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591화 (591/818)

591화. 현이, 그리고 진태자

한 달 동안 진행된 대회 기간 동안 광장 주변에 가득했던 사람들은 대회가 막을 내리면서 점점 흩어지기 시작했지만, 도시 전체는 여전히 흥분된 분위기로 가득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그 역전의 순간은 생각만 해도 피가 끓어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집집마다 켜진 불들이 어둠을 밝히는 도시 안, 큰길 위에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고, 모든 사람들은 연금대회에 관한 이야기를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화젯거리가 된 것은 당연히 이번 연금대회에서 기적을 만든 우승자, 이준이라는 청년이었다.

예전에는 조금 생소했던 그 이름이 지금은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완벽히 각인되어 있었다. 그들은 머지않아 이 이름이 중주 전체에 알려질 것이라 예상했다.

* * *

도시 안이 여전히 떠들썩한 가운데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연금비약을 제련하느라 온 힘을 쏟았던 참가자들은 녹초가 된 채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 쓰러지듯 잠들었다.

피곤에 절어 있는 것은 이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8레벨 연금비약 제련은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연금비약 속 영기를 강제로 상승시키는 과정에서 막대한 영혼의 힘을 쏟아 부었기 때문에 다른 참가자들보다 더욱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알고 있는 아라를 비롯한 사람들은 이준이 마음 놓고 쉴 수 있도록 누구도 그를 찾아가지 않았다.

이준이 꿈에서 깨어났을 무렵 이미 하늘은 새까맣게 변해 있었고, 밖에서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준 일행은 이미 유씨 가문에서 연금탑으로 숙소를 옮긴 상태였다. 제아무리 영혼의 궁전의 강자들이라 해도 연금탑까지 쳐들어와 일을 치를 수는 없으니 이준의 안전을 위해 숙소를 옮긴 것이다.

침대에서 일어난 이준은 세수를 하기 위해 천천히 방 밖으로 나왔다. 숙소로 돌아와 쉬기 전, 깨어나면 자신을 찾아오라는 현공자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끼익-.

방문을 열자 문밖에는 아라, 천화존자, 유종길 등이 가만히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일어났네. 연금탑 사람들이 몇 번이나 찾아와서 재촉했는지 몰라. 하지만 내가 다 돌려보냈어.”

아라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이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다녀올게. 조심하고 있어.”

말을 마친 이준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후 부리나케 방에서 나와 연금탑의 꼭대기로 향했다.

꼭대기로 가는 동안 마주친 연금탑의 연금술사들은 모두 급히 길을 터주며 존경하는 눈빛으로 가볍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이준이 모골을 이겨준 것은 곧 영혼의 궁전으로부터 연금탑의 명예를 지켜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금술사들에게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실력이었고, 연금대회에서 보여준 이준의 제련 실력이라면 충분히 이러한 대우를 받고도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딜 가든 존경의 눈빛을 받는 것이 이준에게는 조금 어색하고 불편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숙일 때마다 계속 웃음으로 맞이해야 했기 때문에 입에 경련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한 이준은 속도를 높여 빠르게 연금탑의 꼭대기로 발걸음을 옮겼다.

“후…….”

십 분 정도 걸려 꼭대기에 있는 현공자의 서재 밖에 도착한 이준은 긴장을 달래기 위해 가볍게 손을 비빈 뒤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시오.”

이준이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현공자의 옅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안으로 들어가니, 서재 안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재 안에는 조영, 단선, 송청이 있었고, 가장 앞에는 현공자, 그 양쪽에는 낮에 봤던 중년의 여인과 까무잡잡한 노인이 서있었다.

이준이 대청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연금대회 우승을 거머쥔 이상 이준은 아마 연금탑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삼대 수장의 후계자는 연금탑 내에서도 상당히 높은 지위였기 때문에 평범한 장로들 역시 그를 보면 예를 표해야 했다.

“허허, 우리의 우승자가 오셨구려.”

이준을 본 현공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에 이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천천히 나와 조영 등 몇몇 사람들과 나란히 선 후 세 우두머리를 향해 공손히 예를 갖췄다.

“내가 대신 소개하겠소.”

현공자는 웃으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이준을 바라보고 있는 중년의 여인을 가리켰다.

“이분은 현이 장로라 하오. 허허, 현이 장로 역시 자네의 스승과는 꽤 인연이 깊은 사람이니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그의 말에 이준은 멍한 얼굴로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그 중년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 웃기는!”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는 자신을 바라보는 이준의 모습에 현이는 민망한 듯 현공자를 째려본 뒤 온화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약선 그 영감이 꽤 좋은 제자를 둔 것 같구나.”

현이의 다정한 말투에 이준의 입가에도 밝은 미소가 번져나갔다.

“송구스럽습니다 선생님.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현이는 이준의 겸손한 태도를 보고 더욱 기분이 좋아진 듯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쪽은 진태자 회장이라고 부르면 되네.”

현이를 소개시켜 준 현공자는 다음으로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엄한 표정을 하고 있는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태자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그래, 이번 연금대회에서 자네 덕을 많이 봤네. 덕분에 연금탑의 명예를 지킬 수 있었어.”

이준을 칭찬하는 진태자의 낯빛은 평소보다는 조금 부드러웠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보다 몇 배는 근엄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허허, 무서워 말거라. 이 영감은 한평생 이러는구나.”

연금탑의 두 수장을 이준에게 소개한 현공자가 굳은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모두 모였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소. 내일모레, 별의 구역이 열릴 곳이오. 별의 구역은 우리 세 사람이 함께 만든 공간으로, 그곳에 별의 불꽃이 봉인되어 있소.”

별의 불꽃과 관련된 이야기에 이준은 정신을 집중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아주 오랫동안 봉인된 탓인지 별의 불꽃은 연금탑, 특히 우리 세 사람에게 아주 화가 나있소. 만일 봉인이 풀린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지겠지.”

현공자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에 별의 불꽃을 손에 넣는 사람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별의 불꽃을 제압하는데 실패하고 봉인이 풀린다면…… 연금성은 큰 재앙을 맞게 될 것이오.”

별의 불꽃에 대해 설명을 하던 현공자의 눈빛이 음산하게 변했다.

“그리고 연금대회가 끝난 후 모골이 종적을 감췄소. 그자는 아마 우리의 눈을 피해 무언가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오. 영혼의 궁전 놈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별의 불꽃을 노려왔소. 만일 이번에 모골이 별의 불꽃을 손에 넣는데 실패한다면, 그들은 별의 구역을 붕괴시켜 봉인을 풀려 들 것이 분명하오.”

현공자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현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별의 구역이 열릴 때 우리 세 사람은 그 안에 들어갈 수가 없다. 우리까지 들어가면 별의 구역을 유지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만일 그 안에서 모골이 무언가 수상한 낌새를 보인다면 곧바로 이 구슬을 깨거라. 그럼 연금탑의 강자들이 지원을 갈 것이다.”

말을 마친 현이는 곧바로 네 개의 옥구슬을 꺼내 그것을 이준을 비롯한 연금탑의 제자들에게 건넸다.

“별의 구역에는 한 번에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깊은 잠에 든 별의 불꽃이 깨어날 수 있기 때문이지. 그러니 이번 임무는 모두 자네들에게 달려있네.”

현공자가 굳은 얼굴로 네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과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는 이번에 무슨 일이 있어도 별의 불꽃을 손에 넣어야 했다.

* * *

현공자와 별의 불꽃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이준은 서재를 빠져나오자마자 그대로 몸을 돌려 아래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가 막 발을 내딛는 순간, 늘씬한 그림자 하나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조영 아가씨 무슨 일이죠?”

“아뇨, 가는 길인데 같이 가죠.”

조영의 제안에 이준은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악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예측불허의 성격을 가진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송청이 웃으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영아, 이준 선생은 항상 바쁘잖아. 이틀 후에 열릴 별의 구역에서도 모골이 이준 선생을 노릴 텐데,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지.”

“아, 그렇습니다. 제가 준비할 것이 좀 있어서…….”

송청이 자신을 보내려는 듯하자, 이준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영을 그에게 떠넘기려 했다.

그러나 이준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조영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럼 그 계획에 대해서 좀 듣고 싶네요. 이준씨가 죽으면 저희 둘도 무사할 수 없으니까요.”

기분이 상한 듯한 조영의 모습에 이준과 송청 두 사람 모두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역시 이 여자는 무서워.’

이준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어떻게 하면 자리를 피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려댔다.

하지만 조영은 이미 이준의 말을 들을 생각도 없다는 듯 앞장서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뭐해요. 같이 대책을 마련하자니까. 무슨 대책을 준비하고 있는 건지 정말 궁금하네요.”

* * *

조영과 함께 걸어가는 내내 이준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그가 만난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딱히 나쁜 사람이라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적잖이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게다가 표정이나 행동에서 어딘지 모르게 광기마저 느껴져 등골이 오싹해진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연금탑에서 배정해준 자신의 방에 도착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마치 며칠은 걸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자신의 방 앞에 도착한 이준이 식은땀을 흘리며 작별 인사를 건네려는 순간, 방문이 끼익하고 열리며 백발의 여인 하나가 문밖으로 걸어 나왔다.

“아라야.”

아라를 발견한 이준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훔치며 황급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반면 조영은 아라를 보자마자 무언가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내 묘한 미소를 지으며 아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조영이라고 합니다. 혹시 이름이?”

“아라라고 합니다.”

평소와 달리 초조한 듯 조영의 눈치를 살피며 불안한 기색을 보이는 이준의 모습에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아라는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조영을 보내려 했다.

“방 안에서 이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먼저 들어가 봐도 되겠죠?”

그녀의 말에 조영은 또 다시 기묘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다음번에 놀러 오겠습니다.”

조영의 의미심장한 한마디에 이준의 심장이 덜컥하고 내려앉았다.

말을 마친 조영은 이준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짓고는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겨 사라졌다.

* * *

방문이 닫히자, 이준은 마치 큰일을 치른 사람처럼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네가 그렇게 불편해하는 거, 처음 봐.”

“으으……. 나도 모르겠어. 저 여자 어딘지 모르게 무서워. 엮이고 싶지 않아.”

“저 여자가 채린 언니만큼 무서워? 채린 언니랑 있을 때랑 표정이 비슷하네.”

바로 그때, 맑은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 하나가 이준의 귓등을 때렸다.

깜짝 놀라 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자주색 옷을 입은 보람이 창문가에 앉아 두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채린?”

“응, 거의 채린 언니랑 있을 때랑 비슷한 표정이던걸? 그런 표정 정말 오랜만에 보네.”

순간 이준의 머릿속에 메두사 여왕의 무시무시한 표정이 스쳤다. 확실히 종류는 다르지만 이렇게 무서운 여자는 메두사 여왕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