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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11화 (611/818)

611화. 성운각 (2)

풍존은 아라와 천화존자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머무를 장소를 배정해준 뒤 약로와 함께 이준을 업고 뒷산으로 이동했다.

그들이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투박한 모습의 검은 석탑이었다. 말이 좋아 석탑이지, 얼핏 보기에는 흉물스러운 돌기둥처럼 보일 정도로 오래되고 낡은 석탑이었다. 하지만 겉모습과는 달리 그 안에서는 신비한 힘이 끊임없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풍존은 말없이 이준을 등에 업은 채 석탑의 꼭대기로 올라갔다. 석탑의 꼭대기에는 안에는 4, 5미터 정도 너비의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 그 안에 누우면 탁트인 하늘이 한 눈에 들어왔다.

운석으로 만들어 진 석대는 별의 힘을 빨아들이고 응집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석탑 상층부의 그 구멍이 바로 별의 기운이 가장 짙게 모여드는 곳 이었다.

조심스럽게 이준을 눕힌 풍존은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짙은 별빛이 이준의 몸에 모여들며 자갈색의 화염이 은은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껄걸, 역시 성운대가 좋기는 좋구만 그래.”

제자의 몸이 회복되는 것을 확인한 약로는 그제야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었다.

“허허, 이제 걱정할 필요 없네.”

풍존자가 웃으며 대답하자 약로의 입가에도 다시 한 번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래, 이제 우리는 내려가지. 치료를 마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테니.”

말을 마친 약로는 온화한 표정으로 의식을 잃은 이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는 등을 돌려 산 아래로 향했다.

* * *

약로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늘 고요하던 성운각이 모처럼 떠들썩해졌다.

사실 성운각의 제자들조차 약존이라는 이름만 들어보았지, 실제로 그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성운각의 젊은이들은 전설의 약존 등장에 부푼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해 잠을 설치기까지 했다.

소문에 따르면, 약존의 실력은 연금탑의 세 수장에게도 밀리지 않는다고 했다. 일부 사람들은 약존의 성격이 겸손한 탓에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 세 수장도 연금술로는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존재가 성운각에 돌아왔으니, 제자들의 입장에서야 천군만마를 얻은 것보다도 든든했다.

약로 역시 예전과는 달리 사람들을 피해 숨어 다니거나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관심이 피곤하고 성가시기는 했지만, 호시탐탐 자신의 제자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영혼의 궁전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해준 제자를 지키기 위해, 또 그 제자의 아버지를 구해내기 위해서는 이 정도 귀찮음쯤은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정식으로 성운각의 각주 자리에 앉았다는 점이었다. 이는 약로의 성품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귀를 의심할만한 일이었다.

사람들을 거느리는 것을 싫어해 각주는커녕 장로의 자리에조차 않지 않으려던 그가 각주 자리에 올랐으니,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성운각은 공식적으로 약존과 풍존, 두 각주를 가진 세력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 * *

혹여나 영혼의 궁전에서 이준의 치료를 방해할까 하는 생각에 풍존과 약로는 성운각의 입구를 완전히 봉인해 버렸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이준이 완전히 회복되는 것이었고, 모든 일은 그 다음에 진행해도 늦지 않았다.

산문을 봉인시키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이곳은 연금세계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1년 반 동안 봉인을 해두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의 크기를 자랑했다. 게다가 천지의 에너지도 충만해 수련을 하는데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아라와 천화존자는 물론이고 보람도 자발적으로 성운각내에 머물기로 결정을 내렸다. 영진은 보람의 무언의 협박에 굴복해 성운각에 남았다.

아라와 그 일행이 이곳에 남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셋이나 되는 투존급 강자에 정확한 실력을 알 수는 없지만 투종 최고 단계에 상응하는 실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강자 하나가 남아주겠다는데 어떤 세력에서 불만을 가진단 말인가?

* * *

이준이 성운대에서 치료를 시작한지 두 달, 풍존의 우려와 달리 영혼의 궁전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영혼의 궁전의 움직임을 몰래 탐색해보기도 했지만, 영혼의 궁전은 이상할 정도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분전이 파괴된 일에 대한 소문조차 돌지 않았다.

이에 약로와 풍존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영혼의 궁전에서 그런 일을 당하고도 이토록 잠잠하다는 것이 오히려 그들의 불안감을 부추겼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당장 쳐들어오지 않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영혼의 궁전과 전쟁이 벌어진다면 성운각은 틀림없이 멸망하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에 약로와 풍존은 그 시간 동안 성운각의 세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매일 같이 마주 앉아 머리를 쥐어짜냈다.

* * *

그 후로 또 다시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석탑에 누워있던 이준은 여전히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창백해진 얼굴에는 점점 핏기가 돌았고, 호흡 역시 정상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한 달 동안 아라를 비롯한 사람들은 풍존의 계속되는 요청에 결국 성운각의 장로직에 올랐다. 물론 정식 장로가 아닌 명예 장로의 지위일 뿐이었지만, 셋이나 되는 투존 강자가 장로가 되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이 될 수 있었다.

아라와 천화존자는 비교적 흔쾌히 장로직을 수락했고, 영진은 이번에도 보람의 협박에 못 이겨 장로직에 올랐다.

덕분에 성운각은 단숨에 사대각의 나머지 세 세력을 뛰어넘는 힘을 손에 넣었다. 심지어 이 상태에서 약로의 힘이 더해진다면 성운각은 사대각 중 제일이 아니라 중주 전체에서도 손에 꼽는 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을것이다.

* * *

봄과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서 푸른 산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있었지만 이준은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이준의 몸 상태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도통 깨어나질 않았으니 약로도 풍존도 그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그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그 동안 뒷산은 출입금지구역이 되어 풍존을 비롯한 몇몇 사람 외에는 장로들조차 들어갈 수 없었다.

성운대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이준에 대해 호기심을 품은 제자들은 여기저기 물어보았지만, 그들이 알 수 있었던 것은 약로의 제자인 이준이라는 사람이 그 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 * *

투기대륙 서북지역에 위치한 가한제국 황성.

이 제국의 실질적 권력자는 이미 가한제국이 아닌 ‘불의 연맹’라는 연맹단체였다. 가한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현재 가한제국의 지배자가 이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가 현재 중주에 있다는 소문만이 돌 뿐, 누구도 그의 소식을 알지 못 했다.

황궁의 중심에는 황도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커다란 대전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커다란 대전의 지붕에는 비단 옷을 입은 여자 하나가 뒷짐을 진 채 달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 자식이 6년째 소식이 없네……. 정말로 죽여 버릴까.”

“엄마…….”

그 때, 앳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아이의 목소리에 살기로 물들었던 여인의 얼굴에 언제 그랬냐는 듯 아름다운 미소가 번져 나갔다.

지붕 위에는 2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허공에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 * *

산봉우리에 우뚝 선 검은 석탑 주위에는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고, 석탑의 중심부에서는 자갈색의 화염이 은은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석대 곁에서는 아라가 멍한 눈빛으로 화염 속에 누워있는 청년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휴……. 벌써 일 년째인데, 정말 깨어나기는 하는 걸까.”

이준이 이곳에 옮겨진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성운각은 빠르게 세를 불렸지만, 이준은 여전히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 약로는 부상이 심각해 치료에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반년이 지난 뒤에는 자신의 생각이 틀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부상을 입기 전보다 훨씬 더 커졌는데도 여전히 깨어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강제로 흔들어 깨우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으니,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아라나 약로처럼 이준을 지극히 아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휴…….”

화석처럼 굳어버린 이준을 바라보던 아라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얼른 일어나.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아버지를 찾으러 가야지.”

바로 그때, 이준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장면이 아라의 눈에 들어왔다.

* * *

뒷산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수련장에는 성운각의 제자들이 매일 같이 나와 수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모청연이 엄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뒷산 출입이 금지된 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선배님은 언제쯤 다시 열리는지 알고 계십니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모청연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질문을 한 것은 성운각 내에서도 제법 재능이 출중한 젊은 제자들이었다.

“글쎄, 그건 스승님도 모르실 거야.”

“저 석탑에서 이준이라는 선배님이 수련을 하고 계시다 들었습니다. 그 분이 약존 각주님의 수제자라고…….”

한 여 제자가 궁금한 듯 물었다.

“하지만 벌써 1년째입니다. 석탑 안에서 아무런 인기척이 안 느껴지는데, 설마…….”

한 사람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됐어. 이 얘긴 그만하자.”

모청연이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젓자, 제자들도 더 이상 묻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장로님들이 일이 있어 나가신 동안 실력을 더 키워놔야지. 장로님들이 없다고 게으름 피울 생각 말고.”

모청연의 말에 영리해 보이는 청년 하나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헤헤,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요즘 중주 남부지역 변방에 있는 십만대산에서 옛 유적들이 발견된 것 같은데, 설마 장로님들이 나가신 것이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 입니까?”

“응, 중주에서 힘있는 세력들이라면 모두 그 곳에 관심을 갖겠지. 하지만 그 곳은 이미 마수들의 소굴이 되었으니 성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네.”

“소문으로는 그곳에는 1격 무투기도 있다고 하던데요?”

“1격 무투기가? 정말로 그런 게 있기는 한 거야?”

“어리석긴, 그런 보물을 손에 얻기가 쉬운 줄 알아? 실력도 없이 그런 물건을 노렸다가는 목숨만 잃고 말걸.”

모청연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 성운각의 내각제자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돌연 산봉우리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것 마냥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모청연 역시 깜짝 놀라 당황하다 급히 소리쳤다.

“모두 진정해!”

펑!

바로 그 때, 다시 한 번 산봉우리가 흔들리며 뒷산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쉬이익!

얼마 지나지 않아 강대한 기운을 느낀 장로들이 번개처럼 하늘을 가르고 나타났다. 수련장으로 날아 온 사람들 중에는 성운각의 두 각주인 약존과 풍존도 포함되어 있었다.

잠시 후, 뒷산에서 퍼져 나오는 에너지를 느낀 두 사람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걸렸다.

“드디어 깨어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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