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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57화 (657/818)

657화. 의식 시작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무섭게 공간이 일그러지며 두 줄기의 번개가 유성처럼 고겸익과 고허익을 향해 날아들었다.

갑작스런 공격에 고겸익과 고허익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왜 당신이 여기 있는 겁니까?”

이준은 하늘 위에서 서서히 내려오는 노인을 발견하고는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다.

지금 자신을 도와준 노인이 다름 아닌 번개의 못에서 만난 그 괴상한 노인이었기 때문이다.

“너, 이 녀석! 예의가 없구나! 원장님이라 부르거라!”

장씨 성을 가진 노인은 이준과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원장?”

이준은 한참을 생각하다 그제야 무언가 알아차렸는지 귀신에 홀린 것 같은 표정으로 그 노인을 바라보았다.

“서, 설마……. 당신이 가람 아카데미의 원장이었던 거야?”

“하하, 그래! 바로 내가 가람 아카데미의 원장! 장천수다!”

노인은 자랑스레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이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괜찮군, 괜찮아. 서천우 그 영감이 이번엔 날 속이지 않았어.”

이준은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설 속의 인물로만 여겨지던 가람 아카데미의 원장이 이런 괴팍한 사람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는 널 못 알아봤는데 한참을 생각하다보니 네가 서천우 그 영감이 말하던 이준이라는 놈 같더구나!”

장천수가 이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 말거라. 가람 아카데미의 학생인 데다가 나의 눈에 들기까지 했으니 고족의 늙은이들이라 해도 감히 너를 해치지는 못할 것이다!”

자신이 상상했던 위엄 넘치는 모습과 정반대인 장천수의 모습에 이준의 입가에는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실력도 확실하고 자신을 도와주겠다는 말도 진심인 것 같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떨떠름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장 선생님.”

곁에 있던 이은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 이준보다 먼저 감사 인사를 건넸다.

“별 거 아니다.”

장천수는 손을 저은 뒤 이은과 이준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다 괴상한 웃음을 지었다.

“왜 이 어린 후배를 괴롭히나 했더니, 고족에서 가장 대단한 꽃을 가졌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준과 이은의 표정이 붉게 물들었다.

“장 선생님, 여긴 뇌족(雷族)이 아닙니다.”

그때, 고겸익과 고허익이 씩씩거리며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장천수는 두 사람을 가볍게 흘겨보고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으로 고개를 돌렸다.

“산 영감. 고족이 언제부터 이렇게 어린 후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괴롭히는 족속이 되었나 그래?”

“고겸익, 고허익. 물러나시게.”

그 순간, 허공이 요동치더니 흑색 의복을 입은 백발의 노인 하나가 나타나 이은을 향해 인사를 올린 뒤 장천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자네가 나섰으니 한 번 넘어가도록 하겠네.”

백발의 노인은 그 말만을 남기고 이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곧바로 의석을 향해 날아갔다.

“쳇, 폼 잡긴…….”

장천수는 입을 삐죽이며 이준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한숨을 내쉬며 이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족이 노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곳에 오다니……. 간이 크구나. 걱정 말거라. 내가 있는 한 고족의 영감들도 널 함부로 건드리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저 자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면 스스로 네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

“감사합니다.”

원장의 격려에 이준은 정중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가자꾸나.”

말을 마친 장천수는 다시 한번 가볍게 이준의 어깨를 두드린 뒤 의석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이준 일행 역시 그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전 그 할아버지는 고산이라고 해요. 고족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장로 중 하나죠. 그리고 우리 사이를 가장 반대하는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준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산이라는 사람의 실력은 최소한 투존 최고급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이준은 이은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조심스레 고족의 특수 구역을 훑어보았다.

지금 고족의 특수 구역에는 고족의 강자들뿐 아니라 군함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염족의 젊은 강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족의 젊은 강자들과 염족의 젊은이들 가운데 유독 살기로 눈을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는 이가 하나 있었다.

흑색과 백색의 머리칼이 뒤섞인 사내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감지한 이준은 곧바로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차렸다.

‘저 자가 바로 고족의 수라라고 불리는 고요한이구나…….’

말없이 상대의 실력을 가늠해보던 이준의 표정이 어둡게 내려앉았다.

과연 이은의 말대로 만만치 않아 보이는 상대였다. 모르긴 몰라도 영혼의 궁전의 구천존, 팔천존에 버금가는 실력을 가진 것 같았다.

“오라버니, 조심하세요…….”

이준이 굳은 표정으로 고요한을 바라보자, 이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성인식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상무덤이 열릴 거예요. 오라버니도 그 안에 들어갈 자격이 있지만 장로들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내가 그 녀석들에게 잘 말할 테니 걱정 말거라. 내가 있는 한 그 영감들이라 해도 이준을 괴롭히지는 못할 것이다.”

이은의 말에 곁에 있던 장천수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내가 보기에는 이준이 아니라 나에게 들으라고 한 말 같은데 말이다. 어린 것이 아주 머리가 좋구나. 하지만 그보다 더 편한 방법이 있지.”

장천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은은 그저 조용히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보태지 않았다.

이에 장천수는 가볍게 고개를 돌려 턱짓으로 고요한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녀석의 공격을 백 번 막아내면, 내가 없더라도 편안하게 천상무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게다.”

“백 번이요?”

이준은 잠시 당황한 듯하다 이내 아무 말 없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대앵-!

그때, 고풍스러운 종소리가 광활한 하늘에 울려 퍼지더니 텅 빈 허공에서 투존들조차 긴장하게 만들 만 한 위압감이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식을 시작하죠.”

그 순간, 이준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반투성인 자신의 스승조차 능가할 정도로 엄청난 기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투성이야! 진짜 투성이 나타났어!’

웅장한 목소리가 서서히 가라앉자, 잔뜩 격식을 차린 옷차림을 한 세 명의 장로가 의석에서 일어나 광장 중앙으로 들어왔다.

고족에서는 성인식을 치러야만 진짜 성인이 될 수 있었다.

성인식을 치른 후, 일부 젊은 강자들은 고족의 핵심인물로 성장하게 되며, 혼사 역시 성인식을 마쳐야만 진행할 수 있다.

‘진짜 강자들은 아직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군.’

이준은 특수 구역을 천천히 훑어보며 투성의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투성 강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영혼 탐지 능력을 발휘해 하늘을 훑어보니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공간에서 기이한 파동이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하늘에서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걸 보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이곳을 지켜보고 있군.’

“성인식 시작. 영천!”

이준이 투성 강자의 흔적을 찾고 있을 때, 고족 장로 중 하나가 이준에게 아주 익숙한 이름을 외쳤다.

영천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의기양양하게 장내로 들어선 뒤 세 장로를 향해 인사를 올렸다.

올해 고족에서는 수많은 젊은 강자들이 성년이 되었지만, 성인식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고족의 젊은이들에게 있어 성인식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자신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했으니, 성인식에 참가하는 모든 젊은이들은 자신의 실력에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한 장로가 손에 힘을 주자, 커다란 원반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영천은 빠르게 앞으로 걸어 나와 그 원반 위에 손을 올린 후 두 눈을 감았다.

곧이어 원반 위에서 강한 빛이 번쩍이더니 여섯 개의 별이 떠올랐다.

고족 장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영천, 흑연군 일곱째 총령, 1성 투존, 혈통 등급 6품, 장로원의 협의에 따라 금색 족문(族紋)을 부여한다.

“금색 족문이라니! 역시 일곱째 총령이야.”

장로의 외침에 광장 안에 있던 고족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족문을 하사받은 영천은 입이 귀에 걸린 채 조용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고족의 장로가 금빛으로 번쩍이는 붓을 가볍게 휘두르자, 영천의 이마에 신비한 금색 문양이 새겨지며 기이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혈통등급? 금색 족문? 이게 다 뭐야?”

이준이 이은을 바라보며 물었다. 족문이니 혈통의 등급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그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고족의 혈통등급은 1품부터 10품까지 있어요. 보통 혈통등급이 4품 이상은 되어야만 성인식에 참가할 수 있는데, 6품이라면 꽤 괜찮은 거예요.”

이은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금색 족문(族紋)은 능력을 종합적으로 합산해 부여하는 고족의 비술이에요. 위급한 시기에는 체내에 흐르는 혈통의 힘을 폭발시켜 위험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죠. 이 족문은 은(銀), 금(金), 자금(紫金), 칠채금(七彩金) 총 4가지 색깔로 나뉘는데, 영천의 족문은 세 번째 색깔인 금색 족문이에요.”

“이것도 무슨 효과가 있는 거야?”

이준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네. 이건 옛날 고족의 선조가 된 투제가 만든 비술이에요. 이 족문을 얻어 한 달 동안 따뜻하게 데우면 족문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대요.”

설명을 듣던 이준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고족은 전설 속의 세력답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신기한 것들을 잔뜩 가지고 있었다.

“그럼 네 혈통은 10품인가? 그 정도면 칠채금 족문을 얻을 수 있는 거야?”

“지난번 수련에 들어간 이후 한 번도 측정해보진 않았어요. 하지만 10품 혈통은 지난 천 년 동안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어요. 저도 그 정도는 아니고요. 지금 칠채금 족문은 단 하나 뿐인데, 누구도 쓰지 못 하고 있어요.”

“껄껄! 혈통 등급이 9품 정도가 되면 혈통의 힘으로 투성이 될 수 있지. 물론 9품의 혈통을 가진 자는 고족 전체를 뒤져도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지만 말이야.”

앞에 있던 장천수가 고개를 돌려 껄껄 웃으며 말했다.

혈통의 힘으로 투성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이준은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고족이 오랜 시간 투기 대륙의 최강 세력으로 군림할 수 있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다음. 임혁!”

이준과 이은이 대화하는 사이, 장로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지고, 임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영천과 똑같은 절차를 거쳤다. 이번에도 원반 위에 나타난 별은 여섯 개 뿐이었다.

“임혁, 흑연군 셋째 총령, 5성 투존, 혈통등급 6품. 금색 족문을 부여한다.”

5성 투존인 임혁 역시 금색 족문 밖에 받지 못하는 모습에 이준은 고족에게 있어서 혈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했다.

4성이나 차이가 나는데도 혈통의 등급에 의해 같은 보상을 받다니, 확실히 일반적인 세력들과는 투사를 평가하는 기준에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금색 족문이지만 임혁 이마에서 빛나는 금빛이 영천보다 조금 더 밝은 것으로 보아 같은 금색이라도 조금은 차이가 있는 듯 보였다.

“다음…….”

영천, 임혁에 이어 고족의 젊은 강자들이 줄줄이 입장했지만, 어느 누구도 6품을 넘어서지 못했다.

“고진, 흑연군 최고 총령, 7성 투존, 혈통등급, 7품.”

사람만 바뀌고 똑같은 장면이 반복되며 사람들이 슬슬 지루함을 느낄 무렵, 드디어 7품을 받은 사람이 나타났다.

“고진?”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이준은 고개를 들어 무덤덤한 표정으로 의식을 진행 중인 고진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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