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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23화 (623/818)

623화. 중앙대전

“그 때 이 계집애가 날 지배하려 했다니까!”

이준이 자연스럽게 예린을 동료로 받아들이는 듯하자, 보람이 예린을 째려보며 말했다.

“그건 오해였어. 난 마수의 본모습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네가 지옥 이무기인 줄 알았거든.”

“뭐? 이 몸의 우아한 본모습이 어디가 그 되다만 뱀이라는 거야?”

자신을 지옥구렁이로 착각했다는 예린의 말에 보람은 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도끼눈을 뜨고 그녀를 노려봤다.

하지만 이준은 두 여자의 대화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듯 자신의 품속에서 덜덜 떨고 있는 비약 마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마수에게서는 아무런 에너지도 느껴지지 않지만, 고급 연금술사나 견문이 넓은 투존급 강자라면 이 녀석의 정체를 금세 알아채고 말거야.”

“그럼 이 아이에게 맡겨두는 게 어때?”

아라의 제안에 흰털 마수는 처량한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이준을 바라봤다.

마수의 반응에 예린과 이준이 당황한 듯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보람이 재미있다는 듯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에휴, 나에게 맡겨. 내가 이 녀석의 약향을 감춰볼게.”

결국 애교 공세를 이기지 못한 아라가 직접 비약 마수를 맡기로 결론이 내려졌다.

이준이 한숨을 내쉬며 아라에게 다가가자, 마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아라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마수를 품에 받아 든 아라는 자신의 염력으로 옅은 보호막 같은 것을 만들어 솜털 같은 마수의 몸 위에 씌워주었다.

그 순간 은은하게 퍼지던 연금비약 향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덕분에 흰털 마수는 그저 조금 특이한 애완동물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생김새도 토실토실하고 동글동글한 것이, 애완동물로 가지고 다니기에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보였다.

이준은 그제야 안심이 된 듯 긴장을 풀고 요괴들을 저장 반지 안으로 다시 회수했다.

“이제 네 경호원들도 집어넣어.”

예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옥 이무기족의 강자들을 바라보자, 무려 열 명에 달하는 강자들이 모두 초록색 빛으로 변해 그녀의 눈 안으로 사라졌다.

견문이 넓기로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따를 사람이 없는 천화존자마저 예린의 신기한 능력에 경악을 금치 못 했다.

“뱀의 눈동자의 능력을 완전히 각성한 뒤로는 눈 안에 제가 지배할 수 있는 것들을 넣어둘 수 있게 되었어요. 물론 넣을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예린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제 눈은 눈 속에 있는 것들의 에너지를 빨아들이기 때문에 제가 조종하는 사람들은 점점 약해지고, 결국 그 힘은 모두 제 것이 돼요.”

예린의 말에 이준 일행은 더욱 놀란 듯 말을 잇지 못 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수련 없이 다른 마수들을 조종하는 것만으로 계속해서 강해질 수 있다는 의미였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하지 않아요. 저는 2성 투존 이하의 존재들만 제어할 수 있는데다, 흡수 시간도 아주 느리거든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예린이 조금 난처하다는 듯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전 뱀 계통의 마수들만 지배할 수 있어요. 인간이나 다른 마수에게도 어느 정도 힘을 쓸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뱀 계통의 마수가 아니라면 제약이 많아요.”

예린의 겸손한 말에도 불구하고 조금 전 눈동자의 힘을 직접 경험했던 이준은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 한 것이 그 정도라면, 뱀 계통의 마수들이 그녀를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해 보였다.

“이제 보물도 손에 넣었고, 오랜 친구와의 대화도 어느 정도 마무리 된듯하니 중앙대전으로 가는 게 어떤가? 이러다가는 다른 세력들이 귀한 보물들을 모두 채가겠네.”

천화존자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인 뒤 빠르게 제련실을 빠져 나갔다.

* * *

전각 3층에는 어느새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있었고, 곳곳에서 싸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준은 이미 이곳에서 가장 귀한 물건을 손에 넣은 상태였으니 그런 싸움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유유히 전각을 빠져 나갔다. 아라가 비약 마수의 약향을 완벽히 감춰준 덕에 누구도 그 새하얀 마수를 주목하지 않았다.

전각을 무사히 빠져 나온 이준 일행은 끝도 없이 늘어선 대전 안의 통로들을 둘러보며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수십, 수백 개의 통로 중에 어떤 곳을 선택해야 할지 도통 알 도리가 없었다.

“제가 안내할게요. 이곳에서 약도를 주웠는데, 중앙대전이 어디 있는지 그려져 있었어요.”

그때, 예린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이준이 반색하며 되묻자, 예린은 수줍게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도련님! 저만 믿고 따라오세요.”

이준 일행은 예린을 길잡이 삼아 함께 중앙 대전으로 향했다.

고적의 구조는 이준 일행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예린의 뒤를 따라 긴 복도를 나아가니 마치 미로 속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걸음을 옮기자, 점점 공간이 넓어지면서 거대한 대전 하나가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황동색으로 덮인 대전의 벽에는 곳곳에 녹이 슬어 있었다.

대전의 중심에는 거대한 광단 열 개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으며, 그 안에는 신비한 빛을 발하는 두루마리가 들어있었다.

두루마리를 발견한 이준의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저게 그 1격 무투기인가!’

광단 중심에 위치한 석좌에는 백골 하나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투성 강자의 뼈…….”

처음으로 투성 강자를 본 이준은 입술이 바짝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이미 죽은지 오래되어 뼈 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이곳이 바로 고적의 중앙대전이에요.”

예린의 말에 이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고, 그 중에는 봉연과 봉황족의 강자들도 있었다.

“허, 참 빨리도 왔네.”

그들을 보는 순간, 이준의 얼굴에 차가운 웃음이 번졌다.

* * *

광활한 대전 안에는 봉황족, 풍뢰각, 빙하곡, 불의 협곡 등 중주에서 내로라하는 세력들이 이미 모두 도착해 있었다. 아마 고적에 들어오자마자 이곳으로 온 것 같았다.

이준 일행의 등장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사대각 대회부터 시작해 연금술 경연 대회까지, 이준은 최근 중주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젊은 강자였기 때문이다.

대전 안으로 들어가 보니, 높은 석좌 주변에 회백색의 석상들이 줄줄이 늘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얼마나 오래 되었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 그 석상을 멍하니 바라볼 뿐, 차마 석좌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요괴?”

석상을 바라보던 아라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이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꽤 강한 요괴야. 내 하늘요괴와 비슷하겠어.”

“역시 투성 강자의 고적답네요.”

예린 역시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모두 흩어지지 않도록 조심해.”

일행들에게 주의를 준 이준의 시선이 향한 곳은 불의 협곡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이었다.

“이준 선생, 마침 봉인이 약해지고 있던 참인데 딱 맞춰 왔구려. 곧 있으면 완전히 사라질 것이오.”

당진이 불의 협곡 강자들을 이끌고 이준에게 다가와 반갑게 말을 건넸다.

“당 곡주님. 저것이 정말 1격 무투기입니까?”

“정확히는 저 중에 하나만 1격 무투기지.”

“단 하나뿐이라고요?”

당진의 말에 이준이 다시 한 번 광단을 훑으며 되물었다.

“그렇소.”

당진이 대전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준 선생, 어째 풍뢰각주의 표정이 전보다 더 험악해진 것 같은데, 그새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요?”

“별 일 아닙니다.”

이준은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허허, 이준 선생이 별 일 아니라면 그런 것이겠지.”

당진이 대전 중심에 있는 광단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마침 봉인이 풀려가면서 광단 주위에 있던 빛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이 선생, 저 안에 들어있는 두루마리 중 어느 게 진짜인지 확인할 수 있겠소?”

당진의 말에 이준은 영혼의 힘을 소환해 광단들을 슥 둘러보았다.

“봉인이 걸려있습니다. 제 실력으로 투성 강자가 만든 봉인을 뚫는 건 역부족이에요.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겠네요.”

이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허나 이렇게 많은 세력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쉽지는 않을 것이오.”

당진의 말에 이준 역시 동의한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잠시 후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것이오. 만일 돌발 상황이 발생한다면 함께 하는 것이 좋겠소.”

당진이 빙하곡의 강자들과 석좌 주위를 지키고 깊은 잠에 빠진 요괴들을 훑으며 말했다.

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5성 투존인 당진이 옆에 있다면 빙하곡의 빙존은 물론이고 영혼의 궁전의 천존이 온다 해도 크게 걱정할 일이 없었다. 당진의 힘에 아라, 천화존자, 열한 마리나 되는 요괴에 예린, 영진을 더하면 누가 오더라도 밀리지 않을 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 요괴들도 조심해야 하오.”

당진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일단은 봉인이 풀릴 때까지 기다려 보지요.”

당진의 말에 이준은 미소를 지으며 석좌 위에 있는 뼈를 바라보았다.

그 때, 투성 강자의 뼈를 바라보던 이준의 머릿속에 퍼뜩 한 가지 중요한 생각이 스쳤다.

스승님의 몸을 다시 만들 때 투성 강자의 뼈를 사용한다면, 그도 투성 강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만일 정말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혼전의 위협을 받을 필요도 없어지고, 성운각은 단숨에 연금탑 수준의 세력으로 발돋움 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저 뼈를 가져올 수 있을까?’

* * *

봉인이 풀리길 기다리는 사이 수많은 강자들과 세력이 모여 들며 대전 안에는 더욱 긴장된 분위기가 깔렸다.

서로 친분이 있는 세력과 강자들은 이미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가며 곧 있을 대전투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곳에서 단신으로 1격 무투기를 손에 넣는 것은 투성 강자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전 안에 사람들이 차오르는 것을 확인한 이준은 말없이 아라에게 눈짓을 보냈다. 곧 싸움이 벌어질 테니 준비하라는 의미였다.

쉬익!

쥐 죽은 듯 조용한 분위기가 목을 조여 오면서 사람들의 이마에도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이미 말없이 염력을 끌어올리며 언제라도 전투를 벌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준은 눈을 감고 영혼 탐지능력을 활용해 대전 안을 탐색했다. 그가 가장 경계하고 있는 세력이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상하군. 그 녀석들이 아직도 나타나지 않을 리가 없는데…….’

바로 그때, 익숙한 웃음소리와 함께 꿈에서도 잊지 못할 노인이 대전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끌끌. 아직 늦지 않은 것 같군.”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대전 안에 울려 퍼지자, 대전 안에 있던 강자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둡게 내려앉았다.

곧이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검은 안개가 대전 안을 가득 채우더니 이내 그 안에서 몇 몇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혼의 궁전?”

그들을 알아본 사람들은 저마다 미간을 찌푸리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 했다.

투기 대륙 전체에서도 최강의 세력으로 손꼽히는 그들이 이 대전에 참여한다면 그만큼 1격 무투기를 손에 넣을 확률도 줄어들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준은 그들을 보고도 당황하기는커녕 웃음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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