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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88화 (588/818)

588화. 정면 승부

청화의 빛기둥이 구름에 닿자,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삼색 비뢰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도 삼색인가?”

청화의 연금비약이 만들어 낸 구름의 색 역시 이준 못지 않게 짙었다.

“허허, 저 영감도 은거하면서 허송세월만 보낸 것은 아니군.”

하늘 위에 나타난 삼색 구름을 본 현공자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저 영감 하나 남았어요.”

중년의 여인이 시선을 돌려 아직까지 제련을 마치지 않은 모골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잠시 후, 세 사람과 광장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직도 약솥 뚜껑을 열지 않고 있는 모골에게로 향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마침내 모골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싸늘한 시선으로 이준을 한 번 흘겨본 뒤 연금탑의 세 수장을 바라보며 조소를 지었다.

모골의 표정을 확인한 현공자와 두 우두머리의 가슴에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껄껄, 현공자, 이번 연금대회의 우승자는 내가 될 것 같군. 미안하게 됐소.”

현공자와 두 우두머리의 굳은 표정을 본 모골은 더 이상 자신의 정체를 숨길 마음이 없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모골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약솥 안에서 거대한 빛기둥이 에너지 파동과 함께 터져 나왔다.

“껄껄, 약선의 제자도 이것밖에 되지 않는구나!”

모골의 약솥에서 뿜어져 나오는 심상찮은 에너지에 이준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빛기둥과 함께 뿜어져 나오는 해일과도 같은 에너지 파동에 구경꾼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의 약솥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 파동은 이준과 청화의 그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의 연금비약이 뿜어내는 에너지 파동이 해일이라면 나머지 참가자들의 연금비약이 완성됐을 때 흘러나오던 에너지는 산들바람에 이는 잔물결에 불과했다.

이 신비한 남자는 도대체 어디서 온 자란 말인가!

하지만 광장에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석대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관객들과 달리, 연금탑의 세 수장의 얼굴은 완전히 흙빛이 되어 있었다.

“모골…….”

노인에게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느낀 현공자의 얼굴에서 서서히 웃음기가 사라졌다.

“우리 세 사람을 속일 줄이야……. 게다가 얼굴도 바꿨어요.”

중년의 여인 역시 한기 서린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공자와 두 우두머리 뒤에서 백색 의복을 입은 남자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계속 이 상태로 간다면 연금대회의 우승은 그대로 모골의 손에 넘어가게 될 것이 뻔했다.

하지만 별의 불꽃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영혼의 궁전의 인물에게 우승자의 자리를 넘긴다면……. 장차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

현공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쥔 채 잠시 고민을 하다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선 두고 보세. 이렇게 만인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영혼의 궁전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모골을 탈락시킨다면 영혼의 궁전이 가만히 있을리도 없을 뿐 더러, 연금탑의 명성에도 누가 될 것이야.”

“하지만…….”

현공자의 말에 백색 의복을 입은 노인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 * *

한편, 석대 위에서 모골을 바라보는 이준의 표정 역시 현공자만큼이나 어둡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모골은 그런 시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만면에 웃음을 띤 채 고개를 들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빛기둥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늘 위에 번개구름이 나타나는 순간 광장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심장이 조여드는 듯한 긴장감을 느꼈다.

곧이어 무거운 적막을 뚫고 번개가 내리치며 구름이 청색과 은색으로 물들었다.

“이색이다.”

하늘 위에 두 가지 색의 번개가 나타나자 광장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이야! 아직 색깔이 더 나타나고 있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이 다시 요동치며 구름 위에 선명한 붉은 색이 나타났다.

“삼색! 삼색이 됐어!”

세 가지 색이 뚜렷하게 나타나자 조용해졌던 광장이 다시 들끓기 시작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흥분으로 물들었다. 하루 동안 세 번의 삼색비뢰운이 나타나다니, 실로 백 년에 한 번 볼까 말까한 진귀한 광경이었다.

끝없이 높은 하늘 위, 번개구름이 또 한 번 요동치며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또, 또, 또 나온다.”

곧이어 삼색의 번개구름 속에서 은은한 금색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쾅!

금색이 나타나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의자에서 일어나 감격한 눈빛으로 하늘 위를 올려다 보았다.

청색, 은색, 홍색, 금색……. 사색! 사색비뢰운!

연금대회의 마지막 순간, 최고급 연금비약이 나타났다.

높은 석대 위에 앉아있던 연금탑의 장로들은 하늘 위에 나타난 사색비뢰의 모습에 창백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순간, 현공자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지며 그의 미간 사이에서 한줄기 빛이 솟아났다.

“침착하시오!”

살기로 눈을 빛내는 현공자의 모습을 본 까무잡잡한 노인이 황급히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노인의 만류에 현공자는 주먹을 움켜쥔 채 바르르 몸을 떨며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일이 끝나면, 내가 직접 저 자를 산산조각 내버릴 것이오!”

“당신이 직접 나선다면 연금탑과 영혼의 궁전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거예요. 그리고 알다시피……. 정면으로 전쟁을 벌인다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옆에 있던 중년의 여인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침착해요. 먼저 상황을 봅시다.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중년의 여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결과는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 *

“하하! 현공자. 보셨소? 이번 대회의 우승자는 영혼의 궁전에서 나온 것 같군.”

모골의 웃음소리가 광장 위에 울려 퍼지는 순간, 광장에서 석대 위를 올려다보던 사람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영혼의 궁전?”

“영혼의 궁전이라면 연금탑과는 사이가 안 좋지 않아?”

“쯧쯧, 이번에 연금탑이 제대로 망신을 당하겠군. 적들에게 자신들이 주최하는 대회의 우승자 자리를 내주다니…….”

광장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림에 연금탑의 세 수장의 얼굴이 점점 더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석대 위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조영과 단선, 송청의 얼굴에서도 숨길 수 없는 분노가 묻어나고 있었다. 세 사람은 모두 연금탑의 수제자들이니 영혼의 궁전의 연금술사에게 우승자 자리를 내어주었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하늘에서는 마치 그들을 조롱하는 듯 끊임없이 네 가지 색의 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모골을 바라보던 조영은 한숨을 내쉬며 다른 참가자들의 표정을 살폈다. 송청도, 단선도, 청화도 모두 패배를 인정한 듯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이 이준에게 닿는 순간, 조영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준의 얼굴은 패배를 시인한 사람의 그것이라기보다는,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이준, 설마 아직 뭐가 남은 건가요?”

조영의 질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석대 위에 있는 이준에게 꽂혔다.

“껄껄, 이 상황에서 무슨 수가 있겠느냐. 지금은 네 녀석이 아니라 약선 그 못된 놈이 와도 내 상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모골은 그녀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며 이준을 조롱했다.

그 순간, 이준이 빠르게 앞으로 발을 내딛으며 자신의 손을 그대로 빛기둥 안에 밀어 넣었다.

이준이 빛기둥에 손을 집어넣는 순간, 광장에 있던 사람들은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영문을 알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금비약이 이미 완성된 마당에 어떻게 이 상황을 역전시키겠다는 말인가?

이준의 행동에 현공자와 연금탑의 두 수장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으음……. 약로의 제자이니 아무 생각 없이 저러는 것은 아닐 거예요…….”

중년의 여인이 석대 위에 있는 이준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길 바라야겠소.”

현공자와 까무잡잡한 노인 역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삼색 비뢰운이 사색으로 바뀔 것 같지는 않았다.

“끌끌, 이런 상황에서 뭘 더 하겠다고 객기를 부리는 것이냐!”

모골 역시 이준의 행동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코웃음을 치며 그를 비웃었다.

하지만 이준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가만히 하던 일을 계속했다.

8레벨 연금비약이 귀한 것은 그 안에 영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영기가 일정 단계에 달한 연금비약은 천지에 있는 순수한 에너지를 흡수해 스스로 보충할 수 있었다. 따라서 8레벨 연금비약의 가치는 바로 이 영기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또한, 8레벨 연금비약의 가치는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영기를 불어넣을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그리고 연금비약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영기를 높일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영기를 높여주기만 하면 이미 완성된 연금비약이라도 더 뛰어난 약효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물론, 말이 쉽지 직접 해내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연금비약은 지극히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영기를 불어 넣었다가는 그 안에 담긴 에너지의 균형이 깨지며 애써 만든 8레벨 연금비약이 폭발해 버릴지도 몰랐다.

이 때문에 대단한 능력을 가진 연금종사도 연금비약 제조 후 품질을 올리는 일을 강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준은 이 일을 해내리란 자신이 있었다. 약로가 남긴 새까만 저장 반지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기록들 중에는 연금비약의 제조를 마친 뒤 영기를 높이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스승이 이런 기록을 남겼다는 것은 분명히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스승님, 절 지켜주십시오…….”

이준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천천히 숨을 들이 마신 뒤 빛기둥 속에서 손을 빼냈다.

빛기둥에서 빠져 나온 그의 손에는 신비로운 빛을 뿜어내는 암홍색 연금비약이 들려 있었다.

손톱만한 연금비약 주위에는 옅은 안개가 서려 있었으며, 그 안개는 마치 살아있는 듯 여러 형상을 만들며 끊임없이 연금비약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빛기둥 안에서 연금비약을 꺼낸 이준의 표정이 크게 굳어졌다. 이미 완성된 연금비약의 영기를 상승시키는 것은 약로가 만들어 낸 비법 중의 비법으로, 정작 이 비법을 만들어낸 약로조차도 몇 번 사용한 적이 없었다.

8레벨 연금술사가 되지 않았더라면 이준 역시 감히 이 비법을 사용할 생각조차 하지 못 했을 것이다.

이준이 손 위에 있는 암홍색 연금비약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천천히 손을 내리자, 연금비약이 살아있는 것 마냥 스스로 허공에 떠다녔다.

연금비약에서 손을 뗀 이준은 오른손으로 청록색의 불꽃을 피워낸 뒤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냉기와 열기를 동시에 가진 신비한 백색 화염을 불러냈다.

“얼음불꽃의 정수!”

하얀색 화염이 나타나는 순간, 연금탑의 세 수장과 모골 노인, 그리고 청화가 동시에 눈을 치켜떴다.

“약선이 천지의 불꽃을 넘겨주다니……. 저 아이는 정말로 그의 모든 것을 이어받았군요.”

중년의 여성이 놀란 눈빛으로 하얀색 화염을 바라보며 말했다.

펑!

잠시 후, 청록색의 화염과 백색의 화염에 더해 잿빛의 불꽃이 피어나더니 세 개의 화염이 연금비약을 감싼 채 어지럽게 뒤엉키기 시작했다.

“저 놈 미친 거 아니야!”

“연금비약을 없애려는 거야?!”

이준의 행동에 광장 전체가 소란스러워지며 곳곳에서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건…….”

높은 석대 위에 있던 연금탑의 세 우두머리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저토록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가진 세 개의 화염으로 연금비약을 감싸는 것은 귀한 8레벨 연금비약을 불태우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중년의 여인이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약선이 8레벨 연금비약을 제련할 때 했던 미친 짓 기억해요?”

여인의 말에 현공자와 까무잡잡한 노인의 머릿속에 아주 먼 옛날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약선의 영기상승술을 말하는거요?”

여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약선이 자신의 가장 큰 보물인 얼음 불꽃의 정수를 넘겨준 아이예요……. 그 비법을 가르쳐 줬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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