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화. 도움의 손길
‘안되겠어. 한방에 끝내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공방을 주고받아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적성은 빠르게 뒤쪽으로 몸을 날려 이준과 거리를 벌렸다.
반면 이준은 적성과 다시 거리를 둘 생각이 없었다. 이대로 거리가 벌어지고 또다시 강력한 무투기를 사용해 승부를 벌인다면 이미 상처를 회복하는데 많은 염력을 소모한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처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염력을 사용할 수 없어. 이렇게 가다간…….’
그 순간, 이준의 등이 부르르 떨리더니 신비한 빛을 내뿜는 뼈 날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뼈 날개는 바로 상고시대 봉황 마수의 시체를 이용해 만든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봉황족의 눈치를 보느라 사용하지 못했지만, 이미 봉황 마수들과 사이가 틀어진 상황에서 더 이상 숨기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쉭!
다음 순간,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적성의 등 뒤에 나타났다.
“윽!”
등 뒤에서 불의의 일격을 얻어맞은 적성은 비틀거리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 어떻게…….”
뼈 날개를 펼친 이준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적성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어떻게 3성 투존이 자신보다 더 빠를 수 있단 말인가?
공격을 성공시킨 이준은 이리저리 어지럽게 날아다니며 공격을 퍼부어댔다. 하지만 적성의 주먹은 이준을 잡지 못하고 번번이 허공을 갈랐다.
자신의 속도가 적성보다 빠르다는 것을 확인한 이준은 곧바로 적성과 거리를 벌리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불꽃을 쏟아냈다.
“이런 젠장!”
그 순간, 상대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아차린 적성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이준이 지금 사용하려는 것은 틀림없이 자신의 한 팔을 잘라낸 그 공포스러운 무투기였다.
다급해진 적성은 황급히 몸을 날려 이준을 덮치려했지만, 제아무리 애를 써도 뼈 날개를 사용하는 이준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흥, 네 놈이 감히 봉황의 날개를 사용해?”
바로 그때,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지더니 두 개의 그림자가 이준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두 개의 그림자에는 이준의 것과 똑같이 생긴 한 쌍의 날개가 붙어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두 백발의 노인은 회백색의 의복을 입은 채 기이한 빛을 내뿜는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이준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두 노인을 바라보며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5성 투존이군. 봉황 마수족의 지원군들인가? 황헌 그 노인네가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일부러 시간을 끈 거였어.’
“네 이놈, 감히 봉황족 앞에서 봉황의 날개를 꺼내들다니, 참으로 대담하기 짝이 없구나.”
회백색 의복을 입은 노인이 이준의 등에 달린 날개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강자의 등장에 이준은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서며 눈치를 살폈다. 5성 투존 두 명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적성까지 합세한다면 정말로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어서 저 녀석의 날개를 부러뜨리고 끌고 가 엄벌을 내리세!”
또 다른 봉황족의 강자가 싸늘하게 말했다.
“이번 일은 반드시 그냥 넘어갈 수 없소!”
“좋소. 저놈을 잡아 염력을 없애고 폐인으로 만들어 죽을 때까지 노예로 삼읍시다.”
회백색 의복의 노인은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이준의 손에서 눈부신 빛을 내뿜는 화염 연꽃이 피어나며 주위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응?”
두 봉황족 노인은 1성 투존에 불과한 이준이 이 정도로 강한 위력을 가진 무투기를 갖고 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란 듯 두 눈을 치켜떴다.
“저건 세 가지 천지의 불꽃을 융합하여 만든 무투기요. 위력이 만만치 않으니 조심하도록 하세요.”
가까운 곳에 있던 적성이 두 노인을 향해 말했다.
“알겠소.”
두 노인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살기등등한 눈으로 이준을 노려봤다.
“네 몸에서 옛 봉황의 피가 느껴지는구나. 감히 우리 봉황 마수의 시체를 도둑질해?”
하지만 이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가락을 튕겨 두 노인을 향해 화련을 날릴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두 노인의 몸에서 염력이 화산처럼 솟아나더니 거대한 봉황의 형상으로 변화했다.
그 순간, 두 노인을 향해 날아간 화련이 눈부신 빛을 내뿜으며 폭발을 일으켰다.
“봉황의 종!”
무시무시한 온도의 화염 폭풍이 하늘을 휩쓸자, 두 노인은 재빨리 인을 맺어 백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종을 만들어냈다.
챙-
화련이 거대한 종에 맞부딪히는 순간 천지의 에너지가 격렬하게 요동치면서 커다란 종소리가 하늘 전체에 울려 퍼졌다.
곧이어 자갈색의 화염 폭풍이 더욱 거세게 폭발하자 거대한 종이 부르르 몸을 떨며 미세한 균열이 퍼져나갔다.
화련이 가진 상상이상의 위력에 두 노인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두 사람이 함께 소환한 봉황의 종은 5성 투존 강자도 거뜬히 잡을 수 있는데, 고작 1성 투존 밖에 되지 않는 이준이 봉황의 종에 균열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두 노인은 말없이 눈을 맞춘 뒤 다시 한 번 온 힘을 다해 거대한 종에 염력을 불어 넣었다. 5성 투존 두 명 분의 염력이 주입되자, 봉황이 그려진 거대한 종에서 균열이 사라지며 기이한 광택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봉황의 종이 화련이 만들어 낸 화염 폭풍을 집어삼키려는 찰나, 이준이 다시 한 번 번개처럼 인을 맺으며 염력을 폭발시켰다.
쾅!
그 순간, 조금씩 잦아들던 자갈색의 화염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폭발을 일으키며 거대한 종을 격렬하게 뒤흔들었다.
당황한 봉황족의 두 노인은 어떻게든 자신들의 무투기 안에 화염 폭풍을 붙잡아두려 안간힘을 썼지만, 그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미쳐날뛰는 자갈색 화염을 막아낼 수 없었다.
쾅!
결국 거대한 종이 파괴되며 사방으로 화염이 터져 나갔고, 두 노인은 충격을 받은 듯 가슴을 움켜쥐며 비틀거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봉황의 종을 파괴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탓인지 화염 폭풍의 위력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회백색 의복을 입은 노인은 서서히 잦아드는 화염 폭풍을 바라보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소매 안에 숨겨진 노인의 손은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좀 힘들어 보이시네요.”
봉황족의 두 강자가 험악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자, 이준 역시 두 노인을 바라보며 조롱섞인 웃음을 지었다.
“흥, 어린 놈이 건방지기가 이를데 없구나. 언제까지 그렇게 건방진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지켜보지.”
쉭-
그때, 이준의 곁으로 아라가 날아왔다.
“우리 포위 됐어…….”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백 명도 넘는 봉황 마수들이 이준 일행을 둥글게 에워싸고 있었다.
“이준. 용황 열매를 내놓는다면 너의 동료들을 놔주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들도 모두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리겠다.”
황헌이 두 날개를 펄럭이며 말했다.
“흥, 비겁한 놈들! 이렇게 쪽수로 밀어 붙이는 게 봉황족의 장기인가보지?”
분노한 보람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황헌이 담담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보았던 건방진 용족 계집이군. 우리도 용족과 엮이고 싶지는 않지만, 용황 열매를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라도 치를 생각이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저쪽에는 5성 투존이 넷 이나 되는데.”
천화존자의 질문에 이준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모든 힘을 쏟아부은 화련이라면 5성 투존이라 해도 쉽게 받아낼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이 단단한 포위망을 뚫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화련을 사용하고 난 뒤에는 완전히 기진맥진해 도망조차 갈 수 없게 되고 말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었다.
“나한테 맡기고 뒤로 물러나 있어.”
그때, 이준의 생각을 읽은 듯 보람이 고개를 저으며 앞으로 나왔다. 곧이어 그녀의 작은 손에 있는 용족의 문양이 요동치며 용황 열매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보람은 그 열매를 손에 잡은 채 차가운 눈빛으로 탐욕이 가득한 황헌과 봉황족 강자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자, 여기 용황 열매야. 가져갈 테면 가져가보시지!”
보람의 행동에 당황한 아라는 보람을 저지하려 했지만, 이준이 그녀를 제지했다. 보람이 이유 없이 저런 행동을 할 만큼 멍청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 아직 성체도 되지 않은 용족 주제에, 건방지구나!”
두 노인과 눈을 맞춘 황헌은 동시에 보람을 향해 굶주린 맹수마냥 달려들었다.
“용황 열매는 우리 봉황족의 것이다.”
쉭!
그러나 그들의 손이 용황 열매에 막 닿으려는 순간, 찌익, 하는 소리와 보람의 옆에 거대한 균열이 생겨나더니 건장한 사내 하나가 공간을 뚫고 나왔다. 당황한 봉황족의 강자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빠르게 자리에 멈춰 섰다.
곧이어 온 하늘을 집어삼킬 듯한 묵직한 목소리가 허공에 메아리쳤다.
“감히 누가 용족을 건드리느냐!”
그들이 나타나는 순간, 무시무시한 위압감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전설의 용족이라니!”
공간의 균열 사이에서 걸어 나온 건장한 남자를 보는 순간, 황헌의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봉황족 역시 수많은 마수들의 정점에 선 존재였지만, 그 실력은 용족에 비할바가 되지 못했다. 지금보다 더욱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상고 시대의 봉황족의 최고 강자들조차 용족의 상대가 되지 못했으니, 황헌 정도의 실력으로 감히 그들에게 맞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직 성체가 되지 못한 보람은 그들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진정한 용 족 앞에서는 5성 투존이라 하더라도 꼬리 내린 강아지 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빠르게 눈빛을 교환한 세 사람은 염력을 폭발시켜 굳어버린 공간을 깨고 빠르게 탈출했다.
퍽!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는 순간, 건장한 남자가 커다란 손을 높이 들어 아래로 강하게 내리쳤다. 그러자 놀랍게도 황헌등 세 사람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며 볼에 새빨간 손자국이 생겨났다.
“푸흡!”
세 사람은 거인의 손에 맞은 것처럼 피를 토하며 지상으로 추락했고, 그들이 떨어진 곳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새빨간 피를 뒤집어쓴 채 깊은 구덩이 속에서 정신을 잃은 세 사람의 모습에 봉연 일행은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이준 일행 역시 커진 눈으로 보람 옆에 서있는 건장한 남자를 바라봤다. 사내의 실력은 최소한 7, 8성 투존 정도는 되어보였다.
용족 강자의 일격에 주위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멀리서 당진과 치열한 혈투를 벌이던 빙존자 역시 급히 손을 거두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용족 투존을 바라봤다.
‘저 녀석 도대체 정체가 뭐지? 고족도 모자라서 전설의 용족이 뒤를 봐주다니!’
빙존자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두려움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자, 또 죽고 싶은 자가 있느냐?”
용족의 강자가 허공에 우뚝 선 채 날카로운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자, 주위에 있던 강자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용족의 선배님께서 우리 봉황족의 어린 후배들에게 직접 손을 쓰시다니, 용족의 체면은 어디로 간 것입니까?”
봉황족의 사내들이 모두 슬금슬금 몸을 빼는 광경에 백발의 사내는 분노를 참지 못 하고 용족의 강자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웃기는 소리. 그럼 봉황 마수들이 떼로 몰려들어 아직 어린 용족을 위협하는 것은 봉황족의 체면에 맞는 행동이더냐?”
용족의 강자가 백발의 사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사내의 말에 봉황족의 사내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이 이상 용족의 성질을 건드렸다가는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봉황 마수들이 떼죽음을 당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컥…….”
그때, 황헌을 비롯한 봉황족의 세 투존이 피범벅이 된 얼굴로 구덩이 속에서 힘겹게 기어 올라왔다.
“이번엔 삼촌이 안 늦었지?”
건장한 사내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보람을 향해 말했다.
“흑 삼촌, 저놈이 아직 남아있어!”
보람은 자그마한 손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적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용족 강자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적성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나는 영혼의 궁전의 사람이다!”
“웃기는 놈이군. 영혼의 궁전이면 용족에게 손을 대고도 무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냐?”
흑 삼촌이라 불린 사내는 곧바로 눈을 치켜뜨며 커다란 손으로 적성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