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606화 (606/818)

606화. 대전

“기습 경보! 기습 경보!”

영호 중 하나가 순식간에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으깨져 버리자, 또 다른 그림자가 황급히 고함을 내질렀다.

바로 그 때, 돌연 매서운 기운이 거대한 대전의 천장을 뚫고 그대로 내리 꽂혀 대전의 중앙에 있던 돌기둥을 박살냈다.

쾅!

그리고 영호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하늘 위의 공간이 왜곡되며 네 개의 그림자가 번개처럼 대전 안으로 날아들었다.

“죽어라! 더러운 영혼의 궁전의 개들아!”

곧이어 살기등등한 목소리가 곳곳에 메아리치며 순식간에 십여 명의 영호들을 베어 버렸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영호들이 우왕좌왕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는 사이, 나머지 세 개의 그림자가 폭풍처럼 사방을 휩쓸며 순식간에 십 여 개의 그림자를 쓸어버렸다.

바깥에서는 돌개미떼, 안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네 명의 투존, 영호들은 이 갑작스런 상황에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감히 어떤 놈들이 영혼의 궁전의 대전에 들어와 소란을 피우는가!”

산골짜기에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결국 영존들을 깨웠고, 이내 분노에 가득 찬 고함 소리가 대전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잠시 후, 대전의 어두운 곳에서 다섯 개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으로 보아 그들이 바로 이곳을 지키고 있다는 다섯 명의 영존이 틀림없었다.

“이준? 아직 안 죽었단 말이냐?”

대전 안에 나타난 다섯 개의 그림자 중 하나에서 경악에 찬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아차린 이준은 자갈색의 화염으로 또 한명의 영호를 불살라 없앤 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봤다.

“모골.”

“약선을 구하러 온 것이냐! 감히 네 놈 따위가 영존들이 지키는 이 분전에서 약선을 빼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머리에 걸친 망토를 걷어내며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껄껄, 익숙한 얼굴이 또 있었네, 풍존자. 아직도 안 죽었구려.”

그 때, 모골 노인 옆에 있던 한 노인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에 풍존자는 피식 웃으며 이준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가서 약로를 찾거라. 여기는 우리가 맡으마.”

“예. 알겠습니다.”

이준이 대전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다섯 영존 중 하나가 이준을 향해 검은 안개를 내뿜었다.

“감히 우리 영혼의 궁전을 공격하다니! 곧 네 놈들을 모두 붙잡아 제발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만들어주마!”

“가거라!”

그러나 풍존자가 크게 외치며 주먹을 휘두르자, 돌연 무시무시한 바람이 대전 안을 휩쓸며 거대한 검은 안개를 날려버렸다.

그와 동시에 다섯 영존 중 하나가 살기를 내뿜으며 풍존을 향해 달려들었고, 이준은 그 틈을 타 검은 잔영을 남기며 대전의 안쪽으로 달려갔다.

그 순간, 돌연 보라색 옷을 입은 그림자 하나가 귀신처럼 공간을 가르고 나타나 이준의 앞을 막아섰다.

“나를 기억하느냐?”

보라색 옷을 입은 노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이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가느다랗게 눈을 뜬 채 노인을 살펴보던 이준은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느낌에 상대가 누구인지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내 영혼의 힘을 두 번이나 없앴던 그 자군!”

“끌끌, 제법이구나. 그 사이에 9성 투종이 되다니. 하지만 어리석었다. 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약선을 데리고 갈 수 있을 줄 알았더냐!”

노인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팔을 휘두르자, 흉악한 기운을 가득 머금은 검은 안개가 그대로 허공을 가르며 이준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준 역시 물러서지 않고 자갈색 화염을 폭발시키며 검은색 안개에 맞섰다.

쾅!

검은 안개와 자갈색 화염이 맞부딪히는 순간 굉음이 터져 나오며 대전 안에 우뚝 서있던 거대한 돌기둥에도 균열이 생겨났다.

하지만 단숨에 모든 힘을 폭발시켰음에도 이준의 몸은 열 걸음 이상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과연 투존 강자라고 할 만한 위력이었다.

허나 이준 못지않게 보라색 옷을 입은 영존의 표정 역시 크게 일그러져 있었다. 설마하니 상대가 자신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 내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다는 표정이었다.

이준의 영혼의 힘이 처음으로 분전에 숨어들었을 때, 그는 손가락 하나로도 이준을 죽여 버릴 자신이 있었다. 두 번째로 이준의 영혼이 분전에 잠입했을 때 역시 가볍게 힘을 쓴 정도로 그의 영혼을 몰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세 번째 만남에서 상대는 자신의 공격을 정면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하찮은 것이 실력이 조금 붙었다고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영존의 눈에 순간 살기가 솟구쳤다. 새카만 후배가 자신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낸 것만으로도 이미 그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하지만 보라색 옷의 영존이 다시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갑자기 눈부신 빛이 터져 나오며 황금색의 요괴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안하지만 당신 상대는 내가 아니라, 이 녀석이야.”

말을 마친 이준의 발밑에서 은빛 섬광이 터져 나오며 그의 몸이 잔영을 남기고 사라졌다.

* * *

이준이 자신을 무시하고 대전 안으로 사라지자, 자색 옷을 입은 영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하늘 요괴가 앞을 막아선 채 공격을 퍼부어대고 있는 탓에 그는 이준을 잡으러 갈 수가 없었다.

분노한 자색 존자가 인을 맺자, 검은색 쇠사슬이 튀어나와 하늘 요괴를 덮쳤다.

대전 밖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사이, 이준은 이미 대전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 상태였다. 대전 안에는 아직 수십 명의 영호가 남아있었지만, 그들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이준을 막을 수 없었다.

“네 이놈! 죽고 싶구나!”

이준이 안으로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노기등등한 고함 소리와 함께 네 개의 그림자가 이준의 앞을 막아섰다.

그들의 몸에서는 영혼의 궁전 특유의 검은 안개가 퍼져 나오고 있었으며,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으로 보아 모두 6성, 7성급의 투종 강자들이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 멈추어라!”

날카로운 고함 소리와 함께 네 사람이 몸에서 퍼져 나오던 검은 안개가 하나로 모여 몇 십 미터나 되는 검은 뱀으로 변해 거대한 꼬리를 휘두르며 이준을 향해 돌진했다.

“고작 영호 넷이서 날 막으려 하나?”

하지만 이준은 피식 웃으며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며 자갈색 화염을 용의 형상으로 변화시켜 그들을 향해 내던졌다.

펑!

검은 뱀과 자갈색의 용이 맞부딪히자, 굉음과 함께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곧이어 용과 뱀이 뒤엉키며 생겨난 충격에 거대한 돌기둥들이 와르르 무너지며 근처에 있던 영호들을 깔아뭉갰다.

이 장면을 바라보던 네 투종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하지만 그들이 미처 피하기도 전에 자갈색 화염이 그들의 몸을 강타했다.

쾅!

그 순간, 그들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안개가 사라지며 네 사람의 입에서 일제히 피가 터져 나왔다.

바닥에 쓰러진 네 투종을 바라보던 이준이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네 사람의 몸 위에 일제히 자갈색 화염이 피어올랐다. 삼천불꽃의 제물이 된 네 사람은 순식간에 불타 목숨을 잃고 말았지만, 육신이 사라지기 무섭게 네 개의 영혼체가 나타나 다시 이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끈질긴 놈들!”

하지만 이준이 버럭 고함을 지르며 다시 한 번 불꽃을 쏘아내기 무섭게 네 개의 영혼체 중 세 개가 ‘펑’하는 소리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세 명의 투종을 정리한 이준은 곧바로 몸을 날려 마지막 남은 투종 강자를 붙잡았다.

“스승님의 영혼을 잡아둔 곳이 어디냐? 기회는 한 번 뿐이다. 답하지 않으면 너도 저 세 사람과 똑같이 만들어주지.”

이준의 싸늘한 표정에 혼전의 투종 강자는 덜덜 떨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눈 깜짝할 새에 자신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투종 셋이 영혼조차 남기지 못 하고 재가 되어버렸으니, 자기 혼자서 이준에게 대적했다가는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보……봉인 대전에…….”

“죽기 싫으면 안내해!”

이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앞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되오.”

스승이 있는 곳을 파악한 이준은 한손에 그를 붙든 채 검은 진영을 남기며 대전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번개처럼 날아갔다.

약로가 갇혀있는 곳으로 가는 동안 수십 명의 영호가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가 갈색 불꽃에 의해 영혼조차 남기지 못 하고 재가 되어버렸다.

이준은 대전 안을 불지옥으로 만들며 빠른 속도로 약로가 갇혀 있는 곳으로 전진했다.

“얼마나 남았지?”

삽시간에 수십 명의 영호들을 재로 만드는 이준의 모습에 영혼의 궁전의 투종 강자는 감히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 하고 덜덜 떨며 손을 들어 복도의 한쪽 끝을 가리켰다.

“이 복도 끝에 봉인대전이 있소.”

고개를 돌려 투종 강자가 가리킨 방향을 확인한 이준은 곧바로 자갈색 화염을 피워내 그의 영혼체를 재로 만들어 버렸다. 평소의 그였다면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았겠지만, 영혼의 궁전 놈들에게 자비를 베풀 마음 따위는 털끝만큼도 없었다.

복도 끝에 있는 굳게 닫힌 검은색 철문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검은 철문 앞에 도착한 이준이 자갈색 화염으로 검은 색 철문을 내리치자, 거대한 철문이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넓다란 광장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광활한 광장 안에는 백 미터 정도 되는 돌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있었고, 검은색 쇠사슬이 거미줄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쇠사슬 끝엔 수많은 빛덩어리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는데, 광단 속에는 모두 반투명한 영혼체가 들어있었다.

이미 두 번이나 본 적이 있는 광경이었지만, 직접 목격하니 새삼 가슴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죽음의 기운이 서려 있는 광장 안으로 천천히 들어온 이준은 주변을 훑다 광장 깊은 곳에 우뚝 솟아있는 석대를 발견했다. 석대 위에는 아주 밝게 빛나는 광단이 하나 떠 있었는데, 그 곳에서는 온몸이 벌벌 떨릴 만큼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준은 화살처럼 단숨에 튀어 올라 그 석대 위에 올라선 뒤 초점 잃은 눈빛으로 거대한 쇠사슬에 사지가 묶여 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이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스승님, 제자가 왔습니다.”

창백해진 약로는 너무나도 초췌해 이준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스승의 모습에 이준은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이준이 양 무릎을 꿇는 순간, 광단 속 약로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천천히 열렸다. 흐리멍덩한 두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청년을 발견하는 순간, 노인의 생기 없는 얼굴에 웃음이 번지며 목구멍에서 쉬어터진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이 녀석……다 컸구나…….”

약로와 헤어질 당시 아직 애티가 가시지 않았던 이준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어엿한 어른이 되어있었다.

약로의 짧은 한 마디에 이준은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스승을 살리려면 한시라도 빨리 망혼산맥을 벗어나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준은 광단 주위를 한 번 훑은 뒤 그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그의 미간에서 영혼의 힘이 홍수처럼 터져 나오며 약로를 가둔 빛덩어리에 투명한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네 영혼의 힘이 영혼 단계에 접어들었구나.”

이준의 영혼의 힘을 느낀 약로의 초췌한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영혼의 궁전에 잡혀 온 이후 제자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을까 걱정했지만, 그의 우려와는 달리 이준은 이미 아주 잘 자라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