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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50화 (650/818)

650화. 동부 지역을 향해

말을 마친 약로는 저장 반지에서 옥으로 된 검은색 초대장을 꺼냈다. 그 초대장에는 기이한 에너지를 내뿜는 고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초대장이다. 이것이 있어야만 고계에 들어갈 수 있다. 원래 내가 가려 했지만 성운각의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네가 대신 다녀와야 할 것 같구나.”

약로는 웃으며 손에 든 검은색 초대장을 이준에게 건넸다.

이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없이 초대장을 받아들었다. 수년간 중주를 떠돌며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드디어 고족을 마주할 자격을 손에 넣은 것이다.

초대장을 손에 들자, 미지근한 열기가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고족의 초대를 받아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사실상 중주 최고의 강자로 공인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하지만 지금 네 실력과 명성이라면 아주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을 게다.”

약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가 볼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냐?”

“걱정 마세요, 스승님.”

이준은 초대장을 손에 꽉 쥐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스승님의 얼굴에 먹칠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하하, 그런 걱정은 하지도 않는다.”

약로는 크게 웃으며 이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며칠 후에 움직이거라. 하지만 고족에 도착하면 신중하게 행동하거라. 네 여자친구는 고족에서 가장 완전한 투제의 피를 가지고 있는 아이라고 하더구나. 여기까지만 말해도 그 아이가 고족 내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겠지?”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은이 고족에서 어떤 지위에 있는지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터라 그녀가 투제의 피를 가장 강하게 물려받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랍지도 않았다.

“이번에 고계에 갈 때는 천화존자와 아라를 데리고 가거라.”

약로가 말했다.

“천화존자는 이미 6성 투존까지 실력을 회복한 상태이니 든든한 지원군이 되줄 것이다. 아라는 내 지시에 따라 아주 오래된 무덤에 가있다. 그곳에서 재난독체를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을 얻을 수 있을게다. 내가 남겨둔 독비약의 제조법도 그곳에서 얻은 것이니까.”

독비약의 제조법이 스승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는 말에 이준은 크게 놀라며 물었다.

“이럴 수가, 그게 스승님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고요? 그럼 대체 누가 만든 거죠?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재난독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건가요?”

“그 무덤의 주인이 바로 재난독체를 가진 자였으니까. 아쉽게도 죽음을 앞두고 그 방법을 알아낸 탓에 재난독체가 폭발해 죽고 말았지만.”

약로가 말했다.

“역시 재난독체였군요. 어쩐지…….”

“아라는 그녀가 묻힌 곳에서 독체를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라는 역사상 처음으로 재난독체를 지배한 사람이 되지. 이제 곧 돌아올 때가 되었으니 아라가 돌아오면 함께 고계로 가거라.”

스승의 마지막 말에 초대장을 쥐고 있는 이준의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 * *

이준은 아라가 돌아올 때까지 줄곧 성운각에 머물며 영혼의 힘을 단련하는데 집중했다.

영혼의 힘이 영혼 단계에 들어선 이후 염력 수련에 집중하느라 연금술사의 등급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영혼 수련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약족에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젊은 연금술사들이 있다는 약로의 말을 듣고 나니 당분간은 영혼의 힘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할 것 같았다.

일반, 영혼, 하늘, 황제…….

‘지금 내 연금술은 기껏해야 8레벨 초급 수준일 거야.’

이준은 조용한 방 안에 앉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4색 비뢰를 부를 수 있는 연금술사는 8레벨 초급으로 분류됐다. 중급이 되려면 최소한 5색 비뢰를 부를 수 있어야 했다. 자신 역시 연금술 경연대회에서 5색 비뢰를 부르기는 했지만 마지막 번개의 색이 옅었으니 제대로 된 8레벨 중급 연금술사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내 영혼은 영혼단계 초기지만 영혼의 힘으로만 보면 영혼 단계 중급의 연금술사들과 비슷할 거야…….”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이준은 굳은 표정으로 양피지로 만들어진 오래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들었다. 누렇게 변색된 양피지는 한 눈에 봐도 제법 오래된 물건처럼 보였다.

두루마리를 펼치자, 그 안에는 어떤 문자도 적혀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주는 당황하지 않고 영혼의 힘을 꺼내 천천히 두루마리를 휘감았다.

그러자 양피지 위에서 옅은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문자들이 서서히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태일의 영혼인결”

이 영혼 수련법은 이준이 연금대회에서 우승한 뒤 얻은 상품이었다. 그 뒤로 몇 번인가 들여다보기는 했지만, 워낙 많은 일이 있어 제대로 수련을 한 적은 없었다.

게다가 이 ‘태일의 영혼인결’은 약로도 꽤 좋은 평가를 내린 영혼 수련법이었으니 충분히 연구한다면 분명히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준은 눈을 감고 머릿속을 떠다니는 문자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뒤, 그의 감긴 두 눈이 서서히 떠졌다.

‘역시 연금탑에서 내건 우승 상품답게 대단한 물건이야. 그 수련 주문은 진짜 아무 것도 아니었네.’

‘태일의 영혼인결’을 자세히 읽어보던 이준은 그 안에 담긴 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수련법에 비하면 자신이 지금까지 사용해왔던 기이한 주문은 수련법이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곧이어 이준의 미간에서 기이한 흡인력이 발휘되더니 신비한 에너지가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속도로 그의 미간 안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후…….”

이준은 놀란 마음에 저도 모르게 찬숨을 들이켰다. 왜 진작 수련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될 정도였다. 가끔씩 짬을 내서 수련을 했더라면 이미 영혼 단계 중급 수준까지 영혼의 힘이 성장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일의 영혼인결을 모두 머릿속에 잘 기억해둔 이준은 만족한 듯 웃으며 양피지를 저장 반지 안에 넣었다.

“생각한 것보다 효과가 대단한 걸.”

영혼 수련법을 익히는데 성공한 이준은 곧바로 저장반지 안에서 붉은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들었다.

두루마리가 그의 손에 나타난 순간, 농후한 불속성의 에너지가 흘러 나왔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바로 투성의 유적지에서 가져온 두루마리였다. 하지만 당시엔 죽음의 광단을 막 손에 넣은 터라 이 물건은 꺼내볼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2격 고급 무투기, 대지별꽃. 기이한 진동을 일으키는 염력을 대지에 전파시켜 극한의 열기를 지닌 기체를 뿜어낸다. 특히 화산지대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며, 적의 허점을 찌르기에 아주 좋은 무투기이다.”

적홍색 두루마리 안에 있는 내용을 빠르게 머릿속에 넣은 이준은 ‘대지별꽃’이 갑자기 상대방의 허점을 공격한다는 점에 큰 흥미를 느꼈다. 게다가 네 개의 천지의 불꽃을 가진 자신이라면 이 무투기의 위력을 극한까지 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들었다.

“역시 투성 강자의 물건은 달라.”

* * *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 동안 이준은 매일 같이 태일의 영혼 인결과 대지별꽃을 수련하는데 전념했다.

그렇게 8일 째 되는 날, 어디선가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틀림없이 아라의 기운이었다.

“이 정도로 강해졌다니…….”

뼛속까지 전해지는 엄청난 기운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나지막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저 멀리 새하얀 옷을 입은 아라가 미소를 지은 채 서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돌아왔구나…….”

이준은 걸음을 멈추고 햇빛 아래 서있는 아라를 바라보았다.

눈을 맞은 것 마냥 새하얗던 아라의 머리카락은 이미 원래의 색을 되찾은 상태였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이준이 가한제국 청산마을에서 그녀를 처음 봤을 때와 완전히 똑같았다.

드디어 진짜 그녀의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뭐야, 못 알아보는 거야?”

아라는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네 머리카락…….”

이준은 멍한 얼굴로 중얼거리며 아라의 매끈한 이마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녀의 이마에는 생전 처음 보는 복잡한 회색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 안에 재난독체의 모든 에너지가 저장되어 있어.”

아라가 자신의 이마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이준은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이제 천화존자 선생님보다 더 강한 것 같은데?”

“이제 7성 투존이야.”

아라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재난독체를 완전히 해결한 덕인지 ‘소의선’으로 불리던 그 때보다 더욱 표정이 밝아 보였다.

“7성 투존이라니.”

이준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린도 예린이지만 아라의 성장 속도 역시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천화존자와 예린에 이어 아라까지 이렇게 단숨에 실력이 오르니 자신은 거의 성장하지 않았다는 착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예전에는 독기가 너무 많아서 머리카락도 하얗게 변해버렸지만, 그 무덤의 주인이 남겨놓은 수련법을 익혀 독기를 완벽하게 통제하게 되니까 머리카락도 원래 색으로 돌아오더라고.”

아라의 말에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왔으니 이제 움직여야겠어.”

이준이 놀랐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그래. 알겠어.”

* * *

아라가 성운각으로 돌아온 다음 날, 이준은 예린과 아라, 천화존자 세 사람을 이끌고 곧바로 고계로 출발했다.

고계가 위치한 중주 동부 지역의 세력들은 거의 모두 고족의 영향하에 있었다. 하지만 그 중 대부분의 세력은 자신들을 다스리고 있는 것이 실은 고족이라는 것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그저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는 세력 역시 어떤 강대한 세력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 * *

몇 개의 공간 통로를 지나 밤낮없이 날아가자, 드디어 동부 지역 끄트머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속도라면 내일 동부 지역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고계의 입구는 동부 지역 중심에 있는 ‘고성(古城)’이라는 도시 안에 있다고 했어…….”

거대한 지옥 이무기의 머리 위에 앉아있던 아라가 손에 쥔 지도를 보며 말했다.

“고성이라…….”

고성이라면 중주 동부 지역에서 연금탑의 근거지인 연금성보다도 더 유명한 곳 이었다.

바로 고계의 입구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족의 초대장이 필요했다. 초대장이 없다면 그 누구라 하더라도 고성에 발을 들일 수 없었다.

“앞으로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이준의 질문에 예린이 웃으며 답했다.

“동부 지역의 대도시에는 모두 고성으로 통하는 공간 통로가 있어요. 그 공간 통로를 이용하면 5일 정도면 고성에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좋아. 서둘러줘. 모처럼 고계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되었는데 늦으면 곤란하잖아.”

“네.”

예린이 가볍게 지옥 이무기의 이마를 두드리자, 거대한 마수가 꼬리를 휘두르며 더욱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아침, 이준 일행은 무사히 중주 동부지역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주위의 대도시로 들어가 곧바로 고성으로 향하는 공간 통로로 들어갔다.

공간 통로 안에 들어서자 사방에서 눈부신 빛을 뿜어내며 날아가고 있는 공간의 배를 볼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공간의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실력이 약한 사람도 1성 투존이라는 점이었다. 이것만 보아도 고족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어두컴컴한 공간 통로 속으로 들어간 지 5일 째 되는 날, 마침내 저 멀리서 눈부신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도착한 건가…….”

이준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긴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드넓은 중주를 떠돌며 힘을 기르기를 수 년, 마침내 투기 대륙의 정점에 선 세력 중 하나인 고족의 세계에 발을 들일 기회를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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