미 지하에 있는 용암 세계다. 그 용암 끝에 도착했을 때 그의 손에 있던 태령황제의 옥이 반응한 적이 있었다.

‘설마……그 용암 세계의 끝이 투제 유적지가 숨겨진 곳은 아닐까?’

이준은 그 용암 세계 끝에 있는 곳에 틀림없이 중요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족장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이준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고원에게 물었다.

고원은 한참 동안 이준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태령황제의 옥을 우리 고족에서 보관하자는 게 우리 고족 장로들의 뜻인데, 네가 흔쾌히 넘겨줄 것 같지 않구나.”

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의 옥에는 아버지의 영혼인결도 새겨져 있기 때문에 이게 있어야 아버지의 생사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반드시 제가 보관해야 합니다.”

그의 대답에 고원은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

“죄송합니다. 고원 족장님.”

“이건 나의 제안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장로들은 이렇게 중요한 물건이 혼족의 손에 넘어가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을 게다.”

이준의 사과에 고원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됐다. 이틀 뒤 천상무덤이 열리니 다녀온 이후에 다시 의논하자꾸나.”

이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려던 그때, 산기슭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이은이었다.

“휴. 저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너에게 해코지라도 할까봐 걱정이 되나 보구나.”

고원은 이은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오늘의 대화는 여기까지 하자꾸나. 내가 부탁한 일은 절대 어기지 말아 주게. 황제의 옥도 잘 지키거라.”

고원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천천히 사라졌다.

이준은 그제야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돌려 긴장한 얼굴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이은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저 바보…….”

산봉우리 위로 올라온 이은이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이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방금…….”

이준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응. 방금 그 분은 네 아버지, 고원 가주님이셔.”

“그럴 줄 알았어요!”

이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은은 눈썹을 찌푸리며 벌컥 성을 냈다.

“하하, 걱정마 가주님은 우리 관계를 반대하지 않으신대. 그저 이족과 관련된 얘기들을 했을 뿐이야.”

이준은 웃으며 조금 전 일에 대해 해명했다.

“정말요? 우리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 얘기도 안 했어요?”

이은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이준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은은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된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요. 우선 돌아가요. 이준 오라버니도 천상무덤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어요. 이제 이틀만 기다리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이은이 밝은 표정으로 이준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고마워.”

이준은 온화한 표정으로 이은의 손을 꼭 붙잡았다. 자신이 천상무덤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이은의 도움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고족의 장로들이 자신이 천상무덤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 줄 리가 없었다.

이은은 미소를 지으며 이준의 어깨에 머리를 살포시 기대며 눈을 감았다. 그녀의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건드리자,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모두 풀리는 것 같았다.

* * *

고원을 만난 후 이틀 동안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덕분에 이준은 모처럼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이틀이 지나고 셋째 날 아침이 되자, 이상한 기운이 산맥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오늘이 바로 천상무덤이 열리는 날이에요.”

숙소 앞으로 나온 이은은 옆에 서있는 이준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가 가볍게 손짓을 하자, 숲속에서 새하얀 독각마수가 나타났다.

이준 일행을 등 뒤에 태운 독각마수는 곧바로 두 날개를 펼쳐 동쪽 산맥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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