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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30화 (630/818)

630화. 이별

사내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적성은 일그러진 얼굴로 염력을 폭발시켜 자신의 몸을 보호했다.

펑!

하지만 사내의 공격이 적성의 몸에 부딪히는 순간, 그의 입에서는 곧바로 붉은 핏줄기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꺼져라. 여긴 너 같은 놈이 행패부릴 곳이 아니다.”

사내가 차가운 얼굴로 소리쳤다.

적성은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의 실력으로는 용족 강자의 몸에 흠집하나 낼 수 없었으니,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눈 깜짝할 새에 상황이 뒤집히자, 이준 일행은 서로 눈을 마주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그 무엇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실감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음, 잘했어, 삼촌. 이번엔 안 이를게.”

보람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는 억울한 듯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번에는 삼촌이 금방 와서 망정이지, 용황 열매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장로님들이 정말로 널 가만두지 않았을 거다.”

사내의 말에 보람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허허.”

하지만 보람의 그런 버릇없는 행동에도 사내는 그저 귀엽다는 듯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이쪽은 흑치웅, 전설의 용족이지. 삼촌, 이 아이들은 모두 내 친구야.”

보람이 흑치웅과 이준 일행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흑치웅 선배님.”

이준은 사내를 향해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사내의 외모는 기껏해야 30,40대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수백 년 이상을 살아온 존재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자네가 바로 이현의 후배, 이준이군. 이씨 가문에서 이리 훌륭한 인재가 나오다니, 역시 과거의 팔대가문 답구나.”

‘이현? 팔대가문?’

흑치웅의 말에 이준은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현이라는 사람이 이씨 가문의 선조이자 위대한 강자라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지만, 팔대가문이라는 말은 생전 처음 듣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현 그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보람이와 비슷한 나이였지.”

흑치웅은 씩 웃으며 보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팔대가문에 대해선 아무 언급도 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이야기는 이쯤하고 녀석들이 또 귀찮게 굴기 전에 이만 가자꾸나.”

이준은 자신의 선조에 대해 묻고 싶은 말이 굴뚝 같았지만,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치웅이 손을 휘두르자 커다란 공간의 균열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준 일행은 흑치웅의 뒤를 따라 그 거대한 균열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지막 사람까지 균열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흑치웅이 뒤를 돌아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봉황족의 애송이들, 명심하거라. 앞으로 다시 한 번 용족의 후예에게 손을 댄다면 네 놈들의 씨를 말려줄 것이다.”

흑치웅의 협박에 봉황족의 강자들은 이를 갈며 서로를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황 장로님. 이대로 저 놈이 용황 열매를 가져가게 두실 겁니까?”

백발의 사내가 황헌을 향해 말했다.

“그럼 네 놈이 저자를 막아 보거라.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달려들어도 저자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하지만 이렇게 많은 동족들을 부르고도 용황 열매를 손에 넣지 못 한다면 저희는…….”

봉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자, 황헌의 표정이 어둡게 내려앉았다.

“가자. 다시 마수의 장막으로 가서 상고시대 선조님의 뼈라도 가져와야겠다. 절대 빈손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

말을 마친 황헌은 험악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봉연 일행도 묵묵히 그의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한편 적성은 못 박힌 듯 자리에 멈춰선 채 이준이 사라진 자리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이준, 기다려라. 조만간 성운각과 너를 모두 잿더미로 만들어주마.”

말을 마친 적성은 그대로 몸을 돌려 고적 밖으로 날아갔다.

* * *

해골산맥과 백 리 떨어진 산봉우리에 새까만 균열이 생기더니 그 안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흑치웅 선배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다. 우리 용족 동포들이 보람을 잘 보살펴주어 고맙다고 전해달라 하더구나.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이 아이를 보살펴 준 것에 대해 꼭 보답을 하도록 하지.”

“아닙니다. 동생 같은 보람이를 챙기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보답을 하겠다는 흑치웅의 말에 이준은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보람을 돌봐준 것은 정말로 그녀가 여동생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뿐,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미 그녀 덕에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겼으니 보상을 하겠다고 넙죽 받는 것도 염치없게 느껴졌다.

“보람이는 우리 가문에게 아주 소중한 존재다. 그런 아이를 안전하게 중주로 데려왔으니 보답을 하지 않는다면 전설속의 마수라는 이름이 아깝지.”

하지만 흑치웅은 한사코 보답을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보람의 손목을 붙잡았다.

“자네가 받지 않는다고 하면 강제로라도 선물을 주고 갈테니 그렇게 알게. 이제 나는 돌아가야겠군. 여기서 해골산맥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다. 도착하면 동쪽을 향해 가거라. 그럼 곧바로 마수의 땅을 벗어날 수 있을 게다. 보람아, 넌 나와 함께 집으로 가자.”

“왜? 난 안 갈 거야. 거긴 하나도 재미없다구!”

집으로 가자는 말에 보람은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어댔다.

“안 돼. 장로님들의 명령이다. 그만하면 놀만큼 놀았으니 계승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용황 열매도 네가 직접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흑치웅의 계속되는 설득에도 보람은 미친 듯이 바둥거리며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으려 했다.

“지금 네 실력으로 이준 곁에 있어봐야 짐 밖에 되지 않는다. 설마 그런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겠지? 계승을 마치고 나면 네 실력도 크게 성장할 테니 그때 다시 만나거라. 어떠냐?”

이어지는 흑치웅의 말에 보람은 잔뜩 풀이 죽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알았다구. 돌아갈게.”

보람을 설득하는데 성공한 흑치웅은 곧바로 영진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도 같이 가지. 용웅 역시 우리 용족의 일파이니 우리랑 함께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네.”

“허허. 흑치웅 선배님의 말을 따라야지요.”

영진은 환히 웃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럼 저희는 여기서 헤어지는 것으로 하죠.”

상황이 대충 정리된 듯하자, 이준은 공손한 태도로 흑치웅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보람아. 수련 잘하고 와.”

아라가 보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리고 영혼의 궁전은 정말로 위험한 곳이니 항상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게.”

자리를 떠나려던 흑치웅이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제 아버지가 아직 그들의 손에 있습니다. 어떻게든 구해 와야 합니다.”

이준의 말에 흑치웅은 옅은 한숨을 내쉰 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린 이쯤에서 가보도록 하겠네.”

말을 마친 흑치웅은 다시 공간 통로를 열었다.

“이준. 다음에 우리가 다시 만날 땐 내가 너보다 더 강해져있을 거야! 다시 만나면 또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줘!”

보람은 그 말을 남기고 두 용족의 강자와 함께 공간의 균열 속으로 사라졌다. 곧이어 거대한 공간의 균열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준은 보람이 사라진 곳을 멍하니 바라보다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보람이 없으니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처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도 이제 가자. 영혼열매도 얻었으니까 스승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이준은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일행들과 함께 마수 구역의 출구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고적에 들어와 영혼열매는 물론이고 1격 무투기에 하늘 요괴, 거기다 투성 강자의 골수까지 얻었으니 그야말로 보물을 산더미처럼 얻어서 돌아가는 셈이었다.

* * *

성운각 뒷산 꼭대기에 위치한 커다란 바위 위에서는 약로의 영혼체가 가만히 앉아 영혼의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약선, 내가 몇 몇 영감들에게 몰래 기별을 해뒀네. 자네가 힘을 되찾기만 한다면 당장에라도 우리 성운각의 장로가 되어주겠다고 하더군.”

약로의 뒤에 있던 풍존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예전 실력을 되찾으면 성운각도 영혼의 궁전에 맞설 수 있겠지. 그렇게 된다면 이곳의 안전도 문제가 없을 테고.”

약로의 말에 풍존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이준이 마수의 땅에 간지도 꽤나 시간이 지났는데, 영혼 열매를 찾았는지 모르겠군. 이번에 고적에 들어간 강자들의 실력이 하나 같이 만만치 않다고 하던데.”

“걱정 말게. 그 아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니까.”

말을 마친 약로는 미소를 지으며 성운각의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성운각의 공간 결계가 서서히 요동치더니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게 말이야. 정말 괜한 걱정을 한 것 같군.”

풍존자가 미소를 지은 채 조금 부러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간 결계를 지난 이준은 곧바로 뒷산 꼭대기로 내려와 약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풍존자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잘했다.”

“별 일은 없었느냐?”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약로의 물음에 이준은 고적에서 있던 일들을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또 영혼의 궁전이란 말이냐…….”

약로는 차가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이준이 웃으며 목함 하나를 꺼내 약로에게 내밀었다.

목함의 뚜껑이 열리자, 약로의 눈앞에 아기처럼 얌전히 누워있는 금색 열매나 나타났다.

“정말 영혼 열매구나. 게다가 최고급의 영혼 열매라니!”

눈부신 황금색 열매를 보는 순간 약로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 최고급의 영혼 열매가 있으면 잃어버린 혼기를 완전히 되찾을 수 있겠군.”

목함 안에 들어있는 열매의 품질을 확인한 풍존자는 수염을 쓸어내리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스승님. 오늘 바로 들어가시죠. 혼기를 보충해야 스승님의 몸을 다시 되찾죠.”

이어지는 이준의 말에 약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녀석아. 아버지 보고 싶지 않느냐?”

약로의 갑작스런 질문에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언제나 자신을 믿어주던 아버지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버지는 모두가 자신을 비웃을 때도 한치의 의심 없이 자신을 믿어주었다. 하지만 정작 중주에서도 알아주는 강자가 된 지금 아버지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으니, 아들인 이준으로서는 더욱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우선 스승님의 몸을 되찾아 드리고 바로 아버지를 찾아야지요.”

“내가 도와주마.”

약로가 이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네 아버지가 그때의 소년이 이제 중주를 놀래킨 강자가 되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면 아주 기뻐하실 게다.”

스승의 다정한 말에 이준의 눈에는 촉촉하게 물기가 맺히고 말았다.

“혹시 스승님은 아버지가 어디에 계신지 알고 계신가요?”

“중주엔 없다.”

약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뜻밖의 대답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의미죠?”

“나도 놈들이 왜 네 아버지를 꽁꽁 숨겨두는지 모르겠다. 다만 네 몸에 있는 그 물건과 관련이 있는 것 같구나.”

약로가 말했다.

“고족에게 고계가 있듯이, 영혼의 궁전 놈들에게도 그들만의 공간이 있지.”

“그 자들도 이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건가요?”

“그래, 바로 혼계다.”

약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혼계를 알고 있는 강자는 극히 드물다. 그리고 나조차도 혼계의 입구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제 아버지는……그곳에 감금되어 있는 건가요?”

이준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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