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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13화 (613/818)

613화. 마수구역

“너무 위험하다. 너는 그 고적이 얼마나 참혹한 곳인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약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스승님, 저는 이제 적성 같은 강자와 다시 만나도 목숨을 잃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이길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제 힘으로 달아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웃으며 말을 마친 이준은 약로가 대답하기도 전에 풍존자를 바라보며 고적으로 향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풍존 선생님, 그곳의 지도를 준비해 주십시오. 제가 가겠습니다.”

그의 말에 풍존자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약로를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걱정은 된다만 지금 상황에선 너 밖에 없구나. 지도는 내가 최대한 빨리 구하겠다. 그리고 이곳을 떠날 때 청연이를 데려가거라. 청연의 가족들이 마수의 땅에 있으니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

이준은 풍존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미소를 띤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이준의 고집을 잘 알고 있는 약로도 더 이상 말리지 못 하고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다. 네 고집을 누가 꺾겠느냐. 하지만 이것만은 약속하거라. 위험한 일이 생긴다면 절대로 무리하지 않고 달아나야 한다. 나는 언제든지 다시 살아날 수 있지만, 네가 죽어버린다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구나.”

스승의 진심 어린 말에 이준은 어린 아이처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목적지가 정해졌지만, 이준은 급히 움직이지 않았다. 약로의 부활이 달린 문제이니, 한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다.

때문에 이준은 최대한 많은 정보들을 수집한 뒤 출발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며칠 사이에 이준 역시 성운각의 장로자리에 올랐다. 그간 특정한 세력에 소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이준 역시 스승님이 이곳의 각주가 되었으니, 흔쾌히 성운각의 일원이 된 것이다.

젊은 장로가 나타나면서 성운각은 크게 들끓었지만 어느 누구도 불만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당시 이준이 석탑에서 보여준 것은 틀림없는 투존의 힘 이었기 때문이다. 서른도 되기 전에 투존이 된 자가 장로가 된다는데 그것에 반대할 바보는 성운각에 없었다.

대략 일주일 정도의 휴식을 가진 뒤, 모든 준비를 마친 이준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마수 구역으로 향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준아, 조심하거라.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도망쳐야 한다!”

풍존이 단정히 옷을 갖춰 입은 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두 스승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스승님들, 몸조심 하십시오. 혼령열매는 제가 반드시 구해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이준은 조금도 주저 않고 곧바로 몸을 돌려 출구를 향해 날아갔다. 그렇게 그는 눈 깜짝할 새에 일행들과 함께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노인네, 이번에는 제자를 아주 잘 거뒀구만.”

이준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풍존자가 말했다.

이에 약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음을 지어보였다.

“암,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지.”

* * *

구름 한점 없이 깨끗한 하늘.

“까악!”

조용한 하늘 위에 거대한 학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새하얀 그림자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왔다.

거대한 학의 등 뒤에는 성운각을 떠난 이준 일행이 앉아있었다.

마수들의 땅까지 가는 길은 틀림없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이준은 아라, 보람, 천화존자, 그리고 영진을 모두 데리고 고적으로 향하고 있었다.

“휴, 마수구역에 뭐 재미있는 게 있다고……. 왜 가는 거야.”

보람은 이번 여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온종일 입술을 내민 채 끊임없이 툴툴거리면서도 이준의 ‘요리’를 먹기 위해 그와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자, 이제 그만.”

하지만 이준이 웃으며 작은 옥병을 꺼내 건네자, 보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안에 든 특제 경단을 우물거리며 잔뜩 신이 나서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그곳은 중주보다 훨씬 복잡해. 마수들의 영역에 들어가 원하는 것을 가져오려면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할 거야.”

“청연, 마수의 땅 내의 세력 분포에 대해 말해줘.”

이준이 학의 등 위에 앉아있는 모청연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의 말에 모청연은 눈을 살짝 치켜뜨며 복잡한 표정으로 이준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큰 부상을 입고도 투존이 되어버리다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수의 땅에는 투기대륙에 있는 마수 세력 중 7할 정도가 자리 잡고 있어. 봉황족, 용족의 삼대가문, 그리고 지옥이무기까지. 내로라 할 마수들은 전부 그곳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봉황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모청연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해졌다.

“전에 겪어봤으니 알겠지만, 봉황족은 고대 봉황의 피 문제라면 목숨을 걸고 달려드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솔직히 말해 봉연에게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실력이 고만고만해서야. 제대로 된 봉황 마수를 마주친다면 곱게 빠져 나가기는 어려울 거야.”

모청연의 경고에 이준 역시 군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봉황족이라면 용족과 쌍벽을 이루는 최강의 마수이니, 그들과 충돌을 일으키는 것은 결코 현명한 행동이라 할 수 없었다.

“그래봤자 좀 큰 새 아니야? 내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입 속에 집어넣은 알약을 기분 좋게 음미하던 보람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보람의 행동에 모청연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보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없었지만, 스승의 태도로 봤을 때 이 작은 여자 아이의 뒤에는 무언가 커다란 세력이 숨겨져 있긴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대륙에서 삼대 마수가문 중 하나인 봉황족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세력이라니. 이런 조그마한 여자 아이가 정말 그런 세력의 일원인지 의심이 가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준은 못 당하겠다는 듯 그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걱정 마. 그건 나도 생각이 있으니까.”

청연에게 시선을 돌린 이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자신 있으면 됐어. 하지만 명심해. 마수들의 땅에서 봉황족과 싸운다는 것은 중주에서 연금탑과 싸우는 것만큼이나 골치 아픈 일이라고.”

모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마수들은 인간보다 훨씬 상하 관계가 명확해. 때문에 강한 세력들 아래에 소속된 세력들은 그만큼 자신들이 섬기는 세력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지. 우리 청연족만 해도 봉황족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우리 가문 휘하에 있는 열 개 정도의 세력들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지. 우리 가문만 해도 그런데, 봉황족은 어떻겠어?”

모청연의 말에 이준은 조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상하관계는 인간들에게도 존재했지만, 마수들의 그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마수구역에서 가장 많은 세력을 거느린 것은 지옥 이무기족이야. 세력의 크기도 삼대문파 중 가장 크지. 아쉽게도 지금은 점점 세력이 위축되고 있지만 말이야.”

모청연이 손을 펴며 말했다.

“봉황족만 해도 혈통 관리가 아주 철저해서, 봉황족의 혈통을 가진 마수가 죽으면 반드시 그들의 금지구역에 묻히지. 만일 외부 사람들이 그들의 시체나 다른 물건을 가져갈 경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을 회수해. 문자 그대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청연은 이준에게 경고하듯 마지막 문장을 상당히 힘주어 강조했다.

“가장 신비에 싸인 전설의 용족은 휘하에 다른 세력을 거느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질 못 했어.”

전설의 용족을 언급하는 순간, 모청연의 표정에서 존경심이 느껴졌다. 봉황족, 지옥 이무기처럼 천천히 세력을 키워나간 자들과 달리, 용족은 언제 부터였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오랜 시절부터 마수들의 정점으로 군림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식사를 마친 보람이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뭘 잘 모르네. 봉황족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 마수들에게도 숨겨진 세력이 많다고. 게다가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혈통 중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그 새대가리들보다 강한 존재도 많아. 물론 상고시대의 봉황이라면 얘기가 다르지만 지금은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지 오래인걸. 그리고 용들이 다른 세력을 거느리지 않는 건 아니야. 네가 모르는 것뿐이지.”

보람의 말에 모청연은 입이 절로 벌어졌다. 그녀 역시 오래된 서책에서 고대의 봉황족은 용족과 맞먹는 존재라는 내용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소녀가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보람이 한 이야기의 뒷부분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우리 청연족도 마수들 중에서는 제법 이름이 알려져 있는 세력이야. 용족과 관계가 있는 세력이 있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어.”

“청연족?”

청연의 말에 보람은 가소롭다는 듯 상대의 몸을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더니 피식 웃음을 지었다.

“너…….”

보람의 거만한 행동에 모청연이 벌컥 성을 내려하는 순간, 이준이 황급히 그녀를 뜯어말렸다.

이준의 말에 다시 냉정을 찾은 청연은 못 마땅한 표정으로 보람을 한 번 흘겨보고는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번에 고적이 발견된 곳은 지옥 이무기들의 영역인 백골 산맥이야. 그러니까 모두 최대한 몸조심해서 혼령열매를 찾아 빠르게 빠져 나오자고.”

* * *

거대한 학의 등에 올라 날아간 지 사흘 정도 지났을 무렵, 끝없이 펼쳐진 산맥이 이준의 눈앞에 펼쳐졌다.

마수 구역의 크기는 중주보다는 작았지만, 상당한 면적을 자랑했다. 겹겹이 이어져있는 기다란 산맥에서 뿜어져 나오는 흉폭한 기운만 보아도 이곳이 중주 이상으로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수구역은 ‘십만(十萬)대산’으로 불리지만, 사실 이곳에 살고 있는 마수들은 십만 마리를 훨씬 뛰어넘었다.

이번에 고적이 발견된 곳은 바로 이 광활한 마수구역에 위치한 산맥 중 하나인 ‘백골산맥’이었다.

‘백골산맥’이라는 섬뜩한 이름이 붙은 것은, 그곳에 정말로 백골이 산처럼 쌓여있기 때문이었다. 백골 산맥 곳곳에는 강력한 마수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으며, 그 시체에서 흘러나온 에너지로 가득한 곳 이었다. 물론 인간에게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에너지에 불과했지만, 마수들이 그곳에서 수련을 한다면 꽤나 빠른 속도로 실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모청연의 설명이었다.

백골산맥의 위치는 마수 구역의 서남쪽으로, 이준 일행은 마수 구역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백골산맥으로 향했다.

산맥으로 향하는 동안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날아가는 적잖은 강자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는 사람으로 변신한 마수도 있었고, 마수구역 밖에서 이곳까지 찾아온 인간들도 있었다. 아마도 모두 이준처럼 보물을 찾아 고적을 찾는 자들인 듯싶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이준은 이번 일이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각지에서 강자들이 모여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고적에 ‘1격 무투기’가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물론 이준 역시 기회가 된다면 그 1격 무투기라는 것을 찾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스승의 혼기를 회복시킬 혼령열매에 비하면 1격 무투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스승의 몸을 되찾아 주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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