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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48화 (648/818)

648화. 장씨 노인

새까만 번개들을 보는 순간, 이준의 영혼이 격렬하게 흔들리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물밀 듯 밀려왔다.

번개가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느낀 이준은 망설임 없이 요괴를 회수해 번개의 못 바깥으로 빠르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저 검은 번개에 맞는다면 천지의 불꽃으로 몸을 보호한다 해도 결코 무사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없이 달아나던 이준의 눈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온 하늘을 뒤덮고 있는 새까만 번개의 코앞에 작은 점 하나가 번개를 피해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그 정체불명의 그림자가 이준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이보게, 친구. 날 좀 도와주게.”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갈기갈기 찢긴 옷을 입은 채 연신 팔을 흔들어대며 말했다.

당황한 이준은 연신 눈을 비비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노인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보통 인물이 아닌 게 분명한데, 어디서 나타난 거지?’

검은 번개에 닿고도 무사한 점으로 보나, 봉황 마수의 날개를 사용한 자신을 가볍게 따라잡는 것으로 보나, 노인의 실력은 최소한 투존 최고급 수준은 되어보였다. 이런 사람이 왜 번개의 못에서 혼자 검은 번개에 쫓기고 있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가 어디서 왔는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미 검은 번개가 지척까지 접근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벌써 여기까지 번개가 다가왔군.”

검은 번개가 가까워진 것을 느낀 노인은 공간을 가르고 사라졌다가 순식간에 천 미터도 넘게 떨어진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대체 뭐야!”

갑자기 나타난 노인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분노가 치민 이준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다시 뼈 날개를 펼쳐 정신없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노인을 쫓아가 이게 무슨 짓이냐며 따지고 싶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과 실랑이를 벌이다가는 번개에 맞아 뼛가루조차 남기지 못하고 재가 되어 버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해일처럼 자신을 덮쳐오는 검은 번개의 추격을 간신히 뿌리치는데 성공한 이준은 번개의 못을 벗어나자마자 성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봐요! 대체 무슨 짓입니까! 저런 무지막지한 번개를 남에게 붙여놓고 사라지다니!”

그러자, 또다시 공간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누더기가 된 옷을 걸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네야말로 무슨 짓인가? 겨우 5성 투존이 번개의 못에 들어오다니, 목숨이 열 개는 되는 모양이지?”

상대의 무례한 언행에 이준은 더욱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함을 쳐댔다.

“그러는 선배님은 5성 투존 밖에 안 되는 저에게 그 번개를 붙여놓고 달아나지 않으셨습니까!”

“흥, 내 실력이라면 번개 따위는 아무리 많아도 문제가 없어!”

“그럼 왜 도망을 치신 겁니까!”

이준이 또다시 버럭 소리를 지르자, 노인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술을 내밀며 말했다.

“흥, 번개 따위가 아니라 영혼이 깃든 번개 마수들 때문에 피한 것뿐이다.”

노인의 말에 이준은 조금 놀란 듯 눈썹을 들썩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노인의 실력은 약로나 촉이 장로와 비슷한 반투성 수준으로 보였다.

이 정도 실력을 가진 강자를 달아나게 할 정도의 마수라니, 대체 어떤 마수일지 상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네가 죽을 것 같아서 도와주려 했는데 스스로 빠져나온 걸 보니 실력은 떨어지지만 속도는 꽤 빠른 것 같군.”

노인이 손을 비비며 말했다.

이준은 목구멍까지 튀어나온 욕을 간신히 집어삼켰다. 갑자기 나타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어 놓고는 이렇게 뻔뻔한 태도라니, 상대의 실력이 강하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주먹을 날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흠흠, 젊은이, 그보다 이 번개의 못에는 번개의 힘이 모여 있어 수련하기에는 딱 좋은 곳이네. 자네 속도가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함께 깊은 곳에 들어가 놀지 않겠는가?”

노인의 제안에 이준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검은 번개에 닿기만 해도 재가 될 것 같은데 더욱 깊은 곳으로 간다니, 그야말로 죽으러 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쯧, 젊은 사람이 패기가 없구만.”

이준이 고개를 젓자 노인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뭐, 어찌됐든 이것도 인연이니 인사나 하지. 내 성은 장씨네.”

“장씨?”

장씨 성을 가진 반투성 강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던 탓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휴, 무식한 후배군.”

노인은 이준의 반응을 보고는 또다시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마치 어떻게 자신을 모를 수 있냐는 듯한 반응이었다.

쉭!

그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갑자기 들려오더니 우렁찬 목소리가 멀리서 전해졌다

“동생! 괜찮은가!”

“응? 용족이잖아?”

흑치웅을 발견한 장씨 노인은 왜 이렇게 별 것 아닌 애송이가 전설속의 용족과 호형호제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거참……. 어찌됐든 난 이만 가보도록 하지. 나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만 영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으니 열심히 수련해보게!”

노인은 다른 사람을 마주치고 싶지 않은 듯 이준에게 손을 내저은 후 공간을 가르고 빠르게 사라졌다.

이준은 멍한 표정으로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흑치웅을 바라봤다.

“후, 용황 대인이 새겨둔 용의 각인이 있어서 다행이군. 하마터면 동생을 못 찾을 뻔했어.”

이준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흑치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번개의 못에서 일이 좀 생겨서 나왔습니다.”

이준은 못 안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하진 않았다.

“수련이 거의 끝났으니 돌아가죠.”

“그러지. 사실 가만히 기다리는 게 조금 지루했거든.”

흑치웅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거대한 흑룡으로 변화했다. 이준이 등 뒤에 올라타자, 거대한 흑룡이 번개처럼 튀어 나가 눈 깜짝할 새에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준과 흑치웅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허공에 파동이 일며 장씨 성을 가진 노인이 다시 나타났다. 그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 눈썹을 살짝 찌푸린 채 이준에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저 나이에 5성 투존이라……. 아까 보니 천지의 불꽃도 가지고 있던 것 같은데, 재미있는 아이군.”

* * *

이준이 다시 돌아왔을 때, 고룡도의 분위기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특히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강한 기운이 사방에 가득했다. 용황이 나타나면서 가까운 곳에서 전투를 벌이던 장로들이 동룡도로 돌아오면서 생겨난 기운인 것 같았다.

‘동룡도 곳곳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져. 앞으로 보람이의 수련이 끝나면 용족도 다시 통일되겠지.’

이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물론 그 길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번개의 못에서 돌아오는 길에 흑치웅에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동룡도가 네 개의 고룡도 중 가장 실력이 떨어진다고 했었다.

반투성인 촉이 장로와 그보다 더 강한 다른 장로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동룡도의 실력이 가장 떨어진다는 것만 보아도 삼대 용왕이 얼마나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강한 실력을 가진 자들이 용황이 나타났다고 해서 순순히 고개를 숙이고 그 아래로 들어갈 리는 없어 보였다.

“허허, 이준 군. 돌아왔구려. 번개의 못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네.”

이준과 흑치웅이 동룡도로 돌아오자, 촉이 장로가 나타나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준은 웃으며 촉이 장로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촉이 장로의 뒤에 서있는 두 노인에게 향해 있었다.

백색 의복을 입고 있는 두 노인에게서는 희미한 기운이 계속해서 퍼져 나오고 있었는데, 얼핏 보기에도 8성 이상의 실력을 가진 강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허허, 이들은 우리 용족의 장로들일세. 그동안 동룡도 밖의 허공에서 수련을 하다가 용황 대인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동룡도로 돌아왔지.”

이준이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 촉이 장로가 웃으며 그들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이준은 아주 공손하게 그들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그러자 두 노인 역시 환히 웃으며 두 손을 모아 예를 표했다.

“이준 도련님!”

이준과 촉이 장로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아래쪽에서 환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청색 옷을 입은 소녀 하나가 이준의 앞에 나타났다.

“예린아, 수련은 끝난 거야?”

“네. 장로님들이 도와주셔서 고대 하늘 뱀의 영혼을 무사히 흡수할 수 있었어요.”

“허허, 이제 하늘 뱀의 영혼이 멋대로 날뛰는 일은 없을 것이네.”

촉이 장로가 웃으며 덧붙였다.

예린을 바라보던 이준은 그녀의 기운이 예전보다 강해졌음을 느끼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6성 투존?”

예린은 놀란 이준의 얼굴을 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뱀의 눈을 가진 데다가 고대 하늘 뱀의 영혼까지 흡수했으니 이 정도 실력을 갖게 되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지.”

촉이 장로가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이준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천지의 불꽃을 통해 빠르게 실력을 높이고 있었지만, 투존 수준에서 한 번에 다섯 단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뱀의 눈이라는 것이 얼마나 진귀한 보물인지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저 상태에서 뱀의 눈을 사용한다면 7성 투존에게도 맞설 수 있겠는걸. 게다가 뱀의 눈 안에 봉인된 강자들도 더욱 강해져 있겠지.’

이준은 부럽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다시 촉이 장로에게 시선을 돌렸다.

“촉이 장로님, 보람은 아직 안 나왔나요?”

“아직 일세. 언제 나올 지는 나도 모르지만 아마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하실 거다.”

촉이 장로가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말하자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이미 이곳에서 제법 오래 머물렀으니, 스승님이 걱정하고 계실 것 입니다.”

촉이 장로는 고룡도를 떠나겠다는 이준을 굳이 붙잡지 않았다. 곧 있으면 삼대 고룡도의 공격이 있을 것이니, 계속해서 이곳에 머무르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 어서 가보게. 그리고 이 공간 옥패를 가지고 있다가 위험한 순간에 사용하게. 그럼 이 안에 있는 힘이 공간 통로를 만들어 자네를 데리고 올 걸세.”

촉이 장로는 저장 반지에서 은색 옥패를 꺼내 건네주며 말했다.

이준은 촉이 장로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그 옥패를 받아 자신의 저장반지 안에 넣어두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앞으로 또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제힘이 닿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준이 촉이 장로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고맙네. 성운각에 돌아가면 약선에게 안부 전해주고.”

촉이 장로 역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인사를 마치자, 흑치웅이 공간 통로를 만든 뒤 그 안으로 걸어들어가며 말했다.

“자, 가지.”

이준은 웃으며 촉이 장로를 비롯한 다른 용족의 강자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흑치웅과 함께 공간 통로 안으로 사라졌다.

* * *

녹음이 무성한 산 속, 텅 빈 하늘 위에 돌연 새까만 균열이 생겨나더니 세 개의 그림자가 그 안에서 걸어 나왔다.

“후…….”

이준은 끝없이 펼쳐진 넓은 산맥을 바라보다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숨을 내쉬었다.

어디를 둘러보나 텅 빈 암흑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고룡도에 있다가 오랜만에 하늘을 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동생, 여기서 북쪽으로 반나절 정도가면 성운각이네.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동룡도의 상황이 좋지 않으니 나는 먼저 돌아가 봐야겠네.”

흑치웅이 북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용족이 안정을 되찾으면 그때 다시 돌아와 영혼의 궁전 녀석들을 처리해주겠네.”

흑치웅이 가슴팍을 내리치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흑치웅 형님.”

이준의 감사 인사에 흑치웅은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공간의 균열 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그럼 우리는 성운각으로 돌아가자.”

흑치웅이 사라지자, 이준은 예린과 함께 웃으며 몸을 돌려 북쪽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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