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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05화 (605/818)

605화. 돌개미마수

이준이 잠에 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부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풍존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큰일 났군, 돌개미 마수떼인가?”

풍존자의 놀란 목소리에 이준 일행의 표정 역시 딱딱하게 굳어갔다.

돌개미 떼는 망혼산맥에서 가장 위험한 마수 중 하나였다. 그들이 위험한 것은 실력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엄청난 수 때문이었다.

사실상 수많은 강자들이 이 망혼산맥을 피하는 이유는 돌개미 마수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돌개미 마수 한 마리의 실력은 고작해야 3,4 레벨에 불과했으니 투존 강자가 아니라 투황 정도만 되어도 두려울 일이 없었다. 문제는 적게는 수만, 많게는 수십만 마리가 몰려다닌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돌개미 마수는 자신들의 앞을 막아서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기 때문에 망혼산맥 안에서 이들이 휩쓸고 지나간 길에는 모든 생명체가 사라졌다. 망혼산맥의 대지 아래 묻힌 수많은 강자들 중 대부분은 길을 잃고 헤매다 돌개미 떼를 만나 죽은 것이었다.

“철수 준비, 저 녀석들과 마주쳐선 안 된다.”

풍존자가 급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풍존자의 굳은 표정을 본 이준 일행은 다급히 몸을 일으켜 후퇴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때, 작은 그림자 하나가 갑자기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려 얼음염력으로 둘러싸인 숲 안으로 순식간에 뛰어 들어갔다. 숲으로 달려간 것은 다름 아닌 보람이었다.

보람의 이 철없는 행동에 풍존자의 눈에 순간 살기가 돌았다.

“지금 뭐하는 게냐! 죽고 싶은 것이냐!”

“먼저 가십시오. 제가 데려오겠습니다.”

“잠깐, 개미떼의 소리가 멈췄어요.”

그때, 아라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멈칫하며 귀를 기울였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정말로 돌개미들이 움직이며 내는 소리가 거짓말처럼 잦아들어 있었다.

“이건…….”

이준 일행이 이 기이한 상황에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때, 사라졌던 보람이 다시 달려와 이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녀의 어깨에는 여덟 개의 날개가 달린 거대한 황토색의 개미 한마리가 걸쳐져 있었다.

“돌개미 마수?”

황토색 거대 개미를 본 풍존자와 철검존자의 표정이 빠르게 변했다.

“가요, 이 녀석들이 그 분전인지 뭔지 하는 곳이 어디 있는지 안대요.”

보람의 어깨에 걸쳐져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여왕 돌개미’였다. 하지만 풍존을 기절할 만큼 놀라게 한 것은 여왕 돌개미를 잡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돌개미떼들이 그들을 습격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허……. 이 아이의 정체가 무엇이냐?”

넋이 나간 풍존이 질문을 던지자, 이준이 피식 웃으며 말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보람은 모든 마수의 정점에 선 존재인 용족의 후예였으니, 돌개미들이라 해도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제아무리 흉포한 마수라 해도 용족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해지는 것이 당연했다.

황토색으로 빛나는 여왕 돌개미의 등 뒤에는 매미의 날개와 비슷한 날개가 여덟 개 달려있었고, 큰 입에는 한기가 들 정도로 날카로운 이빨이 칼날처럼 솟아있었다. 만일 이 이빨에 물리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했다.

이준의 시선을 느낀 여왕 돌개미는 돌연 여덟 개의 날개를 펼치며 이준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한 입을 커다랗게 벌렸다.

“야!”

하지만 보람이 버럭 성을 내며 머리를 한 대 쥐어박자, 여왕 돌개미는 잔뜩 풀이 죽은 듯 입을 다물고 고개를 떨궜다.

“정말 이 녀석이 혼전의 위치를 안단 말이냐?”

멍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던 풍존자가 보람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이에 보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이준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어쩔 거야? 지금 움직일 거야?”

이준은 잠시 생각하다 풍존자와 눈을 한 번 마주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일수록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이 좋았다.

“알았어요. 날 따라와요.”

말을 마친 보람은 빠르게 얼음염력이 퍼져 나오는 산맥 깊은 곳으로 날아갔고, 이준 일행이 그 뒤를 따랐다.

여왕 돌개미의 안내 덕분에 이준 일행은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었고 길을 찾느라 정신을 분산시킬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삼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아 산맥의 중심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쉿.”

얼음 염력이 퍼지는 숲속,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던 보람이 갑자기 멈춰서며 뒤따라오던 사람들에게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했다.

사람들이 모두 조용해지자 보람의 어깨 위에 있던 여왕 돌개미의 입에서 갑자기 이상한 음파가 퍼져 나와 물결처럼 확산되기 시작했다.

음파가 퍼지기 시작한 지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얼음염력 속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후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들의 몸 위에는 모두 주먹 크기만 한 검은 개미들이 올라타 있었다.

돌개미들이 물어 죽인 것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검은 새들이었다.

“이것들은 모두 혼전의 새들이에요. 인기척이 조금만 있어도 음파를 보내기 때문에 완전히 죽이지 않으면 우리의 행적이 놈들의 눈에 들어가게 될 거예요.”

보람의 설명에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 자그마한 소녀가 아니었다면 그들의 기습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근처에 있는 새들은 모두 돌개미 마수들이 처리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분전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마음 단단히 먹으시고요.”

보람의 말에 이준 일행은 조용히 염력을 끌어올린 채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약 10분 정도를 더 앞으로 나아가자, 마침내 보람의 발걸음이 멈춰섰다.

“다 왔어요.”

보람의 말에 따라 자리에 멈춰선 이준은 주위의 얼음 염력이 다른 곳에 비해 눈에 띄게 옅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이 있는 곳은 아주 높고 험준한 비탈길로, 길의 끝에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골짜기가 보였다. 그리고 그 골짜기 안에는 백 미터도 넘는 거대한 검은색 대전이 섬뜩한 기운을 풍기며 서 있었다.

“저곳이 바로 스승님이 갇혀 있는 곳인가…….”

산골짜기 안에 있는 거대한 건축물을 보며 이준은 저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풍존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 역시 앞으로 벌어질 사투를 직감한 듯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잠깐, 이곳에는 모두 공간장벽이 설치되어 있어요.”

그때, 커다란 대전을 바라보던 이준의 눈에 희미하게 공간이 왜곡되어 있는 것이 들어왔다.

“공간장벽은 내가 해결할게. 내가 인기척 없이 저 공간을 뚫을 수 있어.”

보람이 팔을 걷어붙이며 말했다.

“대전 안에 투존이 몇 명이나 있는지 느껴지십니까?”

이에 이준은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풍존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복잡한 기운 다섯이 느껴지는 걸 보니 투존 강자 다섯에 투종이 열 정도 있는 것 같구나. 더 약한 기운들도 많이 느껴지고.”

그의 말에 이준은 잠시 망설이며 생각에 잠겼다. 투존 다섯만 있으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투종이 열 정도라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공간장벽이 열리면 우선 돌개미 마수를 들여보내서 그 녀석들을 전부 죽여야겠어요.”

바로 그때, 보람이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말에 이준 일행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돌개미가 영존을 어찌하지는 못하겠지만, 영호들만 제거해준다 하더라도 한결 일이 쉬워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 일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보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존 다섯은 우리 네 사람이 어떻게든 막을 수 있으니 자네는 그 틈에 약선을 구하게. 찾자마자 바로 데리고 나와야 하네. 놈들이 지원을 요청하기 전에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니까.”

풍존자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면 조금 힘이 될까요?”

이준은 웃으며 손가락을 튕기자,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빛 요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투존 요괴?”

하늘 요괴의 실력을 한눈에 알아본 풍존과 철검존자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낼 뻔한 것을 간신히 눌러 참았다. 두 사람 모두 견문이 넓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었지만, 투존 요괴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훌륭하네. 이 요괴가 있다면 그 투존 다섯 정도는 무리 없이 막을 수 있을게야. 약선을 찾는 일은 자네에게 맡기겠네.”

풍존의 말에 이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보람을 바라보며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준의 신호를 받은 보람은 신이 나서 앞으로 달려나가 새카만 대전을 감싸고 있는 공간 장벽을 향해 가볍게 손을 내뻗었다.

그녀의 가벼운 손짓 한 번에 거대한 공간장벽에 거짓말처럼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자! 가라!”

공간 장벽에 구멍을 낸 보람은 신이 나서 자신의 어깨 위에 있던 여왕 돌개미의 등을 두드렸다.

곧이어 수풀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며 수만 마리의 검은색 개미들이 쏟아져 나와 대전 안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럼 저희도 움직여 볼까요?”

멍하니 대전으로 향하는 개미떼를 바라보던 이준은 앞장서서 공간 장벽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검은색 대전 깊은 곳에 위치한 거대한 광장 위에는 백 미터 정도의 높은 돌기둥이 하늘을 향해 솟아나 있었다.

그 돌기둥에는 기이한 문자들이 끝도 없이 새겨져 있었고, 돌기둥에서 뻗어 나온 새카만 쇠사슬이 얼기설기 얽혀 있었다.

쇠사슬의 끝부분에는 옅은 빛 덩어리가 떠다니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반투명의 영혼체가 있었다.

그 거대한 돌기둥 주위로는 다시 네 개의 거대한 돌기둥이 서있었으며, 네 개의 돌기둥에는 각각 허벅지만큼 굵은 검은색 쇠사슬이 걸려 있었다.

그 네 개의 쇠사슬은 중앙에 있는 거대한 돌기둥 아래에 있는 빛 덩어리와 연결되어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 빛 덩어리 안에 있는 영혼체를 잡아두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죽은 듯이 고요한 광장의 곳곳에서는 쉴 새 없이 죽음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준이 공간 장벽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시체처럼 초췌하던 영혼체의 눈동자에 돌연 날카로운 빛이 번뜩였다.

수십만 마리에 이르는 돌개미 떼는 빠르게 산비탈을 달려가 해일처럼 검은색 대전을 덮쳤다.

검은색 대전을 지키고 있던 검은 그림자들은 멀리서 달려오는 돌개미들을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몇 번이나 눈을 비비며 자신들이 헛것을 본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조심하라! 돌개미다! 저 녀석들이 어떻게 여길 들어온 거야?”

고함소리가 적막을 깨고, 대전을 지키고 있던 십여 개의 검은 안개들이 황급히 쇠사슬을 뿜어냈다.

“경보를 울려라!”

곧이어 대전에서 십여 개의 검은 그림자가 달려 나오며 빠른 속도로 검은 쇠사슬을 뿜어냈다.

치이익!

검은 안개가 돌개미 마수의 몸에 닿는 순간, 마수들의 몸에서 하얀 연기가 터져 나오며 순식간에 백여 마리의 돌개미가 시체로 변했다. 하지만 십만을 넘어가는 돌개미떼에서 백여 마리 정도가 죽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무엇이겠는가?

“유영호님!”

바로 그때, 대전 안에서 또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달려 나왔다.

“이게 무슨 일이냐!”

유영호라고 불린 검은 그림자는 다른 그림자들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르며 길길이 날뛰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 왜 돌개미들이…….”

하지만 그의 말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주위의 공간이 빠르게 왜곡되면서 투명한 손바닥이 나타나 대전을 지키고 있던 그림자 중 하나를 산산이 으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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