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8화. 대전투
“쪽수로 밀어붙여 보려고?”
이준에 이어 예린 역시 자신의 눈 속에 있던 지옥 이무기족의 강자들을 소환했다.
“서야, 화암? 지옥 이무기족의 강자들이 어떻게 저 녀석과 같이 있는 거지?”
예린의 눈 속에서 튀어나온 강자들의 얼굴을 알아본 황헌이 굳은 표정으로 읊조렸다.
“황헌 장로님, 저 분들은 모두 최근 실종되었다는 지옥 이무기족의 강자들인 것 같습니다.”
황헌의 곁에 있던 봉연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실종?”
그 순간, 황헌의 머릿속에 번뜩 어떤 생각 하나가 스쳐갔다.
“네가 바로 지옥 이무기족을 습격한다는 그 녀석이냐?”
하지만 예린은 황헌의 질문에 대꾸조차 하지 않고 차가운 눈으로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하하! 이준, 이런 녀석과 함께하다니. 지옥 이무기족에게도 원한을 사려는게냐? 네 놈이 아주 자기 무덤을 파는구나!”
황헌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이준은 여전히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지옥 이무기족을 습격한 것이 예린이라는 것을 안 순간부터 그는 지옥 이무기족과의 관계가 틀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옥 이무기들 때문에 예린을 버릴 수는 없었다.
“뺏을 거면 빨리 뺏던가, 왜 이렇게 말이 많아.”
묵묵히 이준의 곁을 지키고 있던 영진이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하며 말했다.
“적성, 저 요괴들은 내가 맡고 나머지 사람들은 우리 쪽 강자들이 막겠소. 이준은 자네에게 맡기겠소.”
황헌의 말에 적성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이준의 실력은 불과 1성 투존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 자리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러날 곳이 없었다. 또 다시 전주가 내린 명령을 완수하지 못 한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장로님, 저 녀석은 제가 맡겠습니다.”
그때, 백발의 사내가 갑자기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 녀석은 네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적성은 백발 사내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생각 같아서는 자신도 이준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애송이에게 이준을 맡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적성의 말에 백발 남자의 표정이 어둡게 내려앉았다. 하지만 아무리 자존심이 상한다 하더라도 5성 투존의 판단이 그러하니 얌전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한편, 황헌은 속으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를 가늠해보고 있었다. 마수의 장막을 벗어날 당시 그는 이미 봉황족의 다른 강자들에게 연락을 취해둔 상태였다. 때문에 조금만 더 시간을 끈다면 용황 열매를 빼앗을 수 있을 것이라는게 그의 계산이었다.
“적성. 갑시다.”
황헌이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자 봉황족과 풍뢰각 강자들도 그를 따라 빠르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여러분,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소?”
수많은 강자들이 이준 일행을 압박해오던 그때, 먼 곳에 있던 당진이 날아오며 말했다.
“당 곡주, 그게 무슨 뜻이오?”
황헌과 적성이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이준 선생은 불의 협곡의 은인이오. 그런 은인이 위험에 처했는데 방관하고만 있을 수는 없소.”
“당진, 불의 협곡을 생각하시오!”
이어지는 당진의 말에 적성은 불같이 화를 냈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능히 이준 일행을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여기서 불의 협곡이 끼어든다면 그야말로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격이었다.
“적성, 지금 날 협박하는 것인가? 우리 불의 협곡이 그런 협박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지 모르고 있는 건 아니겠지?”
당진의 싸늘한 반응에 적성과 황헌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그가 이준과 이렇게 가까우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다는 반응이었다.
“당 곡주, 정말 무례하군. 언제부터 불의 협곡이 봉황족과 풍뢰각, 영혼의 궁전을 모두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지?”
그때, 옆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빙존자가 입을 열었다. 그 역시 이준에게 원한이 있었으니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게다가 불의 협곡과 빙하곡은 아주 오래 전부터 중주의 패권을 놓고 다투고 있었으니, 잘만하면 이번 기회에 불의 협곡을 꺾고 이준에 대한 원한도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빙존자. 자네도 나서겠단 말이오?”
당진의 물음에 빙존자는 말없이 웃음으로 답했다.
“하하! 빙존자, 오늘 은혜는 반드시 갚겠소.”
빙존자가 등장하자 적성과 황헌의 얼굴이 환해졌다.
“갑시다.”
펑!
말을 마치기 무섭게 적성과 황헌이 먹잇감을 노리는 독수리처럼 이준을 향해 돌진했다.
“이준, 내 팔을 자른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그 순간, 이준의 몸에서 자갈색 화염이 화산처럼 터져 나왔고, 아라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의 몸에서도 형형색색의 염력이 폭발했다.
이준이 인을 맺자, 열한 마리의 요괴의 몸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황헌은 요괴들이 맡고, 적성은 내가 맡을게. 너희들은 나머지를 맡아줘.”
“아니야, 내가 적성을 맡을게.”
아라가 굳은 표정으로 이준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적성은 이준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은 장본인 이었으니, 덜컥 걱정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걱정 마. 나도 이제 투존이잖아.”
하지만 이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후……. 알았어. 조심해.”
이준의 단호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결국 아라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말을 마친 아라는 곧바로 천화존자와 함께 몸을 날려 봉황족과 풍뢰각의 강자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아라와 천화존자가 다른 강자들을 상대하고 있는 틈을 타 적성과 황헌이 이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준 선생, 위험해지면 바로 나를 부르시오! 내가 최대한 선생을 돕겠소!”
당진이 빙존을 향해 몸을 날리며 말했다.
이준은 당진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손을 휘둘러 자신의 요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열한 마리의 하늘 요괴가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 황헌을 포위한 채 무시무시한 속도로 공격을 퍼부어댔다.
“흥, 네 놈이 정말로 나를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이준의 주위를 지키고 있던 요괴와 동료들이 모두 떠나자, 적성이 싸늘한 표정으로 웃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러니까 제 동료들을 보낸 거겠지.”
이준은 차갑게 웃음을 지으며 빠르게 인을 맺었다.
“천계의 불꽃, 제 1장! 제 2장! 제 3장!!”
다음 순간, 그의 염력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눈 깜짝할 사이에 3성 투존 수준까지 상승했다.
“불의 협곡의 천계의 불꽃이군. 그래봤자 3성 투존 아니더냐?”
상대의 힘이 상승한 것을 느낀 적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곧바로 이준을 향해 검은 사슬을 내뿜었다.
“영혼의 사슬!”
검은 안개에 휩싸인 쇠사슬이 날아들자, 이준은 곧바로 자갈색 화염을 뿜어내 사슬을 막아냈다.
쾅!
검은 사슬과 자갈색 화염이 맞부딪히는 순간, 사슬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태양검!”
다음 순간, 이준의 몸이 귀신처럼 사라졌다가 적성의 머리 위에 나타나더니 눈부신 빛을 내뿜는 검은 송곳을 번개처럼 내리쳤다.
챙-!
그러나 새카만 송곳이 적성의 머리 위에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수십 개의 검은 사슬이 솟아나 이준의 공격을 막아냈다.
“고작 이 정도로 나에게 대적하려 했느냐! 원령의 손아귀!”
적성이 무투기를 사용하는 순간,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섬뜩한 검은 빛이 터져 나왔다.
“죽어라!”
곧이어 적성의 손에서 터져 나온 검은 빛이 기이한 빛을 발하며 거대한 손으로 변해 이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적성의 무투기에서 느껴지는 심상찮은 기운에 이준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약로를 구할 때와 달리 지금 적성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젠장, 처음부터 죽자고 달려드는군!’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날아오는 검은 손의 모습에 이준 역시 빠르게 인을 맺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강의 무투기를 시전했다.
“산의 힘!”
“바다의 힘!”
“대지의 힘!”
인이 완성되는 순간, 그의 손에서 세 개의 눈부신 에너지 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다.
“아직 부족해.”
하지만 제왕의 권 중 세 개를 시전했음에도 적성의 무투기를 막아내기에는 여전히 부족함이 느껴졌다.
이에 이준은 이를 악물고 다시 한 번 인을 맺었다.
“하늘의 힘!”
곧이어 손바닥만 한 빛 덩어리가 나타나 앞서 이준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세 개의 빛 덩어리와 융합하기 시작했다.
네 개의 무투기가 한데 뭉치자, 광단이 격렬하게 요동치고 그 표면에 기이한 결정이 생겨나며 더욱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이준의 손 위에 나타난 화려한 광단은 압도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주위의 공간을 일그러뜨렸다.
“가라!”
이준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손을 내밀자, 그의 손을 떠난 광단이 눈부신 빛을 발하며 거대한 검은 손과 맞부딪혔다.
“부서져라!”
적성은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거대한 손을 이용해 광단을 붙잡은 뒤 그것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는 이준이 더 이상 9성 투종이 아닌, 3성 투존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쾅!
적성의 무투기와 이준의 무투기가 부딪히는 순간, 엄청난 폭발음이 하늘을 뒤흔들었다.
펑!
검은 손과 광단은 살아있는 생물마냥 서로를 집어삼키며 엄청난 빛을 내뿜다가 갑자기 찬물을 맞은 불씨마냥 동시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럴 수가!”
전력을 다한 자신의 무투기가 허무하게 사라지자, 적성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투존이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라니. 이놈을 살려두어서는 안되겠어.’
생각을 마친 적성은 곧바로 새까만 쇠사슬을 한데 모아 거대한 팔뚝으로 변화시켰다.
곧이어 적성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돌연 시야에서 사라졌다. 적성의 몸이 갑자기 종적을 감춘 순간, 이준은 반사적으로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이준이 몸을 날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검은 쇠사슬이 뒤엉켜 만들어진 거대한 주먹이 그의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다.
펑!
이준은 황급히 양팔을 교차시켜 적성의 공격을 받아냈지만, 검은 주먹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힘에 그의 몸이 저만치 뒤로 밀려났다.
공격을 적중시킨 적성은 곧바로 이준을 향해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적성이 바짝 쫓아오자 이준은 번개의 움직임을 최대치로 시전해 빠르게 후퇴했다.
“흥, 어딜 달아나느냐!”
그러나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적성과의 거리는 벌어지기는커녕 점점 더 좁혀지기만 했다.
“죽어라!”
펑펑펑!
다음 순간, 적성의 주먹이 폭풍처럼 이준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적성의 주먹이 수십 번이나 내리꽂혔음에도 이준의 표정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이는 영원히 죽지 않는 별의 불꽃이 그의 상처를 빠른 속도로 회복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별의 불꽃이 가진 무시무시한 회복력을 확인한 이준은 더 이상 방어하지 않고 정면으로 적성에게 맞서기 시작했다.
쾅쾅쾅!
허공에서 미친 듯이 주먹을 주고받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강자들은 저도 모르게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1성 투존이 5성 투존을 상대로 이렇게 미친 듯이 달려들다니, 있을 수 없는 일 이었다.
‘저 미친놈이…….’
전투가 이어질수록 적성의 가슴속에서 점점 더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1성 투존, 아니 3성 투존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여러 번 공격을 당했다면 진작에 피를 토하고 쓰러져야 마땅했다. 하지만 지금 이준은 피를 토하기는커녕 점점 더 거세게 반격을 해오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 순간, 적성의 눈에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들어왔다. 이준의 몸에 상처가 나는 즉시 자갈색 화염이 그 부위를 뒤덮으며 빠른 속도로 상처가 치료되고 있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별의 불꽃 때문이었어!’
물론 별의 불꽃이 몸을 치료하는 데에 많은 염력이 필요했지만, 지금 이준의 상태는 어떻게 봐도 염력이 부족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