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1화. 고대 하늘뱀족
이준이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저장반지를 쓰다듬자, 기이한 빛을 내뿜는 옥패 하나가 그의 손에 나타났다. 신비한 빛을 머금고 있는 그 옥패는 영혼의 궁전이 목숨을 걸고 찾고 있는 ‘태령 황제의 옥’이었다.
“영혼의 궁전 놈들은 아주 오래 전에 혼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약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혼족이요?”
그의 말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옥패를 꽉 쥐었다.
“설마 고족처럼 옛 선조의 힘을 이어받은 것 인가요?”
“그건 확실히 모르겠구나. 하지만 네 여자친구라면 혼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을게다.”
“그렇군요…….”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목숨을 걸고 반드시 네 아버지를 되찾아주마.”
약로는 웃으며 이준의 어깨를 두드린 뒤 목함을 손에 쥐고 산 밑으로 내려갔다.
* * *
영혼 열매를 손에 넣은 약로는 곧바로 수련에 돌입했다. 본래의 혼기를 되찾아야만 이전의 실력을 회복해 투성 계급으로 향할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이후 이준 일행은 며칠간의 휴식을 보냈고, 모청연 역시 서둘러 성운각으로 돌아왔다.
체력을 완전히 회복한 이준은 곧바로 예린의 체내에 있는 독을 해독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이무기의 독은 중주에서 가장 악명 높은 독으로, 해독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아직 찾지 못한 것일 뿐, 해독할 수 없는 독은 없다는 것이 이준의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이준은 약로가 자신에게 남겨준 조합표들과 아라의 칠색독경을 글자 하나 빼놓지 않고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밤낮 없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자료들을 샅샅이 뒤지기를 닷새, 마침내 이준은 예린의 독을 해독하는 방법을 찾는데 성공했다.
* * *
성운각 뒷산에는 으스스한 산굴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이준은 그 산굴 가운데에 암석을 파서 작은 연못을 하나 만들었다.
그 연못에서는 수포가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있었으며, 연못의 끄트머리에서는 이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붉은 색 가루를 뿌리고 있었다.
맑은 연못물이 담홍빛으로 물들자, 이준은 품안에서 작은 옥병 하나를 꺼내 그 안에 들어있는 액체를 연못 안에 부었다.
“아우-”
바로 그때, 이준의 품속에 있던 비약 마수가 울음 소리를 내뱉었다. 하얀 마수의 크기는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고, 새하얀 털이 모두 거뭇하게 변해 더 이상 하얀 마수라고 부르기 어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괜찮아. 곧 회복시켜줄게.”
하지만 이준이 웃으며 저장반지 속에서 연금비약 몇 알을 꺼내 입 안에 넣어주자, 비약 마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반짝이며 신이 나서 꼬리를 흔들며 넙죽 그것을 받아먹었다.
옥병 안에 들어있던 은빛 액체가 연못에 퍼져 나가는 순간, 귀를 찌르는 소리와 함께 연못에서 순수한 에너지의 파동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예린아. 저 안으로 들어가. 이곳에 있는 에너지들을 모두 흡수한다면 넌 투존이 될 수 있을 거야.”
이준이 옥병을 저장 반지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네…….”
“수련 상태로 들어가 못 속에 있는 에너지를 흡수해.”
이준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잔뜩 긴장해 있던 예린의 표정도 조금은 부드럽게 풀렸다.
곧이어 연못 안에 들어간 예린의 등에서 물안개가 솟아나더니 아홉 개의 머리가 달린 뱀의 형상으로 변화했다. 기이한 형상을 한 뱀은 마치 죽은 것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이준은 홀린 듯이 머리 아홉 달린 신비한 뱀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돌연 굳게 감겨 있던 아홉쌍의 눈이 섬뜩한 빛을 내뿜으며 열리기 시작했다.
뱀의 눈동자에서 퍼져 나오는 섬뜩한 기운에 이준은 반사적으로 자갈색 화염을 뿜어냈다.
하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홉 쌍의 눈은 모두 굳게 닫혀 있는 상태였다.
“이건 대체 뭐야……?”
이준은 눈썹을 찌푸린 채 조심스럽게 뱀의 머리를 훑어보았다. 자신이 헛것을 본게 아니라면, 이 기이한 뱀은 방금 전에 분명히 눈을 뜨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뚫어져라 바라봐도 뱀의 눈은 모두 굳게 닫혀 있었다.
한참을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그는 예린이 깨어난 뒤 자세한 상황을 물어보기로 결정했다.
생각을 마친 이준은 다시 한 번 물색을 확인하고 작은 옥병을 꺼내 붉은 색 액체를 연못 위에 따랐다.
예린의 독을 완전히 빼내기 위해선 상당히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지만, 이미 8 레벨 연금술사가 된 이준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이후 4일 동안 이준은 한시도 산굴 안을 떠나지 않고 못 안에 백여 종에 가까운 약재를 털어 넣었다.
시간이 지나며 예린의 몸에 남아있던 독기운이 점점 사라져갔다.
그 동안 이준은 그녀의 등 뒤에서 솟아나 머리 아홉 달린 뱀을 계속해서 관찰했다. 에너지가 예린의 몸속으로 들어갈수록 등에 있는 뱀의 형상도 점점 더 뚜렷해졌고, 심지어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준은 그녀의 등 뒤에서 솟아난 그 마수의 정체가 무엇인지 점점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 마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걸 보니 저 마수는 분명 고대에 살았던 생명체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린의 몸에 스며든 독을 빼내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독 작업을 계속한지 7일 째 되던 날.
연못 속에 가득한 담홍빛 액체에서 거품이 일기 시작했다.
“성공인 건가…….”
곧이어 물속에서 촤아,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갑자기 산굴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지?”
이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못을 바라보고 있을 때, 돌연 연못 속에서 머리통만한 뱀의 눈동자가 솟아났다. 섬뜩한 느낌을 풍기는 그 눈동자의 동공 주변에는 작은 점 세 개가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푸슉!
바로 그때, 갑자기 눈이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연못을 벗어나 이준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왔다.
깜짝 놀란 이준은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그림자의 공격을 피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예린의 몸에서 솟아난 머리 아홉 달린 뱀이 새빨간 혀를 낼름거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홉 개의 머리 중 여덟 개는 피처럼 붉게 변해 있었고, 그 눈동자는 예린의 뱀의 눈과 완전히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뱀이 다시 한 번 자신을 향해 몸을 날리려는 찰나, 이준이 두 눈을 번뜩이며 소리쳤다.
“예린아!”
그 순간, 머리 아홉 달린 뱀이 그 자리에 빠르게 멈춰서더니 새빨갛게 변했던 몸이 천천히 청록색으로 변해갔다.
청록색으로 변한 뱀은 눈부신 빛을 뿜어내더니 손바닥만 한 크기로 줄어들어 바닥에 떨어졌다.
“괜찮아?”
이준이 곧바로 달려가 예린을 부축하며 물었다.
“방금 무슨 일이야? 그건…….”
“그건 고대 하늘뱀족의 영혼이에요.”
“고대 하늘뱀족?”
고대 하늘 뱀은 현재 존재하는 수많은 마수들의 뿌리가 되는 마수 중 하나로, 천지 에너지를 파멸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들의 힘은 고대 봉황 마수에 맞먹을 정도로 강대했지만, 이제는 멸종해버린 것으로 알려진 전설의 마수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마수가 예린의 몸에서 자라고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고서에 따르면 고대 하늘뱀의 머리가 아홉 개라는 말은 없던데…….”
“이건 변이된 고대 하늘뱀 이에요. 왜 이렇게 됐는지는 저도 정확히 모르지만 중주에 왔을 때 옛 산맥으로 길을 잘못 들었는데, 거기서 고대 하늘뱀의 뼈를 발견했었어요. 그때 갑자기 뱀의 눈이 발동되더니 해골에서 영혼체가 나타났어요.”
예린이 말했다.
“이건 다루기도 어려워서 뱀의 눈을 사용해도 제 말을 듣지 않고 멋대로 소란을 일으켜요. 그래도 제 실력이 강해질수록 다루기 쉬워지고 있으니까……. 앞으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이준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대 하늘 뱀은 성체가 되면 투성 강자에 맞먹는 실력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었다.
“뱀의 눈으로 고대의 하늘뱀의 피를 가진 뱀마수는 조종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어?”
“만일 하늘 뱀이 몸을 갖고 있다면 어렵지만 이 녀석들은 영혼체 뿐이라 괜찮아요. 고대의 뱀마수의 혈통은 두 종족으로 나뉘었는데, 하나가 고대 하늘뱀족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칠색 이무기예요.”
“칠색 이무기?”
순간 이준의 표정이 구겨졌다. 칠색 이무기가 평범한 마수가 아니라는 것 쯤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엄청난 혈통을 가졌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몸속 독소는 모두 제거됐지?”
이준이 묻자 예린은 헤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1성 투존이 되었어요. 이제 뱀의 눈을 사용하면 4성 투존급 뱀 마수도 잡을 수 있을 거예요.”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예린의 문제도 해결했으니, 이제 약로의 몸을 만들 일만 남았다.
“이제 나가자.”
* * *
널따란 대청 안에는 약로의 영혼체가 두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그의 영혼의 힘에 의해 일그러진 공간에서 생기가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힘이 회복된 것으로 보였다.
“스승님. 혼기는 되찾으셨습니까?”
소식을 받은 이준이 급히 대청으로 들어와 약로에게 물었다.
약로는 천천히 눈을 뜨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준을 바라보며 온화하게 웃었다.
“영혼 열매의 효과가 생각보다 뛰어나더구나. 혼기를 거의 다 회복했다.”
“그럼 이제 스승님의 몸을 만들어도 되는 건가요?”
이준이 다급하게 물었다.
“몸을 만들려면 몇 가지 재료가 필요하단다.”
약로가 웃으며 답했다.
“걱정 마세요. 그 동안 제가 열심히 모아뒀습니다.”
이준이 씨익 웃으며 옥병을 하나 꺼내자. 그 안에서 짙은 약향을 내뿜는 연금비약 한 알이 굴러 나왔다.
“이건 8레벨 연금비약 아닌가!”
약로의 곁에 있던 풍존자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연금비약을 바라보며 말했다.
“게다가 오색단뢰를 받은 8레벨 연금비약이구나.”
약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기쁜 표정으로 이준을 바라보았다.
“그 동안 연금술 실력이 제법 늘은 모양이구나.”
“하하, 영감, 어쩌면 자네 제자의 실력이 자네가 젊었을 때 보다 낫다니까!”
풍존자는 수염을 쓸어내리며 크게 웃었다.
“스승님, 이건 생골의 영약입니다.”
이준이 손가락으로 병을 튕기자 생골의 영약이 약로 앞에 서서히 떠올랐다. 말을 마친 이준은 곧바로 투명한 옥병 하나를 더 꺼내들었다. 그 안에는 청홍색 피가 들어있었다.
“이건 상고시대 봉황 마수의 피 입니다. 양은 적지만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이준이 웃으며 말했다.
“해골도 최고급 투종 강자의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투존 이상의 몸을 구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곧이어 얼음에 봉인된 시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지금의 이준에게 투종 강자의 해골은 그다지 대단한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 다른 시체를 구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었다.
“허허, 해골이라면 나에게 4성 투존 해골이 있다네.”
그때, 옆에 있던 풍존자가 웃으며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회색 해골이 들어있는 석관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건 과거 구씨 가문 강자의 뼈다. 아무도 수습하지 않길래 내가 몰래 가져왔지.”
풍존이 꺼내든 투존 강자의 시신에 이준은 얼굴에 곧바로 화색이 돌았다.
“이 정도라면 분명 약선의 실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게다. 하지만 투성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어렵지…….”
풍존의 말에 약로는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투성 강자는 중주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숫자밖에 존재하지 않았고, 1성 투성만 되어도 투기 대륙 전체에서 감히 대적할 자가 없는 강자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약재도 모두 모았으니 내일 바로 시작하자꾸나. 약선이 어서 실력을 되찾아야 영혼의 궁전 놈들에게 맞설 수 있지 않겠느냐.”
풍존자의 말에 이준과 약로는 모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