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2화. 칠채금(七彩金) 족문
10분 정도 지났을 때, 족문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붓끝이 마지막 점을 찍었을 때, 통현 장로의 이마에는 이미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친 기색을 보이기는커녕 아주 흥분된 표정이었다.
“다 됐구나.”
통현 장로의 목소리에 이은은 감았던 눈을 서서히 떴다. 그 순간, 그녀의 이마에 생겨난 칠채금 족문이 강렬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쿵-!
오색찬란한 빛을 마주하자 고족 사람들은 영혼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또다시 이은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허허, 천 년 만에 칠채금 족문이 다시 나왔구려.”
아주 먼 하늘 위에서 노인의 아주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찾아와 기뻐해 주실 줄 몰랐습니다.”
그 노인의 목소리를 듣고 놀란 통현 장로는 하늘을 바라보며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잠시 후, 밝게 빛나던 화려한 빛은 이은의 이마에 생겨난 칠채금 족문 속으로 완전히 스며들었다.
“이제 볼 거 없으니 가자. 앞으로 이은이 분명 고족 어떤 누구보다 뛰어난 강자가 되겠지.”
화려한 빛이 사라지자, 거대한 나무 위에 있던 청색 옷의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그 순간, 그의 시선이 갑자기 의석 위로 꽂혔다. 마침 창백해진 이준이 그가 서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허, 알아차린 건가. 탐지력이 뛰어난 녀석이군.”
청색 옷을 입은 남자는 씩 웃으며 중얼거린 뒤 재빠르게 어딘가로 사라졌다.
“역시 고족에는 강자들이 많네. 사람들이 투제의 피를 부러워할 만한 걸.”
청색 옷을 입은 남자가 자리를 뜨자 이준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저 사람도 분명 고족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저 자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은 고요한보다 훨씬 강했다.
“우리도 가자. 그 다음부턴 볼 것도 없는데.”
이준은 의석에서 일어나 장천수에게 인사를 한 뒤 이은을 향해 싱긋 웃었다. 그리고 아라 일행을 데리고 곧바로 장내를 빠져나갔다.
‘저 녀석, 부상이 꽤 심할 게야. 통현 장로에게 치료를 받았어도 고요한의 대파괴의 손가락도 만만치 않은 무투기니까.’
이준 일행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장천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의식도 끝났으니 저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이준이 떠나자 이은 역시 그의 상태가 걱정이 되었는지 통현 장로에게 알린 뒤 곧바로 이준을 쫓아갔다.
말하자마자 그대로 가버린 이은을 보며 통현 장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신격 혈통이 나와도 소용없군. 이족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신격 혈통의 며느리가 생겼네. 허허.”
한편, 광장 한 구석에 있던 검은 의복의 남자 역시 멀리 사라지는 이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고족에서 신격 혈통이 나오다니, 앞으로 우리 혼족의 대적이 되겠군. 게다가 우리 계획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니 저 여자부터 몰래 없애버려야겠어.”
* * *
이은의 의식이 끝난 이후, 통현 장로는 남아있는 사람들을 다른 장로들에게 맡긴 채 일찍이 광장에서 물러났다.
그 사이, 이준 일행은 산속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시끌벅적하던 공간에서 조용한 분위기가 깔린 곳으로 돌아오니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붉은 노을은 서쪽 하늘에서 대지를 위해 마지막 열기를 퍼뜨리고 있다.
끼익-.
닫힌 문이 서서히 열리더니 아라가 방 안으로 들어와 침대 위에 앉아있는 이준을 바라보며 웃었다.
“좀 어때?”
“염력 소모가 커서 그렇지 크게 다친 곳은 없어. 체내에 흐르던 소멸의 기운도 이은이 완전히 없애줬고…….”
이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몇 시간 동안 푹 쉰 덕에 그의 안색도 한결 좋아보였다.
“휴. 처참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승급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
그의 말에 아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거야. 너와 고요한이 같은 레벨이었다면 고요한은 반격할 힘도 없었을 거야.”
이준은 이내 말을 돌렸다.
“이은은?”
“고족으로 돌아갔어. 그리고 ‘천상무덤’이 곧 열릴 거라고 말해줬어.”
“천상무덤…….”
이준은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사실 이현이 남긴 무덤에 가보기 위해서 고족에 온 것도 있었다. 하지만 화현은 이현의 무덤에 들어가려면 천상무덤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고족과의 관계가 그렇게 좋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고족이 개입해 천상무덤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할까봐 조금 걱정이 되었다.
* * *
고족 대전 안에 등불이 널따란 회의석을 밝게 비추고 있다. 탁상에 모여 앉은 노인들 사이에서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가 퍼져 나왔다.
“다음으로 천상무덤 개방에 대해 토의하겠소. 천상무덤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종족마다 2명씩, 총 16명뿐이라는 걸 모두 다 잘 알고 있을 것이오. 하지만 영족(靈族)에서 아무도 오지 않았으니 규칙에 따라 우리 고족에서 두 사람이 더 갈 수 있게 되었소.”
통현 장로는 전체를 둘러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천상무덤에 들어가기로 계획되었던 인원은 여섯 명이오.”
한 장로가 말했다.
“우리가 줄곧 이족의 자리를 사용하지 않았소? 모두 합치면 딱 될 것이오.”
고겸익이 옆에 있는 장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이족에서 이준이 한 명 왔으니 이렇게 된다면…….”
그때 또 다른 장로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이족이 이렇게까지 쇠락했는데 배제해도 상관없을 것이오. 이준도 이해해주리라 믿소.”
그의 말에 고산 장로가 말했다. 그러자 다른 장로들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통현 장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쾅!
이때, 닫혀있던 대문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러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수호병들이 소리치려던 그때, 오색찬란한 빛을 보고 급히 무릎을 꿇었다.
“고산 장로님. 고족은 이족이 중주를 떠난 이후 그들의 인원을 우리가 채웠소. 이제 와서 이족에게 한자리도 돌려주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대전에 비추는 밝은 빛에 모든 장로들은 입구를 바라보았다.
대전 안에 있던 장로들은 순간 몸이 부르르 떨렸다. 게다가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 망정이지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피의 위압감에 그들도 호위병처럼 무릎을 꿇을 뻔했다.
“이은…….”
장로들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렇게 숨 막히는 위압감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고족에서 이은 밖에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이은은 대전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휴, 이은. 우선 족문을 거두어라.”
그녀의 미간에서 밝게 빛나는 족문을 본 통현 장로는 한숨을 쉬며 표정이 일그러진 고족 장로 등 사람들을 흘기곤 말했다.
통현 장로의 말에 눈부신 빛이 서서히 사그라졌다. 그리고 회의석까지 걸어온 이은은 화가 난 눈빛으로 장로들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있는 장로들은 이준이 자신의 실력을 보여줬다 해도 인정해주기는커녕 훼방을 놓을 게 분명했다.
“이은. 넌 고족의 사람으로서 고족의 뜻을 따라야 하느니라!”
고산은 어두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고산 장로님. 제가 고족 사람이긴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처리하지 말아야 할 일도 있습니다. 천상무덤 정원과 관련된 일은 고족도 이미 큰 이득을 보았습니다. 이족이 중주를 떠나면서 줄곧 우리에게 기회가 있었으니 우리도 양보를 할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지금 이족의 사람이 어렵게 이곳까지 찾아왔는데 이족의 자리를 돌려주지도 않고 배제시키려고 한다니……양심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은은 고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 채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러자 고산은 순간 어떤 말도 반박할 수 없었다.
“이은. 이곳은 장로들이 회의하는 장소다. 이렇게 함부로 들어와 규칙을 어길 수 없단 말이다.”
고겸익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고겸익 장로님. 칠채금 족문의 권리를 잊으셨습니까?”
이은의 대답에 고겸익은 순간 멈칫하다 이내 성이 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고족에서는 칠채금 족문을 가진 사람이라면 대부분의 장로보다 훨씬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되기 때문에 회의실에 출입하는 것도 위반하는 일이 아니다.
“됐소. 다들 그만하시오.”
통현 장로의 말에 대전 안이 조용해지면서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이준을 배제하는 건 확실히 지나친 결정이오. 이번 천상무덤 출입 인원에는 이준도 포함합시다. 우리 고족이 그동안 이족의 공석으로 계속 득을 보았고, 게다가 이족에선 이준 한 명 뿐이니 우리 고족은 5명이 들어갈 수 있소.”
통현 장로의 온화한 목소리가 대전 안에 울려 퍼졌다.
그의 말에 고산 등 일부 장로들은 못마땅했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신격 혈통을 지닌 이은 앞에서 어느 누구도 그녀보다 큰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이견이 없다면 이쯤에서 결정합시다. 이틀 후, 천상무덤이 열리니 이은 너도 이준에게 준비하도록 일러라.”
“네. 장로님들, 실례했습니다.”
통현 장로의 말에 이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앉아있는 장로들을 향해 예의상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몸을 돌려 대전을 빠져나갔다.
이은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장로들은 서로 말없이 바라보았다. 평소에 이런 일에 전혀 관심 없던 이은이 이준과 관련되자 이렇게 강하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통현 장로. 천상무덤에 있는 이현의 무덤은 우리도 지금까지 들어가 본 적이 없소.”
이은이 떠나자 고산은 고민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통현 장로는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
“이현의 무덤은 건드릴 생각 마시오. 최상급 기술을 이용해 남겨진 그 무덤은 족장님이 직접 나서도 들어갈 수 있는 확률이 반밖에 되지 않소. 그러니 공연히 애쓰지 마시오.”
그때, 한 노인의 목소리가 대전 안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고산 역시 눈치 있게 입을 다물었다.
“좋소. 해산합시다. 현재 많은 강자들이 고족에 와있으니 고계의 백성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관리해 주시오.”
“예.”
통현 장로의 말에 모든 장로들은 입을 모아 대답한 뒤 천천히 일어나 하나둘 대전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통현 장로는 자리에 앉아 텅 빈 대전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족장 그들은 이준을 어떻게 생각하겠소?”
그때, 회의석 한 곳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회색 의복을 입은 노인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큰 인물이 될 거요.”
“에?”
통현 장로는 보는 눈이 터무니없이 높은 노인의 입에서 나온 말에 눈썹을 들썩였다. 정말 드문 일이었다.
“태령황제의 옥은? 내 생각에 십중팔구 이준의 몸에 있을 것 같은데, 혼전에게 빼앗기기라도 한다면 곤란해질 것이오.”
통현 장로는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그러자 회색 의복을 입은 노인은 바싹 마른 손으로 의자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하다 말했다.
“잘 처리될 것이니 걱정 마시오.”
“그렇겠지.”
통현 장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읊조렸다.
* * *
푸르른 협곡에 안개구름이 옅게 깔려 있다.
이준은 산봉우리를 향해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몸속 상처와 소모된 염력은 이미 모두 회복한 상태였다. 사실 보람의 세례 덕분에 그의 육체의 회복력은 말할 필요 없었다.
“응?”
산길을 천천히 걸으며 이준은 분결 덕분에 저절로 천지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 그는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 산길 끝자락을 쳐다봤다. 그곳엔 한 사람이 뒷짐을 진 채 등을 지고 서있었다.
이준은 그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놀란 기색을 보였다.
분명 눈앞에 똑바로 서있는 것이 보이는데, 마치 이곳에 없는 사람처럼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