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5화. 투성의 문턱, 반투성
몸을 되찾은 스승의 실력을 느낀 이준은 미친 듯이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뒤쪽으로 물러났다.
“약선, 네가 실력을 되찾았다고 해서 우리 영혼의 궁전의 상대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냐?”
구 천존은 물러서는 이준을 붙잡고 싶었지만, 차마 함부로 몸을 움직이지 못 하고 입을 열었다.
“하하하, 나 혼자 영혼의 궁전에 맞설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네 놈이 내 상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약로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이 곳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나의 하나 밖에 없는 제자를 해쳤으니, 당연히 그만한 각오는 되어 있겠지?”
“내가 무서워할 줄 아는가!”
구 천존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더니 돌연 차가운 기운을 내뿜는 거대한 마수가 나타나 약로를 덮쳤다.
하지만 약로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공간이 일그러지며 푸른 마수의 몸이 그대로 반 토막이 나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쾅!
곧이어 천지 에너지가 강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투명한 손이 공간을 뚫고 구 천존을 향해 달려들었다.
위험을 감지한 구 천존은 빠르게 인을 맺어 새파란 물장막을 만들어 냈다.
거대한 무형의 손이 커다란 물장막에 부딪히자, 엄청난 진동이 온 하늘에 퍼져 나갔다.
펑!
그러나 단단해보이던 파란색 물장막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굉음을 내며 폭발을 일으켰고, 구 천존의 입에서는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나왔다.
한편, 이를 지켜보고 있던 강자들은 약로를 알아보고 경악을 금치 못 하고 있었다.
“저, 저 사람은 약존자, 약선? 정말 살아있던 거야?!”
“약선은 이미 죽지 않았던가?”
“약선이 실력을 회복했으니 성운각의 이번 위기도 해결이 되겠구려. 게다가 약존자가 있다면 성운각은 세 협곡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강해질 것이오.”
“…….”
많은 사람들은 복잡한 표정으로 서로 수군거리기 바빴다. 중주 최고의 연금술사로 불리던 약존자, 약선이 중주에 나타난 것은 그야말로 중주, 아니 투기 대륙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을만한 소식이었다.
* * *
한편, 이준의 하늘 요괴와 예린은 각각 흑백 천존을 상대로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예린과 백 천존이 대결을 벌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 이준은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섬뜩한 기운을 느끼고는 곧바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건 고대 하늘 뱀의 기운이군.”
그녀는지금 고대 하늘 뱀의 영혼의 힘을 빌려 백 천존을 상대하고 있었다.
“흑백 천존만 해결하면 이제 큰 위험은 다 사라지겠군. 풍 스승님과 아라라면 다른 혼전 강자들을 가뿐히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예린이 백 천존을 상대로 미세하게나마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준은 곧바로 흑 천존을 상대하고 있는 요괴 군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성운각의 투존들이나 장로들은 아직 무사했지만, 이미 성운각 제자들의 상당수가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한시라도 빨리 흑백 천존을 정리해야 더 이상 제자들이 죽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바로 그때, 흑백 천존의 머리 위에서 거대한 두 개의 주먹이 떨어져 내렸다.
“으윽!”
거대한 주먹이 흑백 천존을 강타하는 순간, 두 천존은 모두 피범벅이 되어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놀란 이준이 고개를 돌려보니 저 먼 곳에서 자신의 스승이 손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약로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하늘에서 거대한 주먹이 떨어져 내리며 지면에 있던 영호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자신을 눈앞에 두고도 여유롭게 두 명의 천존과 영호들을 짓이기는 약로의 모습에 구 천존은 사색이 되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약선! 네 이놈!”
분노한 구 천존이 번개 같은 속도로 인을 맺자, 천지의 에너지가 미친 듯이 요동치며 거대한 공간의 균열이 생겨났다. 그가 만들어 낸 거대한 균열에서는 뼈까지 얼려버릴 듯한 냉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팔 천존‥….”
그 광경을 바라보던 약로가 미간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공간균열이 서서히 커지더니 서늘한 기운과 함께 새하얀 옷을 입은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 천존. 공간 옥패를 사용하다니, 의외요.”
새하얀 옷을 입은 노인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앞을 보시오!”
구 천존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의 말에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공간의 균열에서 걸어 나온 노인은 머리카락부터 피부, 심지어 두 눈까지 모두 눈처럼 새하얀 색을 띠고 있었다.
“약선인가…….”
약선을 발견한 노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실력을 회복한 것인가?”
“구 천존으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자네까지 오다니, 영혼의 궁전에서 준비를 아주 단단히 한 모양이군.”
약로가 싸늘한 눈빛으로 팔 천존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쩐지……. 자네 혼자만으로 감당하기 힘들 만하군.”
팔 천존이 새하얀 눈썹을 움찔거리며 멀리 도망가 있는 혼전 강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 막 몸을 되찾아 아직 완전히 회복하진 못 했을 거요. 나와 당신이 힘을 합치면…….”
“저 영감을 너무 얕보는 거 아니오?”
팔 천존이 구 천존의 말허리를 자르며 말했다.
“왜, 두렵소? 이번 임무는 우리 두 사람이 책임자요. 실패하게 된다면 벌을 받는 것도 우리란 말이오.”
구 천존이 팔 천존을 노려보며 말했다.
“게다가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약선에게 당했던 굴욕을 되돌려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소?”
팔 천존은 새하얀 수염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함께 움직이도록 하지. 나도 이제 막 몸을 되찾은 약선이 그때처럼 대단할지 궁금하구려.”
“걱정 마시오. 우리가 힘을 합치면 9성 투존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오.”
구 천존이 매서운 눈을 번득이며 웃었다.
곧이어 그의 손에서 엄청난 파동이 확산되더니 온 하늘에서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이준은 그 빗방울 하나하나가 강한 산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정도 힘이라면 1성 투황 정도는 빗속에 서 있는 것만으로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단 한 방울에서도 이런 파괴력이 느껴지는데, 하늘을 뒤덮은 이 빗방울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힘을 갖고 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 * *
한편, 이준과 멀리 떨어진 곳에 떠있는 약로는 아주 평온한 얼굴로 구 천존의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약로의 몸에는 마치 보이지 않는 우산이 씌워진 것 마냥 단 하나의 빗방울도 닿지 못하고 있었다.
“합!”
바로 그때, 구 천존의 입에서 힘찬 기합 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온 하늘을 뒤덮은 빗줄기가 하나로 뭉쳐 거대한 구체로 변화했다.
거대한 수구(水球)에서 느껴지는 강한 에너지에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집어삼켰다. 만일 이 수구(水球)가 폭발한다면 이 산맥이 통째로 날아갈지도 몰랐다.
곧이어 팔 천존이 얼음 염력을 끌어 모아 수구 위에 덧씌우기 시작했다.
얼음 염력이 덧씌워지자 거대한 수구가 커다란 얼음 구체로 변하며 더욱 섬뜩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이거 판이 너무 커졌는걸.”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강자들은 창백한 얼굴로 천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저 에너지가 한 번에 폭발하게 된다면, 산맥은 물론 자신들마저 이곳에 파묻히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성운각 안에 있던 풍존 역시 굳은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약선, 그때는 내가 졌지만, 오늘은 다를 것이다.”
모든 염력을 쏟아낸 팔 천존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약로는 놀라기는커녕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두 천존을 바라볼 뿐이었다.
“흥! 언제까지 그렇게 여유로운지 보자!”
여유롭기 짝이 없는 약로의 태도에 구 천존은 곧바로 혀를 깨물어 새하얀 얼음 구체 위에 자신의 피를 뿌렸다.
“죽어라!”
곧이어 거대한 얼음 공이 빠르게 진동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약로를 향해 돌진했다.
붉은 빛이 감도는 얼음 공이 구를 때마다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공간이 일그러졌고, 새카만 균열이 일어나며 공간이 무너졌다.
“이 공격을 각주님이…… 막을 수 있을까?”
이미 달아나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성운각 제자들은 약로가 이 공포스러운 무투기를 막아주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자리를 지켰다.
“오늘 너와 성운각을 모두 끝장내주마!”
구체 모양의 얼음 공이 백 미터 가까이 접근하자, 약로가 드디어 손을 들었다.
“멈춰라!”
그 순간, 약로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 한 마디에 고속으로 회전하던 얼음 공이 그대로 우뚝 멈춰 섰다.
이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두 천존은 물론이고 황급히 달아나던 다른 강자들마저 모두 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8성 투존 둘이 모든 힘을 쏟아 부어 만든 무투기를 어떻게 말 한마디로 멈춰 세울 수 있단 말인가!
“지금은 온 힘을 발휘할 수 없지만, 자네들 두 사람을 상대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네.”
곧이어 약로가 거대한 얼음 공 위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지금의 난, 투존이 아닌……. 반투성이니까.”
반투성이라는 세 글자에 영혼의 궁전의 두 천존은 멍한 표정으로 거대한 얼음공을 잡고 있는 약로를 바라봤다.
반투성이란 투존도 투성도 아닌 상태로, 투존 최고급 수준을 넘어서기는 했지만 아직 완벽한 투성이 되지 못한 자를 일컫는 말 이었다.
오랜 시간 투제들이 탄생하지 않게 되면서 현재 투기대륙의 최고 강자는 사실상 투성과 반투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투존 역시 투기 대륙의 최상위층 강자라고 할 수 있었지만, 모든 투사들의 정점에 선 존재인 투성에 비할 수는 없었다.
구 천존과 팔 천존 역시 투성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일생을 모두 바쳤음에도 결국 투존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몸을 잃고 영혼체가 되어 영혼의 궁전에 붙잡혀 있던 약로가 반투성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반투성이라니…….”
성운각 내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약로를 향했다. 거대한 얼음공 옆에 서있는 약선의 모습은 개미만큼 작았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의해 그의 몸은 얼음공보다도 더 거대해 보였다.
“하하! 정말 반투성이 되다니……!”
넋을 놓은 채 그를 바라보던 풍존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성운각에 반투성이 나타나다니!”
얼음공을 보고 달아났던 수많은 강자들 역시 자리에 멈춰선 채 약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반투성이 나타났으니 이제 성운각의 지위는 사대각의 다른 세력들과 비교할 수 없는 위치에 올랐다고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영혼의 궁전이라 해도 더 이상 함부로 성운각을 건드릴 수 없었다.
중주 최고의 세력이라 해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의 상징, 그것이 바로 반투성인 것이다.
산봉우리 위에 있던 이준 역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최고의 재료들만을 고르고 골라 몸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스승이 반투성이 되리라는 것은 그 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 * *
아득히 먼 하늘 위에 서있던 약로는 먼 곳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구 천존을 보며 얼음공을 잡고 있던 손에 서서히 힘을 쥐었다.
우직!
그러자 얼음공이 마치 거대한 손에 붙잡힌 것처럼 일그러지더니 이내 굉음을 일으키며 산산이 폭발했다.
얼음공이 박살나는 순간, 거대한 에너지가 폭풍처럼 터져 나오며 주위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거대한 산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을만한 힘을 가진 얼음공을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약로의 힘 앞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윽!”
얼음공이 사라지는 순간, 두 천존의 입에서 새빨간 선혈이 터져 나왔다.
“반투성…….”
구 천존의 얼굴은 분노와 질투로 인해 흉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반투성이니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 해도 승리를 거둘 가능성은 손톱만큼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