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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601화 (601/818)

601화. 익선

“천명종의 익선이오.”

준수한 외모를 가진 사내가 앞으로 걸어 나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천명종의 익선?”

그의 말에 구웅길은 살짝 당황하다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눈썹을 찌푸렸다.

“익선? 설마 천명종의 수라라고 불리는 그 익선?”

그 순간, 광장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익선은 자신의 이름보다 ‘천명종의 수라’라는 별명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었다. 천명종이 통치하는 지역 안에서 그는 시체로 산을 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사람을 죽여 온 살인귀로 이름을 떨쳤다.

살인으로 쌓은 그의 명성은 연금대회의 우승자인 이준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익선은 천명종에서 백 년 만에 나온 천재로 불릴 정도로 재능이 넘치는 강자였고, 천명종의 장로들마저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개중에는 그가 천명종의 차기 종주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도 많았다. 물론 천명종 안에는 다른 종주 후보들도 있었지만, 익선이 가장 강력한 차기종주 후보라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바였다.

그가 수라라는 별명을 얻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천명종의 무투기는 아주 독특해 다른 사람들의 염력을 강제로 집어삼킬 수도 있었는데, 전통에 따라 한 대(代)에서 종주 후보가 된 자들은 천명종의 비밀구역에 들어가 마지막 한명이 남을 때까지 살육전을 벌였다.

그리고 익선의 대(代)에서 모두를 잡아먹고 살아남은 자가 바로 익선이었다. 동기들의 피와 살, 염력을 모두 집어삼킨 익선의 실력은 그 후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30살이 되기도 전에 투종 최고급 수준의 강자가 되는데 성공했다.

이런 끔찍한 종주 후보 선별 방식은 천명종이 악명을 떨치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그런 잔혹한 방식을 거쳐 만들어진 역대 종주들은 하나 같이 무시무시한 실력을 자랑해 지금의 천명종이 만들어진 것이다.

“구 장로, 아들을 죽인 원수와의 원한은 반드시 갚아야 하오. 그러니 연금탑이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소.”

구웅길을 바라보는 익선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

“진한을 죽인 건 이준이 아니라 모골 노인이라고 이미 말하지 않았소.”

구웅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준이 내 아들에게 부상을 입히지 않았다면 모골의 손에서 도망갈 수 있었을 것이오. 그러니 이준도 나의 원수라 할 수 있지. 그놈을 나에게 넘기지 않으면 우리 현명종과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오.”

이준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진천남의 눈빛은 그야말로 독사같이 차가웠다.

“지금 우리 연금탑을 협박하는 것이오?”

“휴, 구 장로, 그동안 연금탑과 영혼의 궁전이 대립하는 동안 우리 천명종은 줄곧 중립을 지켰소. 하지만 만일 이 일이 원만히 해결되지 못한다면 다음번에도 우리가 중립을 지킬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오.”

익선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의 말에 시종일관 담담했던 구웅길의 표정에도 작은 변화가 생겨났다. 이 말을 다른 사람이 했다면 신경 쓰지 않겠지만, 익선은 천명종의 차기 종주이기 때문에 그의 말이 가진 무게는 천명종의 장로들이 하는 말보다 더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이보시오 진종주. 현명종의 종주가 새카만 후배에게 직접 손을 쓰는 것은 조금 아니지 않소?”

구웅길이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들의 원수 앞에 체면이 어디 있소. 그 이준이라는 놈보다 더 어린놈이라 하더라도 내가 직접 죽였을 것이오.”

진천남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익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듣기로는 이준이라는 친구가 아주 젊다고 하던데, 그럼 제가 상대하면 진 종주님이 체면을 구길 일은 없는 것이겠지요?”

익선의 말에 구웅길의 표정이 더욱 어둡게 내려앉았다. 익선은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 악명으로 치자면 진천남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은 자였다. 그런 자가 이준과 맞부딪힌다면 둘 중 하나는 죽어야 일이 끝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자네…….”

구웅길이 무언가 말을 하려는 그때, 눈앞의 공간이 왜곡되기 시작하면서 까만 옷을 입은 젊은 사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가 직접 왔으니 더 이상 대장로님을 귀찮게 하지 마시고 저와 얘기를 하시지요.”

구웅길의 앞에 나타난 이준을 발견한 익선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네가 바로 그 이준이군.”

이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평온한 표정으로 그 남자를 바라보다가 그에게서 느껴지는 짙은 피비린내에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여야 이렇게 엄청난 피비린내를 풍기게 되는 것인지 그로써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이준, 그를 자극하지 말게.”

이준의 뒤에 있던 구웅길이 초조한 말투로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저러는데,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준은 태연한 표정으로 익선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너무나도 담담한 이준의 태도에 구웅길은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연금대회에서 보여준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평소에는 온화해 보이는 이 청년의 마음속에는 여느 강자들 못지않은 난폭함이 숨어 있었다. 상태를 보아하니 익선과 진천남의 태도가 그의 마음속에 있는 그 흉포한 면을 일깨운 듯싶었다.

“이준씨, 힘내요.”

그때, 구웅길의 뒤편에서 낭랑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산발을 한 젊은 여자 하나가 묘한 미소를 띤 채 팔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여자는 또 언제 온 거야?’

조영을 발견한 이준은 저도 모르게 등 뒤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에게는 현명종도, 눈앞에 선 이 피비린내를 풍기는 사내보다 조영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연금대회 우승자와 천명종 수라간의 대결이라니…….”

“그러니까, 이준이 뛰어난 건 연금비약 제련이지 이런 염력 대결이 아니라고.”

“내가 보기에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소. 이준이 별의 지역 안에서 반년을 버틸 수 있었는데, 어떻게 단언할 수 있겠소!”

악명 높은 천명종의 수라와 이준의 대결이 성사된 듯하자 주위에 가득한 구경꾼들 사이에서 일제히 수군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익선의 예쁘장한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내려앉았다. 그의 표정에서는 마치 먹이를 발견한 독사마냥 섬뜩한 느낌이 가득 풍겨 나오고 있었다.

“진 종주님, 제가 대신 나서도 되겠지요?”

익선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진천남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 녀석만 죽일 수 있다면 종주 선거에서 현명종은 자네의 곁에 서겠소.”

진천남의 답변을 들은 익선의 얼굴에서는 더욱더 스산한 미소가 새어나왔다.

“걱정 마시지요. 마침 저도 연금대회 우승자의 피와 살이 갖고 싶던 터라.”

말을 마친 그는 만인이 주시하는 가운데 맞은편에 서 있는 이준에게로 다가갔다.

“마음의 준비가 됐다면 나오시게. 물론 핑계를 대며 연금탑의 뒤에 숨어도 괜찮소.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자네를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오.”

익선의 말에 이준의 눈빛에도 순간 살기가 돌았다.

“그럴 일은 없으니 걱정 마시지요.”

“좋소, 역시 연금대회 우승자답군. 배짱이 대단해.”

말을 마친 익선은 먹이를 앞에 둔 야수마냥 새빨간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천명종 수라의 명성은 이준도 익히 들어보았다. 이 나이에 투종 최고급 강자가 되었다는 것만 보아도 그의 악명이 과장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별의 구역에서 빠져나온 이후 이준 역시 결코 그에 뒤지지 않는 실력을 손에 넣은 상태였으니 조금도 상대에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큭큭, 좋아. 그럼 이 석대 밖으로 나가는 자가 지는 것으로 하지.”

말을 마친 익선이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매끄러운 바닥이 패이며 20미터 정도 크기의 동그란 원이 생겨났다.

“이 밖으로 나가는 자가 지는 것이오.”

“좋습니다.”

이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준을 바라본 익선의 눈이 빨갛게 물들었다. 사실 그가 원하는 것은 이준을 석대 위에서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를 죽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죽이겠다고 달려들면 구웅길이 방해를 할지도 모르니 그가 방해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한 것뿐이었다.

쉭-

다음 순간, 익선의 몸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이준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등 뒤로 발을 날렸고, 아무것도 없던 텅 빈 공간에서 새카만 그림자 하나가 튀어 나왔다.

모습을 드러낸 익선은 곧바로 핏빛 염력을 뿜어내며 이준의 발목을 붙잡았다.

“네 피와 살은 일반인과 얼마나 다른지 한 번 보자꾸나!”

익선에게 발목을 붙잡힌 순간 이준은 갑자기 온몸의 피가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익선이 막 살점을 뜯어내려는 찰나, 돌연 이준의 다리에서 자갈색의 화염이 터져 나왔다.

팔을 타고 전해지는 무시무시한 열기에 익선은 황급히 붙잡았던 이준의 발목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손바닥은 이미 천지의 불꽃에 의해 불타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처음부터 이준을 죽이기 위해 온 힘을 끌어냈기에 망정이지, 팔에 두른 염력이 조금이라도 부족했다면 그 팔은 영영 쓰지 못하게 되어버렸을 것이 분명했다.

“이것이 바로 천지의 불꽃인가…….”

함부로 달려들었다가 된통 쓴맛을 본 익선은 차갑게 웃으며 이준을 향해 손을 내뻗더니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허공에 대고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짙은 핏빛이 흘러나오며 기이한 파동이 이준의 몸을 감쌌다. 기이한 파동에 둘러싸인 이준은 또다시 온몸의 혈관이 요동치며 몸속에 있는 피가 혈관을 뚫고 나가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묘한 느낌에 이준은 곧바로 온몸에서 자갈색 화염을 뿜어냈다. 자갈색 화염이 마치 갑옷처럼 이준의 온몸을 뒤덮자, 기이한 파동 역시 순식간에 불타 사라지고 말았다.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염력을 떨쳐내는 이준의 모습에 시종일관 차갑던 익선의 표정에도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다.

‘역시 연금대회 우승자가 될 만하군. 안 되겠어,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니 너무 오래 묶어두지 말고 빨리 해결해야겠군.’

마음속으로 생각을 마친 익선의 눈동자가 피처럼 새빨갛게 물들었다.

곧이어 익선의 손이 기이한 인을 그리더니 그의 온몸에서 새빨간 피 안개 같은 것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준 조심해요, 이건 천명종의 비술이에요. 몸속에 있는 피를 증발시켜 순식간에 힘을 폭발시키는 거예요!”

광장 한편에서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조영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펑!

그와 동시에 익선이 가볍게 발을 구르며 자리에서 사라졌고, 광장 위에는 팔뚝만한 균열이 퍼져나갔다.

다음 순간, 익선이 피로 물든 악귀처럼 이준의 앞에 나타나 칼날같이 날카롭게 변한 다섯 개의 손톱을 휘둘렀다.

“너의 피와 살은 모두 내 것이다.”

“꺼져라!”

하지만 익선의 날카로운 손톱이 막 이준의 몸에 닿으려는 찰나, 이준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화염이 폭발했다.

엄청난 기운이 이준의 몸속에서 화산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면서 바닥에 수많은 균열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폭발한 강한 기운에 가까이 있던 익선은 물론이고 구웅길마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자갈색 화염으로 포장된 주먹이 순식간에 허공을 가르고 날아와 익선의 손과 강하게 부딪혔다.

펑!

두 사람의 손이 맞닿는 순간 엄청난 충격파가 퍼져나가며 단단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광장의 바닥이 산산이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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