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7화. 1격 무투기
“괜찮아?”
이준이 바닥에서 일어나자, 아라가 급히 다가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바로 알아차려서 다행이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도 살아나오지 못했을 거야.”
아라에 이어 천화존자가 이준의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이런 엄청난 위력의 무투기는 처음이야. 방금 전 해골이 사용한 게 전설속의 1격 무투기 아닐까?”
아라의 추측에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이런 무시무시한 무투기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투성 강자가 살아있었다면 이 대전이 아니라 산맥 전체가 날아갔어도 이상할 게 없는 위력이었다.
“두루마리도 다 사라져버린 게 아쉽네요.”
예린이 식은땀을 닦으며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니야. 여기서 진짜 중요한 건 두루마리가 아니라 저 투성 해골이야.”
하지만 이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공중에 떠있는 해골을 바라보았다. 투성 강자의 뼈 자체도 대단한 보물이었지만, 1격 무투기까지 새겨져 있으니 반드시 저 물건을 손에 넣어야만 했다.
“이제 진짜 실력자들만 남았네. 상황을 보아하니 우리 쪽이 가장 멀쩡한 듯한데 어쩔 텐가?”
주위를 둘러보던 천화존자가 조용히 이준의 의견을 물었다.
“서두르지 말죠. 참을성 없이 먼저 나서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이준의 말에 아라는 적성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금방이라도 해골을 향해 달려들 기세였다.
다음 순간, 탐욕으로 눈을 빛내던 적성이 번개처럼 투성 강자의 해골을 향해 몸을 날렸다.
“흥, 우릴 바보로 아는군. 저 뼈에 무언가 비밀이 있는 게 틀림없어!”
그와 동시에 황헌과 당진, 빙존자 역시 해골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투성 강자의 해골에 눈독을 들이는 적성의 태도를 보고 무언가 중요한 것이 그 안에 감춰져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적성의 뒤를 쫓던 그들이 손을 휘두르자, 허공 위에 검은 균열이 생겨났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적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와 비슷한 실력을 가진 세 사람이 한꺼번에 달려드니 도저히 정면으로 받아낼 도리가 없었다.
“이놈들이!”
당황한 적성은 황급히 투성 강자의 해골을 붙잡은 뒤 그것으로 세 투존의 공격을 막아냈다.
펑!
세 투존의 염력과 투성 강자의 해골이 부딪히는 순간,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지며 대전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것 마냥 흔들렸다. 그러나 5성 투존 셋의 공격을 막아냈음에도 적성의 몸은 약간 뒤로 밀려났을 뿐,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았다. 투성 강자의 몸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강도를 가지고 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투성 해골을 손에 넣은 적성은 미친 사람마냥 웃음을 터뜨리며 곧바로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어딜!”
그러나 그가 몸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시커먼 이준이 번개처럼 날아들어 거대한 검은 송곳으로 그를 내리쳤다.
챙!
적성은 또 다시 해골을 휘둘러 이준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황헌과 당진, 빙존이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
“저 투성 해골이 진짜인가 봐. 그렇지 않으면 저들이 저렇게 목숨 걸고 빼앗을 리가 없잖아!”
광장 안에 있던 사람들은 넋을 놓고 한데 뒤섞인 다섯 사람을 바라보며 눈치를 살폈다. 그들의 싸움에 끼어들자니 자신이 없었고, 이대로 포기하자니 너무 아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5성 투존 넷 사이에 뛰어들만한 용기가 있는 자는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 * *
세 강자의 계속되는 공격에 적성의 몸이 점점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손에 든 투성 강자의 해골을 방패로 삼지 않았더라면 진즉에 승부가 났을 것이다.
황헌을 비롯한 세 투존은 잠시도 틈을 주지 않고 세 방향에서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어댔다.
우직!
그렇게 수십 번의 공방을 주고받았을 때, 돌연 둔탁한 소리와 함께 투성 강자의 해골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해골 안에 담겨있던 영혼의 힘이 모두 빠져나간 채로 5성 투존 셋의 공격을 쉴 새 없이 받아냈으니 제 아무리 투성 강자의 뼈라 해도 도저히 버텨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적성의 손에 남은 것은 투성 강자의 왼팔 뿐이었다.
“이 자식들이!”
적성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지르며 저 멀리 날아간 해골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가 해골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준이 한 발 먼저 나타나 왼팔이 끊어진 투성 해골을 붙잡았다.
“이준, 또 네 놈이냐!”
적성은 눈이 뒤집힌 채 고함을 내질렀고, 그와 동시에 황헌과 빙존이 이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이준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내 화염이 뒤덮인 손으로 글자가 적힌 갈비뼈 세 개를 뜯어냈다.
적성 하나도 감당하기 힘든데 그와 비슷한 실력을 가진 빙존과 황헌까지 가세한다면 지금 자신의 실력으로는 잠시도 버텨낼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은 1격 무투기의 정보가 담긴 뼈만을 뜯어내 죽어라고 달아나는 것뿐이었다.
우직!
갈비뼈 위에 적혀 있는 글씨에서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미세한 광택이 반짝이고 있었다.
‘역시, 1격 무투기는 투성 강자의 뼈에 새겨져 있었어.’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은 이준은 번개 같은 동작으로 그것을 저장반지 안에 집어넣은 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세 명의 투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준, 해골을 내놓아라!”
해골을 빼앗긴 적성은 미친 사람마냥 길길이 날뛰며 이준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필요하시다면 드리겠습니다.”
이에 이준은 잽싸게 뒤로 몸을 날리며 손에 쥐고 있던 투성 강자의 해골을 적성을 향해 집어던졌다.
너무나도 쉽게 해골을 넘겨주는 이준의 모습에 적성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반사적으로 해골을 받아들었다.
“적성 존자, 혼자 보물을 독차지 하려는 게요?”
해골이 다시 적성에게로 넘어가자, 황헌과 빙존은 다시 방향을 돌려 적성을 덮쳤다.
두 사람은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적성에게 공격을 퍼붓는 동시에 투성 강자의 해골을 붙잡았다.
“이건 우리 영혼의 궁전의 것이다!”
적성이 독기 어린 눈빛으로 해골을 강하게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하!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 봉황 마수들이 영혼의 궁전을 두려워 할 것 같은가?”
황헌은 적성의 협박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해골을 붙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빙존 역시 적성의 말을 들은 척조차 하지 않았다. 이 투성 해골을 얻으면 투성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영혼의 궁전을 두려워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우드드득.
세 투존이 해골을 붙잡고 실랑이를 버리자, 투성 강자의 뼈에서 섬뜩한 소리가 울리며 관절이 덜렁거리기 시작했다.
“허허, 다들 손을 놓지 않겠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그때, 당진이 재빠르게 날아와 해골의 나머지 한쪽을 움켜잡았다.
우직!
투존 강자들의 우악스런 힘겨루기에 제 아무리 투성 해골이라 해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결국 새하얀 해골이 ‘펑’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나 사방으로 흩어졌고, 네 사람은 강한 충격에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이 자식들이!”
적성은 핏대 선 얼굴로 손에 들린 해골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온전한 투성 해골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 자신의 임무였는데, 지금 그의 손에 남은 것은 해골의 머리와 한쪽 팔 뿐이었다.
“투성 해골이다. 빨리 뺏어!”
투성 강자의 해골이 하늘 위에 흩뿌려지는 순간, 주위에서 눈치를 살피고 있던 다른 강자들도 약속이나 한 듯 허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한편, 이 광경을 바라보던 이준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뼈가 산산 조각나 버린다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갈비뼈 세 개 만을 훔쳤다는 것을 눈치 챌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적성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저 자도 투성 강자의 갈비뼈에 1격 무투기가 숨겨져 있다는 것은 모르는 모양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훑던 이준은 자신과 가까운 곳에 해골의 오른 팔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새하얀 뼈 조각은 완전히 조각 조각난 다른 부위에 비해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준이 투성 강자의 오른 팔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투성 강자의 오른팔을 발견한 다른 강자들도 미친 듯이 그 쪽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흐음…….”
그 순간, 이준의 발에서 눈부신 은빛 섬광이 터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투성 강자의 오른 팔을 낚아챘다.
쉭!
이준이 오른 팔을 주워드는 모습을 발견한 다른 강자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자리에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이준 한명 정도야 다 같이 달려들면 문제가 없었지만, 그와 가까운 곳에 아라와 천화존자, 영진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실력으로는 넷이나 되는 투존을 상대할 수 없었다.
투성 강자의 오른팔을 노리던 강자들이 방향을 돌려 다른 뼈 조각을 향해 몸을 날리자, 이준은 자신의 손에 들린 투성 강자의 오른팔을 유심이 관찰해 보았다.
뼈는 생각보다 가벼웠고, 가까이서 보니 뼈 위에 기이한 광택이 흐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만히 뼈 조각을 바라보던 이준은 자갈색 화염을 소환해 해골 위에 불을 지폈다. 그러자 하얀색 뼈가 뜨겁게 달구어지며 팔뚝 안에서 액체 같은 것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투성의 골수잖아.”
이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어쩌면, 적성의 임무도 바로 이걸 가져오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 뼈 안에도 분명 들어있을 거야.”
이준은 빠르게 몸을 돌려 광장에 흩뿌려진 뼈 조각들을 빠르게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이에 주위에 있던 강자들은 눈에 불을 켜고 이준을 노려보았지만, 셋이나 되는 투존에 실력을 알 수 없는 두 명의 강자가 주위를 지키고 있는 탓에 차마 달려들지는 못 하고 다른 뼛조각을 줍기 위해 이준의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눈앞에 떠다니는 뼈 조각들을 자세히 훑어보던 이준은 모든 뼈 속에 투성 강자의 골수가 들어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액체가 흐르는 조각만을 골라 조심스럽게 저장반지 안에 넣었다.
한편, 적성은 사방에 날아다니는 뼈 조각을 수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심지어 그는 자신보다 실력이 낮은 자들을 모조리 공격하며 그들의 손에 들린 뼈 조각마저 빼앗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날아다니며 뼈 조각을 끌어 모으던 그의 시선이 마침내 이준에게서 멈춰 섰다.
적성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아직 모자란가 봐요?”
“손에 있는 뼈들을 당장 내놓아라!”
“가져가 보시지요.”
이준이 자갈색 화염을 뿜어내며 말했다.
“적성, 한 번 더 협력할 생각 있소?”
이준과 적성이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하자, 가까운 곳에 있던 황헌이 날아와 적성의 곁에 서며 물었다.
“흥미롭군. 그래, 무엇을 원하시오?”
적성이 물었다.
“함께 저 녀석을 잡는 게 어떻소. 투성 해골은 넘겨주겠소. 내가 저 애송이에게 돌려받을 것이 있거든.”
말을 마친 황헌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그가 노리는 것은 바로 이준에게 빼앗긴 용황열매였다.
“좋소!”
적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황헌은 씩 웃으며 이준을 바라보았다.
“물건을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황헌은 이준의 손에서 반드시 용황 열매를 빼앗아 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5성 투존 둘이라면 이준 일행이 모두 힘을 합쳐도 능히 그들을 제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적성의 얼굴을 쳐다본 이준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지었다.
“팔 하나 잘린 걸로는 부족하신가 봅니다.”
“걱정 마라. 이번엔 내가 네 팔다리를 모두 잘라버릴 테니!”
자신의 잘린 팔을 언급하자 적성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럴 능력이 있는가 모르겠네!”
아라가 말했다.
그때, 황헌이 차갑게 웃으며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봉황족의 강자들과 풍뢰각의 강자들이 빠르게 그에게 날아왔다.
이에 이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저장 반지에서 요괴들을 불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