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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84화 (584/818)

584화. 절정

한편, 조영과 인사를 하고 시선을 돌린 이준은 자리에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싸늘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모골…….”

이준의 시선이 머무른 곳에는 흑색 옷을 입은 노인 하나가 앉아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이준을 죽이려다 영진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한 모골이었다.

이준과 모골이 함께 나타나자, 영진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지며 차가운 콧김을 흥, 하고 내뿜었다.

“흥, 운 좋은 녀석 같으니.”

“이 영감도 별의 불꽃을 노리는 것 같은데…….”

이준은 모골에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저장반지를 문지르며 광장 전체를 둘러보았다.

연금세계의 출구 쪽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연금술사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저 사람들도 모두 별의 불꽃을 위해 대회에 참여한 거겠지?”

이준은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으며 다시 광장에 있는 다른 연금술사들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단선이란 아이도 이미 도착했군. 저 여자 아이도 보통 인물은 아니란 말이지…….’

단선은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과거 그녀와 부딪혔을 때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영혼이 영혼단계를 넘어선 지금 단선을 다시 보니 놀랍게도 그녀가 끊임없이 영기를 흡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선은 지금 순수하게 염력이 아닌 영기만을 흡수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와 처음 부딪혔을 때 느꼈던 그 기이한 느낌은 그녀가 끊임없이 영기를 흡수하고 있었기 때문인 듯싶었다.

“체질도 특이하고 영혼의 힘도 아주 강한데……. 몸은 아주 약하네.”

이준은 문득 그녀가 아라처럼 독특한 체질을 가진 사람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8레벨 연금술사가 되었으니 우승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했던 이준이었지만, 막상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살짝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 * *

시간이 흐르면서 광장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게다가 광장에 있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과연 연금세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답게 엄청난 실력자들뿐이었다.

광장의 중심부에는 왜곡된 공간이 보였고, 그 앞에는 연금탑의 의복을 입은 노인 하나가 지팡이를 짚은 채 서 있었다. 귤껍질 같은 피부를 가진 그 노인의 가슴팍에는 번쩍이는 보라색 연금탑의 휘장이 달려 있었다.

“연금탑의 8대 장로 중 한 사람이야.”

노인의 가슴에 달린 독특한 빛을 내뿜는 휘장에 사람들이 하나둘 작은 목소리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팡이를 짚은 노인은 광장에서 들려오는 말들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듯 눈을 감고 말없이 서있었다.

잠시 후, 그 노인이 눈을 뜨고 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시간이 다 되었으니 재료표와 약재를 나에게 주고 이곳을 빠져나가 본선에 참가하시오.”

말을 마친 노인이 지팡이 끝으로 왜곡된 공간을 긁는 순간, 새까만 균열이 생겨났다.

노인의 말에 광장 안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졌다. 표정을 보아하니 아직 이번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노인의 말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냉담한 표정을 하고 있던 중년의 사내 하나가 재료표와 약재를 노인에게 건넸다. 노인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그 남자가 공간의 균열 사이로 빠르게 사라졌다.

그 뒤로도 하나둘씩 연금술사들이 걸어나와 노인에게 약재를 전해준 뒤 무사히 연금 세계를 빠져나갔다. 종종 가짜 약재를 가져와 심사에 통과하려는 사기꾼들도 존재했지만, 그들이 가짜 약재를 꺼낼 때마다 노인이 지팡이를 들어 그들을 날려버렸다.

조영을 비롯한 다른 이들 역시 균열 사이로 사라지고, 마침내 이준의 차례가 왔다.

“그럼 먼저 갈게. 나가서 다시 만나자.”

“응.”

보람에게 인사를 건넨 이준은 웃으며 앞으로 걸어 나가 노인에게 저장반지에서 꺼낸 재료표와 약재를 건넸다.

이준이 내민 약재를 확인한 노인은 이준을 힐긋 쳐다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시오.”

이준은 노인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인 후 앞에 있는 검은 균열을 바라보며 살짝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 정말로 별의 불꽃이 코앞에 놓여 있었다.

머릿속이 아찔할 만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광장에는 온통 사람들로 가득해 그들이 만들어 낸 시끄러운 소음이 하늘까지 닿을 것만 같았다.

광장 위에는 여전히 수많은 석대가 둥둥 떠 있었고,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그곳으로 향해 있었다. 그 석대야말로 이 대회에 참가한 진짜 실력자들이 그동안 갈고 닦아온 자신의 실력을 뽐낼 장소였다.

지난 며칠간 사람으로 가득했던 광장의 인파는 오늘 절정에 달했다. 오늘 연금세계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진짜배기 연금술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치를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 광장의 중앙에는 흑색 암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문이 있었으며, 그 안에서 본선에 참가할 연금술사들이 하나 둘 걸어 나오고 있었다.

광장 한 쪽에 위치한 높은 언덕에 앉아 있던 아라와 천화존자 역시 긴장된 표정으로 대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준의 실력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지만 연금세계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두 사람으로서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허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동안 스스로 공간석을 깨고 빠져 나오는 자들이 계속해서 보였는데, 이준 선생도 나왔다면 진즉에 우릴 찾아왔을 겁니다.”

바짝 긴장한 채 광장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라의 모습에 유종길이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준 선생에게 있어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건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유종길의 위로에도 아라는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때, 공간 통로에서 갑자기 격렬한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공간 대문이 열린다.”

공간 파동이 나타나는 순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수 천, 수 만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공간 통로로 향했다.

대문을 통과한 참가자들이 나타나는 순간 고막이 터질 정도로 큰 환호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지금 이곳에 선 자들은 모두 투기 대륙 최고의 연금술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공간 대문에서 빠져나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환호성 역시 최고조에 이르렀고, 폭발적인 함성 소리로 인해 광장 바닥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

쾅!

잠시 후, 공간 대문에 또다시 파동이 일면서 부스스한 머리의 여인 하나가 웃으며 걸어 나왔다.

이번 대회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하나가 등장하자, 사람들의 입에서는 더욱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조영과 비교했을 때, 그 뒤를 따라 나온 송청에게 보내진 함성은 조금 더 작았다. 그 역시 천재라 불릴만한 인재임에는 분명했지만, 조영에 비하자면 조금 부족한 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 순간, 아라의 표정이 살짝 변하며 하얀 손을 꾹 움켜쥐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나왔음에도 이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점 굳어지는 아라의 표정을 본 유종길은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불안한 듯 눈을 굴려대기 시작했다.

사실 연금세계 안에서 가장 큰 적은 연금세계 안에 살고 있는 마수가 아닌 연금대회에 참가한 참가자들이었다.

자신이 성공할 확률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 수많은 연금술사들이 경쟁자들을 공격하곤 했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는 계속해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지만, 아라 일행은 긴장한 듯 마른 침을 삼키며 계속해서 공간 통로를 주시했다.

아라 일행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던 그때, 공간 대문에서 다시 파동이 일렁이며 메마른 형상 하나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이준 오라버니예요!”

메마른 형체를 보는 순간, 선화가 기쁜 표정으로 다급히 소리쳤다.

그녀의 말에 아라와 유종길, 천화존자도 모두 눈을 빛내며 공간 통로를 바라봤다. 그곳에 보이는 익숙한 얼굴에 그들의 입에서도 마침내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허허, 이준 선생의 실력으로 어떻게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하지 못할까 싶었습니다.”

이준의 모습을 발견한 유종길이 마음속의 무거운 돌을 내려놓고 웃으며 말했다.

공간 대문을 빠져나온 이준은 시선을 돌려 아라와 천화존자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 * *

거대한 광장 중앙.

이준은 갑작스레 터져 나오는 떠들썩한 환호성에 잠시 귀가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광장에 들어선 이준은 사공간 통로에서 줄지어 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광장에 있는 사람들이 최소 천 명은 넘어 보였다. 두 번의 심사를 거치고도 아직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남아있다니, 대체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대회에 참가한 것인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그 모든 인원이 연금 세계를 통과한 자들이니만큼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심지어 이 사람들 중 누구를 꼽아도 가한제국 최고의 연금술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던 이준의 시선이 광장 위에 우뚝 솟은 의석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이준도 압박감을 느낄 만큼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연금탑의 세 수장인가…….’

이준은 그 위에 서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다 문득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여쁜 중년의 여인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자가 약선의 제자, 이준인가요?”

만인이 주목하고 있는 높은 석대 위, 중년 여인이 광장에 서있는 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허허, 맞소. 저 자가 바로 이준이오.”

현공자의 대답에 빙긋 웃으며 이준을 바라보던 여인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이미 영혼단계에 들어선 것 같군요.”

“그렇군. 이건 조금 놀라운데.”

매서워 보이는 인상의 까무잡잡한 노인 역시 놀란 듯 눈을 치켜뜨며 이준을 바라봤다.

“약선 그 영감의 눈썰미가 대단하긴 하군.”

“영혼 단계에 올라섰다면 조영과 단선도 저 아이를 이기는 게 쉽지 않겠네요.”

중년의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여인의 말에 현공자는 씁쓸한 듯 기쁜 듯 묘한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군. 그 영감 한번 이기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 * *

공간 통로가 열린 지 대략 30분, 마침내 공간 통로가 닫히며 광장 위에 다시 적막이 내려앉았다.

소란이 잦아들자 높은 석대 위에 있던 현공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 뒤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선,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하고 이곳까지 무사히 도착한 여러분을 축하하오. 하지만 이번 시합이야말로 이번 대회의 가장 중요한 관문이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오. 이번 시험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가 바로 이번 연금대회의 우승자가 될 것이오! 저기 저 하늘 위에 떠있는 석대가 바로 여러분들의 재능을 뽐낼 무대가 될 것이오. 저기에서 자신의 인생 중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끽하길 바라오!”

현공자의 마지막 말이 끝나는 순간 폭발적인 함성소리가 온 하늘을 가득 메웠다.

열기로 들끓는 광장을 바라보던 현공자는 저도 모르게 씩 웃음을 지었다. 오랜 시간 연금 대회를 주최해 왔지만, 이토록 뜨거운 분위기는 그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모든 참가자는 올라오시오. 마지막 시험에는 제한이 없으니 모두 전력을 다해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연금비약을 제련해내시오!”

하늘에 울려 퍼지는 현공자의 목소리에 광장 안에 있던 수많은 참가자들이 앞다투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천 명의 사람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광경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의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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