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2화. 완벽한 몸
날이 어두워지자 이준은 약로와 상의해 몸을 만들 날짜를 정한 뒤 방으로 돌아와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그는 하얀 갈비뼈 세 개를 꺼내들었다. 이 안에는 천상계 1격 무투기의 비밀이 숨겨져 있지만, 예린의 몸에 있는 독을 해독하느라 성운각에 돌아와서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 곧 영혼의 궁전과의 전쟁이 시작될 것이고, 1격 무투기는 그 전쟁에서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이 분명했으니, 하루라도 빨리 1격 무투기를 연구해야 했다.
투성 강자의 갈비뼈는 거친 감촉 없이 아주 완벽한 옥돌처럼 매끈거리고 미지근했다.
뼈 위에는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신기한 문자가 가득했다.
이준은 갈비뼈를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눈이 빠져라 들여다 보아도 그 이상한 문자들을 해독할 방법이 없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읽을 수가 없어…….’
한참 고민에 잠겨 있던 이준은 가만히 갈비뼈를 이마에 갖다 댔다. 영혼의 힘이 밖으로 퍼져 나와 갈비뼈로 다가갔지만, 갈비뼈와 닿는 순간 그대로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뼈 표면에는 봉인이 없구나.”
곧이어 이준의 몸에서 자갈색 화염이 피어 나와 새하얀 갈비뼈를 감싸고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천지의 불꽃으로 가열했음에도 불구하고 뼈에는 그을린 자국조차 남지 않았다.
‘대단한데…….’
이준은 마음의 안정을 유지한 채 계속해서 투성 강자의 뼈를 가열하며 두 눈을 감고 수련 상태에 들어갔다.
* * *
그렇게 반나절 정도를 불태우자, 투성 강자의 뼈에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본래 눈처럼 새하얗던 뼛조각은 어느새 노르스름한 색을 띠고 있었고, 그 안에서는 계속해서 은은한 파동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반나절 정도가 더 지나자, 단단한 뼈가 뜨거운 화염에 의해 녹아내리며 액체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준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고 화염 속을 들여다보았다. 화염 속에 있던 갈비뼈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황금색 액체가 허공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이……. 이건 봉인이 풀린 후의 모습인 건가.”
잠시 머뭇거리던 이준은 건조해진 공기를 들이마시며 화염 속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이 금빛 액체에 닿는 순간, 액체가 갑자기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하며 이준의 손을 완전히 감쌌다.
그 순간, 황금색 액체가 이준의 오른손을 점점 옥죄어오면서 뼈가 부러질 것만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으윽!”
당황한 이준이 손을 빼려는 찰나, 극심한 고통이 갑자기 눈 녹듯 사라지며 황금색 액체가 그의 몸 안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이준이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그의 머리가 지끈거리더니 눈앞이 온통 황금빛으로 뒤덮였다.
쾅!
머릿속에서 강한 폭발음이 울려 퍼지고 정신이 점점 희미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공간이었다.
이공간의 넓이는 그리 넓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던 이준은 새하얀 공간 안에 뒷짐을 진 채 서 있는 한 노인을 발견했다. 노인에게서는 어떤 특별한 기운도, 염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신비한 이공간 속에 서있는 사람이 평범한 노인일 리가 없었다. 이준의 예상이 맞다면, 저 사람은 분명 1격 무투기인 죽음의 광단의 주인이자 고적의 투성 강자일 것이다.
잠시 후, 이준의 귓가에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음의 광단은 백 개의 무투기를 조합해 만든 무투기로, 만물을 멸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노인은 천천히 몸을 돌려 이준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뼈 속에 감춰둔 비밀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인연이네. 이곳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은 자네의 손이 이미 금빛 영혼액에 의해 단련되었다는 의미겠지. 그리고 죽음의 광단은 반드시 금빛 영혼액에 의해 단련된 손이 있어야만 시전할 수 있네.”
그의 말에 이준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조금 전 느꼈던 그 고통이 설마 금빛영혼액이 자신의 손을 단련시키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지금 자신의 실력으로는 손이 단련된다 하더라도 1격 무투기를 시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죽음의 광단에는 창조의 힘도 있다네…….”
곧이어 노인의 몸이 반투명하게 변하더니 그의 몸속에 있던 혈관을 따라 황금빛 에너지가 이동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죽음의 광단의 수련 방법이지.”
이준은 황급히 염력의 이동 경로를 머릿속에 하나 하나 새겨 넣었다.
황금빛 에너지는 같은 경로를 따라 몇 번을 더 이동한 뒤 서서히 사라졌다.
잠시 후, 노인의 몸이 사라지더니 이준의 손에서 눈부신 금빛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놀라운 에너지를 느낀 이준은 가볍게 손을 들어 허공을 내리쳤다.
펑!
그러자 엄청난 에너지가 폭풍처럼 하늘을 뒤덮으며 검은 광단이 만들어 졌다. 대전에서 보았던 것과 완전히 똑같은, 그 공포스러운 광단이었다.
이준이 가볍게 힘을 주자 검은 광단이 빠르게 부풀어 오르며 주위의 공간이 깨진 유리처럼 산산조각나기 시작했다.
“나의 이름은 창조성자. 내 이름을 기억해두거라.”
다음 순간, 투성 강자의 힘찬 목소리가 이준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더니 눈앞의 이공간이 무너져 내렸다.
* * *
현실로 돌아온 이준은 은은한 금빛을 내뿜고 있는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며 노인의 마지막 말을 되뇌어 보았다.
“창조성자…….”
오른손에 정신을 집중하자, 황금빛 에너지가 자신의 혈관을 따라 막힘없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는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혈관들이 잔뜩 생겨나 있었다.
정신을 집중한 이준은 자신의 머릿속에 새로운 혈관이 생겨났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혈관 없이 죽음의 광단을 시전한다면 에너지가 밖으로 나가지 못 하고 몸 안에서 증폭되다가 폭발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금빛 영혼액으로 단련된 손으로만 시전할 수 있다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군. 하지만 몸 안에 새로운 혈관이 생겨나다니……. 투성 강자의 힘은 정말 놀랍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이준은 대전에서 보았던 죽음의 광단의 위력을 떠올려 보았다. 자신이 정말로 그 무투기를 시전할 수 있다면……. 영혼의 궁전이 아니라 그 어떤 세력을 만나더라도 두려울 것 같지 않았다.
이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숨을 고르며 염력을 조종하자, 이공간에서 보았던 경로를 따라 염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염력의 이동 경로가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어 번번이 경로를 따라 염력을 이동시키는데 실패했지만, 여러 번의 실패를 거치며 점점 더 원활하게 염력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세 시간 정도 연습을 거치자, 오른손에서 눈부신 금빛이 터져 나오며 전신의 염력이 한 곳으로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염력 소모가 엄청난 걸.”
1격 무투기는 굶주린 맹수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염력을 먹어치웠다.
빛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 눈부신 황금빛이 돌연 어두운 구체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정말 무시무시한 에너지군.”
막상 죽음의 광단을 직접 시전하고 나니 새삼 이 무투기의 위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성운각 장로들과 제자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주먹을 내리치게 된다면 백 미터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시체가 되고 말 것 같았다.
이준은 황급히 염력의 흐름을 끊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검은 빛이 부르르 떨리며 서서히 사라지더니 화산처럼 터져 나오던 에너지도 빠르게 안정되기 시작했다.
“죽음의 광단……. 적성이 이걸 본다면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한걸.”
* * *
다음 날, 성운 각 뒷산의 석탑 안.
“스승님, 준비 되셨습니까?”
이준이 풍존에게 받은 4성 투존의 해골을 석대 위에 올려두며 약로에게 물었다.
“그래. 시작하자꾸나.”
약로가 흥분한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풍존 스승님. 이번 제련, 융합 과정에는 하루 정도가 필요합니다. 그 사이에 석탑 안으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주세요.”
이준이 풍존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을 위해 다른 강자들도 불러뒀으니 안심하고 몸을 만들거라. 나와 그 자들을 모두 죽이기 전에는 그 누구라도 약선의 몸을 만드는 것을 방해할 수 없을 것이다.”
풍존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안심하고 선생님의 몸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이준이 손가락을 튕기자, 생골의 영약이 든 옥병이 약로에게로 날아갔다.
약로는 곧바로 옥병을 낚아챈 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본격적인 제련이 시작되자 풍존자와 아라는 조용히 석탑을 빠져나갔다.
이준은 심각한 표정으로 약로의 영혼을 잡아 석대에 놓인 해골 위에 내리쳤다.
“스승님, 몸 제련이 끝나면 곧바로 융합을 시작해주세요!”
곧이어 이준의 손에 봉황의 피가 담겨있는 옥병이 나타났다.
“가라!”
이준이 약병을 기울이자, 그 안에 있던 피가 투존 강자의 시신 위로 쏟아지며 새하얀 연기가 끊임없이 피어났다.
봉황의 피를 뒤집어 쓴 백골은 순식간에 새빨갛게 변하며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이준은 막힘없는 동작으로 붉게 변한 해골을 들어 올린 뒤 자갈색 화염으로 그것을 달구기 시작했다.
화염이 타오르자 붉은 해골 위에 미세한 막이 생겨나며 기포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 * *
삼천불꽃을 이용해 백골을 태우기를 꼬박 하루, 그 사이 해골은 더욱 짙은 붉은 색을 띠고 있었고, 봉황의 피는 한방울도 남김없이 4성 투존의 시신에 완벽하게 스며들어 있었다.
“후…….”
긴 숨을 내뱉은 이준은 말없이 약로를 바라봤다.
이에 약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로의 웃는 모습에 이준은 씨익 웃으며 불꽃을 거두어들인 뒤 석대로 걸어가 해골의 오른쪽 팔뚝을 세게 내리쳐 부러뜨렸다.
“응? 왜 그러느냐?”
갑작스런 이준의 행동에 약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실험해 보려구요.”
이준은 웃으며 저장 반지에서 투성의 오른팔을 꺼내 어깨 위에 붙인 뒤 삼천불꽃을 활용해 두 뼈를 이어 붙였다.
“투성 강자의 팔이냐?”
투성 강자의 뼈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느낀 약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예. 고적에서 구해왔어요.”
이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투성 강자의 팔을 붙이는게 더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약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투존의 몸에 투성의 팔을 붙여 몸을 만든다는 것은 그 역시 생전 처음 들어보는 방식이었지만, 일부라도 투성의 몸을 사용한다면 더욱 강한 몸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준은 또 한 번 삼천불꽃을 활용해 두 뼈를 완벽하게 이어붙인 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긴 시간의 제련을 거치면서 새하얗던 해골은 새로 이어붙인 오른 팔을 제외하면 완벽한 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스승님!”
이준이 신호를 보내자, 약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생골의 영약을 입 속에 집어넣고는 번개처럼 해골 안으로 들어갔다.
펑!
곧이어 해골의 텅 빈 눈에서 눈부신 빛이 번쩍이고 거대한 에너지가 폭풍처럼 터져 나오며 생골의 영약의 효과로 앙상한 뼈 위에 새살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스승님, 버텨내세요!”
스승의 몸이 완벽하게 해골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이준은 곧바로 삼천 불꽃을 이용해 붉게 변한 투존 강자의 뼈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 * *
중주 서부 지역에 위치한 깊은 산 속에서는 거대한 대전이 무시무시한 에너지 파동을 사방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푸슉!
그때, 검은 안개가 거대한 대전을 뒤덮더니 수많은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구 천존님, 환영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허공에서 무릎을 꿇고 소리치자, 허공이 일그러지면서 파란 옷을 입은 사람 하나가 나타났다.
“이번 임무는 기억하고 있느냐?”
“성운각을 없애고 이준과 약선을 잡는다!”
백여 명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 움직여라.”
파란 옷의 노인은 고개를 끄덕인 뒤 귀신처럼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선두에 서 있던 외팔의 노인이 살기로 눈을 빛내며 고개를 들었다.
“이준. 이번에도 빠져나갈 수 있나 한 번 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