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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25화 (625/818)

625화. 투성 강자의 해골

두루마리를 붙잡은 진천남은 나머지 한쪽 손으로 이준의 머리통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죽어라!”

하지만 그의 공격이 이준의 몸에 닿기도 전에 황금빛 그림자 하나가 귀신처럼 나타나 주먹을 받아냈다.

“요괴?”

갑자기 나타난 하늘 요괴를 본 진천남은 당황하며 잽싸게 주먹을 거두어 들였지만, 요괴의 눈부신 주먹은 이미 진천남의 머리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개 같은 놈!”

요괴의 무시무시한 힘을 느낀 진천남은 황급히 두루마리를 잡고 있던 손을 풀고 후퇴했다.

진천남이 손을 내려놓는 순간, 이준은 적홍색 두루마리를 움켜쥐며 발악하는 두루마리를 자갈색 화염으로 힘껏 짓눌렀다.

잠시 후, 두루마리가 모든 힘을 잃은 듯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자, 이준은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붉은 두루마리를 저장 반지 안으로 회수했다.

두루마리가 저장반지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강자들은 분한 표정으로 천화존자와 이준 일행을 노려보다 천천히 물러났다.

무사히 두루마리를 회수하는데 성공한 이준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황금색 요괴에 의해 구석에 몰려 있는 진천남을 바라보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진천남! 어딜 가려고!”

이준은 오늘 현명종과의 악연을 끝내고 싶었다. 과거 진천남이 연금탑으로 자신을 찾아왔을 때는 아직 9성 투종에 불과했기에 그를 죽일 수 없었지만, 투존이 된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진천남을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현명종은 계속해서 자신을 노릴 것이고, 이는 두고 두고 골칫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기회가 왔을 때 진천남을 제거해 두는 것이 좋았다.

펑!

황금색의 하늘 요괴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진천남의 얼굴에서는 핏기가 가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9성 투종에 불과했던 이준의 실력이 어떻게 이렇게 강해졌는지, 무투기조차 사용할 수 없는 요괴 따위가 어떻게 이렇게 강할 수 있는지, 그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 눈앞의 요괴와 이준에게 협공을 당한다면 이 곳에서 목숨을 잃고 말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제길, 우선 뒤로 빠져 있다가 영혼의 궁전이나 봉황 마수들이 저 놈과 싸울 때 기회를 봐 공격해야겠군.’

“어딜 가려고?”

하지만 진천남이 하늘 요괴를 피해 몸을 돌리기도 전에 그의 등 뒤에서 뜨거운 강풍이 덮쳐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온 몸에서 자갈색 화염을 뿜어내는 이준이 자신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네 이놈, 감히 네 놈 따위가 날 죽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순간 진천남의 입가에 얼음처럼 싸늘한 미소가 내려앉았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여기에 왔겠지.”

쾅!

이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등 뒤에서 또 다시 하늘 요괴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앞은 투존이 된 이준, 뒤는 투존급 하늘 요괴,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둘 중 하늘 요괴가 더 위험하다고 판단한 진천남은 이를 악물고 염력을 끌어올려 주먹을 휘두르며 눈부신 금빛을 뿜어내는 하늘 요괴에 대항했다.

“하늘의 힘!”

그 순간, 등 뒤에서 짧은 외침이 울려 퍼졌다.

“안 돼!”

쾅!

등 뒤에서 날아드는 엄청난 힘을 느낀 진천남이 막 몸을 돌리려는 찰나, 손바닥만한 자갈색 인결이 폭풍처럼 그의 등을 내리쳤다.

“푸흡!”

곧이어 진천남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하며 그의 입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다가 이준의 무투기에 영향을 받은 강자들 역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일격에 저 멀리 날아간 진천남은 얼굴 전체가 피범벅이 된 채 힘겹게 몸을 돌려 점점 멀어지는 이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네, 네 이놈…….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 뒤에는 천명종이…….”

쾅-.

하지만 말을 마치기도 전에 황금빛 주먹이 그의 가슴을 꿰뚫고 반대편으로 튀어나왔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그의 몸은 점점 힘을 잃어가더니 나무토막마냥 뻣뻣하게 굳어 바닥에 고꾸라졌다.

“다 자업자득이야.”

진천남의 죽음을 확인한 이준은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2성 투존인 진천남을 죽이는데 성공한 이준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하늘 요괴를 회수한 뒤 천화존자와 아라의 곁으로 돌아갔다.

“흡혈 요괴들은 어떻게 됐어?”

이준이 아라를 훑으며 물었다.

“괜찮아.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어. 힘만 강했지 지능이 없더라고.”

아라의 답변에 이준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광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봉황 마수와 풍뢰각이 각각 두루마리 하나씩을 얻었고, 빙하곡과 불의 협곡이 각각 하나, 그리고 또 다른 강자들이 나머지 두 개의 두루마리를 가져갔네.”

천화존자가 말했다.

“이제 어떡하겠나? 남은 건 세 개 뿐인데…….”

“아닙니다. 더 많은 두루마리를 손에 넣으려 했다가는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강자들에게 협공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이어지는 천화존자의 질문에 이준은 고개를 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제 생각에 저 두루마리들 중에 1격 무투기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니까 네 말은……저게 다 가짜라는 거야?”

아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저 두루마리들도 확실히 굉장한 물건들이긴 한데 1격 무투기는 아니야. 아무래도 속은 것 같아.”

그때, 아라가 눈썹을 찌푸리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잠깐, 저 녀석들,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그녀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적성을 비롯한 영혼의 궁전의 강자들이 투성 강자의 해골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들의 목표가 저 투성 강자의 뼈인 건가…….”

바로 그 순간, 이준의 눈에 놀라운 장면이 들어왔다.

석좌에 앉아있던 투성 강자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이준이 돌처럼 굳은 채 투성 강자의 뼈를 바라보고 있자, 아라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왜 그래?”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준은 적성이 투성 강자의 해골을 향해 손을 내뻗는 순간, 돌연 보람과 예린의 손을 낚아채며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어서 피해!”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준의 행동에 아라와 천화존자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망설이지 않고 그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한편, 적성은 석좌 가까이 다가가 흥분된 눈빛으로 입맛을 다시며 양반다리를 한 채 앉아있는 해골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이게 바로 투성 강자의 해골이구나.”

쉭!

적성 영감의 손이 해골에게 닿자, 공간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허공에서 투명한 바늘이 나타나 그의 손을 마구 찔러댔다.

무언가가 손을 찌르는 것을 느낀 적성은 황급히 손을 떼며 뒤로 물러섰지만, 이미 그의 손에서는 새빨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손을 타고 흐르던 피가 투성 강자의 뼈 위에 떨어지는 순간, 적성의 마음 한구석에서 까닭 모를 불안감이 샘솟았다.

“적성 천존님, 무슨 일이십니까?”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영혼의 궁전의 강자들이 파랗게 질린 적성의 얼굴을 보고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적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해골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곧이어 그의 피가 뼈 속으로 흡수되며 투성 강자의 시신에서 서서히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안 돼, 당장 피해!”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한 적성은 창백한 얼굴로 고함을 내지르며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던 강자들이 허둥지둥 달아나려던 찰나, 투성 강자의 뼈에서 섬뜩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으아아!”

곧이어 투성 강자의 해골이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천둥소리 같은 괴성을 내질렀다.

해골의 입에서 터져 나온 음파가 해일처럼 터져 나오자, 주위에 서있던 영혼의 궁전의 강자들이 화살처럼 튕겨져 나가며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먼저 달아난 적성은 간신히 목숨을 건지는데 성공했지만, 5성 투존인 그의 실력으로도 음파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창백하게 질린 채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피비린내를 맡은 사람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염력으로 온몸을 감싼 채 대전의 중심부에서 멀어지려 애썼다.

죽음의 음파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새빨간 안개가 가득했고, 투존 둘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형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적성! 무슨 짓을 한 건가!”

분노한 당진이 적성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대전에 있던 사람들은 이 끔찍한 재앙이 적성의 행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람들의 살기 어린 시선을 느낀 적성이 창백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나도 어찌된지 모르는 일이오! 우리 영혼의 궁전의 강자들도 모두 죽지 않았소!”

“당신의 피가 닿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겁니다.”

“인정하지. 이번엔 확실히 내 실수네. 하지만 지금은 다툴 시간이 없소. 저 투성 강자의 해골은 우리 모두 힘을 합쳐야만 해결할 수 있소.”

이준의 한마디에 적성은 순간 분노가 치미는 것을 느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강자들의 시선을 의식해 일단 고개를 숙이고 정중하게 사과했다.

“좋소. 우선 힘을 모읍시다. 조금 전 음파가 다시 나타난다면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오.”

당진 역시 빠르게 적성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불의 협곡 역시 적성의 행동으로 인해 많은 투사들을 잃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모두 힘을 합쳐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루마리도 얻었으니 각자 흩어집시다.”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강자 하나가 두려움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갈 수 없소. 저 녀석은 반드시 고적에 들어온 사람들을 모조리 없애려 할 것이오. 여기서 도망가는 순간, 어느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소.”

이어지는 적성의 말에 이준은 영혼의 궁전에서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보물들을 놔두고 투성 강자의 해골에 접근한 것부터 시작해 지금의 대응까지,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 틀림이 없었다.

적성의 말에 장내는 더욱 혼란에 빠졌고, 몇 몇 사람들은 완전히 공황 상태에 빠져 도망조차 가지 못 하고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우득.

그때, 대전 안에서 섬뜩한 뼈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든 사람들은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쥐 죽은 듯이 핏빛 안개가 자욱한 대전의 중심을 바라봤다.

곧이어 무언가 단단한 것이 바닥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섬뜩한 소리에 사람들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공포를 느꼈다.

“조심해. 모두 흩어지지 마.”

이준이 굳은 얼굴로 자신의 일행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단순한 고함 소리에 실린 에너지만으로도 주위에 있던 투종급 강자들이 죽어나갔다. 만일 투성 강자의 해골이 본격적으로 손을 쓰기 시작한다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몇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긴장된 눈빛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핏빛 안개가 깔린 대전 중앙에서 피로 물든 해골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후…….

해골의 텅 빈 눈에서 새빨간 빛이 번쩍이더니 날카로운 목소리가 매섭게 울려 퍼졌다.

“고적에 침입한 자, 죽음을 맞이하리라!”

새하얗던 해골은 핏빛 안개를 흡수하면서 어느새 선홍빛으로 변해있었고, 뻥 뚫린 두 눈에선 섬뜩한 붉은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투성 해골의 머리 위에는 아직 주인 없는 두루마리 두 개가 유유히 날아다니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움직이지는 못 했다.

해골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사람들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들 당황할 필요 없소. 저 해골에는 투성 강자가 남겨놓은 영혼의 힘이 조금 남아있을 뿐이지, 진짜 투성 강자가 아니오. 우리가 함께 힘을 합친다면 저자를 쓰러뜨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오!”

“적성 존자님의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적성 존자님이 일으킨 것이니 먼저 나서시지요.”

적성이 주위 사람들을 선동하자, 이준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준 선생의 말이 맞는 듯싶군. 이번 일은 자네의 책임이 크지 않소? 우리와 함께 힘을 모으고 싶다면 자네가 선봉에 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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