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7화. 대치
자흑색 화염에 담긴 무시무시한 힘을 느낀 현공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망설이는 눈빛으로 아래에 있는 이준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그를 두고 나간다면 그는 틀림없이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저 아이에게는 특별한 힘이 있는 듯하니 걱정하지 말고 나갑시다.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저 아이의 영혼만 상하게 할지 모르오.”
현공자가 고민하는 사이, 고온을 견디다 못한 청화가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청화 영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준의 몸에서 갑자기 청록색 불빛이 번쩍이더니 그의 온몸을 서서히 감싸기 시작했다.
“으음……. 알겠네.”
현공자는 그제야 조금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꼭 이기거라.”
현공자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별의 구역의 출구 방향으로 날아갔다.
출구로 날아가던 현공자는 자신의 앞에서 날아가고 있는 두 개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모골과 함께 대회에 잠입한 영혼의 궁전의 연금술사들이었다. 그들은 영존들처럼 공간석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날아서 별의 구역을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허.”
그들이 일으킨 소란으로 잔뜩 화가 나 있던 현공자는 곧바로 미간을 찌푸리며 팔을 휘둘렀고, 이내 엄청난 힘이 터져 나와 그 두 사람을 자흑색 불바다 속으로 날려버렸다.
“으악!”
재수 없게 걸린 영혼의 궁전의 두 강자들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껄껄, 성질하고는…….”
청화는 현공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전속력으로 출구를 향해 날아갔다. 그의 힘으로도 더 이상 별의 불꽃이 뿜어내는 열기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출구에 도달한 현공자는 불의 구역 전체에 퍼진 자흑색 화염을 돌아봤다. 천지를 뒤덮고 있는 자흑색 화염 사이로 바다 위에 떨어진 나뭇잎처럼 힘없이 요동치고 흔들리고 있는 청록색의 불빛이 보였다.
‘녀석, 네 운을 믿어봐야겠구나.’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읊조린 현공자는 걱정스러운 듯 한번 더 한숨을 내쉬고는 빠르게 출구로 날아갔다.
마지막 두 사람이 별의 구역을 빠져나가는 순간, 새카만 공간 전체에서 또다시 거대한 불기둥이 솟구쳤다.
* * *
연금탑 위에 떠있던 공간 통로에서 현공자와 청화가 빠져나오는 순간, 활활 타오르는 자흑색 불길이 그 뒤를 따라 공간 통로를 뚫고 터져 나왔다.
“별의 구역을 닫으시오!”
공간 통로에서 빠져나온 현공자가 빠르게 고개를 돌려 자흑색 화염을 바라보며 외쳤다.
현이와 진태자는 잠시 멈칫거리다가 현공자의 굳은 얼굴을 보고는 이를 악물고 인결을 바꿨다. 그러자 공간의 힘이 터져 나오며 은색의 공간 통로가 빠르게 모습을 감췄다.
“무슨 일이에요?”
현이와 진태자는 놀란 표정으로 급히 물었다.
“별의 불꽃의 본체가 폭발하면서 그동안 흡수했던 화염이 모두 터져 나와 별의 구역 전체가 불바다로 변했소. 봉인을 강화하지 않으면 결국 연금성 전체가 잿더미로 변해버릴 것이오.”
현공자의 말에 현이와 진태자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갔다. 오랜 시간 별의 힘을 흡수해 온 별의 불꽃이 폭발한다면 그 힘은 연금탑의 세 수장이라 해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준은요?”
현이의 질문에 현공자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아직 별의 구역 안에 있소.”
“뭐라고요? 어떻게 그냥 두고 나올 수 있어요?”
현이의 목소리에서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느껴졌다.
“별의 불꽃의 본체와 영혼의 싸움을 벌이고 있소. 내가 강제로 데리고 나왔다면 영혼을 크게 상했을 거요.”
현공자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부상을 입는 게 저 안에서 죽는 것보단 낫잖아요!”
현공자의 말에 현이는 기가 차다는 듯 눈을 치켜뜨며 소리를 질러댔다.
“너무 흥분하지 마시오. 저 아이 역시 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있으니 당장에 어떻게 되지는 않을 것이오. 별의 구역이 조금 안정을 찾으면 내가 다시 들어가서 데리고 나오겠소.”
“들어갔을 때 남은 게 유골뿐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저 아이가 죽으면 약선얼굴을 어떻게 보려고 그래요?!”
굳게 닫힌 별의 구역을 바라보던 현이는 씩씩대며 몸을 돌려 연금탑으로 향했고, 현공자와 진태자 역시 어두운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 * *
“뭐라고요? 별의 불꽃이 폭발했는데 이준이 아직 그 안에 있다고요?”
이준이 아직 별의 구역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 했다는 말을 들은 아라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녀의 곁에 있던 천화존자의 표정 역시 그녀 못지않게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아라의 반응을 본 구웅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준을 구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 아이는 지금 별의 불꽃과 영혼 교전을 벌이고 있어 그대로 데리고 나왔다면 엄청난 부상을 입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의 요괴가 이준을 건드리지 못하게 지키고 있었소.”
“연금탑의 수장이 하늘 요괴를 못 당해서 이준은 그 안에 두고 왔다고요!?”
아라는 구웅길의 해명에 전혀 납득하지 못한 듯 더욱 성을 내며 길길이 날뛰었다. 그녀 역시 현공자가 공간 통로를 빠져나올 때 함께 뿜어져 나왔던 자흑색 화염을 보았었다. 제아무리 이준이라 해도 그런 화염이 가득한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구웅길은 곤란한 듯 한숨을 내쉬며 아라에게 다시 한번 차분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회장님들께서 며칠 뒤 별의 구역 안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 직접 가셔서 이준을 데리고 나오겠다 하셨소.”
“며칠 뒤? 며칠 뒤라고요?”
순간 아라의 눈동자에 서늘한 살기가 감돌았다.
그때, 곁에 있던 보람이 그녀의 옷소매를 당기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 이준은 아직 죽지 않았어. 내가 느낄 수 있어.”
보람의 말에 아라는 잠시 머뭇거리며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보람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이준을 아주 잘 따랐다. 그러니 이준에게 정말로 무슨 일이 생겼더라면 그녀가 이렇게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휴……. 알겠어요. 그럼 삼 일 후에 회장님들을 찾아가겠어요. 그때도 별의 구역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들어갈 거예요!”
아라가 한숨을 내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구웅길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아라와 더 이상 말을 섞었다가는 싸움이 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 수 있어? 이준은 별의 구역 안에 있는데?”
구웅길이 나가자 아라가 급히 고개를 돌려 보람에게 물었다.
“이준 몸속에 있는 용의 각인은 내가 새겨준 거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손에 있는 용의 각인도 사라질 거야.”
손을 편 보람의 손에는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지금 이 용의 각인이 사라지지 않고 빛이 퍼져 나오고 있다는 건 이준의 생명에 큰 위험이 없다는 뜻이야.”
보람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제야 마음속에 있던 무거운 돌이 떨어져나간 듯 안정을 되찾은 아라는 말없이 창밖의 연금탑 하늘 위로 시선을 돌렸다. 현재 그곳에는 수많은 연금탑 강자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이준 혼자 저곳에 둘 수는 없어. 삼 일 후에도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저 별의 구역을 열라고 할 거야.”
* * *
별의 불꽃이 완전히 폭발하면서 일어난 소란으로 외부 세계는 한바탕 난리가 나 있었지만, 정작 별의 구역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자흑색 화염이 끊임없이 활활 타오르면서 별의 구역 전체는 이미 거대한 화로로 변해 있었고, 그 온도는 평범한 강자라면 숨을 쉬는 것만으로 폐가 타서 죽어버릴 정도였다.
별의 불꽃의 폭발로 별의 구역은 그렇게 죽음의 땅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죽음의 구역 한가운데에서는 아직 작은 녹색 빛이 반짝 반짝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신비한 청록색의 불빛 속에는 한 사내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고, 그 곁에는 눈부신 빛을 뿜어내는 황금색의 요괴가 서 있었다.
* * *
한편, 이준과 별의 불꽃이 영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공간속에서는 거대한 용이 여전히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거대한 자흑색 용은 끊임없이 화염을 내뿜으며 이준을 집어삼키려 했지만, 청록색의 화염 장막은 여전히 굳건하게 자신의 주인을 지키고 있었다.
미동조차 하지 않는 청록색의 화염장벽의 힘 앞에 별의 불꽃은 더욱더 미쳐 날뛰며 화염을 토해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별의 불꽃은 왜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반면 화염 장막 속에 있는 이준의 힘은 느리지만 분명히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힘이 이준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아직까지는 눈 앞에 앉아있는 인간의 힘이 자신보다 강하지 않았지만,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잡아먹히는 것은 자신이 될지도 몰랐다.
조급해진 별의 불꽃은 더욱 더 격렬하게 날뛰었지만, 그럴수록 더욱 빠른 속도로 힘을 빼앗길 뿐이었다.
이준 역시 별의 불꽃의 힘이 서서히 자신의 몸속으로 흡수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별의 불꽃의 힘을 빨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보람이 새겨준 각인 때문이었다. 손바닥에 새겨진 용족의 각인은 계속해서 별의 불꽃의 힘을 빨아들이고 있었고, 별의 불꽃이 미쳐 날뛸 때마다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이준은 그저 가만히 눈을 감고 묵묵히 별의 불꽃의 공격을 견뎌냈다. 본래 그의 실력으로는 오랜 세월 별의 힘을 흡수한 별의 불꽃을 당해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천천히 놈의 힘을 흡수해 나가다 보면 조만간 자신이 더 강해질 날이 올 것이 분명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지금으로써는 그것만이 별의 불꽃을 삼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조금이라도 인내심을 잃고 조급하게 굴었다가는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 * *
영혼 공간 속에서는 시간의 개념이 모호해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준이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바깥에 있는 별의 불꽃이 하루하루 약해지고 있었고, 자신은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반면 별의 불꽃은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잃고 있었다. 마음속에 가득했던 분노는 이미 공포로 바뀐 지 오래였다. 이미 많은 힘을 빼앗긴 별의 불꽃은 무슨 수를 써도 상대의 화염 장막을 뚫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시간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빠르게 흘러갔고, 서서히 힘을 잃어가던 별의 불꽃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더 이상 화염을 뿜어내지 않았다.
자흑색의 거대한 용이 지친 듯 불을 내뿜는 것을 멈추자, 마침내 굳게 감겨있던 이준의 두 눈이 서서히 열렸다.
“이제, 내 차례구나.”
이준이 몸을 일으키는 순간, 힘을 잃고 또아리를 틀고 있던 별의 불꽃의 눈빛에 긴장한 기색이 감돌았다.
곧이어 청록색의 화염을 몸에 두른 이준이 주위에 가득한 자흑색 화염을 가르고 천천히 별의 불꽃을 향해 걸어갔다.
“크르릉!”
이준이 드디어 움직임을 보이자 별의 불꽃은 다시 몸을 일으켜 거대한 입에서 다시 한번 거대한 화염 기둥을 뿜어냈다. 하지만 그 위력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
별의 불꽃에 공격에 이준은 오히려 미소를 띠며 소맷자락을 휘둘렀다. 그러자 청록색 불기둥이 솟아나와 자흑색의 불기둥과 강하게 부딪혔다.
하지만 자흑색 불기둥은 얼마 견디지 못하고 곧바로 무너져 버렸고, 남아있던 청록색 불기둥이 그대로 별의 불꽃의 몸에 부딪혔다. 청록색 화염에 얻어맞은 거대한 용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밀려났다.
“약해졌군.”
그 순간, 이준은 온몸 곳곳에서 힘이 솟는 것이 느껴졌다. 오랜 시간 가만히 앉아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별의 불꽃의 힘을 흡수한 것이 헛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