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3화. 망혼산맥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말거라. 약선을 구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닌 만큼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
현공자의 말에 이준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숨을 들이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정보가 빨리 도착했군요.”
“빠르다고 할 수는 없다네. 자네가 별의 구역에 있는 때부터 계속해서 약선의 흔적을 찾아다녔으니 말이야.”
현공자가 웃으며 말했다.
“놈들이 스승님을 어디로 옮긴 것입니까?”
현공자가 씩 웃으며 저장 반지에서 지도 하나를 꺼내 탁상 위에 펼친 뒤 손가락으로 중주 서북부지역을 가리키며 말했다.
“영혼의 궁전 놈들은 중주 곳곳에 비밀리에 자신들의 영역을 만들어 뒀지. 때문에 찾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네. 약선이 갇혀 있는 곳은 중주 서북부의 망혼산맥이라는 곳에 위치한 분전이네.”
이준이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앙다문 채 고개를 끄덕이자, 현공자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 망혼산맥은 중주에서도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하나로 손꼽힌다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이곳은 얼음 염력이 아주 짙고, 얼음 안개가 온 하늘을 가리고 있어 잘못하면 그 안에서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지. 게다가 산맥에는 아주 강하고 흉악한 마수들이 가득하네. 영혼의 궁전 놈들이 이곳에 분전을 세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지. 이곳은 어지간한 강자들도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이니까.”
“망혼산맥이라…….”
이준은 입으로 다시 한 번 스승이 갇혀 있다는 장소의 이름을 읊조렸다.
“그 분전에는 얼마나 많은 강자가 있죠? 투존은 얼마나 있나요?”
그때, 옆에 있던 아라가 가장 중요한 문제를 물었다. 갇혀있는 장소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곳을 지키고 있는 자들의 실력이었다.
“우리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5명의 투존 강자가 망혼산맥을 지키고 있다.”
말을 마치는 순간, 현공자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투존 다섯 명이라면 중주에서도 일류로 꼽힐만한 수준의 전력이었다.
“투존 다섯 명이라…….”
그의 말에 이준의 표정이 더욱 딱딱하게 굳어갔다. 투존 다섯이라니…….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지금 상황에서 대지요괴를 더해도 투존 강자는 세 명뿐이었다. 그 역시 천계의 불꽃을 사용해 일시적으로 실력을 올리면 투존 강자 하나정도는 상대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하나를 상대할 사람이 없었다.
‘역시 풍존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하겠어.’
“그 분전에 있는 투존 강자는 그 다섯 명이 다인가요?”
이준이 어떻게 하면 스승님을 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 사이, 아라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투존은 다섯이지만, 그 분전에는 분명 영호들이 함께 있을 것이다. 이쪽도 투존 다섯으로는 안 되겠지.”
현공자가 말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절대로 천존을 만나지 않는 것이다.”
옆에 있던 현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존?”
이준의 질문에 현이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혼전의 영호들은 천(天), 지(地), 인(人) 세 단계로 구분된다. 영존 역시 마찬가지지. 그리고 영존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실력을 가진 자들을 천존이라 하지. 참고로 말하자면, 모골도 천존이 아니야.”
현이의 설명을 들은 이준은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모골의 실력은 3성 투존 정도였다. 3성 투존이 천존이 아니라면, 천존은 최소한 5성 투존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5성 투존은 아라와 천지요괴가 힘을 합쳐야만 싸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후…….”
이준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 자신의 힘으로는 스승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천존은 보통 쉽게 얼굴을 내보이지 않는다. 투존 다섯 명이 약선을 보호하고 있는 것만으로 아주 엄격하게 보호하고 있는 것인데, 천존까지 있다는 건 조금 말이 안 되는 것 같구나.”
이준의 심각한 표정을 본 현공자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이준은 조금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얻은 정보는 여기까지네. 연금성과 망혼산맥은 그리 멀지 않아 5일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네.”
현공자가 양피지 두루마리를 이준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건 망혼산맥 내부의 지도라네. 분전은 산맥 중심에 위치하고 있네.”
지도를 받은 이준은 조심스럽게 지도를 펼쳐 자세하게 훑었다. 지도에는 분전으로 가는 길이 아주 상세히 표시되어있었다. 산맥 내의 얼음염력이 아무리 짙다 해도 이렇게 확실하게 표시되어 있는 지도가 있다면 분전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현회장님.”
지도를 저장 반지에 넣은 이준은 현공자를 향해 공손히 예를 표했다.
“하지만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건 여기까지네. 결국 약선을 구하는 것은 자네들에게 맡겨야 하겠지. 면목이 없네.”
현공자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역시 이준만큼이나 약선을 구하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
“아닙니다. 연금탑에서 정보를 수집해주지 않았다면 스승님이 갇혀 있는 곳을 찾는데만도 몇 년이 걸렸을지 모릅니다.”
이어지는 이준의 말에 현공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자네들은 언제 출발할 것인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떠나야하기 때문에 적어도 풍존자님이 오실 때까지는 기다려야 합니다.”
“허허, 풍존? 풍존이 온단 말이냐?”
풍존자의 이름이 나오자, 현공자를 비롯한 세 회장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허허, 하긴. 약선을 찾는데 그가 오지 않을 리 없지. 풍존이라면 틀림없이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게다가 풍존은 영혼의 궁전놈들과 이미 몇 번이나 싸움을 치렀으니 누구보다 놈들에 대해 잘 알고 있지.”
풍존이 온다는 소식에 현공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었다.
이준 역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풍존이 올 때까지 해야 할 일들을 되짚어 보았다.
우선은 천화존자를 위해 재생의 영약을 만들어야 했다. 투존 하나하나가 아쉬운 판이니 조금이라도 더 그의 실력을 올려두는 편이 좋았다.
게다가 영혼의 궁전은 투기 대륙 전체에서도 손에 꼽는 강대한 세력이었으니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준비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스승과 관련된 정보를 모두 확인한 이준은 더 이상 회의실에 머무르지 않고 빠르게 아라, 천화존자와 함께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제부터는 숨 쉬는 모든 시간을 영혼의 궁전과의 일전을 대비하는데 써도 모자랐기 때문이다.
대문 밖으로 사라지는 이준 일행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연금탑의 세 수장은 서로를 바라보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디 무사히 다녀왔으면 좋겠군.”
* * *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이준은 곧바로 익선에게서 빼앗은 저장 반지 안으로 영혼의 힘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의 영혼이 저장반지에 들어가려는 순간, 기이한 힘이 그의 영혼을 밀쳐냈다.
“역시 봉인이 걸려있네.”
하지만 이준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다시 한 번 영혼의 힘을 집중시켜 익선의 저장반지를 매만졌다.
익선 역시 상당한 수준의 강자였으나, 영혼의 힘으로 따지자면 이준의 절반도 따라오지 못했으니 그가 걸어둔 봉인을 푸는 것은 지금의 이준에게 있어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봉인이 깨끗하게 지워지며 이준의 영혼이 익선의 저장 반지 안으로 들어갔다.
“흡혈 공법?”
이준은 두루마리를 살피다 두루마리 위에 빨간색 글씨로 적힌 네 글자를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두루마리에서는 역겨울 정도로 짙은 피비린내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두루마리를 연 이준은 두루마리 안에 적혀있는 내용을 확인하고는 한 번 더 고개를 내저었다.
“정말 역겹군. 사람의 피와 살을 먹어 염력을 흡수한다니……. 이렇게 역겨운 수련법은 처음이야.”
하지만 이 수련법이 얼마나 대단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는 너무나도 분명했다. 익선만 해도 이 수련법을 통해 서른 남짓한 나이에 투종 최고급 수준의 강자가 되지 않았던가. 이에 이준은 차분하게 두루마리 안의 글자를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다. 이런 방법을 쓸 생각은 없었지만, 이 수련법을 잘 응용하면 어딘가 쓸모가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흡수한 염력이 너무 많으면 체내 염력이 더럽혀지고……. 일정 수준에 달하면 더 이상 성장하지 않게 되어 처음부터 다시 수련을 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부작용이 엄청나네.”
이준은 역겹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붉은 두루마리를 자신의 저장반지에 넣었다. 자신이 참고할만한 점은 없었지만 어찌됐든 2격 고급 수련법이니 경매에 내놓으면 제법 쓸 만한 물건과 바꿀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흡혈공법을 저장반지에 넣은 이준은 익선의 저장반지 속을 다시 헤집었지만 생각보다 쓸만한 물건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탐색을 포기하려던 찰나, 그의 영혼의 힘이 평범해 보이는 회색 두루마리 앞에서 멈췄다.
“이건…….”
그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잠시 기억을 되짚어 본 이준은 익선이 마지막에 사용했던 무투기의 기운과 회색 두루마리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펼쳐진 회색 두루마리 위에 선명하게 ‘천명 수라의 손’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역시…….”
두루마리 안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이준은 문득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익선이 사용했던 ‘천명 수라의 손’도 강력하기는 했지만, 두루마리의 설명만 보아서는 그는 이 무투기의 위력을 반도 끌어내지 못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는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천명종의 차기 종주가 어째서 천명종의 무투기를 제대로 쓰지 못한단 말인가? 두루마리에 적힌 대로라면, 완성된 천명수라의 손의 위력은 네 개의 힘을 융합한 제왕의 권에 필적해야 했다.
“으음……. 남의 염력을 흡수해서 급하게 실력을 키운 탓에 이런 복잡한 무투기는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건가?”
익선이 이 무투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알 길이 없었지만, 단 하나만은 분명했다. 완벽한 제왕의 권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무투기는 틀림없이 큰 힘이 될 것이란 것 말이다.
* * *
풍존자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준이 해야 할 일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재생의 영약을 만들어 천화존자의 실력을 높이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천명수라의 손을 익히는 것이었다.
강력한 무투기를 익히는 것은 염력을 단련해 승급을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였고, 염력의 수준이 대등하다면 무투기에 의해 승부가 갈리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심지어 아주 강력한 무투기를 사용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실력 차가 난다고 해도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을지 몰랐다.
이준은 이미 비술과 무투기, 천지의 불꽃을 이용해 자신보다 몇 단계 위에 있는 강자들을 번번이 쓰러뜨려 왔으니 그 누구보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라와 천화존자 역시 이준을 돕기 위해 방 밖으로 한발짝도 나가지 않고 수련에 열중했다.
연금탑의 세 수장들은 이준 일행이 수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연금탑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을 방해하지 말라고 일러두었을 뿐 아니라 이준에게 필요한 약재를 모두 제공해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이준 일행은 꼬박 반년을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 반년 사이 연금 탑에서는 작은 소란이 있었다.
연금탑의 상공에 갑자기 이색비뢰운이 나타난 것이다. 이를 통해 누군가가 그 안에서 8레벨 연금비약을 제조해 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가지 색의 비뢰가 떨어지던 그 날, 눈부신 금빛을 뿜어내는 그림자 하나가 하늘로 올라가 번개를 받아냈고, 이에 사람들은 이준이 8레벨 연금비약을 제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