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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52화 (652/818)

652화. 8대 총령, 4대 수장

숙소의 정원은 사방에서 모여든 강자들로 가득 차있었다. 중주에서 내로라하는 세력의 강자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고족의 명성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스레 실감이 났다.

정원의 중심에는 거대한 돌로 만들어진 석대가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서는 6성 투종 정도 되는 강자 두 명이 염력을 뿜어내며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난 것 마냥 시끄럽게 떠들어대며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대결에 딱히 관심이 없었던 이준은 일행과 함께 정원 구석에 위치한 자그마한 정자에 자리를 잡은 채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흑연군과 관련된 소식은 들었어?”

고족과 접촉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사전에 알고 있어야 했다. 특히 고족의 젊은 인재들이 모여 있다는 흑연군에 대해서는 가급적 많은 정보를 수집해두는 편이 좋았다.

“응.”

아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흑연군은 고족에서 꽤나 높은 지위를 갖고 있어. 흑연군이 되려면 고족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증명해야 하고, 일정한 나이에 지정된 계급에 도달해야 해. 흑연군이 되는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매년 치러지는 시험에서 떨어지면 흑연군의 지위를 박탈당한다고 하더라고.”

이준은 아라의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성문 입구에서 봤던 검은 갑옷을 입은 경비병들만 해도 결코 평범한 실력을 가진 자들은 아니었다.

“그리고 흑연군에는 여덟 명의 총령이 있다고 하네. 영천이 일곱 번째, 그리고 어제 봤던 그 자가 다섯 번째 라고 하더군.”

“고족이 대단하긴 하군요. 영천이 일곱 번째 밖에 되지 않는다니…….”

천화존자의 말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일곱 번째가 1성 투존, 다섯 번째가 3성 투존이라면 첫 번째는 최소한 6성 투존 이상의 실력을 가졌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고족의 젊은 강자들이 널 그렇게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을 거야.”

“어째서?”

아라의 말에 이준이 눈썹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이은이 얼마 전 장로회의에서 네가 아니면 누구와도 혼인을 맺지 않겠다고 선언했대.”

아라가 웃으며 대답하자, 이준은 적잖이 놀란 듯 입을 쩍 벌렸다.

“정말 간도 크네……. 어쩔 수 없지. 처음부터 이번 고계 방문이 순탄치 만은 않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어.”

“그래서 8대 총령들은 대부분 널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네 여자 친구의 배필이 된다면 고족의 수장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갑자기 외부인인 너와 혼인을 하겠다고 선언해 버렸으니 네가 눈에 가시처럼 여겨질 테지.”

아라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난 이 사람들보다 4대 수장들이 너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있어.”

“4대 수장?”

“흑연군 최고 고위층은 8대 총령과 4대 수장, 그리고 흑연왕이라고 할 수 있어. 그리고 이 4대 수장은 고족 내에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지. 그들의 몸에 잠들어 있는 투제의 힘과 잠재력이라면 머지않아 고족의 핵심 전력이 될게 분명해.”

묵묵히 아라의 말을 듣고 있던 이준의 표정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갔다. 지금까지 자신을 애먹였던 상대는 모두 한참이나 윗대의 강자들이었고, 또래 중에는 적수가 없었다.

하지만 고족 중에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인재들이 가득하니, 제 아무리 이준이라도 조금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투제의 피가 그렇게 강하단 말이지.”

이준은 가슴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4대 수장 역시 8대 총령만큼이나 너에게 감정이 좋지 않을 거야.”

이어지는 아라의 말에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죽어도 이은을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당장 이길 수 없다면 이를 악물고 수련해 더욱 강해지면 그만이었다.

“투제의 피를 가지고 있다 해도 투성이 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네. 내가 알기로는 고족에도 투성은 많지 않아. 투존 최고급 수준부터는 투제의 피가 있다 해도 큰 도움을 받기는 어려울 거고.”

천화존자가 기지개를 켜며 말하자, 이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충분히 해볼만한 싸움이었다.

* * *

이준 일행이 정자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정원 한 구석에서는 두 명의 사내가 차가운 눈빛으로 이준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 자가 그 이준인가?”

푸른색 옷을 입은 남자가 이준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 셋째 형님. 중주에서 명성이 꽤나 자자한 놈 입니다.”

그 때, 두 사람의 뒤쪽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이준의 발차기 한 방에 날아가 버린 영천이었다.

그러자 청색 의복을 입은 남자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흥, 바깥에서 이름을 날렸다고 해봤자 고족의 상대가 될 수는 없다. 저런 놈에게 우리 고족의 보물을 빼앗길 수는 없지.”

“소란 피우지 마. 그래도 저들은 손님이야.”

옆에 서있던 건장한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건장한 사내의 정체는 바로 어제 성문 입구에 나타났던 다섯째 총령이었다.

“걱정 마, 모든 것은 규칙대로 이루어질 거니까.”

푸른 옷의 사내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챙!

그 때, 석대 위 전투의 승패가 결정되어 대결을 펼치던 두 사람이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곧이어 함성 소리와 함께 마른 체형의 한 남자가 석대 위로 뛰어 올라와 큰 소리로 외쳤다.

“다음 대련은 흑연군 셋째 총령, 양호익과…… 연금대회 우승자, 이준입니다.”

정자 안에서 일행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이준은 석대에서 들려오는 말에 화들짝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양호익과 이준의 이름이 불리자, 소란스럽던 장내가 한순간에 고요해졌다.

“무슨 일이야, 이게?”

아라가 당황한 얼굴로 이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그런데 방식이 좀 치졸하군.”

이준 일행은 곧바로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이준이 대결을 피할까 싶어 일부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의 이름을 부른 것이 틀림없었다. 만일 대결을 피한다면 이준을 자신의 배필로 지목한 이은마저 겁쟁이를 배필로 정했다는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었다.

“후…….”

이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괜찮아. 고계에 들어가기 전에 본보기로 혼을 좀 내주어야 안에 들어가서도 편하겠지.”

이준이 고개를 돌려 차가운 눈빛으로 위층 난간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허허, 꽤나 예리한데.”

이준이 자신을 바라보자, 청색 의복의 남자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실력은 5성 투존 최고급 정도로, 비슷한 수준의 상대에게는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었기에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양호익. 장로님이 아시면 어쩌려고 일을 벌이는 거야?”

다섯째 총령이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잠깐 좀 놀자는 건데, 뭐. 힘을 숭상하는 고족답게 함께 힘으로 정을 쌓는 게 좋지 않겠어?”

양호익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너무 괴롭히진 않을 거야. 물론, 눈치가 있는 놈이라면 말이야.”

말을 마친 양호익은 다섯째 총령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번개처럼 석대 위로 몸을 날렸다.

“이준 선생, 오래 전부터 명성이 자자하신 분인데, 한수 가르쳐주시지요.”

그 순간, 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정자 안에 앉아 있는 이준에게로 향했다.

“저 사람이 그 연금대회 우승자 이준인 거야?”

“꽤 어려 보이는데. 저 어린 나이에 8레벨 연금술사라니, 믿기지 않는 걸!”

“그의 스승이 반투성인 약선이라지? 실력이 궁금한걸.”

사방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이준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석대 위에 서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총령님이 이렇게 고집을 부리시는데 거절할 순 없죠.”

자신의 지목을 받고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이준의 모습에 양호익은 더욱 더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조심해.”

이준의 실력을 아는 아라와 나머지 두 사람은 굳이 그를 말리지 않았다. 5성 최고급 정도라면 이준의 상대가 될 수 없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응.”

이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발을 뻗자, 공간이 일그러지며 그의 몸이 순식간에 양호익 앞에 나타났다.

“역시 연금대회 우승자답게 담력이 대단하군. 실력도 그만큼 따라줄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시작하시죠.”

양호익의 조롱 섞인 말에 이준은 상대하기조차 귀찮다는 듯 짤막하게 답을 했다.

“좋지!”

양호익이 크게 웃으며 앞으로 걸음을 옮기자, 그의 몸에서 염력이 용처럼 솟구치며 숨이 멎을 듯한 위압감을 뿜어냈다.

“오늘 직접 연금대회 우승자의 실력을 보겠구나!”

양호익이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 매서운 강풍이 손에서 폭발해 번개처럼 이준의 몸을 덮쳤다.

하지만 이준이 가볍게 몸을 움직이자, 두 사람의 거리가 순식간에 수십 미터나 벌어지고 말았다.

“속도가 꽤 빠르군. 하지만 속도라면 나 역시 지지 않지.”

그러나 양호익의 속도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가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며 발걸음을 옮기니 그의 등 뒤에서 용과 뱀의 환영이 솟아나며 눈 깜짝할 사이에 이준과의 거리가 좁혀졌다.

“죽음의 갈퀴!”

곧이어 양호익의 손에서 날카로운 바람이 일며 칼날처럼 이준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역시 고족이야. 사용하는 무투기가 하나하나 엄청나군.’

양호익의 엄청난 속도와 매서운 공격에 이준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많은 고급 무투기를 가지고 있다면 확실히 어지간한 5성 투존은 상대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2격 중급 무투기를 두 개나 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제압할 수 없다는 사실에 양호익 역시 적잖이 놀란 듯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이준을 노려봤다.

“네가 감히 나의 상대가 될 것 같으냐!”

잠시 거리를 두고 이준을 노려보던 양호익이 돌연 빠르게 뒤쪽으로 몸을 날리며 익숙한 인결을 그리기 시작했다.

“제왕의 권이군…….”

상대가 무슨 무투기를 사용하려는지 알아차린 이준은 곧바로 몸을 날려 양호익의 손을 향해 자갈색의 화염을 뿜어냈다.

‘이 녀석, 어떻게 제왕의 권의 약점을 알고 있는거지?’

인이 길고 복잡하다는 것은 제왕의 권이 가진 약점 중 하나로, 인결이 완성되기 전에 공격을 받는다면 상당히 곤란한 처지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당황한 양호익은 빠르게 인을 맺던 손을 멈추고 자신의 향해 날아드는 화염 덩어리를 막아냈다.

펑!

뜨거운 열기가 솟아나는 강풍이 석대 위에서 퍼져 나가고, 양호익이 비틀 거리며 뒤로 밀려나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놀란 듯 분분히 찬숨을 들이켰다.

정원 한켠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던 영천 역시 일그러진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삼총령이 저 녀석의 상대가 되지 않다니……!”

다섯째 총령 역시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미 자신이 가진 최강의 무투기를 사용한 양호익과 달리 이준은 아직 제 실력을 발휘하지 않고 있다는 점 이었다. 심지어 그는 제대로 된 무투기를 단 하나도 사용하지 않을 상태였다.

“개 같은 자식이!”

고급 무투기를 미친 듯이 쏟아 부었음에도 승리하기는커녕 상대의 무투기조차 끌어내지 못 하자, 양호익의 표정이 살기로 물들기 시작했다.

“대지의 힘!”

분노한 양호익은 방금 전에 사용했던 이동 무투기를 사용해 번개같이 뒤쪽으로 후퇴하며 다시 인을 맺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준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양호익을 노려볼 뿐, 상대가 인을 맺는 것을 방해할 생각조차 없어보였다.

“흥, 어지간히 실력에 자신이 있나보군!”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이준의 모습에 더욱 화가 난 양호익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나 대지의 권이 막 그의 손을 떠나려는 순간, 돌연 그의 발밑에 균열이 일어나며 엄청난 열기를 머금은 화염기둥이 화산처럼 솟아나왔다.

“으아악!”

화염 기둥에 공격당한 양호익은 새빨간 피를 뿜어내며 저 멀리 날아가 거대한 돌기둥에 몸을 부딪히고 말았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끝나버린 대결에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잠시 후, 이준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온 몸이 새까맣게 타버린 양호익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총령님.”

“푸흡!”

이준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양호익의 입에서 다시 한 번 붉은 선혈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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