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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83화 (583/818)

583화. 출구를 향해

끝도 없이 넓은 하늘 위로 뿜어져 나가던 무형의 힘이 돌연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순간, 산맥 안에 있던 마수들은 무언가를 느낀 듯 부르르 몸을 떨며 산꼭대기로 눈을 돌렸다.

“정말 8레벨이 되다니……!”

마치 거대한 장막처럼 온 산을 뒤덮은 이준의 영혼의 힘을 느낀 영진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전체적인 실력을 놓고 보자면 아직도 그가 몇 수는 더 위였지만, 영혼 단계에 올라선 이준의 영혼의 힘은 8레벨 마수인 영진조차 능가할 정도였다.

물밀듯이 퍼져나가던 영혼의 힘은 몇 분이 지나고 나서야 완전히 사라졌고, 구름 사이로 반투명한 형상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영혼체?”

하늘에 떠있는 반투명한 물체를 바라보던 영진이 흠칫 놀라며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영혼을 사람의 형체로 만들어 이토록 오래 유지한다는 것은 투존 강자에게도 어려운 일 이었다.

잠시 후, 반투명한 영혼체가 천천히 허공을 밟고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영진은 반사적으로 이준의 영혼체가 향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어느새 석전 밖으로 나온 이준이 자신의 영혼체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두 사람의 이준이 서로를 향해 걸어오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영혼체와 본체가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영혼체는 점점 더 작아졌고, 본체의 앞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손바닥만 한 빛으로 변해 있었다.

한없이 투명한 그 빛은 본체가 손을 뻗자 눈부신 빛을 내뿜으며 주인의 미간 속으로 빠르게 흡수되었다.

빛을 흡수하는 순간 이준의 몸이 가볍게 떨리더니 사방을 뒤덮고 있던 영혼의 힘이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그 때, 하늘 위에 한참 동안 가만히 떠있던 이준이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빠르게 인결을 바꾸었다.

그러자 거대한 영혼의 힘이 미간에서 퍼져 나오더니 손바닥 모양으로 변화했다.

“영진 형님, 이 영혼 무투기를 한번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준의 질문에 멀지 않은 곳에 서있던 영진은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좋습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투명한 영혼의 힘이 번개처럼 영진을 향해 날아들었고, 영진은 커다란 주먹을 강하게 움켜쥔 채 공간을 가르며 날아오는 무형의 힘을 향해 힘차게 주먹을 내질렀다.

펑!

투명한 영혼의 힘이 영진의 강철 같은 주먹과 부딪히는 순간 낮은 폭발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예상했던 에너지 파동이 터져 나오지 않자 영진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영혼의 무투기의 위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공격이 서로 맞닿는 순간 영진은 머릿속 깊은 곳에서 옅은 통증이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현기증을 이는 것을 느꼈다.

“……이건 영혼 공격이잖아?”

자리에 멈춰선 영진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졌다. 물론 모든 힘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인간으로 치자면 투존에 해당하는 자신의 힘으로도 상대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준이 공격한 것은 육체가 아닌 바로 상대방의 영혼이었다. 이 정도로는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없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목숨이 달아나는 치열한 전투에서는 상대에게 잠깐 동안 현기증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싸움의 결과를 뒤집어 놓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허……. 고대의 연금술사들은 염력으로는 막아낼 수 없는 영혼의 힘을 활용해 투사들을 상대했다고 하던데, 이것이 바로 그 영혼 무투기라는 건가요?”

영진이 정신을 차리기 위해 가볍게 머리를 흔들며 물었다.

그는 마수였지만 살아온 세월이 결코 짧지 않았고, 과거에 대단한 연금종사와 연이 있어 연금술과 연금술사에 대해서도 상당히 잘 알고 있었다.

“허허, 영진 형님, 괜찮으시죠?”

이준이 다가오며 질문을 던지는 순간, 영진은 문득 이준에게서 풍겨 나오는 느낌이 이전과는 사뭇 달라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영진은 이준이 아니라 그의 영혼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고 있었다.

“확실히 8레벨 연금술사가 된 것 같군요. 투존 이하의 강자들은 틀림없이 이 공격에 맞으면 영혼을 상할 것 입니다.”

새로운 경지에 오른 이준을 대하는 영진의 태도는 한결 부드럽고 친근해져 있었다. 8레벨 연금술사는 투존 강자라 해도 결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였고, 이는 마수인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오긴 나왔구나.”

그 때, 앳된 목소리가 이준의 귓가에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보람이 입술을 삐죽 내민 채 투덜대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 며칠이나 저 안에 있었어?”

“8일.”

보람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까뒤집으며 말을 이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연금세계 문이 닫힐 뻔 했어.”

“8일이라……. 아직 하루 반 정도 남았다는 거네.”

하지만 이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 놀라거나 다급해 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느긋하게 저장 반지 안에서 연금세계의 지도를 꺼내들었다.

“내게 필요한 건 다 찾았으니 이제 연금세계의 출구로 가려고. 너와 영진 형님은?”

그의 말에 보람이 살짝 손을 저으며 말했다.

“일단 널 따라가야지. 하지만 출구 쪽에는 연금탑 사람들이 지키고 있으니 우선 너 먼저 나가. 난 혼자서도 이 곳을 나갈 수 있으니까.”

이준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본래 결계나 공간 장벽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니 혼자 두어도 전혀 걱정될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우선 움직이자. 이곳에서 출구까지 거리가 좀 있으니 속도를 좀 내야겠어. 그래야 문이 닫히기 전에 나갈 수 있을 듯 해.”

“그래. 그리고 이건 네가 가지고 있어. 하지만 전부 네건 아니야. 그 안에는 내 식량이 잔뜩 들어있으니까. 이걸로 맛있는 걸 만들어 줘야해.”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미는 그녀의 손바닥 위에는 비취색의 저장 반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순간, 곁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영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이건?”

“이건 석전 안에 있던 희귀 약재들입니다.”

이준의 뒤에 있던 영진이 마른 기침을 하며 씁쓸하게 말했다.

영진의 반응을 보고 민망해진 이준 역시 보람을 바라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영진의 석전에 있던 약재들을 모조리 저장 반지 안에 넣어둔 모양이었다.

이준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 이었지만, 이 정도로 진귀한 약재들을 대가도 없이 받자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이 반지 안에는 평생을 돌아다녀도 구하지 못할만큼의 약재가 들어있으니 염치불구하고 반지를 챙길 수밖에 없었다.

“영진 형님도 같이 가십니까?”

저장 반지를 손가락에 끼운 이준이 살짝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저도 갑니다. 작은 아씨와 이준씨의 곁을 지켜야지요. 다시 그 녀석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골치 아파지지 않겠습니까.”

영진이 아쉽다는 듯 이준의 손가락에서 눈을 떼며 말했다.

그의 말에 이준은 픽 웃으며 감사의 표시로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지금 바로 움직이죠.”

“직접 날아가는 건 너무 귀찮아서…….”

말을 마친 영진이 가볍게 휘파람을 불자, 저 멀리서 새의 울음 소리가 들리더니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먼 산맥에서 날아와 높이 솟은 산봉우리 위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갑시다. 흑연새를 타고가면 아주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번거로운 일도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영진은 이준을 향해 손짓한 뒤 가볍게 허공으로 날아올라 흑연새라는 마수의 등 위로 올라갔고, 보람과 이준 역시 말없이 영진의 뒤를 따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까악!”

세 사람이 등에 오르기 무섭게 흑연새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북쪽을 향해 날아갔다.

흑연새를 타고 이동하니 불과 하루 만에 연금 세계의 출구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거대한 마수의 등 위에서 편안하게 쉬며 이동한 덕에 영혼의 힘과 염력 모두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 이었다.

출구로 향하는 동안 이준과 보람, 영진은 황급히 출구로 향하는 참가자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하나 같이 이준이 타고 있는 거대한 새를 부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동 수단만 있다면 번거로움을 크게 줄일 수 있었지만, 이 연금세계 안에 있는 마수들은 바깥 세계에 있는 마수들보다 몇 배는 더 포악했기 때문에 도통 길들일 방법이 없었다.

규정에 따르면 연금세계가 닫힐 때까지 출구에 도착하지 못한 자는 참가 자격을 박탈당하게 되며, 이틀을 연금세계 안에서 기다려야 연금탑의 강자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자들을 직접 데리러 오게 된다.

이 때문에 제한 시간까지 출구에 도착하기 위해 연금세계 안에 남아 있는 참가자들은 허겁지겁 출구로 모여들고 있었다.

* * *

새벽녘이 밝아올 무렵, 저 멀리 백색의 거대한 암석으로 지어진 광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광장 위에는 개미만한 검은 형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저곳이 연금세계를 빠져나가는 출구인가…….’

멀리서 광활한 광장을 바라보던 이준은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직 늦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까악-.

흑연새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하늘 위로 울려 퍼지는 순간, 흑연새는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강한 바람과 함께 멀리 보이는 광장을 향해 날아갔다.

하늘 위에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마수의 모습에 광장 위에 있던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지난 열흘간 이곳의 마수들이 얼마나 흉폭한 지 직접 겪어보았기에 흑연새의 거대한 크기를 보는 순간 경계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바로 그 때, 거대한 마수의 등 위에서 세 개의 그림자가 훌쩍 뛰어내려 광장 위에 착지했다.

세 사람이 나타나자 광장 안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순간 그들에게로 집중되었다.

연금 세계의 마수를 타고 다니는 것도 놀라웠지만, 사람들이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영진의 외모 때문이었다.

영진의 키는 자리에 있는 가장 큰 사람보다도 머리 하나는 더 달려 있는 수준이었고, 옆으로도 다른 사람들의 두 배 가까이 커 도저히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했다.

하지만 정작 세 사람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든 관심도 없다는 듯 천천히 걸음을 옮겨 광장의 중앙으로 향할 뿐이었다.

광장의 앞쪽에는 평소와 달리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조영이 서있었다.

조영을 발견한 이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정체불명의 투존 강자에게 쫓겨 이준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조영은 이준이 무사한 것을 발견하고는 잠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안도한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늘 냉정하고 남에게는 관심조차 없어보이던 조영이 자신을 걱정한 듯한 반응을 보이자, 이준 역시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피식 웃으며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조영의 안색이 조금 밝아진 듯하자 곁에서 그녀의 눈치를 살피던 송청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이준 선생에게 별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야. 영아, 그 날 있었던 일은…….”

하지만 조영은 송청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책할 필요 없어요. 그 때 그곳에 남아 있었으면 둘 다 죽기 밖에 더했겠어요?”

조영의 말투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는 경멸의 감정이 어려 있었다.

그러나 조영이 자신을 경멸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송청은 바보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환하게 웃음까지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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