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화. 비뢰의 축제
티끌 하나 없는 비취색 액체를 본 이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을 살짝 휘둘러 약솥 구석에 있던 가루들과 비취색의 액체를 융합시키기 시작했다.
첫 번째 융합은 아주 완벽하게 이루어졌고, 다시 1시간 정도 지나니 끈적한 비취색 액체가 완성됐다.
첫 번째 과정이 생각보다 너무나 순조롭게 완성되자, 이준은 자신의 연금술이 완전히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음을 실감했다. 예전과 같은 실력이었다면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늘에 떠다니는 수많은 석대 위에서는 모든 참가자들이 진지한 얼굴로 화염을 조종하며 각자 준비한 연금비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늘과 땅에는 전부 적막이 깔렸고,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연금비약을 제련하고 있는 참가자들을 바라보았다.
* * *
최고급 연금비약의 경우 제련에 열흘 이상이 걸리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기대가 집중된 가운데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5일이라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그 5일간 석대 위에서는 종종 제련에 실패했을 때 생기는 폭음이 울려 퍼지기도 했고, 더러는 연금비약이 완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5일 만에 만들 수 있는 연금비약으로는 절대 높은 성적을 거둘 수 없었으니, 일찍 완성했다는 것이 꼭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아직 연금비약을 제련해내지 못했지만 실패도 하지 않은 참가자들에게 몰려 있었다.
특히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조영과 송청, 이미 중주에서 이름을 날린 몇몇 연금대사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사람들 중 이번 대회의 우승자가 나오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 * *
이준은 눈꽃 인삼을 융합하는 과정에서 작은 실패를 겪었다. 제련 자체에 실패한 것은 아니지만, 품질이 생각하는 만큼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이준은 과감하게 눈꽃 인삼의 제련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다행히도 두 번째 융합에서는 실수가 생기지 않았다. 주재료를 두 개씩밖에 준비하지 않은 이 상황에서 한 번 더 실패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모든 게 끝이었으니, 이준 입장에서는 참으로 다행이었다.
본선이 시작되고 다섯 번째 태양이 중천에 뜨던 때, 이준의 약솥 안에는 액체인지 가루인지 알 수 없는 물체 세 개가 둥둥 떠 있었다.
보기에는 하찮아 보였지만, 그 안에서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순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세 개의 물체는 바로 이준이 5일 동안 온 정신을 기울여 만든 결과물이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이 세 가지를 완벽하게 하나로 융합해 연금비약의 형태로 빚어내는 것이었다.
융합은 연금비약 제련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어려운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준에게는 여유분의 약재가 없었으니 절대로 실패를 해서는 안 됐다.
융합에 들어가기 전 이준은 조영과 모골의 작업 상태를 한번 살펴보았다.
그들은 굳은 얼굴로 약솥 안에 있는 화염을 조종하고 있었고, 약솥 안에서는 짙은 에너지 파동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약재에서 퍼져 나오는 파동을 숨기고 있는 것을 보니 저 녀석들의 약솥도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군. 숨기지 않았다면 그들이 몇 레벨 연금비약을 제련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
모든 정신을 약솥 안에 쏟아붓고 있는 조영을 본 이준은 마음속으로 잠시 감탄사를 내뱉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뜨거운 공기를 들이마신 뒤 자신의 약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준이 정신을 최고조로 집중하자 엄청난 영혼의 힘이 약솥 전체를 가득 채우면서 미세한 변화까지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융합하는 속도는 아주 느렸지만, 털끝만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상황에서 섣불리 속도를 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준의 융합이 끝나갈 무렵에는 이미 열흘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 있었다.
* * *
시간은 바람처럼 빠르게 흘렀고, 눈 깜짝할 새에 보름이나 지나 있었다.
그동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연금비약 제련을 마치면서 하늘 위에서부터 온갖 종류의 약향이 퍼져 나갔다.
짙게 깔린 약향을 들이마시는 순간, 오랜 시간 동안의 기다림으로 지쳐버린 심신이 한순간에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수많은 참가자들 중에서 연금비약 제련을 마치면 생겨나는 비뢰를 만들어낸 자는 오직 한명 뿐이었고, 그마저도 하늘에 짙은 구름이 깔리기만 했을 뿐 비뢰가 내려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실망하는 자는 없었다. 아직 우승 후보들 중 누구도 자신의 연금비약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이준은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융합 작업에 온 정신을 쏟고 있었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융합을 진행하면서 약솥 안에서 솟아오르는 화염 속에는 어느새 주먹만 한 크기의 둥근 물체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백 가지 이상의 재료가 응축된 그 둥글 물체를 가다듬고 또 가다듬어 연금비약으로 만들어내는 것뿐이었다.
* * *
쾅!
따뜻한 열기가 느껴지는 천지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자, 수많은 사람들은 급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뢰? 7레벨 연금비약이다.”
7레벨 이상의 연금비약을 만들었을 때만 나타나는 비뢰의 등장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석대 위로 향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는 한 중년의 사내가 환히 웃으며 하늘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준은 비뢰를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 정도로 약한 비뢰라면 간신히 7레벨 하급을 넘은 연금비약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비뢰가 나타난 후 반나절이 지났을 때, 하늘에 또다시 번개구름이 생겨났다. 이번 번개 구름은 처음 나타난 구름보다 더 강한 것으로 보아 훨씬 더 좋은 연금비약을 제련해낸 참가자가 나온 모양이었다.
그 이후로 한동안 거의 매일 두세 번씩 단뢰가 나타나며 광장 안은 반쯤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준이 보기에 지금까지 나온 연금비약 중 가장 높은 등급의 연금비약도 고작 7레벨 중급밖에 되지 않았으니, 무사히 제련을 마치기만 한다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화염이 끓어오르던 석대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제 남은 참가자는 채 50명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투기대륙 최고의 연금술사라고 할 수 있었다. 아마도 아직까지 남아있는 사람들 중에서 우승자가 나올 것이 분명했다.
벼락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높다란 하늘 위에는 시꺼먼 구름이 두텁게 깔려 있었다.
쾅!
두꺼운 구름 안에서 거대한 은색 번개가 하늘을 반으로 가르며 석대 위에 있는 한 청년에게로 떨어졌다. 그 순간,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구름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하하, 성공했어!”
희끗한 수염을 가진 남자의 손 위에서는 용의 눈 크기만 한 연금비약이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연금대회는 이미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아직까지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불과 서른 명에 불과했고, 그중에는 모골, 송청, 단선, 조영, 이준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이준은 따갑게 귀청을 때리는 벼락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는 듯 온 정신을 자신의 약솥 안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약솥은 어느새 천지의 불꽃으로 인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그 안에서는 신비한 빛을 내뿜는 둥근 물체가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주먹만 했던 원형의 물체는 어느새 손가락 한마디만한 크기까지 줄어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이미 7레벨 최고 수준을 뛰어넘어 있었다.
* * *
펑!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 위에서 갑자기 폭발음이 들려왔다. 모든 사람들이 놀라 폭음이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한 중년의 사내가 넋을 놓은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있는 약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약솥 안에서 퍼져 나오는 불안정한 에너지 파동을 보니 제련 중 사고가 발생한 듯 했다.
“이럴 수가…….”
약솥을 멍하니 바라보던 중년 남자의 눈시울이 빨갛게 변하기 시작했다. 20일 가까운 시간을 쏟아 부으며 고생했는데, 그 성과가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니 어느 누구라도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눈물을 쏟아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 이후로도 하나둘 연금비약을 제련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 나타났지만, 몇몇은 여전히 실패도 성공도 하지 않은 채 제련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것은 이미 그들이 연금탑의 일부 장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 * *
수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기다리는 동안 5일이라는 시간이 더 지나갔다.
5일 동안 총 아홉명의 참가자가 7레벨 연금비약을 만들어 냈고, 현재까지 그중 가장 높은 레벨의 연금비약은 7레벨 고급이었다.
이 연금비약을 성공적으로 제련해낸 사람은 바로 나이든 장로였는데, 대륙에서 이미 꽤나 명성을 날린 사람인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7레벨 고급 연금비약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물론, 성공한 사람이 있다면 실패한 사람도 있는 법. 5일 동안 9명의 참가자가 제련에 성공한 반면, 7명의 참가자가 제련에 실패해 사람들의 안타까운 눈빛을 받으며 석대에서 내려왔다.
그렇게 5일 동안 총 16명의 참가자들이 석대에서 내려왔고, 이제 석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불과 17명에 불과했다.
그들 중 가슴팍에 달고 있는 휘장 등급이 가장 낮은 사람도 무려 7레벨 중급 연금술사였고, 가장 높은 사람이 8레벨 연금종사의 휘장을 달고 있었다.
그 낯선 8레벨 연금종사의 머리는 서리가 내린 듯 희끗희끗했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용모는 훌륭하지 않았지만 얼굴을 가득 채운 온화한 웃음을 보니 적어도 모골 같은 악당은 아닌 것 같았다.
* * *
“청화, 저 영감이 여기에 있다니‥….”
높은 석대 위, 회색 머리의 노인을 본 현공자와 나머지 두 우두머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저었다.
“저 영감 약솥에서 느껴지는 파동을 보니 8레벨은 되겠어요.”
중년의 여인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영감 평생의 소원이 천지의 불꽃을 갖는 것이었는데, 약선과 그 망할 곳에서 몇 년이나 갇혀 있었지만 결국 약선에게 얼음불꽃의 정수를 빼앗겼지. 지금 별의 불꽃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체면이고 뭐고 다 버리고 대회에 참가할 수밖에.”
까무잡잡한 노인이 말했다.
현공자는 어찌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다른 석대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선 검은 옷을 입은 모골 노인이 연금비약을 제련하고 있었다.
“저자의 기운은 완전히 숨겨져 있는데……. 얼굴도 바꾼 것 같고…….”
중년의 여인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모르겠소. 하지만 연금비약을 완성할 때는 기운을 숨길 수 없으니 그때 알 수 있을 것이오. 영혼의 궁전의 사람이 아니길 바라야지.”
현공자의 말에 중년의 여인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강자의 출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그때, 돌연 지금까지 한 번도 본적이 없었던 거대한 빛줄기가 먹구름을 가르며 온 하늘을 뒤덮었다.
쾅!
곧이어 낮은 굉음이 울려 퍼지며 엄청난 에너지가 석대 위에서 터져 나왔다.
“송청이다.”
한 사람이 예리한 눈빛으로 석대 위에 앉아 있던 송청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7레벨 최고급 연금비약이라니! 이전에 나왔던 7레벨 최고급 연금비약보다 품질이 훨씬 더 높은걸!”
은빛 섬광이 어지럽게 눈을 찌르는 가운데 송청이 번쩍 손을 치켜들었다.
그의 손에는 마치 별처럼 빛을 발하는 둥근 단약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가 연금비약을 높이 치켜드는 순간,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