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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37화 (637/818)

637화. 화종을 향해

“스승님은 염력도 본래 자기 것이 아니니 그냥 돌려주려고 했어. 하지만 문제는 그 염력을 빼내면 스승님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지.”

“화종 종주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데?”

이준이 물었다.

“사실 그 사람은 정식 종주가 아니라 임시 종주야. 실력은 4성 투존. 하지만 골치 아픈 것은 그 여자가 아니라 그 여자의 약혼자지. 그 자의 실력은 6성 투존 정도야.”

나설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6성 투존이라…….”

이준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

“진율희는 화 할머니의 염력을 이어받았는데도 그들의 상대가 될 수 없는 거야?”

“그 엄청난 염력을 스승님이 그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모두 흡수시킬 수 있겠어.”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화 할머니가 생전에 뭔가 조치를 취해두셨는지 장로님들이 스승님의 편이라는 거야. 그래서 그 여자도 강제로 스승님의 염력을 빼앗지는 못 했지. 하지만 얼마 전에 스승님에게 대결을 요구했다는 거야. 문제는…….”

그녀는 이 대목에서 잠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준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화종에는 이상한 규칙이 있어서, 이런 대결에는 남녀가 짝을 이뤄 출전해야해.”

나설아는 씁쓸하게 웃으며 설명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준이 놀란 듯 눈을 치켜뜨며 되물었다. 남녀가 짝을 이뤄야 한다는 것도 웃기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상대가 각각 4성과 6성 투존의 실력을 가졌다는 점 이었다.

“난 스승님에게 너에게 도움을 청해보자고 했지만, 스승님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럴 수는 없다고 하셨어. 그래서 스승님 몰래 내가 널 찾아온 거야. 만약 네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스승님은 목숨을 잃고 말거야. 우리 스승님 좀 도와줘.”

나설아의 간곡한 부탁에 이준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합이 얼마나 남았는데?”

“한 달…….”

“한 달이라‥…. 화종에서 진율희를 노리는 것은 그 종주뿐이야? 다른 강자들은? 화종도 오래된 대종파이니 분명 숨겨진 강자들이 있을 거야. 그들도 진율희를 노리고 있는 거야?”

이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만일 화종 전체에서 진율희를 받아들이지 않는 거라면 이 일을 해결한다고 해도 그곳을 떠나지 않는 이상 좋게 끝날 수 없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니, 선배 강자들은 대부분 화종 내의 일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은거한 채 수련에 집중하고 있어. 만일 그 분들이 종 내에 있다면 그 여자가 대리 종주로 있지도 못했을 거야. 다른 장로들은 대부분 화 할머니 편이고. 그 여자만 문제야.”

나설아가 말했다.

“그렇군.”

이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대가 4성 투존 하나라면 충분히 해볼만한 대결이었다.

“가고 싶으면 다녀오너라.”

그 때, 어느새 방안에 들어온 약로가 이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스승님?”

이준은 멈칫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진율희와의 관계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을만큼 복잡하게 꼬여 있었지만, 이렇게 죽게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설아는 약로를 보고 어쩔 줄 몰라하며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화옥 그 할멈도 가버렸구먼.”

약로가 나설아를 쳐다보다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스승의 말에 이준은 곧바로 ‘화옥’과 ‘화 할머니’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스승님, 그 분을 아십니까?”

“그 할멈은 나보다 더 일찍 세상에 이름을 알렸지. 실력도 대단하고, 재능도 출중해 비슷한 세대 중에서는 따라갈 자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성미가 고약해서 적이 많은 게 문제였지. 두 다리가 잘린 건 분명 내가 영혼의 궁전에 잡혀가고 나서 일어난 일일 게다. 그렇게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면 일찍 떠날 일도 없었을 터인데…….”

약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 할멈은 사람을 쉽게 믿지 않아 한평생 제자를 두지 않던 사람인데, 진율희는 정말로 운이 좋구나. 죽을 때가 되면서 그 할멈도 마음이 약해진 게지. 어찌됐든 지금 네 실력이라면 4성 투존 정도는 어렵지 않을게다. 하지만 그녀의 약혼자인 6성 투존은 만만치 않을 거야. 그 사내의 이름은 아마도 요화군자일 것이다.”

말을 마친 약로는 곧바로 새하얀 옥패 하나를 꺼내 이준에게 건넸다.

“이건 내가 만든 공간 옥패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이걸 깨트려라. 그럼 내가 바로 널 찾아갈 것이다. 화종의 장로들도 내 도움을 받은 적이 있으니 그들이 있다면 그 여자도 널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스승이 건넨 옥패를 받은 이준의 얼굴에서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참으로 오랜만에 누군가가 자신의 뒤를 지켜주고 있다는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는 예린이만 데리고 갈게요. 천화존자 선생님과 아라는 수련에 들어가 있으니 방해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이준이 말했다. 현재 그의 실력이라면 7성 투존 강자를 만나도 순조롭게 빠져나올 수 있고, 예린도 1성 투존이지만 고대 하늘뱀을 소환하면 6성 투존 강자와도 맞설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천화존자는 이곳에 있는 게 좋겠구나. 마침 그의 실력을 되찾아주고 아라의 재난독체를 안정시켜주려고 했다. 네가 봉인을 잘 해놓기는 했지만, 조금만 더 손을 보면 더 안전하게 많은 힘을 끌어낼 수 있을게다.”

“그럼 너무 좋죠.”

이준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약로라면 천화존자의 실력을 회복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재난독체 문제 역시 자신보다 경험이 풍부한 약로가 더욱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에 화종에 가게 된다면 가능한 진율희를 종주 자리에 앉히거라. 그녀가 화종의 종주가 된다면 성운각과도 동맹을 맺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 때, 모기 같이 작은 목소리가 이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이준은 말없이 웃음으로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진율희의 성격으로 봤을 때 그녀가 화종의 종주가 되려 할지는 다소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럼 어서 움직이거라. 시간이 없구나.”

약로가 웃으며 말했다.

“예.”

이준이 고개를 끄덕이고 응접실을 빠져나가자 나설아 역시 약로를 향해 공손히 예를 표하고 그의 뒤를 빠르게 쫓아갔다.

방을 나온 이준은 곧바로 예린을 불러 나설아와 함께 화종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화종은 중주 서북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성운각과는 꽤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세 사람의 속도로도 십 여일이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 * *

아득히 먼 하늘 위에서 검은 색 그림자가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공간이 왜곡되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준 일행은 예린이 소환한 고대 하늘 뱀의 등 위에 올라탄 채 화종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동을 하는 내내 이준은 눈을 감고 스승에게 물려받은 얼음 불꽃의 정수를 길들이고 있었다.

얼음 불꽃의 정수 안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냉기와 천지의 불꽃 특유의 열기가 공존하고 있었고, 두 힘이 결합되어 더욱 폭발적인 위력을 낼 수 있었다. 이 불꽃을 길들이는데 성공한다면 그의 실력은 또 한 번 크게 진보할 수 있었다.

* * *

그렇게 고대 하늘 뱀의 등에 탄 채 얼음 불꽃의 정수를 길들이기를 열흘, 돌연 이준의 미간에서 영롱한 빛이 눈부시게 뿜어져 나왔다가 다시 그의 몸 안으로 흡수되었다.

이 갑작스런 현상에 나설아와 예린은 반사적으로 이준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그녀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준의 눈동자에서 새하얀 화염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준의 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새하얀 화염은 한참동안 불타오르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후…….”

탁한 공기와 함께 숨을 내뱉는 이준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고작 십 여일 만에 얼음 불꽃의 정수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기에 기쁨이 더욱 컸다.

다만 얼음 불꽃의 정수를 삼천불꽃과 융합시키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몰랐기 때문에 화종으로 향하는 길에 융합 작업까지 마칠 수는 없었다.

생각을 마친 이준은 곧바로 예린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해?”

“2일 정도만 더 가면 돼요. 이미 서북부 지역에 들어왔으니 얼마 안 남았어요.”

“알았어. 예린아, 속도를 내줘. 최대한 빨리 화종에 도착해야 해.”

예린이 가볍게 웃으며 작은 손으로 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자, 하늘 뱀이 더욱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기 시작했다.

* * *

3일 후, 이준 일행의 눈앞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설아는 사방을 둘러본 뒤 저장 반지에서 꽃잎 모양의 작은 표식 하나를 꺼내 내던졌다.

그러자 표식이 허공에 스며들며 거대한 공간 장벽이 나타났다.

“이렇게 큰 공간 장벽이 있었구나.”

이준은 놀란 눈으로 공간장벽을 바라보았다. 화종은 스스로 이공간을 만들 만 한 능력은 없었지만, 이 정도 규모의 공간 장벽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의 실력은 결코 만만하다고 볼 수 없었다.

공간 장벽에 기다란 틈이 생겨나자, 예린은 하늘 뱀을 다시 자신의 눈 안에 봉인한 뒤 두 사람의 뒤를 따라 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간 장벽으로 들어가는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더니 짙은 꽃내음이 콧속 가득 퍼져나갔다.

“정말 신기한 곳이야…….”

이준은 공간 장벽 뒤에 숨겨진 세계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느새 그들의 눈앞에는 거짓말처럼 화려하고 거대한 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너무 예쁘다!”

예린이 꽃이 만발한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종의 결계 같은 건가?”

이준의 말에 나설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이건 화종의 결계야. 길을 모르는 사람이 이 안에 들어오면 영원히 꽃밭을 헤매게 되지. 게다가 여기에 피어있는 꽃들은 모두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거나 영혼 탐지 능력을 약하게 하는 것들이라 투존이라 해도 길을 모르면 화종을 찾을 수 없어.”

그 때, 어디선가 희미한 종소리가 서서히 울려 퍼졌다.

“이 종소리는……. 시합이 곧 시작하겠어. 빨리 가자. 절대로 내 뒤에서 떨어지면 안돼.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게 될 거야.”

나설아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한 뒤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이준과 예린은 잠시 멈칫하다 이내 나설아의 뒤를 따라 빠르게 날아갔다.

* * *

꽃밭 끝에는 안개에 가려진 웅장한 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험준한 산봉우리 위에는 건축물들이 가득했고, 그 안에서는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산의 정상에는 청색 바위로 만들어진 거대한 광장이 놓여있었는데, 그 주변은 온통 꽃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광장 중앙에는 남녀 한 쌍이 서있었다. 금색 실로 재봉한 꽃무늬가 가득한 은색 의복을 입은 여자는 한 눈에 봐도 지위가 낮지 않아 보였다.

여자의 곁에는 미인도가 수놓인 종이부채를 든 사내 하나가 서있었다. 사내의 미간에는 음험한 기운이 풍겨 나오는 붉은 점이 하나 찍혀 있었다.

“진율희. 시간이 다 됐다. 어서 나와라!”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은색 의복을 입은 여자가 소리쳤다.

곧이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하얀 옷을 입은 여자 하나가 광장 위에 가볍게 착지했다.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나타나는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화종의 장로들 역시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시선이 진율희에게 향하자 은색 의복을 입은 여자는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흥, 정말로 왔군. 겁 없는 것 같으니.”

“종주님. 전 종주 자리에 관심이 없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

진율희의 말에 여인은 더욱 불쾌하다는 듯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 그럼 전 종주가 남긴 염력을 당장 내 놓거라. 좋은 마음으로 너를 거두었더니 네가 감히 화종의 종주 자리를 탐내?”

“화 할머니께서 화종의 전임 종주라는 것을 모르고 한 일입니다.”

“하, 어디 그런 뻔한 거짓말을. 날 아주 우습게 보는구나.”

은색 의복을 입은 여자가 진율희를 노려보며 외쳤다.

“어찌됐든 이 자리에 나타났다는 것은 대결을 수락한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날 원망하지 말아라! 본래 화종의 규칙대로라면 남녀가 짝을 이루어야 하지만 남자를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은 너이니 이대로 대결을 진행하도록 하지!”

그녀의 말에 많은 장로들은 눈썹을 찌푸렸다.

하지만 정작 진율희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눈 깜짝 할 사이에 진율희 옆에 검은 옷을 입은 사내 하나가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그가 진율희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늦게 온 거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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