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646화 (646/818)

646화. 용황

펑!

두 그림자가 강하게 부딪히는 순간, 허공에 새까만 구멍이 생겨나며 두 사람의 몸이 반대 방향으로 튕겨져 나갔다.

“반투성이 됐을 줄은 몰랐군…….”

만암이 비틀거리며 말했다. 그의 전신을 뒤덮고 있던 자주색 용비늘 중 대부분이 이미 산산이 부서져 사라진 상태였다.

반면 촉이 장로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숨을 고르고 있을 뿐이었다.

“촉이, 의미없는 저항은 그만 하지. 자네가 날 막을 수 있다 하더라도, 사대 고룡도 중 가장 약한 동룡도가 우리를 막아설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순순히 왕의 혈통을 내놓게.”

“흥! 나를 죽이지 않는 이상 왕족의 핏줄을 내려갈 수는 없다.”

“쯧쯧, 촉이, 그 놈의 고집은 여전하군.”

그 때, 허공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북룡도, 결국 왔구나!”

곧이어 텅 빈 허공에서 태양이 떠오른 것 마냥 눈부신 빛이 쏟아져 나오며 청색 의복을 입은 노인 하나가 나타났다.

“청염…….”

청염이라는 노인이 등장하는 순간, 촉이 장로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반투성에 투존 최고급 강자 둘이 몰려온 것을 보면 삼대용왕들이 마음을 먹어도 아주 단단히 먹은 듯 싶었다.

말없이 촉이 장로를 내려다보던 청염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보람이 있는 화산 방향에서 시선을 멈췄다.

“만암 장로, 촉이 장로는 자네가 막게. 왕의 핏줄은 내가 맡지.”

말을 마친 청염은 곧바로 공간을 가르고 사라졌다.

촉이 장로 역시 공간을 가르고 청염의 뒤를 쫓아가려 했지만, 만암이 순순히 보내줄 리가 없었다.

“만암!”

만암이 자신을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자, 촉이 장로 역시 버럭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내질렀다.

* * *

그 사이 청염은 이미 화산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거대한 약솥 앞에 앉아있는 이준을 발견하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과연 왕의 핏줄이구나. 저렇게 어린데도 벌써부터 혈통의 힘이 깨어나고 있어. 완전히 깨어나기 전에 반드시 북룡도로 데려가야겠군.”

하지만 그가 보람을 향해 몸을 날리려는 찰나, 철검존자가 빠르게 날아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죽고 싶구나! 감히 인간 따위가 용족인 나를 막아서?”

말을 마치기 무섭게 청염의 손에서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진 염력 폭풍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철검존자 역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철검을 높이 들어 아래로 내리쳤다.

쾅!

그러나 철검존자의 실력으로 반투성인 청염을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청염의 염력과 철검존자의 검이 맞부딪히는 순간, 철검존자의 몸이 저 멀리 튕겨져 나가며 그의 입에서 검붉은 선혈이 터져 나왔다.

“쯧쯧, 분수도 모르는 것 같으니.”

일격에 철검존자를 날려버린 청염은 코웃음을 치며 이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애송이, 화염을 거두거라.”

하지만 이준은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충혈된 눈으로 약솥을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었다.

“죽고 싶은 놈이 하나 더 있군.”

순식간에 이준의 곁에 나타난 청염은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바로 그때, 약솥 안에 누워있던 보람의 몸에서 눈부신 보라색 섬광이 터져 나왔다.

신비한 보라색 섬광이 몸에 닿는 순간, 청염의 영혼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보람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포스러운 에너지를 느낀 청염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내리치려던 손을 거두고 재빨리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쉭!

그 순간, 약솥 안에서 자주빛과 금빛이 터져 나오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청염의 몸을 강타했다.

쾅!

무시무시한 힘에 얻어맞은 청염은 그대로 새빨간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청염이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화산 입구에서 흑치웅과 몸싸움을 벌이던 하차익과 다른 강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약솥으로 향했다.

거대한 약솥 앞에는 보라색과 금색의 빛을 뿜어내는 그림자 하나가 서있었다.

그 그림자를 보는 순간, 용족의 강자들은 저도 모르게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드디어 진짜 왕이 나타났구나!”

흑치웅이 무릎을 꿇으며 중얼거렸다.

잠시 후, 눈부신 빛이 잦아들며 용과 봉황이 수 놓인 자금색 의복을 입고 있는 여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눈빛은 신비로운 자금색을 띠고 있었으며, 보라색 장발이 허리께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등 뒤에는 보통의 용족에게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거대한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봉황의 날개에 용족의 몸이라니……!”

그녀의 등 뒤에 돋아난 날개를 보는 순간, 흑치웅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용황 대인!”

심지어 동룡도의 강자들마저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한편, 하늘에서 이를 지켜보던 하차익과 청염 등 다른 강자들은 굳은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들은 오랜 기간 삼대 용왕을 따라왔고, 실력 역시 만만치 않았기에 다른 용족의 강자들만큼 보람의 힘에 강한 영향을 받고 있지는 않았다.

“하차익, 청염. 용황님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다니, 제 정신이냐!”

흑치웅이 고개를 돌려 청염을 향해 소리쳤다.

“허허…….”

흑치웅의 외침에 청염과 하차익은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다시 보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보람의 신비한 자금색 눈동자가 자신들을 향하는 순간, 삼대용왕에게서는 느껴보지 못 했던 강렬한 무형의 힘이 그들의 숨통을 조여 왔다.

“용황 대인을 만나 뵙습니다. 하지만 소인은 용왕 대인의 수하이니 향후 시간이 될 때 다시 알현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두 사람은 더 이상 견디지 못 하고 황급히 달아났다.

“네 이놈들!”

흑치웅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그들의 뒤를 쫓으려 하자, 보람이 손을 살짝 내저어 그를 제지하고는 가볍게 이준을 향해 날아갔다.

썩은 고목처럼 바닥에 쓰러져있는 이준을 보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주체할 수 없이 흔들렸다.

“먼저 쉬어, 고생했어.”

보람이 가볍게 손가락으로 이준의 이마를 누르자 자금빛 염력이 그녀의 손가락을 타고 이준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용황이시여, 이준은 지난 한 달간 한시도 쉬지 않고 수정층을 녹여냈습니다.”

흑치웅은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응. 알고 있어.”

보람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목소리와 눈빛에서는 자그마한 소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던 위엄이 가득 묻어나오고 있었다.

“이준이 잘 쉴 수 있도록 돌봐줘. 고룡도의 일은 나에게 맡기고.”

“예!”

보람의 명령이 떨어지자, 흑치웅은 곧바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준을 들쳐업고 다시 한 번 무릎을 꿇어 예를 갖췄다.

말을 마친 보람은 곧바로 하늘 위로 날아올라 눈부신 자금빛 섬광을 뿜어냈다.

그녀가 자신의 피에 잠든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순간, 고룡도 곳곳에 흩어져 전투를 펼치고 있던 용족의 강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몸 속의 피가 들끓는 것을 느꼈다.

“이, 이게 어찌된 일이지?”

“삼대 용왕에게도 느낄 수 없는 위력이야.”

“그렇다면 설마 용황인가?”

태양처럼 고룡도 전체를 비추는 자금빛 에너지에 닿는 순간, 만암의 손에 돋아났던 날카로운 발톱과 비늘이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정말 성공했다니…….”

멍한 눈으로 하늘 위에 떠있는 보람을 바라보던 촉이 장로는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 하고 털썩 무릎을 꿇으며 눈물을 흘렸다.

“용황님이 나타나셨다!”

곧이어 하늘, 땅, 산봉우리 위에 있던 수많은 용족의 강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용황이 나타난 이상 삼대 용왕이라 해도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겠군.”

만암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는 무릎을 꿇지 않았지만 먼 하늘 위에 떠있는 보람을 향해 깊숙이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오늘 일은 완전히 실패했다. 용황 대인이 동룡도에 있는 한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네.”

만암이 굳은 표정으로 하차익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서룡도, 북룡도, 남룡도에서 온 용족의 강자들은 지금 당장 동룡도를 떠나거라.”

곧이어 보람의 목소리가 온 하늘위에 울려 퍼졌다.

“조심하시게. 삼대 용왕도 용황대인이 용족을 다시 통일시키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진 않을 테니.”

만암은 촉이 장로에게 그 말을 남긴 뒤 함께 온 용족의 강자들을 이끌고 황급히 동룡도 밖으로 나갔다. 만암이 떠나니 다른 고룡도의 강자들 역시 앞다투어 동룡도를 빠져나갔다.

“돌아가서 삼대 용왕에게 용족에는 오로지 용황만이 존재할 뿐, 용왕은 없다고 전하라.”

서둘러 동룡도를 빠져나가는 용족의 강자들의 등 뒤에 다시 한 번 보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널따란 방 안에 햇빛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 바닥에 희미한 반점을 그려냈다.

침상 위에 누워있던 청년은 자신의 눈꺼풀 위를 간지럽히는 햇볕을 느끼며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기는…….”

침상에 걸터앉은 이준은 방 안을 둘러보며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분명히 자신은 보람을 살리기 위해 수정층을 녹이고 있었고, 이름 모를 용족의 강자가 자신을 덮쳤었다.

하지만 그 다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보람아!”

이준이 벌떡 몸을 일으키는 순간, 단단한 침대가 그대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당황한 이준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의 두 손을 바라봤다.

“이게 뭔 일이야?”

이준은 팔을 걷어 자신의 피부를 확인했다. 지금 그의 피부 아래에는 신비한 자금빛 에너지가 반짝 반짝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때, 닫혀 있던 문이 서서히 열리며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잠에서 깨어난 이준을 보곤 크게 기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준군, 드디어 깨어났군!”

“촉이 장로님…….”

이준은 안으로 들어온 노인과 흑치웅을 보곤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었다.

“허허, 그럴 필요 없네. 자네 덕에 우리 용족은 다시 통일될 수 있게 되었어!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군!”

“보람이는 어찌 됐습니까?”

“자네가 살렸지!”

이준의 질문에 촉이 장로는 환히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보람이는요? 지금 어디있죠?”

이준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용황 대인은 용황열매의 에너지를 아직 완전히 흡수하지 못해 다시 수련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게다.”

촉이의 설명에 이준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얼굴에는 약간 실망한 기색이 엿보였다.

“제 몸에도 변화가 있는 것 같아요.”

이준이 손으로 팔을 문지르며 말했다.

“허허, 눈치 챘는가? 용황 대인께서 자네의 몸에 용황의 힘을 나눠주셨네. 덕분에 그 날 복용한 용의 피가 활성화되며 자네의 몸에도 용의 힘이 깃든 것이지. 이제 자네의 몸은 투존급 마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걸세.”

그의 말에 이준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자신의 피부를 매만져 보았다.

“용황의 힘은 자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지. 몸속에 있는 에너지들을 활성화시켜 보게.”

촉이 장로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크흠…….”

이준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정신을 집중해 피부에서 느껴지는 낯선 에너지를 활성화 시키는 순간, 온 몸에 개미가 기어다니는 것 마냥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눈을 뜨자, 머리를 제외한 몸 전체에 용의 비늘이 돋아나 있었다.

“자네의 몸을 덮고 있는 비늘은 용비의라고 하는 것이네. 우리 용족이 가진 가장 특별한 힘 중 하나는 바로 모든 마수들 중에서도 가장 단단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 그리고 지금 자네가 가진 용비의는 모든 용비의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용황의 갑옷이라네.”

촉이 장로는 놀란 이준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껄껄, 이 용비의에 자네의 실력까지 더해진다면 구 천존, 마우라 해도 자네를 어쩌지 못할거야.”

이어지는 흑치웅의 말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어보았다. 그러자 손에서 전해지는 단단한 느낌이 더욱 또렷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굉장하군요.”

이 용황갑옷이 있다면 6성 투존 이하 강자들의 공격은 감히 그에게 어떠한 상처도 입힐 수 없을 것이고, 구 천존과 같은 강자를 만나도 목숨을 잃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