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3화. 별의 불꽃
별의 구역 곳곳에서는 옅은 열기와 함께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무심결에 허공에 떠있던 약한 빛줄기를 붙잡아보자, 손끝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건…… 별의 빛?”
“이 별의 구역은 별의 힘이 침투하는 것을 막을 수 없네. 하지만 낮에는 별의 힘이 약하게 들어오니 그 시간동안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지.”
대장로의 설명에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의 불꽃은 별의 힘이 모여 생긴 것으로, 별의 힘만 충분하다면 영원히 죽지 않고 타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별의 구역은 그 이름에 걸맞게 별의 힘이 가득해 이곳에 있다면 별의 불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
“흩어지지 말고 나를 따라오시오. 이 별의 구역은 공간의 균열 안에 있기 때문에 길을 잘못 들면 영원히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소.”
말을 마친 구웅길이 빠르게 앞으로 날아가자, 이준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별의 구역의 크기는 연금세계와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연금성보다는 훨씬 넓은 면적을 가진 듯했다.
구웅길의 뒤를 따라 10분 정도를 날아갔음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새어 나오는 은은한 불빛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참으로 황량한 세계였다.
거리를 짐작할만한 단서가 아무것도 없다보니 대체 이곳이 어느 정도나 넓은지, 또 얼마나 날아왔는지도 도통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의 온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보아 별의 불꽃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10분 정도를 더 날아가자, 송청을 비롯한 몇몇 연금술사들은 염력을 몸에 둘러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이준이나 모골은 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있어 이 정도 열기에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강한 화염을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미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주위가 뜨거웠기 때문이다.
다시 10분가량 지나자 이준과 모골, 대장로와 청화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모두 염력으로 몸을 보호해야 할 정도로 온도가 높아졌다.
“거의 다 온 것 같군.”
대장로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 순간, 이준의 몸속에 있던 청연의 불꽃이 전에 없이 격렬하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가마솥처럼 뜨거워진 주위의 온도에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캄캄하던 주위가 갑자기 대낮처럼 밝아지며 저 멀리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도착했소. 모두 조심하시오. 내가 말을 하기 전에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말고 내 뒤를 따라오시오.”
선두에 있던 구웅길이 자리에 멈춰서며 고개를 돌려 매서운 눈빛으로 모두를 훑어보며 말했다.
말을 마친 구웅길은 속도를 천천히 줄여 앞으로 날아갔고, 참가자들은 조심스럽게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의 눈을 따갑게 찌르던 빛 안에는 거대한 용이 눈을 감은 채 둥글게 몸을 말고 있었다. 거대한 용의 몸에는 신비한 자흑색(紫黑色) 화염이 타오르며 주위의 공간을 왜곡시키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 속에서 신비한 불길에 휩싸여 있는 용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사람들의 입에서 일제히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거대한 용 앞에 서니 자신이 작은 개미처럼 보잘것없는 존재로 느껴졌다.
“이, 이게 바로 별의 불꽃인가.”
모두가 침묵하던 그때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순간, 이준은 갑자기 손바닥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도 모르게 손을 확인해 보니 보람이 새겨준 용의 각인에서 은은한 열기가 새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이 바로 별의 불꽃이오. 하지만 지금은 이미 봉인이 되어 있는 상태이니 각자 앞으로 나와 불꽃을 잡아보시오.”
이준이 속으로 혼잣말을 하고 있는 사이, 구웅길이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명심할 것은 절대 별의 불꽃을 깨우면 안 된다는 것이오!”
구웅길의 눈에 순간 음산한 기운이 가득해졌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모골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모골은 구웅길을 비웃듯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모골을 바라보던 구웅길은 이준에게 시선을 돌린 뒤 부드러운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준, 자네가 이번 대회의 우승자이니 먼저 나오게.”
구웅길의 말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이준에게로 쏠렸다.
이준은 긴장한 듯 숨을 길게 들이마신 뒤 깊은 잠에 빠진 거대한 용 앞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용에게 다가서자, 거대한 에너지가 온몸을 타고 흐르며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는 구름 불꽃이나 대지의 불꽃을 마주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기묘한 감각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니 새삼스럽게 용의 크기가 얼마나 거대한지 실감이 났다. 거대한 용의 머리 앞에 둥둥 떠 있는 이준의 모습은 마치 코끼리 앞에 개미처럼 작게만 보였다.
용의 앞에 선 이준은 마치 별의 불꽃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하지만 거대한 용의 눈꺼풀은 여전히 무겁게 닫혀 있었다.
“이준, 별의 불꽃의 이마에는 자흑색 화염에 가려지지 않은 비늘이 있으니 자네의 손을 그곳에 대보게. 그다음 자네의 영혼의 힘을 그 안으로 넣어보게. 운이 좋다면 불꽃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네.”
바로 그때, 이준의 귓가에 구웅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로의 말을 들은 이준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천지의 불꽃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이 별의 불꽃은 진즉에 누군가에게 흡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 일단 별의 불꽃에게 다가가 손을 뻗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용의 이마를 훑어보니 과연 구웅길의 말대로 화염이 없는 비늘이 하나 있었다. 그 비늘 위에는 검은 선들이 얽혀 기이한 문양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문양이 불꽃을 억누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봉인?”
별의 불꽃의 힘을 억누르고 있는 봉인에서는 구름 불꽃의 힘을 억누르고 있던 그것보다 훨씬 더 강한 에너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봉인의 힘이 아주 강한걸. 아카데미에서 구름불꽃을 가둬뒀던 봉인보다 훨씬 대단해.’
봉인의 힘을 느낀 이준은 마음속으로 혀를 차다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화염에 둘러싸이지 않은 비늘 위에 살포시 손을 올렸다. 놀랍게도 자흑색 화염에서는 열기가 아닌 옅은 한기가 느껴졌다.
정신을 집중하고 영혼의 힘을 끌어낸 이준은 곧바로 비늘 안으로 자신의 영혼 에너지를 밀어 넣어 보았다.
펑!
이준의 영혼이 비늘 속으로 들어가자 낮은 폭발음이 울려 퍼지며 끝을 알 수 없는 드넓은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새카만 밤하늘 같은 그 공간의 중심에는 깊은 잠에 빠진 듯 눈을 감고 있는 작은 용이 누워 있었다.
그 순간, 이준은 그것이 별의 불꽃임을 직감했다.
자나 깨나 갈망하던 불꽃이 눈앞에 나타나자, 이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후…….”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요동치는 마음을 억누른 이준은 영혼의 힘으로 작은 용의 몸을 부드럽게 감쌌다.
하지만 자흑색의 여전히 미동조차 하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이게 아닌가…….’
상대가 아무런 반응도 없자, 이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영혼의 힘을 거두어들였다.
바로 그때, 자흑색 용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리며 신비로운 빛이 가득한 눈동자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말로 형언할 수 없이 깊은 용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전신의 털이 거꾸로 곤두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리석은 인간들.”
곧이어 용의 입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별의 불꽃이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다니…….”
용의 목소리를 들은 이준은 저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구름 불꽃에도 영성이 있었지만, 인간의 말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불꽃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마냥 완벽한 영성을 가지고 있었다.
“어……. 그, 난 사실 당신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왔소.”
“흥, 역겨운 놈. 썩 꺼져라.”
이준이 엉겁결에 둘러댄 말에 별의 불꽃의 입가에는 더욱 싸늘한 미소가 내려앉았다.
당황한 이준이 무언가 말을 하려는 찰나, 검보랏빛 화염이 용의 몸에서 터져 나와 이준을 덮쳤다.
자신이 절대로 별의 불꽃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이준은 황급히 영혼의 힘을 거두어들이려 했다.
쉭!
하지만 자흑색 화염의 속도가 더 빨랐다. 자흑색 화염은 번개처럼 날아와 이준의 영혼을 그대로 불태워 버렸다.
* * *
용의 이마에 손을 대고 있던 이준은 불에 덴 어린아이처럼 화들짝 놀라며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영혼의 힘을 증발시켜버리다니……. 별의 불꽃의 위력은 그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어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별의 불꽃의 힘에 놀란 이준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실패했어요. 이 녀석, 너무 난폭한데요.”
그의 말에 구웅길은 실망한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자, 다음 사람 나오시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골이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모골을 바라보는 구웅길의 눈빛은 이준을 바라보던 때와는 사뭇 다르게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허허, 무슨 일이오? 설마 나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거요?”
대장로의 싸늘한 시선을 느낀 모골은 눈을 얇게 뜨며 차갑게 웃음을 지었다.
“모골, 미리 경고하는데 혹시라도 허튼수작 부릴 생각하지 마시오.”
“만일 내가 별의 불꽃을 얻어낸다면 연금탑의 큰 재앙을 하나 해결하는 것 아니겠소?”
계속되는 구웅길의 싸늘한 태도에 모골은 조롱 섞인 웃음을 터뜨리며 별의 불꽃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이에 구웅길은 이준, 조영 등의 사람들에게 주의하라는 눈빛을 보낸 뒤 몸을 돌려 그림자처럼 모골의 곁을 따라갔다. 그는 모골이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즉시 제압할 생각인 듯 이미 온몸에서 염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모골은 구웅길의 그런 행동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곧바로 용의 이마에 손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
모골이 두 눈을 감는 순간 이준, 조영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 역시 염력을 끌어올렸다. 만에 하나 그가 이상한 짓을 벌인다면 즉시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모골은 얌전히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고, 대략 10분 정도가 지나자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모골이 실패했음에도 별의 불꽃에게서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자, 구웅길은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음.”
그 후로 한명 한명 순서대로 나서 별의 불꽃에 접촉했지만 단 한명도 성공한 사람은 없었고, 심지어 실력이 약한 두 사람은 피를 토하며 자리에 쓰러지기까지 했다.
마지막 두 사람이 실패하자, 구웅길은 한숨을 내쉬며 숨길 수 없는 실망감을 드러냈다.
“아무도 별의 불꽃을 손에 넣지 못했으니, 다시 돌아갑시다.”
바로 그때, 모골이 음산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껄껄, 구웅길. 이 상태라면 별의 불꽃을 영원히 잡을 수 없을 거요. 이제 내가 좋은 볼거리를 선사해주지!”
모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구웅길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세로 염력이 폭발했다.
“큭큭, 이미 늦었다!”
하지만 모골은 이미 모든 것을 예상했다는 듯 민첩하게 뒤로 몸을 물리며 빠르게 인을 맺었고, 그와 동시에 자흑색 용의 이마에서 미세한 에너지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모골, 네가 감히!”
“걱정 말게. 난 그저 연금탑의 골칫거리를 대신 해결해주고 싶은 것뿐이니까!”
펑!
그 순간, 아무것도 없던 텅 빈 공간에서 벼락같은 폭음이 터져 나왔다.
갑작스런 상황에 이준을 비롯한 나머지 참가자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자흑색 용을 바라봤다.
죽은 듯이 누워있던 용은 어느새 눈을 뜨고 있었으며, 봉인이 새겨져 있던 비늘은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별의 불꽃이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