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5화. 돌격
별의 불꽃의 갑작스러운 반격에 네 명의 영존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젠장! 죽음의 쇠사슬!”
모골의 고함 소리를 들은 세 영존은 이를 악문 채 다시 한번 인결을 바꾸었다.
촤르르륵.
그 순간, 맑은 쇳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지며 검은 쇠사슬이 한데 뭉쳐 십 미터도 넘는 거대한 뱀의 형상으로 변화했다.
새카만 쇠사슬의 표면에는 기이한 문양이 가득했고, 쇠사슬의 마디마디에서 고막을 찢을듯한 비명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죽음의 쇠사슬까지 꺼내들다니…….”
구웅길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것은…… 대체 뭡니까?”
이준의 질문에 구웅길은 굳은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했다.
“영혼의 궁전의 기술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소. 저 죽음의 쇠사슬에 대해서는 나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영존들이 사용하는 비술이라고 알려져 있지. 죽음의 쇠사슬은 그들의 영혼과 연결되어있는데, 이 물건이 망가지면 그들도 엄청난 부상을 입게 되어 있소. 때문에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면 죽음의 쇠사슬을 꺼내들지 않지.”
“죽음의 쇠사슬, 묶어라!”
바로 그때, 쇠사슬에서 새어 나오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더욱 커지며 순식간에 화염 폭풍을 뚫고 들어갔다.
거대한 쇠사슬은 화염 속으로 들어가 반대편으로 뚫고 나온 뒤 다시 다른 방향으로 뚫고 들어가길 여러 번 반복하며 빠른 속도로 별의 불꽃을 옥죄었다.
검은 사슬의 힘에 의해 화산처럼 폭발하던 화염 폭풍 역시 빠르게 기세가 꺾였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멈춰서고 말았다.
폭풍이 완전히 멈춰 서자, 새카만 쇠사슬에 꽁꽁 묶인 별의 불꽃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별의 불꽃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그들 역시 적지 않은 힘을 소모했는지 네 영존의 안색은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자네들이 잡고 있으시오. 내가 죽음의 불꽃을 쓰겠소!”
점점 저항할 힘을 잃어가는 별의 불꽃을 보며 모골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서두르시오. 오래 묶고 있기는 버겁소.”
세 영존 중 한 사람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모골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바다의 불꽃을 불러냈다.
“약속을 어긴 대가다!”
다음 순간, 모골의 몸이 귀신처럼 사라졌다가 거대한 용의 이마 앞에 나타났다. 용의 이마에는 일 미터 정도 되는 검은 구멍이 나 있었는데, 그 안에 별의 불꽃의 본체가 들어있었다.
하지만 모골이 그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저항을 멈춘 듯했던 거대한 용의 눈에서 다시 한번 흉포한 빛이 번쩍였다.
쉭!
곧이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시커먼 구멍 안에서 자흑색의 작은 용 한 마리가 번개처럼 튀어나왔다. 작은 용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자흑색의 화염이 한 곳으로 압축되며 검은 색에 가깝게 변화했고, 사방으로 파멸의 기운이 뻗어 나갔다.
“이런!”
당황한 모골이 손을 휘저으려는 순간, 까맣게 변한 작은 용이 그에게 전력으로 몸을 부딪혀왔다.
“컥!”
그리 세게 부딪힌 것 같지는 않았지만 모골의 입에서는 곧바로 새빨간 핏줄기가 터져 나왔다.
“지금이다.”
그 순간, 멀리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청화가 흐릿한 잔영을 남기며 번개처럼 별의 불꽃의 본체를 향해 돌진했다.
청화가 별의 불꽃을 향해 몸을 날리는 것을 본 이준은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며 자리를 지켰다. 영존 셋이 멀쩡하고 별의 불꽃의 본체 역시 아직 많은 힘을 쓰지 않았으니 지금 달려드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편, 청화는 눈 깜짝할 사이에 작은 용의 코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허, 죽고 싶구나!”
하지만 청화의 손이 별의 불꽃의 본체에 닿기도 전에 맑은 쇳소리가 울려퍼지며 한줄기 검은 쇠사슬의 그에게 날아들었다.
쇠사슬에 담긴 강한 힘을 느낀 청화는 급하게 몸을 물리며 자신을 공격한 영존을 노려봤다.
“감히 영혼의 궁전의 물건에 손을 대려 하다니, 배짱 한 번 좋구나.”
말을 마친 영존은 청화를 향해 순식간에 십여 개의 쇠사슬을 날렸다.
“내가 저자를 맡을 테니 자네들은 별의 불꽃을 회수해 오게.”
청화를 공격한 영존이 나머지 두 영존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았소.”
이에 검은 옷을 입은 두 영존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인 뒤 번개처럼 새까만 용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방해하지 마라!”
별의 불꽃을 향해 날아가는 두 영존의 모습에 초조해진 청화는 새빨간 염력을 뿜어내며 곧장 자신을 공격한 영존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른 한명이 청화를 막고 있는 사이 나머지 두 영존은 별의 불꽃의 본체를 앞뒤로 포위한 채 끔찍한 비명 소리를 내지르는 쇠사슬을 꺼내들었다.
작은 용의 체구는 조금 전의 커다란 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지만, 그 속에 남아있는 파멸의 기운은 절대 얕볼 수 없었다.
후욱!
별의 불꽃이 꼬리를 흔들자 몸 전체를 감싼 새까만 화염이 검은색 번개가 되어 흑색 영존을 향해 달려들었다.
망설임 없이 반격해오는 별의 불꽃의 모습에 두 영존은 당황한 듯 재빨리 쇠사슬을 휘둘렀다.
영혼의 힘이 담긴 검은 쇠사슬과 검은 불꽃이 맞부딪히자, 귀청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려 퍼지며 검은 쇠사슬이 산산이 부서졌다.
“이럴 수가!”
수만 개의 영혼이 응집되어 만들어진 사슬을 순식간에 박살내는 별의 불꽃의 위력에 놀란 영존은 황급히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가 후퇴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눈앞의 공간이 요동치며 검은 용이 화살처럼 그의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다.
당황한 영존은 검은 안개를 오른 주먹에 응집시켜 자신의 가슴팍을 향해 돌진하는 용을 향해 내뻗었다.
펑!
주먹이 용과 부딪히는 순간, 굉음이 울려 퍼지며 사방으로 화염이 폭발했다.
“푸흡!”
별의 불꽃의 본체와 정면으로 맞부딪힌 검은 옷의 영존은 곧바로 피를 토하며 수십 미터 뒤로 밀려났다. 정면으로 부딪히고 나서야 그는 별의 불꽃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힘을 가졌는지 깨달았다. 별의 불꽃은 계속되는 전투로 크게 약해져 있었지만, 여전히 자신을 아득히 상회하는 힘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별의 불꽃의 몸 위에 있던 까만 화염 역시 빠르게 옅어지고 있는 것을 보니 이번 공격에 큰 에너지를 소모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지금이다.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할 것이다!”
입꼬리에 묻은 혈흔을 닦아낸 그 영존은 별의 불꽃 몸 위에 화염이 옅어진 것을 보고 기쁜 표정으로 자신의 동료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그의 말에 또 다른 영존이 검은 안개를 폭발시키며 별의 불꽃을 향해 달려들었다.
수천 개의 영혼이 폭발하며 만들어 낸 무시무시한 위력에 별의 불꽃의 몸을 둘러싼 새까만 화염이 빠르게 옅어지기 시작했다.
눈에 띄게 약해진 별의 불꽃의 모습에 모골과 나머지 영존들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상황이 좋지 않소. 이대로 간다면 별의 불꽃이 그들의 손에 들어가게 될지도 모르오.”
영존들과 별의 불꽃의 대결을 바라보고 있던 구웅길이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스승님 쪽은 어떻게 돼가고 있죠?”
조영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투존 강자가 들어오면 별의 구역 자체가 무너질 수 있소. 하지만 공간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나면 세 회장님의 분신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 거요.”
“하지만 그때까지 별의 불꽃이 견딜 수 있을까요?”
대장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곁에 있던 단선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구웅길 대장로님, 모골과 부상을 입은 영존을 잠시만 막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때, 마침내 기회가 왔다고 판단한 이준이 입을 열었다.
“모골과 그 영존은 이미 크게 다쳤으니 잠시라면 어렵지 않게 막을 수 있소.”
구웅길이 잠시 머뭇거리다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두 사람은 구웅길 대장로님께 맡기겠습니다. 마지막 영존 하나와 별의 불꽃은 제가 처리하죠.”
“그게 가능하겠소?”
이준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구웅길은 다소 의심스러운 듯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 별의 불꽃을 막고 있는 영존의 힘은 대략 3성 투존 정도로, 이준의 힘으로 그를 막고 별의 불꽃을 잡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이준은 그의 말에 답을 하는 대신 말없이 웃으며 하늘 요괴를 불러냈다.
눈부신 금빛을 내뿜는 요괴의 모습에 구웅길은 조금 안도한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자네에게 맡기겠소.”
이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말없이 허공을 밟고 별의 불꽃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옆에는 눈부신 금색 빛을 뿜어내고 있는 하늘 요괴가 따라오고 있었다.
“이준, 네놈이 정말 죽고 싶구나!”
이준이 날아가는 순간, 이를 알아챈 모골이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매섭게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준은 눈 하나 깜짝 않고 요괴와 함께 별의 불꽃을 붙잡고 있는 영존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네 이놈!”
분노한 모골이 이준을 향해 몸을 날리려는 찰나, 눈앞의 공간이 왜곡되며 구웅길이 나타나 그의 앞을 막아섰다.
“구웅길!”
모골은 번개처럼 주먹을 휘두르며 구웅길을 공격했지만, 별의 불꽃에 의해 이미 큰 부상을 입은 그가 구웅길을 제압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급해진 모골은 별의 불꽃에 의해 부상을 입은 다른 영존에게 도움을 청했다.
“같이 저 영감을 처리해야겠소!”
“알았소!”
모골의 제안에 그 영존 역시 곧바로 입가에 흐른 피를 닦으며 빠르게 구웅길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역시 별의 불꽃의 특수한 힘에의해 부상을 입은 상태라 모골과 힘을 합쳐야만 간신히 구웅길을 막을 수 있었다.
계획대로 두 명의 영존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자, 구웅길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지어졌다.
* * *
이준 일행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먼 곳에서 청화와 격전을 벌이던 영존 역시 안색이 변해 전장을 벗어나려 했지만, 청화가 그를 붙들고 늘어졌다.
‘흐음……. 아무래도 별의 불꽃과는 인연이 닿지 않는 모양이구나. 이번에는 약선과의 정을 봐서 저 젊은 친구에게 양보해야겠어.’
청화는 별의 불꽃으로 돌진하는 이준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 뒤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둘러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영존을 맹렬하게 공격했다.
* * *
‘거의 다 됐군, 이제 얼마 버틸 수 없을 거야.’
한편, 별의 불꽃을 맡고 있던 영존은 다시 한번 영혼을 자폭시키면 어렵지 않게 별의 영혼을 굴복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막 인을 맺으려는 찰나, 무언가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등뒤로 날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당황한 영존은 황급히 쇠사슬을 휘둘러 등뒤로 날아든 공격을 막아냈다.
쾅!
다음 순간, 커다란 굉음이 폭발하며 무시무시한 힘이 그의 몸을 저만치 뒤로 밀어냈다. 가까스로 자리에 멈춰선 영존이 험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눈부신 금색 섬광을 뿜어내는 요괴가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애송이가……!”
금색 요괴 뒤에 서있는 이준을 발견한 영존은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돌격.”
하지만 이준은 그에게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가볍게 손을 들어 다시 한번 요괴에게 명령을 내릴 뿐이었다.
펑!
요괴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공간이 갈라지는 것을 발견한 영존은 황급히 쇠사슬을 뿜어내 공격을 막아냈다.
금색으로 변한 하늘 요괴가 무사히 영존을 막아내는 것을 확인한 이준은 잽싸게 별의 불꽃의 본체를 향해 날아갔다.
놈의 몸에서 피어나던 화염은 이미 꽤 옅어져 있었지만, 주위에 떠다니는 별의 힘을 흡수하며 빠르게 힘을 회복하고 있었다.
‘이래서 불사의 불꽃이라고 불리는 거군.’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힘을 회복해 나가는 별의 불꽃의 모습에 이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 불꽃이 곧 자신의 것이 된다면 투존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별의 불꽃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우선 별의 힘을 흡수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