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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14화 (614/818)

614화. 백골산맥

거대한 마수구역에 펼쳐진 산맥을 따라 이틀 정도를 더 날아가자, 섬뜩한 흰 빛을 내뿜는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의 다 왔어. 성운각의 장로님들이 이곳을 탐색중이라는데, 일단 그 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자.”

백골산맥이 가까워질수록 모청연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가득했다.

“좋아.”

이준 역시 흔쾌히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눈을 돌려보면 수 없이 많은 강자들이 백골산맥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험 많은 장로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순식간에 목숨이 위태로워 질것이 불보듯 뻔했다.

이준이 동의하자, 모청연은 곧바로 저장 반지에서 자그마한 명패 하나를 꺼내 부러뜨렸다.

잠시 후, 먼 산에서 회색 옷을 입은 노인 하나가 빠르게 이준 일행을 향해 날아왔다.

노인의 가슴팍에는 성운각 장로휘장이 달려있었다.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보나 거친 호흡으로 보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전투를 벌이고 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호 장로님, 제 장로님은요?”

모청연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후…….”

청연의 질문에 호 장로라는 노인이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각주님들의 명을 받고 백골산맥에 도착해 고적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운이 따라서 다른 세력들을 모두 제치고 가장 먼저 고적의 흔적을 발견했지. 하지만 성운각 제자들과 함께 그 곳에 주둔지를 지으려던 참에 풍뢰각 놈들과 마주쳤어.”

“풍뢰각이요?”

풍뢰각이라는 말에 모청연의 미간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그래. 심지어 나정필까지 왔더구나. 제 장로가 놈들에게 항의를 하다가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다. 그래서 나 혼자 너희들을 마중 나오게 된 것이다.”

말을 마친 호 장로는 어두운 표정으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모청연이 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이 여기에 도착하면 모두 네 말을 따르라 했어. 어떻게 할까?”

모청연의 말에 호 장로는 그제야 상대가 누구인지를 알았다는 듯 깊이 고개를 숙여 예를 올렸다.

“약존 각주님의 수제자, 이준 소각주님이시군요. 얼굴을 알지 못해 결례를 범했습니다. 저는 호부라고 하옵니다.”

“으음……. 아니에요. 그냥 이준이라고 불러 주세요. 소각주라는 직책은 저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준은 난처한 듯 웃으며 손사레를 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우선 제 장로님에게로 가죠.”

“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호장로는 곧바로 몸을 돌려 제 장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야, 이준. 어떡하려고? 나정필까지 있다잖아.”

앞서 나가는 호 장로를 바라보던 모청연이 초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녀의 질문에 이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태연자약한 태도에 모청연은 되려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9성 투종일 때 천존의 팔을 잘라낸 실력을 가진 이준이 있는데 스승님만 못한 실력을 가진 나정필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천화존자에 아라, 영진까지 투존이 셋이나 함께 하고 있는데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이준 일행은 한참을 날아가 가장자리에 위치한 작은 산에서 멈춰 섰다.

산봉우리 위에는 이십여 명 정도의 성운각 제자들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하지만 호 장로와 함께 온 모청연과 이준 일행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제자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쿨럭, 소각주님이 먼 곳에서 오셨는데 나가 보지도 못하고, 송구스럽습니다…….”

그 때, 창백한 얼굴을 한 홍색 의복의 노인 하나가 성운각 제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천막 안에서 나와 이준에게 예를 갖췄다.

“쿨럭…….”

말을 마친 제 장로가 기침을 하자, 새빨간 피가 한 움큼이나 흘러나왔다. 나정필에게 입은 부상이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이었다.

“제길, 풍뢰각 놈들이 장로님을…….”

제 장로가 피를 토하는 모습에 성운각 제자들의 얼굴이 또 다시 분노로 물들었다.

이준은 제 장로에게 천천히 다가가 팔을 잡고 그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부상이 심하네요. 누구 짓입니까?”

“풍뢰북각 각주, 비천입니다.”

제 장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비천의 이름이 나오자, 이준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내려앉았다.

저장반지에서 연금비약을 꺼내 제 장로에게 건넨 이준이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풍뢰각 쪽에 투존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나정필 뿐입니다.”

제 장로의 보고를 받은 이준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을 향해 몸을 돌리며 가볍게 손짓을 해보였다.

“소각주님, 이게 무슨……?”

호 장로가 당황하며 급히 물었다.

“갑시다. 성운각을 우습게 본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지요.”

이준은 이번 여정에서 혼령열매를 얻는 것과 관계된 것 외에는 모든 싸움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가끔은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니, 이번 일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풍뢰각은 봉연을 통해 봉황족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고, 근래에 이르러스는 스스로를 사대각 최고의 세력이라고 자처하고 있었다.

이렇게 손쉽게 성운각과 마찰을 일으킨 것 역시 그런 상황과 관련이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제 아무리 풍뢰각이라 해도 이렇게 쉽게 성운각의 장로를 죽이려 들지는 못 했을 것이다.

한편 그 사이 약로는 성운각의 각주가 되었고, 덕분에 이준은 자동적으로 소각주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 이준은 성운각의 두 각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이번 여정의 지휘를 맡고 있었으니, 이런 일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물론 상대가 영혼의 궁전이나 고족쯤된다면 이준 역시 조금 더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풍뢰각 정도의 세력이라면, 고민해 볼 필요도 없이 이 자리에서 성운각을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해줄 수 있었다.

풍뢰각주인 나정필의 실력은 3성 투존 정도로, 풍존이 아니라 아라와 천화존자가 나서도 충분히 맞설 수 있었고, 투존이 된 이준 역시 그를 두려워 할 이유가 없었다.

이준의 말에 성운각의 제자들은 잔뜩 흥분하여 곧바로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장로는 이준의 행동에 잠시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였지만, 말리지 않고 얌전히 그의 명을 따라 풍뢰각의 강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풍존과 약존, 두 각주가 보낸 사람의 결정이라면 충분히 믿고 따라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준의 정확한 실력은 몰라도 세명의 명예 장로가 모두 나정필과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나정필이 있다 하더라도 조금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었다.

“소각주님의 명대로 하겠습니다.”

두 장로는 정중히 인사를 올린 뒤 성운각 제자들을 이끌고 빠르게 산속으로 날아갔다.

* * *

백골 산맥 중심에는 높이 솟은 산봉우리가 가득했고, 고적의 위치는 그 첩첩이 쌓인 산봉우리 안쪽이었다. 때문에 고적과 가까운 높은 산봉우리는 대부분 강한 세력들의 주둔지로 쓰이고 있었고, 혼자 왔거나 비교적 작은 세력들은 다른 곳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백골산맥 안에서는 이미 크고 작은 세력들이 다툼을 벌이고 있었고, 이런 싸움은 고적과 가까운 곳일수록 더욱 치열했다.

고적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한 산봉우리의 정상에는 ‘풍뢰각’이라고 쓰인 은색의 깃발 하나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산봉우리 꼭대기는 새하얀 천막들이 줄줄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곳곳에서 강자들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 장면만 보아도 풍뢰각이 고적 안의 보물을 얻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길게 늘어선 천막들의 중심에는 거대한 막사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 막사 밖에는 엄선된 강자들이 삼엄한 표정으로 경계를 서고 있었다.

막사의 천이 갑자기 열리며 은색 의복을 입은 사내 하나가 술에 취한 채 큰 보폭으로 걸어 나오자, 호위병들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북각주님.”

“각주님이 안에서 귀한 손님을 접대하고 있으니 소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거라.”

“예!”

비천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막사 안으로 들어가려다 산봉우리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냐?”

“마음 쓰지 마십시오. 제자들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비천이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투황 강자 하나가 황급히 고개를 숙인 뒤 소란이 일어난 방향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갔다.

쾅!

하지만 그의 모습이 비천의 눈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날카로운 폭음과 함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고, 아래에 위치한 막사 십여 개가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누가 감히 풍뢰각 구역에 들어와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 당장 내 앞에 끌고 와라!”

비천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고함소리에 막사를 지키고 있던 풍뢰각의 강자들은 빠르게 산꼭대기 아래로 날아갔다.

비천 역시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그들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비천이 채 열 걸음도 떼기 전에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아래로 날아갔던 풍뢰각의 강자들이 피를 쏟으며 날아와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 순간, 비천의 표정이 돌덩이처럼 굳어버렸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풍뢰각의 강자들을 제압할 정도라면 상대의 실력 역시 결코 평범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디서 온 사람이시오? 이곳이 풍뢰각의 주둔지라는 것을 알고 하는 짓이오?”

비천이 굳은 표정으로 산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비천 각주. 몇 년 만인지 모르겠네요. 그 풍뢰각이라는 말은 여전히 입에 달고 사는군요.”

비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래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준을 선두로 성운각의 장로와 제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준?!”

기억 속에 깊게 박힌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비천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어갔다. 이준이 비천의 얼굴에 먹칠을 했던 사건은 지금까지도 그의 인생에서 가장 굴욕적인 사건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흥, 누군가 했더니, 얼마 전에 우리 풍뢰각에게 당해 달아났던 성운각 놈들이 아닌가? 줄행랑이 특기인 놈들끼리 잘도 몰려 다니는군.”

이준의 뒤에 있든 호 장로와 제 장로를 발견한 비천이 피식 웃으며 조롱하듯 말했다.

“너……!”

그의 말에 두 장로의 얼굴이 분노로 새파랗게 질렸다.

“그래 줄행랑이 특기인 놈들이 모여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가 뭔가? 함께 모여 누가 더 잘 도망치는지 시합이라도 하려고 온 것인가?”

비천은 계속해서 이준과 성운각의 사람들을 조롱했다. 그는 설마하니 이준의 뒤에 있는 사람들 중 투존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천, 각주님께서 언짢아하고 계시오. 어서 끝냅시다.”

거대한 막사 안에서 두 사람이 나오며 말했다.

“좋소. 나는 이준을 맡을 테니 다른 이들은 자네들이 맡아주시오!”

말을 마친 비천은 발밑에서 은빛 섬광을 내뿜으며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비천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이준은 피식 웃으며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그 순간, 이준의 눈앞 공간이 일그러지며 비천의 팔 다리를 꼼짝도 하지 못 하게 묶어 버렸다.

“이, 이럴수가! 어떻게!”

공감의 힘에 의해 제 자리에 묶여버린 비천의 얼굴에는 공포와 경악이 가득했다. 공간을 동결시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투존 강자만이 할 수 있는 일 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준이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이준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공포에 질린 비천의 입에서 새빨간 핏줄기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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