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4화. 1격 무투기
“죽여라!”
싸움이 시작되기 무섭게 적성은 이준을 향해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이번엔 반드시 네 녀석을 잡아 전주님에게 바치도록 하겠다!”
그와 동시에 흑백 천존 역시 무시무시한 염력을 내뿜으며 성운각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곧 눈부신 빛을 내뿜는 요괴 군단이 튀어나와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섰다.
“요괴로군. 내게 맡시기오.”
흑 천존이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하늘 요괴 군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겠소!”
백 천존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방향을 틀어 성운각의 제자들을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그마한 여자 아이 하나가 나타나 그의 앞을 막았다.
“할아버지는 저랑 놀죠.”
연약해 보이는 작은 소녀가 자신의 앞을 막자, 백 천존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그 순간, 예린의 비취색 눈동자 깊은 곳에서 검은 점 세 개가 반짝이더니 청록색 꽃이 되어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했다.
“뱀의 눈?”
예린의 눈동자를 알아본 백 천존은 당황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맞아요.”
예린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온 신비한 빛이 백 천존의 염력을 모조리 흩어버렸다.
“흥. 확실히 진귀한 눈이기는 하다만, 나를 막기에는 아직 실력이 부족한 것 같은데?”
“그건 모르죠.”
* * *
쾅!
백 천존과 예린의 싸움이 시작될 무렵, 이준과 적성 역시 서로를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두 사람의 주먹이 맞부딪힐 때 마다 거대한 파문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2성 투존이 된 이준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적성은 이준과 싸울 때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자신을 피해 쥐새끼마냥 도망다니기 바빴던 애송이가 이제는 정면에서 자신과 맞서고 있으니, 오늘 이 자리에서 이준을 죽이지 못 한다면 다음번에는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반면 자신의 실력이 이미 적성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확인한 이준은 한결 여유로운 태도로 싸움에 임하고 있었다.
* * *
한편, 성운각의 결계 밖에서는 소문을 듣고 몰려든 강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으며 두 거대 세력의 전쟁을 지켜보고 있었다.
“제 아무리 성운각이라도 영혼의 궁전의 상대가 될 수 있을까?”
“성운각이 사라지게 된다면 사대각 빈자리는 우리 류운각이 차지하게 될지도 모르지.”
“쳇, 류운각이 사대각에 오르면 그 다음 날 사라지고 말 것이오.”
“뭐라고?!”
“시끄럽소. 괜한 소란 피우지 말고 결과를 지켜봅시다.”
하지만 자리에 있는 강자들 중 대부분은 영혼의 궁전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풍존이나 성운각과 친분이 있는 투존이나 투종들도 제법 있었지만, 감히 싸움에 끼어들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들이 손을 보탠다고 해도 성운각을 구할 수는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섣불리 이 전쟁에 끼어들었다가는 성운각의 강자들과 함께 영혼의 궁전에 의해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그 시각, 뒷산 석탑 안에 누워있던 약선의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쾅!
이준과 적성이 맞붙으며 생겨난 폭발로 하늘 위에 떠있던 구름마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준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본 적성은 분노를 참지 못 하고 부득 부득 이를 갈았다. 명색이 영혼의 궁전의 천존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새파란 애송이 하나 처리하지 못하니 못내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한편, 이준은 적성과 싸우면서도 수시로 눈을 돌려 성운각의 제자들과 장로들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장로들 중에는 아직 목숨을 잃은 자가 없었지만, 성운각의 제자들 중에는 이미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되겠어. 최대한 빨리 이 영감을 처리해야 해.’
생각을 마친 이준은 번개 같은 동작으로 염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연금비약들을 꺼내 전부 입 속으로 털어 넣은 뒤 적성을 바라보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곧이어 이준의 오른 손에서 눈부신 황금색 섬광이 터져 나왔다.
적성 역시 이준이 무투기를 시전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준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투기는 그 괴상한 불연꽃이었다. 그 무투기가 언제 나올 지만 알고 있다면 이준은 결코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지금 여기서 5성 투존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지!”
상대가 자신의 팔을 날려버린 무투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 적성은 곧바로 새까만 안개를 응집시켜 흉흉한 빛을 내뿜는 검은 장검으로 변화시켰다.
“파괴의 검!”
장검을 손에 든 적성이 인을 맺으며 염력을 회전시키자, 날카로운 검 끝에 기이한 빛이 감돌며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죽어라!”
적성이 검을 휘두르는 순간, 공간이 일그러지며 섬뜩한 검은 빛이 이준을 향해 날아들었다.
‘파괴의 검’은 적성이 가진 최강의 무투기로, 중주에서 이름난 수많은 강자들을 흙으로 돌려보낸 기술이었다.
그 순간, 이준의 오른손에서 뿜어져 나오던 황금빛이 더욱 눈부신 빛을 내뿜다가 돌연 새카만 구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죽음의 광단!”
쾅!
곧이어 이준의 손을 떠난 검은 광단이 빠른 속도로 팽창하며 적성의 무투기와 맞부딪혔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품은 두 무투기가 충돌을 일으켰음에도 아무런 폭발도 일어나지 않았고, 적성의 무투기가 거짓말처럼 이준의 검은 광단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공간 결계 밖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수많은 강자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조차 지르지 못 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광단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중주에서도 이름난 무투기인 ‘파괴의 검’을 소리도 없이 집어삼킬 수 있는 무투기가 존재했단 말인가!
놀란 것은 적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는 자신과 이준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보다 몇 배는 더 놀라고 있었다.
“죽음의 광단? 어떻게 네 놈이 그 무투기를!”
적성 역시 고적에서 죽음의 광단을 직접 목격했었기 때문에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1격 무투기가 어떻게 이준의 손에 있단 말인가!
“그 갈비뼈에 있던 거구나!”
그 순간, 적성의 머릿속에 이준이 해골에서 갈비뼈를 뜯어가던 장면이 스쳤다.
“이 교활한 자식 같으니라고!”
당황한 적성은 새파랗게 질린 채 황급히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도망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러나 이준이 픽 웃으며 주먹을 쥐자, 검은 색 광단이 더욱 빠른 속도로 팽창하며 주위에 있는 것들을 모두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자신의 발치까지 다가온 검은 색 광단을 마주한 순간, 적성은 온 몸의 털이 거꾸로 서는 것만 같은 공포를 느꼈다.
“안 돼!”
적성은 미친 듯이 검은 광단을 향해 공격을 퍼부어 댔지만, 흉흉한 빛을 내뿜는 검은 구체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파도처럼 소리없이 그의 염력을 집어삼키며 더욱 빠르게 팽창할 뿐이었다.
“구 천존, 살려주시오!”
바로 그때, 적성의 목구멍에서 절박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적성의 외침에 이준의 머릿속에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5성 투존인 적성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정도의 강자가 이곳에 와있단 말인가?
“쓰레기 같은 녀석. 천존이라는 이름이 아깝구나!”
검은 광단이 적성을 완전히 덮치던 그때, 적성의 뒤에서 파란 옷을 입은 사내 하나가 걸어 나왔다. 그러자 갑자기 주위의 공기가 축축하게 변하며 추적추적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준의 등 뒤에서 축축하게 식은땀이 베어 나왔다. 염력으로 기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실력이라면 최소한 7,8 성 투존 정도는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구 천존, 살려주십시오!”
파란 옷을 입은 남자는 이준을 한 번 쳐다보곤 눈썹을 찌푸린 채 빠르게 다가오는 광단을 바라보았다.
“1격 무투기를 갖고 있다니, 참으로 부럽구나.”
곧이어 하늘에서 떨어지던 빗방울이 빠르게 모여 들어 적성을 집어삼키려던 검은 구체를 잠시 막아냈고, 그 사이 파란 옷을 입은 노인이 번개처럼 적성을 낚아 채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으아악!”
그 순간, 적성의 입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검은 광단과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푸른 옷의 노인은 적성의 다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적성의 두 다리는 이미 검은 광단에 의해 깨끗하게 잘려나간 뒤였다.
“대단한 위력이야…….”
5성 투존인 적성의 다리를 단번에 잘라낸 무투기의 위력을 확인한 파란 옷의 노인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더욱 빠르게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가 속도를 높이는 것과 동시에 검은 광단 역시 더욱 빠르게 팽창하며 적성의 허리를 지나 그의 가슴을 집어삼켰다.
“으아아악!”
그 순간 적성의 입에서 처참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결국 검은 광단은 적성의 숨통을 끊어 놓고 나서야 서서히 사라졌다.
파란 옷의 남자는 그제야 자리에 멈춰 차가운 눈빛으로 검은 광단 중심에 있는 이준을 노려봤다.
“이현의 후손답구나. 하지만 어째서 그 나이에 투존이 될 수 있었지? 설마 이씨 가문의 피에 남아있던 힘이 다시 깨어나기라도 한 것이냐?”
파란 옷의 사내가 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준은 아무런 대답 없이 상대를 노려볼 뿐이었다.
“쯧쯧, 보아하니 이씨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모르고 있는 모양이구나. 걱정 말거라. 영혼의 궁전에 끌려가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말을 마친 구 천존은 피식 웃으며 얼굴과 어깨만 남은 적성의 시신을 집어던졌다.
구 천존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적성의 몸이 꽁꽁 얼어붙었다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적성은 이미 여러번 임무에 실패해 죽음으로 그 죄를 갚아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 따위가 영혼의 궁전의 천존을 죽여도 된다는 것은 아니지.”
구 천존이 섬뜩한 빛을 내뿜는 파란 눈으로 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구 천존의 몸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이준 역시 빠르게 봉황의 날개를 펼쳐 반대쪽으로 몸을 날렸다.
“내가 말 하지 않았느냐, 이런 건 다 소용 없다고.”
그러나 구 천존의 몸은 어느새 이준의 코 앞에 나타나 있었고, 사방에서 날카로운 얼음 가시가 이준의 목줄기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이준은 굳은 표정으로 자갈색 화염을 소환해 구 천존의 얼음 가시를 막아냈다.
상대가 천지의 불꽃을 사용해 얼음 가시를 막아내자, 구 천존이 담담한 표정으로 얼음에 뒤덮인 주먹을 내질렀다.
펑!
8성 투존의 주먹에 얻어맞은 이준은 곧바로 피를 토하며 저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
“큭…….”
거대한 산 벽에 부딪히고 나서야 간신히 멈춰선 이준은 입가에 묻은 혈흔을 닦으며 피가 섞인 침을 뱉어냈다.
“자, 너는 나와 함께 영혼의 궁전으로 가야겠다.”
구 천존이 이준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바로 그때, 새하얀 그림자 하나가 이준과 구 천존 사이를 막아섰다.
“감히 내 제자에게 손을 대다니, 네 놈이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자신의 앞을 막아선 강자의 얼굴을 확인한 구 천존의 얼굴이 순간 딱딱하게 굳어갔다.
“약선? 네놈이 어떻게?”
약로의 몸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이 투명한 상태가 아니었다.
구 천존은 그에게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기운에 저도 모르게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우선 너는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거라. 이 자는 내가 맡으마.”
구 천존의 앞을 가로막은 약로는 담담한 표정으로 이준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그의 말에 이준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약로의 몸에서 느껴지는 힘은 구 천존이 아니라 흑치웅이라 하더라도 어찌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스승님의 진짜 실력이구나.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대단하네. 이 정도라면 거의 투성이나 다름이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