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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51화 (651/818)

651화. 영천과의 재회

끝도 없이 광활한 초원 위에 펼쳐진 녹음이 이준의 눈동자를 가득 채웠다. 드넓은 초원의 한 가운데에는 수많은 돌기둥이 우뚝 솟은 거대한 광장이 위치하고 있었다.

광장 위에서는 시시때때로 눈부신 빛이 반짝이며 사람들이 튀어 나오고 있었다.

슉-.

수많은 사람들이 늘어선 거대한 광장 위에서 또 한 번 눈부신 빛이 반짝이더니 네 개의 그림자가 광장 위에 내려앉았다.

“잘 찾아온 것 같네.”

아라가 미소를 지으며 이준을 향해 말했다.

“응.”

이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거대한 광장 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 서있는 사람들 중 누구 하나 만만한 사람이 없어보였다. 투기 대륙에는 자신이 모르는 강자들이 별처럼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역시 고족에게 초대받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군.”

천화존자가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준은 말없이 동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의 끄트머리에는 거대한 도시의 윤곽이 보이고 있었다.

“저기가 고성이지? 가자.”

이준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투기 대륙에서 가장 신비한 세력의 영토는 과연 어떤 것일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고계 안에 있다는 이씨 가문의 선조, 이현의 무덤을 찾아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이준의 말에 모두 동의한 듯 곧바로 몸을 움직여 먼 곳에 보이는 도시를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하늘 위에는 이준 일행을 제외하고도 수 없이 많은 투존이 고성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투기 대륙에 있는 투존은 모두 모인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초원은 끝도 없이 광활했지만 이준 일행은 십 분도 채 되지 않아 고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족의 터전은 이준의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간 이준은 투기 대륙 최고의 세력 중 하나라는 고족의 땅이라면 휘황찬란하고 위엄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성은 위엄과는 거리가 멀었다.

성벽은 거의 무너질 것처럼 허름했고, 안에 있는 건축물들도 단순히 낡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남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그 오래된 성 위에는 투명한 결계가 펼쳐져 있었고,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고성은 고족의 투제 강자가 건설한 것이다. 그리고 이 결계에는 투제의 힘이 깃들어 있어 평범한 강자라면 흠집조차 내지 못 하지.”

천화존자가 고족의 결계를 바라보며 감탄하듯 말했다.

“투제의 힘이라……. 정말 대단하네요.”

이준은 도시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영혼 속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이 더욱 강해진다는 것을 느꼈다.

“투제 강자에게 경외감을 표하기 위해 고성 주위에서는 비행이 금지되어 있으니 걸어서 들어가도록 하자꾸나.”

천화존자가 말을 마친 뒤 아래로 내려가자, 나머지 세 사람도 그를 따라 바닥으로 내려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 * *

고성의 입구 양쪽에는 검은색 갑옷을 입고 긴 창을 든 백 여 명의 경비병들이 삼엄한 경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경비병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범상치 않은 기운에 투존 강자라 해도 감히 이곳에서는 소동을 벌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경비병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이준은 성문 입구에 서있는 한 사내를 보고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영천…….”

청색 갑옷을 입고 고족의 경비병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사내는 바로 흑연군을 통솔하는 고족의 강자, 영천이었다.

잠시 후, 영천 역시 이준을 발견하곤 곧바로 미간을 구기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준, 누가 여기에 오라고 허락했나!”

영천이 성난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자, 수많은 시선이 순식간에 이준에게 꽂혔다.

하지만 이준은 대꾸조차 하지 않고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약로에게 받은 검은 색 초대장을 날려 보냈다.

이준이 들고 온 것이 고족의 초대장임을 확인한 영천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성운각 따위가 어떻게 고족의 초대장을 받은 거지?”

“글쎄? 그건 초대장을 보낸 사람이 알고 있겠지. 나는 초대를 받았기에 온 것 뿐이다.”

이준의 당돌한 태도에 영천의 눈에는 대번에 살기가 돌았다.

하지만 그가 미처 몸을 움직이기도 전에 이준의 몸이 귀신처럼 사라졌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영천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손에 들려있던 검은 초대장은 이미 이준의 손에 들려있었다.

반응조차 하지 못 하고 이준에게 초대장을 빼앗긴 영천의 얼굴이 분노와 모욕감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이 건방진 놈!”

분노한 영천은 자신의 임무조차 잊어버리고 이준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말았다.

퍽!

그러나 그의 주먹이 상대에게 닿기도 전에 이준의 다리가 번개처럼 영천의 가슴을 강타했다.

“푸흡!”

이준의 발에 걷어차인 영천은 그대로 분수처럼 피를 뿜으며 성벽에 쳐박히고 말았다.

주변에서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준이 고족의 투존인 영천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모습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준과 영천을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영천님,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이곳에 초대를 받아서 온 사람들 중에 당신보다 약한 사람은 없는 것 같으니까요. 다음번에는 죽을지도 모릅니다.”

이준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초대장을 저장 반지에 넣으며 말했다.

“흑연 소대, 당장 저 놈을 잡아라!”

영천의 명령이 떨어지자, 성문 앞을 지키고 있던 고족의 강자들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창 끝을 이준에게 돌렸다.

두 무리가 갑자기 대치하면서 성문 밖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영천님, 제가 견문이 좁아서 여쭤보는 것인데, 혹시 초대장을 받아 온 손님에게 창을 겨누는 게 고족의 예법입니까?”

바로 그 때, 성벽 위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날아와 이준과 영천 사이를 막아섰다.

“영천, 이게 무슨 짓이지?”

벽 위에서 내려온 사람의 싸늘한 한마디에 영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갑자기 나타난 사내의 실력은 3성 투존 정도로, 영천과 같은 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 그 역시 흑연군의 지휘관인 듯싶었다. 다만 영천의 태도로 보아 계급이나 지위는 그가 더 높은 것이 분명했다.

“오(五) 총령님!”

그 때, 주위에 있던 흑연군 전사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곧이어 경비병 중 한 사람이 황급히 그에게 다가가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네가 바로 그 이준이냐?”

사내가 적개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이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성운각에서 온 이준입니다.”

이준은 평온한 얼굴로 그를 향해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췄다.

“맞다. 아가씨가 말한 그 이준이야! 그래도 저 자를 들여보낼 건가?”

영천이 소리쳤다.

다섯째 총령은 미간을 찌푸린 채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노려보다가 영천을 향해 몸을 돌려 버럭 성을 냈다.

“영천! 생각이 있는 것이냐! 초대장을 가진 손님에게 이 무슨 무례한 짓이냐!”

사내의 불호령에 영천은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떨궜다.

“이준 선생, 들어오시지요! 며칠만 고성에서 머물러 주십시오. 곧 고계로 안내 할 사람이 올 것입니다.”

영천이 물러나자 다섯째 총령이 이준을 향해 짐짓 공손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하지만 이준을 바라보는 사내의 눈빛에서는 숨길 수 없는 적개심이 가득했다.

다섯째 총령 역시 자신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이준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고계로 향하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았다.

이준이 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다섯째 총령의 앞을 지나는 순간, 그가 다가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시간을 좀 내실 수 있겠습니까?” 정말 우리 아가씨와 어울리는지 한 번 보고 싶군요…….”

“하아…….”

총령의 말에 이준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성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성 안으로 들어가니 온 거리에서 투존의 기운이 느껴졌다. 중주의 다른 큰 성들처럼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으로 가득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방에서 느껴지는 기운의 크기로 따지자면 연금성조차 초라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먼저 숙소로 가자. 고계로 통하는 공간 통로는 삼일 뒤에나 열린다고 했으니까.”

옆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엿들은 아라가 이준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래, 이 곳에는 죄다 투존들 뿐이니까 괜히 시비라도 붙지 않게 숙소에서 조용히 기다리는 게 좋겠어.”

말을 마친 이준은 일행들과 함께 성의 중심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대략 10분 정도를 걸어가니 성 중심에 위치한 커다란 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에게 초대장을 건네자, 곧바로 시종 하나가 나와 이준 일행을 데리고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성운각에서 중주 동부까지, 그리고 중주 동부에서 다시 고성까지 이동하느라 적잖이 지쳐있던 이준 일행은 각자 방안으로 들어가 곧바로 휴식을 취했다.

* * *

안개구름으로 뒤덮인 봉우리 위에는 청색 치마를 입은 여자 하나가 고고한 자태고 앉아 있었다.

“아가씨, 이준 도련님이 고성성에 도착했습니다.”

그 때,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뒤에서 나이든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잘 지내는 것 같던가요?”

그녀가 입을 열자, 산 위에 가득한 구름이 조금씩 흔들렸다.

“이제 제 실력으로는 이준 도련님의 실력을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1성 투존인 영천이 발차기 한 방에 나가 떨어졌다고 하니, 최소 4성 투존의 경지에 오르신 것 같습니다.”

노인이 감탄하듯 말했다.

이은의 명에 따라 이준을 지킬 때만 해도 투존은커녕 투황조차 되지 못했던 소년이 불과 10년 만에 자신을 능가하는 강자가 되었으니, 실로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 정도 성장 속도는 투제의 피를 이어받은 고족의 젊은이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가씨가 확실히 보는 눈이 있으십니다.”

세형의 칭찬에 이은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벌써 몇 년 동안 고계에 갇혀 수련에 열중하고 있었기에 이준의 실력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은은 단 한 번도 이준이 투기 대륙 전체를 호령할 강자가 되리라는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가씨, 아가씨께서 장로회의에서 하신 말씀 때문에 이준 도련님에게 문제가 조금 생긴 듯싶습니다.”

세형이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난 오라버니를 믿어요.”

하지만 이은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빙긋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이은의 말에 세형은 그저 씁쓸한 웃음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이은은 자신의 혼사에 대한 회의에서 지극히 평온한 말투로 장로들의 말문이 막혀버릴 말을 내뱉었었다. 그것이 바로 이준이 고성에 오자마자 고족의 젊은 강자들의 적개심 어린 눈초리를 받게 된 이유였다.

‘저의 배필이 될 사람은 단 한 사람, 이씨 가문의 이준입니다. 장로님들이 아니라 그 누가 반대한다 하더라도 제 뜻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그녀의 짤막한 그 한마디는 고족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고도 남을만한 것이었다.

* * *

다음 날, 따스한 햇볕이 창문을 뚫고 조용한 방 안을 비출 무렵, 침대 위에 앉은 이준은 염력과는 다른 신비한 에너지를 쉴 새 없이 흡수하고 있었다.

“확실히 수련 속도가 꽤 빨라졌네.”

이준은 만족한 듯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그 동안 태일의 영혼 인결을 열심히 수련한 덕에 제법 많은 영기를 흡수할 수 있었다.

수련을 마친 이준은 가볍게 기지개를 켠 뒤 아라와 천화존자, 예린을 만나기 위해 침실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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