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624화 (624/818)

624화. 두루마리 쟁탈전

“상처가 안 나았나보지?”

이준이 적성의 잘린 오른팔을 가리키며 말했다.

“팔이 어떻게 하나뿐이지?”

그 순간, 적성을 알고 있던 몇 몇 강자들이 그의 오른팔이 없는 것을 보고는 저마다 한마디씩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5성 투존의 팔을 자를 수 있는 사람은 중주 전체에도 결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준을 발견한 적성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놀랐다가 살기로 눈을 빛내며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이준?! 어떻게 네 놈이 살아있는 것이냐!”

그의 외침에 대전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준에게 향했다.

“노인장도 아직 살아있는데 젊은 사람더러 먼저 가라니, 너무 하시는군요.”

“입 놀리는 꼴을 보아 하니 내가 헛것을 본건 아닌 모양이군.”

이준과 적성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의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적성의 팔을 자른 것이 이준이라는 것은 거의 틀림이 없어보였다.

“저 녀석이 어떻게……?”

봉연은 입을 다물지 못했고, 황헌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꿈뻑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1성 투존 따위가 자신보다 더 강한 적성 영감의 팔을 잘라버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적성이 이준을 가만둘 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봉황족에게 있어 이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황헌이 어떻게 하면 둘 사이에 싸움을 붙일까 고민하고 있을 때, 적성이 번개처럼 몸을 날려 이준에게 달려들었다.

“다른 팔 한쪽도 필요가 없어졌나?”

적성이 가까워지는 순간, 이준의 손에서 동시에 세 개의 불꽃이 치솟았다.

자신의 한쪽 팔을 날려버린 불꽃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 대단한 적성조차 반사적으로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두 팔이 온전했을 때도 이준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 했는데, 한쪽 팔을 잃은 지금 이준을 제압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이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전주가 내린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고적에 온 것이었다.

이에 적성은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살의를 간신히 억누른 뒤 이준을 노려보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고적에서 나가는 순간 없애주마!”

“언제든지요.”

적성의 협박에 이준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투존이 된 지금의 이준은 적성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

적성 영감은 싸늘한 눈빛으로 이준을 노려보다 결국 몸을 돌려 대전 앞으로 날아갔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무작정 앞자리를 차지하는 적성 영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적성 영감이 왔으니 일이 조금 귀찮게 되었구나.”

천화존자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선생님. 1격 무투기를 앞에 두고 저에게 죽자고 달려들 만큼 정신이 나간 자는 아니니까요. 설령 그렇게 나온다고 해도 저도 투존이 되었으니 나름대로 자신이 있습니다.”

“저……. 혹시 도련님이 저 사람들과 사이가 나쁜가요?”

예린은 작은 목소리로 보람에게 물었다.

“응. 저 자는 우리의 원수이자 앞으로 네 원수가 될 사람이야. 조금 이따 싸움이 시작되면 하나도 빠짐없이 죽여 버려. 그럼 이전에 네가 했던 잘못도 용서해줄게.”

보람이 예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렇군요. 도련님의 적이라면 저에게도 적이에요.”

“그래. 눈치가 빠르네.”

예린의 대답에 보람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전 안을 둘러보던 이준이 석좌 주위에 서있는 요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봉인이 풀려도 급하게 나서지 말자고. 먼저 나설수록 손해야.”

이준의 말에 모두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1격 무투기를 손에 넣는 사람은 가장 먼저 사람들의 목표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때, 열 개의 광단이 요동치며 그 안에 있던 두루마리가 유성처럼 바깥으로 튀어나오더니, 동시에 석상처럼 서있던 요괴들의 눈에서 기이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1격 무투기가 나타났다!”

두루마리가 밖으로 나오는 순간, 대전 안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던 강자들이 벌떼처럼 두루마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광단에서 나온 두루마리들은 마치 영혼이라도 있는 것처럼 교묘하게 그들의 손을 피해 쏜살같이 빠져 나갔다.

쾅!

곧이어 두루마리를 노리는 사람들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며 여기저기서 새빨간 피가 터져 나왔다.

“아직, 아직 움직이지 마!”

하지만 이준 일행은 그의 지시에 따라 성급하게 나서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당진 역시 이준의 곁에 가만히 선 채 조용히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이준 선생, 지금은 어떤 것이 1격 무투기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저 두루마리 전부 다 보통 무투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같이 모두 강력해요. 저렇게 강한 무투기는 처음 봅니다. 게다가 두루마리마다 뭔가 장치가 걸려 있는 것 같군요.”

열 개의 두루마리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에너지는 여태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 안에 담겨 있는 에너지 역시 엄청나 그 하나하나가 능히 제왕의 권을 이루는 다섯 개의 무투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한편, 영혼의 궁전과 봉황족, 그리고 다른 일류 세력들 역시 이준이나 당진과 마찬가지로 섣불리 나서지 않고 대전 안의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허허, 이준 선생. 일단 두루마리를 잡는 게 좋겠소.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당진은 피를 토하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으악!”

이준이 막 고개를 끄덕이는 찰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대전 안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석좌 주위를 지키고 있던 요괴들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무차별로 공격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요괴들은 마치 양을 쫓는 늑대처럼 강자들의 뒤를 쫓아가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있었다.

“보통 요괴가 아냐. 눈에서 생기가 느껴져.”

이준이 자신과 가까운 곳에서 사람을 물어뜯고 있는 요괴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회백색 요괴의 눈은 자신의 요괴들처럼 텅 비어있지 않고 살기로 가득 차있었다.

“이건……. 흡혈 요괴다. 강자의 피와 영혼을 빨아들여 에너지를 얻고, 강한 에너지를 흡수할수록 더욱 강해지지. 일정한 수준에 오르면 지력도 생기고 무투기도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들었다.”

이준의 곁을 지키고 있던 천화존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 * *

수없는 강자들의 싸움에 요괴까지 가세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심지어 조용히 전투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던 강자들도 요괴들에게 공격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싸움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먼저 두루마리를 잡을 수 있는지 볼 테니 여기에 가만히 있어.”

혼란스러운 대전 안을 둘러보던 이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대전 안의 모든 사람들은 두루마리의 뒤를 쫓고 있었고, 누군가가 두루마리를 손에 잡기 무섭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협공에 의해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이준의 말에 모두 분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루마리를 쫓는 사람이 많아지면 상황은 훨씬 더 안 좋아질 것이 분명했다.

그 때, 또 다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핏줄기가 터져 나왔다. 곧이어 그 안에서 회색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와 피 묻은 장창을 든 채 이준 일행을 향해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조심해, 요괴야!”

그 순간, 아라가 번개처럼 몸을 날려 흡혈 요괴의 앞을 막아섰다.

아라가 요괴를 상대하고 있는 사이, 이준은 흡혈 요괴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요괴의 피부는 얇은 석회질의 물체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으며,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타격을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요괴도 지난 번 그 하늘 요괴들처럼 자네 것으로 만들 수 있겠나?”

천화존자의 질문에 이준은 곧바로 영혼의 힘을 움직여보았다. 하지만 고적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하늘 요괴들과는 달리 중앙 대전을 지키고 있는 흡혈 요괴에 새겨진 각인은 그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을 정도로 강했다.

“안 돼요. 각인이 너무 강해서 지울 수 없어요.”

천화존자는 조금 아쉬운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기는 했지만, 투성 강자의 1격 무투기를 지키는 호위병이 1성 투존에게 빼앗길 정도로 허술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움직일 준비하자. 내가 두루마리를 맡을 테니 너희는 다른 사람들을 막아줘. 천화존자 선생님, 영진 형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준의 지시가 떨어지자, 그의 동료들이 빠르게 염력을 끌어올리며 진형을 갖췄다.

이준이 노리는 것은 열 개의 두루마리 중 불속성의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새빨간 두루마리였다.

그렇게 호시탐탐 두루마리를 낚아챌 기회만을 노리고 있을 때, 마침내 이준이 목표로 한 붉은 두루마리가 그들 근처로 날아왔다.

“지금이야!”

펑-!

자갈색 화염이 폭발하며 단단한 바닥이 모두 산산조각으로 변하는 순간, 이준이 화룡처럼 날아올라 두루마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돌진했다.

갑자기 달려드는 이준을 발견한 사람들은 차가운 눈빛을 번득이며 염력 폭풍으로 그를 막아냈다.

평소 같았으면 이준과의 충돌을 피하려 했겠지만, 1격 무투기에 눈이 먼 사람들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정면승부를 택했다.

하지만 이준의 불꽃과 맞부딪히는 순간 그들의 염력은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졌고, 곧 지옥불과도 같은 거대한 화염이 그들의 몸을 덮쳤다.

바로 그때, 1성 투존 강자 하나가 눈을 번득이며 손에 거대한 도끼를 든 채 이준을 향해 날아왔다.

“꺼져라!”

온 몸이 황금빛 염력으로 뒤덮인 투존 강자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곧바로 이준의 머리를 향해 도끼를 내리 찍었지만, 자갈색 화염으로 뒤덮인 검은 송곳이 그의 도끼를 막아냈다.

챙!

두 무기가 충돌하자, 무시무시한 돌풍이 일며 가까이에 있던 다른 강자들을 모두 날려 보냈다.

“푸흡!”

1성 투존 강자는 경악한 표정으로 선혈을 토해냈다. 자신의 혼신의 힘을 다한 공격이 이렇게 새파랗게 어린 놈에게 막히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다는 표정이었다.

이준과 두루마리를 두고 싸우는 것 자체가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깨달은 강자는 분에 찬 표정으로 황급히 달아났다.

혼비백산하여 후퇴하는 투존 강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준은 검은 송곳을 저장 반지에 집어넣고는 다시 두루마리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루마리는 여전히 사람들의 손을 피해 요리조리 날아다니고 있었고, 두루마리를 노리는 사람들은 그것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다른 강자들의 공격에 의해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준이 다시 한 번 화염을 토하며 두루마리를 향해 몸을 날리자, 길을 막고 있던 사람들 중 비교적 실력이 약한 자들은 그대로 저 멀리 튕겨져 날아갔다.

“네 이놈!”

이준의 몸이 두루마리에 가까워지는 순간, 백 명에 가까운 강자들이 미친 사람마냥 눈을 번득이며 이준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이 이준의 몸에 닿으려는 찰나, 천화존자, 보람, 예린이 나타나 단단한 염력 방패를 만들었다.

쾅쾅쾅!

백 명에 가까운 강자들의 공격이 폭풍처럼 쏟아졌지만, 세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염력 방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준의 손이 막 닿으려는 찰나, 두루마리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며 미꾸라지처럼 그의 손을 벗어나고 말았다.

“멈춰!”

그 순간, 주위의 공간이 응집되며 두루마리를 옭아맸다.

“이리와!”

그와 동시에 이준의 손에서 흡인력이 뿜어져 나와 붉은 두루마리를 끌어당겼다.

하지만 이준의 손 안에 막 두루마리가 들어오려는 순간, 어디선가 메마른 손하나가 튀어 나와 두루마리의 반대쪽 끝을 움켜쥐었다.

“흥, 그리 쉽게 1격 무투기를 손에 넣을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이준의 맞은편에서 두루마리를 움켜쥐고 있는 이는 바로 현명종의 종주, 진천남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