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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87화 (587/818)

587화. 8레벨 연금비약

송청을 바라보던 이준의 한쪽 입꼬리가 차갑게 올라갔다. 7레벨 고급 연금비약이라면 10위권 안에 드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우승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이준은 다시 자신의 약솥 안에 정신을 집중했다. 끓어오르는 청록색 화염 속에서는 새빨간 피를 모아둔 듯한 암홍빛이 반짝이는 둥근 연금비약이 서서히 회전하고 있었다.

“거의 다 됐어…….”

검은 구름으로 가득 차있는 하늘에서는 이따금씩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은빛 벼락이 허공을 가르며 송청이 있는 석대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한편 송청은 광장 밖 사람들을 제외한 조영, 단선의 반응을 보고는 못 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7레벨 고급 연금비약이라면 연금탑의 오래된 장로들도 제련해낼 확률이 낮은데, 어찌 이렇게 담담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다. 7레벨 고급 연금비약으로 형성된 비뢰는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존재인만큼 조금이라도 방심한다면 연금비약이 벼락을 맞아 사라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벼락이 내리치는 순간, 다른 참가자들의 약솥 안에서도 에너지 파동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굳은 표정으로 작업을 이어나갔다. 조금의 실수만 있어도 다 된 연금비약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쾅!

검은 구름이 빼곡한 하늘 위에서 다시 한 번 연달아 번개가 내리치는 순간, 사람들은 엄청난 에너지 파동이 다시 하늘을 가득 채우며 한 석대 상공에 새까만 구름이 나타난 것을 발견했다.

“또 7레벨 고급 연금비약이 나왔다!”

광장 안에서는 흥분한 사람들의 외침 소리가 계속해서 새어 나왔다.

곧이어 검은 구름이 하늘 위를 가득 채우며 화창하던 하늘이 단숨에 새카맣게 물들었다가 눈부시게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십 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무려 아홉 개의 7레벨 고급 연급비약이 탄생했고, 하늘에는 9개의 비뢰가 나타났다.

일생에 한 번 보기도 어려운 장관에 광장 안을 빼곡하게 채운 사람들은 분분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갑자기 뒤이어 나타난 여덟 개의 비뢰에 놀라 하늘을 바라보던 송청은 이내 안심한 듯 차갑게 웃음을 지었다.

다른 참가자들의 비뢰 역시 상당한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연금비약이 만들어진 순간 내리치던 비뢰가 훨씬 더 강했다. 이는 그의 연금비약이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 중 가장 뛰어난 물건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콰앙!

그러나 수많은 비뢰가 미친 듯이 내리치는 가운데에서도 이준, 조영, 모골은 전혀 다른 곳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자신의 약솥 안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 * *

한 석대 위에서는 이미 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진 단선이 양반다리를 한 채 앉아 있었다. 본래 원체 몸이 약한 터라 남들보다 배는 강한 영혼의 힘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진즉에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거의 다 됐어!”

단선은 약솥 안에 시선을 완전히 집중시킨 채 끊임없이 인결을 바꿔댔다. 그러자 약솥 안으로 계속해서 흘러 들어가던 영혼의 힘에서 끊임없이 영기가 퍼져 나왔다.

인결이 변하는 순간, 단선의 얼굴이 갑자기 빨갛게 변하며 그녀의 입에서 새빨간 피가 터져 나와 약솥 안으로 들어가더니 화염 속에서 요동치고 있던 연금비약과 하나로 융합되었다.

쾅!

곧이어 태양처럼 강한 빛이 약솥 안에서 번쩍이며 거대한 에너지 파동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 나왔다. 너무나도 강렬한 에너지의 폭발에 열흘에 가까운 시간동안 화염에 달구어져도 끄떡없던 약솥마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치익!

약솥이 터지는 순간 엄청난 크기의 초록색 빛기둥이 약솥을 뚫고 나와 하늘 높이 솟구쳤다.

초록색 빛기둥이 구름을 가로지르자, 하늘을 빼곡하게 덮고 있던 은빛 번개들과 새카만 먹구름이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하늘로 올라간 빛기둥이 닿은 곳에서 눈 깜빡할 사이에 백 미터 가까이 되는 번개 구름이 생겨났다. 단선의 연금비약이 만들어 낸 구름은 놀랍게도 청색과 은색, 두 가지 빛을 띠고 있었다.

“이색 비뢰운?”

하늘에 두 가지 색을 띠는 번개구름이 나타나는 순간, 광장 전체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높은 석대 위에 있던 현공자와 연금탑의 두 수장 역시 굳은 얼굴로 이색비뢰운을 쳐다보다 서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8레벨 연금비약의 상징인 이색비뢰운을 소환하다니, 저 단씨 가문의 계집아이도 보통은 아니구려.”

8레벨과 7레벨은 단 1레벨 차이이지만, 연금비약 안에 담겨 있는 힘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8레벨 연금비약에는 영기가 들어있어 의지와 지성을 가지고 있으며, 생명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거의 살아있는 생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레벨의 연금비약과 마찬가지로 8레벨 연금비약에도 등급이 있으며, 그 품질은 육안으로 분별해낼 수 없고 오직 비뢰의 색으로만 알아낼 수 있었다.

8레벨 이상부터는 연금비약의 품질이 높을수록 비뢰의 색이 더 다양해지는 것이 특징이었으며, 전설의 9레벨 연금비약이 만들어 지는 순간에는 무려 아홉가지 색의 비뢰가 내리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단선이 불러낸 두 가지 색의 먹구름은 그녀가 만들어 낸 것이 8레벨 초급 수준의 연금비약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 * *

두 가지 색을 가진 구름의 등장에 송청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져 나갔다. 그의 연금비약이 아무리 대단하다해도 7레벨 최고 수준의 연금비약이니 단선이 만들어낸 8레벨 연금비약을 당해낼 수 없었다.

한편, 석대 위에 있던 단선은 입가에 묻은 혈흔을 닦으며 창백한 얼굴로 하늘에 나타난 이색비뢰운을 바라보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호, 단선, 몇 년 사이에 이렇게 발전하다니. 역시 대단한걸.”

그 때, 먼 곳에서 요염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단선이 고개를 돌리자 창백한 얼굴로 요사스런 웃음을 짓고 있는 조영의 모습이 보였다.

단선과 시선을 마주친 조영은 곧바로 하얀 손으로 인결을 만들며 고함을 내질렀다.

“솟아라!”

펑!

낭랑한 목소리가 광장 위에 퍼져나가는 순간, 거대한 빛기둥이 조영의 약솥 안에서 터져 나와 하늘 위로 솟아오르더니 또 다시 두 가지 색을 띠는 구름이 나타났다.

하지만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 몇 몇이 청색, 은색이 섞인 비뢰 안에 옅은 담홍색이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또 8레벨 연금비약이야! 이번엔 색깔이 세 개야!”

두 개로도 모자라 세 개의 색을 가진 비뢰가 나타나자, 송청의 얼굴이 완전히 흙빛으로 변하고 말았다. 조영, 단선과 자신의 실력에 이 정도로 격차가 있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모양이었다.

바로 그 때, 먼 곳에 있는 석대에 말없이 앉아있던 이준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높은 석대 위에 있던 현공자와 연금탑의 두 수장은 긴장한 표정으로 두 주먹을 쥔 채 이준이 서있는 석대를 바라봤다.

과거 약선이라는 남자는 이곳에서 모든 연금술사들이 바라 마지 않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오늘은 그의 제자가 이 자리에 섰다.

이준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는 순간, 하늘 위에서 강한 빛과 함께 천둥이 내리쳤다.

송청, 조영, 단선은 약속이나 한 듯 시선을 돌려 이준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연금탑이 자랑하는 최고의 천재들이었지만, 갑자기 나타난 이 젊은 연금술사가 신경 쓰여 견딜 수가 없었다.

“허…….”

한편 모골은 이준을 살짝 흘겨본 뒤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다시 자신의 약 솥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천 개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있었지만 이준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약솥을 바라보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 뒤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댕!

이준이 손을 움직이는 순간, 붉은 약솥의 뚜껑이 하늘 높이 날아가며 엄청난 에너지 파동이 폭발했다.

곧이어 새빨간 약솥에서 퍼져 나온 에너지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이준과 가까이 있던 석대들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 파동의 위력에 놀란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사이, 만수의 솥이 격렬하게 뒤흔들리며 방대한 청록색 불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이 파동은…….”

높은 석대 위에 있던 현공자가 살짝 굳은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분명 8레벨 연금비약이오. 허허……. 놀랍군.”

현공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 높이 솟아오른 불기둥의 끝부분에서 기이한 안개가 빠르게 모이기 시작하더니 번개 구름으로 변해갔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번개구름이 마구 요동치면서 청색과 은색의 빛줄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색, 역시 이색비뢰운이야!”

“아니야, 구름이 아직도 요동치고 있어. 아직 색깔이 더 나오려는 거라고!”

광장 안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한쪽에서 또 다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청색과 은색 사이에서 옅은 붉은 빛이 돌기 시작하더니 이내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한 적색으로 변화했다.

“삼색비뢰운이다.”

“정말 삼색이야! 조영의 것보다 색이 훨씬 짙어!”

조영의 것보다 더 또렷한 색을 가진 삼색구름의 등장에 광장 전체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조씨 가문의 ‘마녀’는 연금성내에서 가장 유명한 젊은 천재로, 중주 내에서도 따라갈 자가 없는 천재로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나타난 젊은 청년 하나가 그녀보다 더 뛰어난 연금비약을 만들어 냈으니 광장이 발칵 뒤집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이 녀석……. 어떻게 이럴 수가…….”

조영의 것을 능가하는 비뢰의 등장에 송청은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말도 안돼, 연금 세계에 들어갈 때만 해도 7레벨 고급 연금술사였잖아. 어떻게…….”

“이 녀석, 설마 숨기고 있던 거야?”

멀리 있던 조영과 단선 역시 놀란 눈으로 이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준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8레벨 연금비약을 제조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후…….”

한참이 지나서야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조영은 번개구름 밑에 지극히 평온한 얼굴로 서있는 청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또래 중에 자신을 능가하는 인재가 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삼색비뢰운이라니, 호호. 현공자, 또 지셨네요.”

높은 석대 위, 삼색의 구름을 바라보던 중년의 여인이 현공자를 바라보며 장난스레 웃음을 지었다.

“역시 약선이구려. 허허……. 이렇게 뛰어난 제자를 키워내다니.”

멍하니 하늘 위를 바라보던 현공자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번져나갔다.

“흐음……. 저 정도라면 언젠가 약선을 뛰어넘을 인재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시종일관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까무잡잡한 노인의 입가에도 처음으로 옅은 웃음이 번져나갔다.

그의 말에 현공자와 중년의 여인 모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를 마친 현공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직까지 연금비약을 만들고 있는 두 노인을 바라봤다. 둘 중 하나는 바로 이준을 습격했던 모골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중주에서 오랜 시간 명성을 떨쳐온 청화라는 연금술사였다.

“우승자는 과연 누가될지…….”

이준의 번개 구름이 만들어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먼 곳에 있던 청화 역시 소맷자락을 휘두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리에서 일어선 청화는 이준을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청화가 입을 움직이자 작은 목소리가 이준의 귓가에 들려왔다.

“녀석, 대단하구나. 네 못난 스승이 참 뿌듯하겠어.”

낯선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이준은 조심스럽게 멀리 있는 노인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 청화라는 노인 역시 자신의 스승인 약로와 친분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청화는 가볍게 웃음을 지은 뒤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모골을 향해 눈을 돌렸다. 그는 계속해서 이 정체불명의 인물에게서 왠지 모르게 낯익은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청화의 마음속을 잠시 맴돌다 사라졌다. 지금은 눈 앞의 연금비약을 완성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청화 노인이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약솥의 뚜껑을 여는 순간, 눈부신 빛기둥이 구름을 꿰뚫고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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